소돔의 죄는 무엇입니까?
창세기 19:1-11
창세기 강해 42번째 시간입니다. 오늘은 창세기 19장 1절로 17절의 말씀을 가지고 “소돔의 죄는 무엇입니까?”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합니다. 아브라함이 살던 시대에 소돔과 고모라는 가나안 땅에서 가장 부요하며 풍요로운 도시였습니다. 하지만 소돔과 고모라는 가나안 땅에서 가장 부요하고 풍요로웠던 만큼 동시에 가장 타락하고 부패한 도시였습니다. 가장 부요하고 풍요로웠지만 동시에 가장 타락했던 소돔과 고모라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됩니다.
소돔과 고모라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은 너무나 엄중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직접 천사들을 보내 소돔과 고모라를 심판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받은 소돔과 고모라는 흔적도 없이 완전히 파괴되고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도대체 소돔과 고모라는 도대체 어떤 심각한 죄를 지었기에 하나님으로부터 그토록 엄중한 심판을 받게 되었을까요? 이 질문을 가지고 소돔과 고모라가 지은 죄가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오늘날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에게 소돔과 고모라는 동성애로 인해 하나님으로부터 심판을 받은 도시로 기억합니다. 아마도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은 소돔과 고모라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된 것을 성적타락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중에서도 동성애가 가장 중요한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생각은 아주 오래된 기독교인들의 생각이었습니다. 극심한 성적 타락을 나타내는 영어 단어 가운데 “소도미(sodomy)”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소도미라는 단어는 소돔이라는 도시에서 유래한 말입니다.
소도미라는 단어는 소돔의 죄에 대한 기독교인들의 생각이 담겨진 단어입니다. 소도미라는 단어에 담겨진 기독교인들의 생각이 무엇입니까? 소돔의 가장 심각한 성적 타락은 동성애였으며, 동성애 때문에 소돔과 고모라가 심판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소돔과 고모라의 가장 심각한 타락과 죄는 동성애였을까요? 하나님께서는 정말 동성애 때문에 소돔과 고모라를 유황과 불로 심판하시고 멸망시키신 것일까요? 아니라며 도대체 무엇 때문에 소돔과 고모라를 심판하신 것일까요? 이 질문을 가지고 오늘 설교를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아브라함은 소돔과 고모라 땅을 향해 가던 낯선 나그네를 발견하고는 그들이 누군지도 모른 채 자신의 장막으로 모셔 극진히 환대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은 자신이 극진히 환대한 낯선 나그네가 그냥 평범한 나그네가 아니라 하나님과 천사들이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물론 아브라함이 먼저 하나님을 알아챈 것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에게서 극진한 환대를 받으신 하나님께서 먼저 그 존재를 아브라함에게 드러내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소돔과 고모라에게 있을 심판을 알려주십니다. 아브라함은 소돔을 향해 길을 떠나는 하나님을 붙잡고서는 그 땅에 의인 열 명이 있다면 그들로 인해 소돔과 고모라 땅에 내릴 심판을 중단해 달라고 합니다.
아브라함이 죄악으로 가득 찬 소돔과 고모라를 구하기 위해 하나님께 중보 하는 것, 이것이야 말로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이유라고 믿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낯선 나그네를 극진히 환대하였던 아브라함에게 복을 주십니다. 하나님께 아브라함이 받은 복이 무엇입니까? 아브라함으로 하여금 강대한 나라가 되게 하시고 그의 나라로 말미암아 모든 나라 모든 민족이 복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아브라함의 후손들은 여호와의 도를 지켜 의와 공의로운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신 이유입니다.
