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와성경공부
비난과 저주 이겨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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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난과 저주 이겨내기

사무엘하 16:5-13

 

오늘은 비난과 저주 이겨내기라는 제목을 말씀을 나눕니다. 사람이 인생을 살면서 누리는 모든 행복의 시작은 관계에서 비롯되고 시작됩니다. 행복에 관하여 사람이 범하는 가장 큰 실수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돈이나 성공이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 것이라는 오해입니다. 그러나 진실은 돈이나 성공이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번 돈이나 내가 이룬 성공을 통해 맺는 사람과의 관계가 우리를 행복하게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살면서 누릴 수 있는 모든 행복은 하나님과의 관계 그리고 사람과의 관계에 담아 두셨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이 사실을 분명하게 기록하여 가르치고 있습니다. 구약의 율법 중 가장 중요한 율법은 십계명입니다. 그런데 구약의 십계명 중 네 계명은 하나님과의 관계에 관한 것이고, 나머지 여섯 계명은 사람들과의 관계에 관한 것입니다. 결국 모두가 관계를 맺는 것과 관련된 계명입니다. 신약성경에 기록된 예수님의 가르침도 구약성경의 가르침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가장 중요한 성경의 계명을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라 가르쳐 주셨습니다.


22:37-40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우리는 인간관계라고 하면 세상을 사는 처세술이나 인맥 만들기 정도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생각해서는 하나님이 주신 축복의 관계로 인간관계를 만들어 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는 것, 이것은 윤리와 도덕 이전에 하나님의 계명이며 우리 믿음의 중요한 영성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신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성공이나 성취가 아닌 관계입니다. 우리 신앙의 중요한 목적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는 것을 배우는 것입니다. 나아가 우리 인생에서서 사람을 섬기고 사람을 사랑한 것을 빼면 아무 것도 남지 않는다는 사실을 늘 마음에 두고 살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과 좋은 관계를 맺는 것과 사람과 좋은 관계를 맺는 것 가운데 어떤 관계가 더 어려울까요? 사람과의 관계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는 크게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늘 한결같으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고만 하면 문제될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물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못하는 것이 문제이긴 하지만 말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못해도 크게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용서하기를 즐겨하시는 분이시기에 우리가 사람을 용서하려는 노력만 한다면 언제든지 우리를 용서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사람과의 관계는 하나님과 관계와는 완전히 다릅니다. 하나님은 항상 사람의 마음과 중심을 보십니다. 하지만 사람은 마음이나 중심보다 눈에 보이는 외모와 행동을 봅니다. 하나님은 늘 한결같으셔서 언제나 변함이 없으십니다. 하지만 사람은 늘 변덕스러워 어제 다르고 오늘이 다릅니다. 하나님은 심판하시기보다 용서하기를 즐겨하십니다. 하지만 사람은 자신에 잘못에 대해서는 용서받기를 원하면서도 타인의 잘못에 대해선 용서하지 않으려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잘못했을 때 책망하고 경고하고 가르쳐서 잘못을 깨우치도록 도와주십니다. 하지만 사람은 잘못하지 않아도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비난하고 미워하고 저주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사람을 가장 큰 축복으로 주셨지만 항상 사람이 축복이 되지는 않습니다. 사람을 통해 얻는 축복이 큰 만큼 사람을 통해 받는 상처 역시 크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어쩌면 사람을 통해 받는 기쁨이나 축복보다는 사람을 통해 받는 상처나 배신 또는 비난을 받는 경우가 훨씬 더 많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과의 관계를 절대로 포기해서는 안 되는 이유에 대해 독일 출신의 지휘자 에센바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한 사람의 진실한 친구는 천명의 적이 우리를 불행하게 만드는 그 힘 이상으로 우리를 행복하게 만든다.”


우리 대부분은 다른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소원하고 좋은 관계를 가지려고 노력합니다. 하지만 문제는 내가 마음먹은 대로, 내가 원하는 대로 인간관계가 되지 않습니다. 마음이 중요하다고 하지만 마음만 가지고 안 되는 것이 인간관계입니다. 왜 마음만 가지고 인간관계가 안 되는지 아십니까? 다른 사람들 모두 다 내 마음 같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마음은 다 다릅니다. 내 마음과 같지 않습니다. 그래서 인간관계에는 항상 문제가 생기고 오해가 생깁니다.


분명히 알아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세상에는 내 마음과 똑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습니다. 세상에는 내 생각과 똑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는 모두 다 다른 마음과 생각을 가지며 살아갑니다. 그래서 세상에는 내 마음에 꼭 드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나와 다른 마음,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을 틀린 마음, 틀린 생각을 가진 사람이라며 좋아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미워하며 비난합니다. 그러니 세상에는 칭찬할 사람은 한 명도 없고 오직 비난하고 정죄할 사람만 넘쳐납니다.


사람이 밤을 새우면서도 할 수 있는 것 두 가지가 있다고 합니다. 첫 번째는 고스톱이라고 합니다. 도박입니다. 도박에 빠지면 밤새는 줄 모르고 한다고 합니다. 두 번째는 뒷담화입니다. 세상에서 도박 다음으로 재밌는 것이 남을 비난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남을 비난하는 것이 얼마나 재미있냐면 밤을 새도록 할 수 있다고 합니다. 농담이지만 여기에는 매우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남을 이해하거나 칭찬하기 보다는 비난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우리가 관계를 맺어야 하는 사람들은 모두 남을 이해하고, 칭찬하기보다 남을 비난하고 정죄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됩니다. 이 사실을 잘 모르겠으면 자기 자신을 돌아보면 됩니다. 과연 나는 다른 사람을 이해하거나 칭찬하는 경우가 많은지 아니면 나와 다른 마음이나 생각 때문에 비난하고 미워하는 경우가 많은지를 생각해 보면 분명해 질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항상 좋은 것보다는 부정적인 것에 먼저 봅니다. 일종의 생존본능과 같은 것입니다. 따라서 이런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야 하기 때문에 비난을 받지 않고 살아간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사람을 세워주고 칭찬해 주고 위로해 주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사람을 세우고, 사람을 키우고, 사람을 격려해주고, 사람을 위로해 주는 일은 탁월한 인격과 능력을 가진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존귀한 일입니다. 더 나아가 상처 받은 사람을 치유하고 낙심과 절망에 빠진 사람을 격려하고 위로하여 소망으로 인도하는 일은 오직 믿음의 사람, 신앙의 사람이 할 수 있는 영적인 일입니다.


하지만 비난을 통해 사람을 쓰러뜨리고, 뒷담화로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일은 누구나 아무나 할 수 있습니다. 굳이 노력하지 않아도 저절로 되는 것이 비난이고 뒷담화이고 상처주기입니다. 칭찬이나 격려를 하려면 훈련과 노력이 필요하지만 남에게 상처를 주거나, 남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일을 특별한 훈련이나 노력이 없이도 거침없이 할 수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께서 먹지 말라고 금하신 나무열매를 먹고는 하나님을 대면하자 이들이 어떻게 했습니까? 아담은 이들이 제일 먼저 한 일은 상대방을 비난하는 일이었습니다.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원죄를 가지고 태어났기에 남을 칭찬하는 일보다 남을 비난하는 일을 자연스럽게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우리 스스로를 포함하여 우리는 만나는 사람들 대부분은 비난과 상처 주기의 달인들이라는 뜻입니다. 전문가라는 뜻입니다.


우리 대부분은 특별한 훈련이나 노력이 없이도 너무나 손쉽게 사람을 비난하고 상처를 주고 상대방의 마음을 무너뜨릴 수 있는 비난과 정죄의 명수들입니다. 따라서 비난을 받지 않는 것을 인생의 목적으로 삼는다면 우리는 금방 절망하고 말 것입니다. 누구도 비난 받지 않고 사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기 때문입니다. 만약 비난 받지 않으려면 저는 절대로 우리교회에서 설교하는 것처럼 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중요하게 여겨야 하는 것은 비난 받지 않는 것이 아니라 내가 받은 비난을 어떻게 극복하며 사느냐가 인간관계를 유지하고 지속하는 데 가장 중요한 문제입니다.


성경을 보면 비난을 잘 대처하고 극복한 사람 가운데 대표적인 인물을 꼽으라면 다윗을 꼽을 수 있습니다. 다윗은 골리앗을 물리쳐서 위기에 빠진 사울 왕을 도왔지만 오히려 이것이 문제가 되었습니다. 백성들 사이에서 사울의 인기보다 다윗의 인기가 많아지자 사울 왕은 다윗을 비난하고 미워하고 심지어는 여러 번에 걸쳐 다윗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사울 왕이 죽은 다음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지만 그는 여전히 사울의 가문으로부터 비난과 저주를 받았습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사무엘하 16장의 말씀은 사울의 친족이었던 시므이라는 사람이 피난을 가는 다윗을 쫓아와서는 그에게 비난을 퍼붓는 사건입니다. 다윗은 지금 자신의 아들 압살롬의 쿠데타로 예루살렘 성을 떠나 피신을 가고 있는 상황입니다. 기가 막힌 상황입니다. 이런 비참한 상황에 시므이가 나타나서는 다윗을 저주합니다. 다윗을 비난합니다. 더욱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그를 비난하고 있습니다.