창18:18-19 아브라함은 강대한 나라가 되고 천하 만민은 그로 말미암아 복을 받게 될 것이 아니냐 내가 그로 그 자식과 권속에게 명하여 여호와의 도를 지켜 의와 공도를 행하게 하려고 그를 택하였나니 이는 나 여호와가 아브라함에게 대하여 말한 일을 이루려 함이니라
이것은 오늘날 기독교인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되어야 하는 하나님의 사명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의 은혜를 베푸신 것은 오직 나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나를 통해 더 많은 사람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나를 부르시고 나를 구원하시는 은혜를 베풀어주신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에게 주신 구원의 은총은 하나님께 베풀어주신 축복이며 동시에 하나님께서 맡기신 책임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남들보다 더 많은 것, 남들보다 더 강한 것, 남들보다 더 좋은 것은 단순히 하나님의 축복만이 아니라 세상을 향해 주신 하나님의 사명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소돔을 가기위해 낯선 나그네의 모습으로 나타나셨지만 아브라함이 붙잡고 늘어지는 바람에 소돔을 가지 못하셨습니다. 대신에 함께 왔던 두 천사들만 소돔으로 가게 됩니다. 저녁때가 되어 소돔 땅에 도착한 두 천사는 마침 소돔 성문에 앉아 있던 롯을 만나게 됩니다. 소돔 성문에 앉아 있다 낯선 나그네를 발견한 롯은 아브라함이 그러했던 것처럼 땅에 엎드려 절하며 자신에 집에서 묵었다 갈 것을 부탁합니다. 두 나그네는 길거리에서 밤을 새겠다며 롯의 제안을 사양합니다. 사양하는 나그네에게 롯은 더욱 간청하며 자신의 집에서 묵을 것을 부탁합니다. 물론 롯 역시 아브라함처럼 낯선 나그네가 하나님께서 보내신 천사라는 것을 몰랐습니다.
창19:2-3 "두 분께서는 가시는 길을 멈추시고, 이 종의 집으로 오셔서, 발을 씻고, 하룻밤 머무르시기 바랍니다. 내일 아침에 일찍 일어나셔서, 길을 떠나시기 바랍니다." 그들이 대답하였다. "아닙니다. 우리는 그냥 길에서 하룻밤을 묵을 생각입니다." 그러나 롯이 간절히 권하므로 마침내 그들이 롯을 따라서 집으로 들어갔다.(새번역)
낯선 나그네를 자신의 집으로 모신 롯은 비록 아브라함처럼 하지는 못했지만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저들을 환대하였습니다. 하지만 심각한 문제가 생겼습니다. 낯선 나그네가 롯의 집에 들어갔다는 소식을 들은 소돔 남자들이 롯의 집으로 몰려왔습니다. 롯이 사는 집의 문을 두드리며 낯선 나그네를 내 놓으라고 소란을 피웁니다. 자신들이 그 남자들과 상관해야겠다는 것입니다. 상관하겠다는 창세기의 완곡한 표현은 나그네들을 희롱하고 성적인 폭력을 행사하겠다는 의미입니다.
창19:4-5 그들이 잠자리에 들기 전에, 소돔 성 각 마을에서, 젊은이, 노인 할 것 없이 모든 남자가 몰려와서 그 집을 둘러쌌다. 그들은 롯에게 소리쳤다. "오늘 밤에 너의 집에 온 그 남자들이 어디에 있느냐? 그들을 우리에게 데리고 나오너라. 우리가 그 남자들과 상관 좀 해야 하겠다."
이것은 낯선 나그네들을 강제로 성폭행을 하여 저들에게 수치와 모욕을 주고 마을에서 쫓아내겠다는 것입니다. 고대사회에서 힘센 남자가 힘없는 남자를 성폭행하는 것은 상대방에게 가장 치욕스러운 수치와 모욕을 주는 전형적인 방법이었습니다. 물론 이것은 상대방에게 수치와 모욕을 주기 위한 방법으로 지금도 여전히 사용되고 있는 매우 악한 성범죄입니다. 지금도 동성 간의 성폭력은 오랫동안 단체생활을 해야 하는 군대나 감옥 또는 학교에서 지금도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는 성범죄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분명히 구별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힘 센 남자가 자신보다 약한 남자에게 강제로 성관계를 하는 것은 단순히 동성애라고 도매금으로 여겨버리면 안 됩니다. 이것을 동성애라고 말하는 것은 동성애에 대한 자신의 혐오를 합리화하고 정당화하려는 매우 의도적이고 고의적인 잘못된 성경 해석입니다. 낯선 나그네와 상관하겠다며 롯에게 낯선 나그네를 내어 달라고 하는 사건은 단순한 동성애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것은 힘 있는 자가 자신보다 약한 이를 강제로 성폭행하여 상대방으로 하여금 인격적이며 정서적이며 육체적인 심각한 상처를 주는 사건입니다.
자신의 집 앞에 모여서는 낯선 나그네를 내어 달라고 소란을 피우는 소돔 사람들 앞에 롯이 나왔습니다. 롯은 자신에 집에 들인 손님을 보호하기 위해 소란을 피우는 흥분한 소돔 사람들에게 이것은 악한 일이라며 말리려고 합니다. 하지만 책망하는 롯의 말에 소돔 사람들은 더욱 흥분하여 소란을 피웁니다. 도무지 흥분한 소돔 사람들을 말릴 수 없다고 생각한 롯이 매우 이상한 제안을 합니다. 무엇입니까? 자신에게는 남자를 알지 못하는 두 딸이 있는데 이 두 딸을 소돔 사람들에게 주겠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두 딸은 어떻게 해도 상관하지 않을 테니 대신에 자신에 집에 온 남자들에게는 아무 일도 하지 말 것을 부탁합니다.
창19:8 이것 보게, 나에게 남자를 알지 못하는 두 딸이 있네. 그 아이들을 자네들에게 줄 터이니, 그 아이들을 자네들 좋을 대로 하게. 그러나 이 남자들은 나의 집에 보호 받으러 온 손님들이니까, 그들에게는 아무 일도 저지르지 말게."
아마도 아브라함 시대에 자신의 딸을 희생하면서까지 자신의 집을 찾아온 손님을 보호하려고 했던 롯의 행동은 매우 의로운 행동으로 여겨졌을 것입니다. 이것은 아브라함 시대에 여자들이 어떠한 처우를 받았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기도 합니다. 당시 여자는 결코 제대로 된 사람대접을 받지 못했습니다. 심지어 그 여자가 자신의 아내이거나 딸이라고 할지라도 남자를 보호하고 지키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희생당해야 하는 그런 존재가 여자였습니다.
물론 그 당시 자신의 집을 찾은 남자 손님을 보호하는 것은 남자라며 반드시 지켜야 하는 명예였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집을 찾은 손님을 보호하여 자신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자신의 두 딸을 비참한 희생양으로 삼으려 했던 롯의 행동은 지금으로서는 도무지 인정할 수 없는 죄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단지 롯의 문제만은 아니었습니다. 아브라함도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롯은 자신의 두 딸을 내어 놓으려고 했지만 아브라함은 자신이 살려고 자신의 아내를 두 번이나 누이라고 속여 권력자에게 뺏겼습니다.
아무튼 롯의 파격적인 제안에도 불구하고 소돔 사람들은 소란은 잦아들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소돔 사람들을 더욱 심각하게 자극하였습니다. 흥분한 소돔 사람들이 롯을 향해 뭐라고 소리쳤습니까? “저도 나그네살이를 하는 주제에 우리에게 재판관 행세를 하려고 하는구나.” 비록 롯이 오랫동안 소돔 성에서 살았다고는 하지만, 비록 롯이 소돔 땅에서 재산을 모아 유력자가 되었다고는 하지만 소돔 사람들에게 롯은 굴어 들어온 나그네였으며 이방인에 지나지 않았던 것입니다. 소돔 사람들은 굴러들어온 이방인 롯이 소돔 땅에서 자신들보다 부요하게 사는 것이 못마땅했던 것 같습니다.
창19:9 그러자 소돔의 남자들이 롯에게 비켜서라고 소리를 지르고 나서 "이 놈이, 저도 나그네살이를 하는 주제에 우리에게 재판관 행세를 하려고 하는구나. 어디, 그들보다 네가 먼저 혼 좀 나 보아라" 하면서 롯에게 달려들어 밀치고, 대문을 부수려고 하였다.
이것은 아주 오래된 인간의 방식입니다. 이것은 어느 시대 어느 나라에서난 발견하는 공통된 현상입니다. 처음에는 자신들의 필요가 있어서 이방인이나 이민자들을 받아들입니다. 이방인이나 이민자들로 인해 많은 도움을 받을 때는 서로가 어울려 잘 삽니다. 하지만 이방인이나 이민자들이 자신들보다 더 부요하게 살거나 또는 자신들의 이익에 피해를 주는 일이 생기면 가장 먼저 소수민족이나 이민자들을 향한 인종차별을 노골적으로 드러냅니다. 이것인 남의 땅에 와서 사는 거의 모든 이방인들 이민자들이 겪는 고통이며 아픔입니다.
더 이상 그대로 두었다가는 큰 일이 일어날 지경에 이르자 롯의 집안에 있던 낯선 나그네 두 사람은 소돔 사람들과 언쟁하는 롯을 집안으로 끌어 들이고는 문을 걸어 잠급니다. 그리고는 롯의 대문 앞에 모여서 소란을 피우는 소돔 사람들로 하여금 더 이상 난동을 부리지 못하도록 저들에게 재앙을 내립니다. 천사들이 소란을 피우는 소돔 남자들에게 내린 재앙이 무엇이었습니까? 젊은이나 노인이나 할 것 없이 소란을 피우는 모든 소돔 남자들의 눈을 어둡게 만들었습니다. 소돔 사람들의 눈을 가리어 더 이상 롯의 대문을 찾지 못하게 만든 것입니다.
창19:11 그 집 대문 앞에 모여든 남자들을, 젊은이 노인 할 것 없이 모두를 쳐서, 그 눈을 어둡게 하여, 대문을 찾지 못하게 하였다.
소돔 사람들의 눈을 어둡게 만든 천사들은 마침내 롯에게 자신들의 존재를 드러냅니다. 자신들은 여행을 하는 나그네가 아니라 소돔을 멸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보낸 사자라고 합니다. 소돔 성의 엄청난 죄악을 자신들의 두 눈으로 분명히 확인하였다고 합니다. 이제는 소돔과 고모라 땅에 하나님의 엄중한 심판이 내릴 것이라 선언합니다.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기 위해 자신들이 소돔 성에 왔다고 합니다. 여기까지가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창세기 19장의 말씀입니다. 그리고 천사들의 경고대로 그날로 소돔과 고모라에는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고 소돔과 고모라는 완전히 파괴되고 멸망하고 맙니다.
지금까지 말씀에서 하나님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심판하시고 멸망시키신 중요한 이유를 발견하셨는지요? 하나님의 엄중한 심판을 받아야 했던 소돔과 고모라의 죄는 무엇입니까? 소돔과 고모라에 대한 심판 이야기를 동성애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으로 여기는 것은 창세기의 말씀을 심각하게 왜곡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성경을 모르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들의 성적인 타락과 죄를 감추고 동성애에 대한 자신들의 혐오를 합리화 하고 정당화하기 위해 고의적이고 의도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심판하신 진짜 이유를 알기 위해선 하나님께서 낯선 나그네로 세상에 나타나신 이유를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는 낯선 나그네의 모습으로 변장하시어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셨고 롯과 소돔 사람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도대체 왜 하필이면 낯선 나그네의 모습을 하시고 아브라함과 소돔 사람들에게 나타나셨을까요? 이 이유를 이해해야만 하나님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심판하신 진짜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낯선 나그네의 모습으로 세상에 나타나신 이유에 대해 하나님께서 직접 아브라함에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말씀해 주신 것은 무엇입니까? 소돔과 고모라의 죄악이 너무나 심각하여 그들의 죄악이 하늘에 계신 하나님에게까지 들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소돔과 고모라의 죄악을 직접 확인하기 위해 사람의 모습으로 세상에 오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낯선 나그네의 모습으로 나타나신 이유입니다.
창18:20-21 여호와께서 또 이르시되 소돔과 고모라에 대한 부르짖음이 크고 그 죄악이 심히 무거우니 내가 이제 내려가서 그 모든 행한 것이 과연 내게 들린 부르짖음과 같은지 그렇지 않은지 내가 보고 알려 하노라
하나님께서는 소돔과 고모라의 죄악을 직접 확인하기 위해 낯선 나그네의 모습으로 나타나셨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낯선 나그네의 모습으로 나타나셔서 직접 확인하고자 하셨던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낯선 나그네를 소돔 사람들이 어떻게 대하느냐를 확인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낯선 나그네로 변장하신 하나님은 창세기 18장에서는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셨고 창세기 19장에서는 아브라함의 조카 롯과 그가 사는 소돔 사람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아브라함과 소돔과 고모라 사람들은 하나님과 천사들이 변장한 낯선 나그네를 만났지만 저들이 낯선 나그네를 대하였던 태도는 정반대였습니다. 아브라함은 낯선 나그네를 환대하였지만 소돔과 고모라 사람들은 낯선 나그네를 적대시 하였습니다. 창세기 18장과 19장에 의하면 낯선 나그네를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하나님의 축복과 하나님의 심판을 결정하는 기준이 되었습니다. 낯선 나그네를 환대하였던 아브라함에게는 하나님의 축복이 임하였고 낯선 나그네를 적대시 하였던 소돔과 고모라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였습니다.
이 사건은 이스라엘의 종교 문화에 있어 매우 중요한 영향을 끼친 사건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낯선 나그네를 극진히 환대하는 것은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도덕적인 의무가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낯선 나그네를 극진히 환대하는 것은 곧 하나님을 극진히 환대하는 것과 같은 종교적인 의무였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언제나 낯선 나그네의 모습으로 사람들에게 나타나시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구약의 종교 문화에서 나그네를 대접하는 것은 곧 하나님을 대접하는 것으로, 나그네를 박대하는 것은 곧 하나님을 거절하는 것으로 여겼습니다.
레19:33-34 외국 사람이 나그네가 되어 너희의 땅에서 너희와 함께 살 때에, 너희는 그를 억압해서는 안 된다. 너희와 함께 사는 그 외국인 나그네를 너희의 본토인처럼 여기고, 그를 너희의 몸과 같이 사랑하여라. 너희도 이집트 땅에 살 때에는 외국인 나그네 신세였다. 내가 주 너희의 하나님이다.
신10:18 고아와 과부를 공정하게 재판하시며, 나그네를 사랑하셔서 그에게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주시는 분이시다.
이것은 예수님의 가르침과도 일맥상통하는 말씀입니다. 마태복음 25장에서 예수님께서는 마지막 심판 날에 대해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비유에 의하면 마지막 심판 날에 목자가 양과 염소를 나누듯 예수님께서 의인과 죄인을 나누는 기준을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어느 누구도 주님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세상에서 가장 작은 자를 어떻게 대하였느냐에 따라 의인과 죄인을 나눈다고 하셨습니다.
마25:40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여기 내 형제자매 가운데, 지극히 보잘 것 없는 사람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다."
마25:45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여기 이 사람들 가운데서 지극히 보잘 것 없는 사람 하나에게 하지 않은 것이 곧 내게 하지 않은 것이다" 하고 말할 것이다.
소돔과 고모라에 내려진 하나님의 심판을 동성애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우리 시대 우리의 죄를 감추기 위해 더 큰 죄를 저지르는 것입니다. 우리의 죄를 감추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함부로 제멋대로 왜곡하고 남용하고 이용하는 것입니다. 성경 그 어디에도 소돔과 고모라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동성애 때문이라는 말씀은 없습니다.
겔16:49-50 네 동생 소돔의 죄악은 이러하다. 소돔과 그의 딸들은 교만하였다. 또 양식이 많아서 배부르고 한가하여 평안하게 살면서도, 가난하고 못사는 사람들의 손을 붙잡아 주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은 교만하였으며, 내 눈 앞에서 역겨운 일을 하였다. 그러므로 내가 그것을 보고는, 그들을 없애 버렸다.
사1:10,16-17 너희 소돔의 통치자들아! 주의 말씀을 들으라. 너희 고모라의 백성아! 우리 하나님의 법에 귀를 기울여라. 내가 보는 앞에서 너희의 악한 행실을 버려라. 악한 일을 그치고, 옳은 일을 하는 것을 배워라. 정의를 찾아라. 억압받는 사람을 도와주어라. 고아의 송사를 변호하여 주고 과부의 송사를 변론하여 주어라.
말씀을 마칩니다. 사람들이 자주 하는 말 가운데 한 밤중에 가장 위험한 일은 짐승이나 귀신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 낯선 사람을 만나는 것이라고 합니다. 낯선 사람이 가장 무섭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성경은 하나님께서는 낯선 나그네의 모습으로 사람들에게 나타나신다고 가르칩니다. 낯선 나그네를 경계하고 멀리하는 것은 곧 낯선 나그네의 모습으로 나타나시는 하나님을 경계하고 멀리하는 것이며, 힘없는 나그네를 함부로 대하고 조롱하고 모욕하는 것은 곧 낯선 나그네의 모습으로 나타나시는 하나님을 함부로 대하고 조롱하고 모욕하는 것이라 가르칩니다.
바라기는 낯선 사람, 나와 다른 사람, 나보다 연약한 사람들은 배척하고 경계하고 멀리하고 함부로 여겨야 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하나님을 극진히 환대할 수 있도록 나에게 주신 하나님의 기회임을 깨닫는 믿음이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