삼하16:7-8 시므이가 다윗을 저주하여 말하였다. "영영 가거라! 이 피비린내 나는 살인자야! 이 불한당 같은 자야! 네가 사울의 집안사람을 다 죽이고, 그의 나라를 차지하였으니, 이제는 주께서 그 피 값을 모두 너에게 갚으신다. 이제는 주께서 이 나라를 너의 아들 압살롬의 손에 넘겨주셨다. 이런 형벌은 너와 같은 살인자가 마땅히 받아야 할 재앙이다.“


다윗을 향한 시므이의 저주와 비난은 다윗에게 합당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시므이는 다윗이 사울 가문을 몰살시키고 사울의 나라를 차지했다고 저주했습니다. 하지만 다윗은 사울 가문의 그 누구도 죽이지 않았습니다. 사울은 블레셋 손에 죽을 수 없다며 스스로 자살을 하였고 그의 세 아들은 블레셋 군대에 의해 죽임을 당했습니다. 사울의 왕위를 이은 사울의 넷째 아들 이스보셋은 잠자는 중에 그의 부하들에게 죽임을 당했습니다. 오히려 다윗은 사울의 후손 중 유일하게 살아남은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을 찾아 자신의 왕자와 같은 대우를 해 주었습니다.


다윗은 누군가를 짓밟고 죽여서 왕의 자리에 오른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을 기다리고 기다려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의 추대로 왕위에 올랐습니다. 하지만 다윗이 어려움에 처하자 그 때를 이용해 시므이가 돌을 던지며 저주와 비난을 퍼붓는 것입니다. 이것은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어려움에 빠지게 되면 나를 도우려는 사람도 있지만 남의 불행을 기회로 삼아 저주와 비난을 퍼붓는 사람들을 반드시 만나게 됩니다. 이것을 이상한 일로 여겨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나를 비난하고 저주하는 사람이 있는 것이 당연하다고 인정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비난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비록 아들의 쿠테타를 피해 피신을 가는 다윗이지만 자신을 비난하는 시므이 쯤은 단숨에 죽일 수 있었습니다. 다윗의 부하 아비새가 당장 달려가 다윗을 저주하고 비난하는 시므이의 목을 베겠다고 나섭니다. 하지만 다윗은 내가 나은 아들도 내 목숨을 노리는 데 하물며 사울 가문의 사람이 나를 저주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는 아비새를 말립니다. 다윗은 시므이의 비난을 잘 이겨냈습니다. 비난을 잘 극복했습니다.


다윗이 어떻게 가장 힘든 순간에 자신에게 쏟아지는 비난과 저주에 무너지지 않고 스스로를 지켜낼 수 있었습니까? 자신에게 쏟아진 비난을 믿음으로 해석하고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자신에게 쏟아진 비난을 하나님의 주시는 책망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자신이 감당해야 할 하나님의 시험이라고 해석한 것입니다.


삼하16:10 왕이 이르되 스루야의 아들들아 내가 너희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그가 저주하는 것은 여호와께서 그에게 다윗을 저주하라 하심이니 네가 어찌 그리하였느냐 할 자가 누구겠느냐


일어난 사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건에 대한 해석입니다. 요즘 너무나 가짜 뉴스가 많으니까 여기저기서 팩트 체크가 유행입니다. 하지만 팩트 보다 더 중요한 것은 팩트를 어떻게 해석하고 받아 들이냐는 것입니다. 똑같은 팩트를 가지고도 전혀 다르게 받아들이는 것이 사람입니다. 우리가 정말 공의로우신 하나님을 믿는다고 한다면, 당장 분하고 억울한 일을 당한다고 해도 낙심하고 절망하기 이전에 먼저 믿음의 눈으로 해석하고 믿음으로 반응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아침 이슬을 독사가 먹으면 독을 만들어 내지만 소가 먹으면 우유를 만들어 낸다는 말이 있습니다. 똑같은 아침 이슬도 누가 먹느냐에 따라 사람에게 독이 되기도 하고 사람에게 유익한 것이 되기도 합니다. 칭찬이 좋다고는 하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독이 되기도 하고 어떤 사람에게는 유익한 것이 됩니다. 이것은 비난도 마찬가지입니다. 비록 비난이 그 자체로 나쁜 것이기는 하지만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유익을 얻을 수도 있습니다. 상처를 잘 다루지 못하면 우리의 몸과 마음을 상하게 만들지만 상처를 잘 다루면 진주와 같이 보배가 되게도 하는 것이 인간관계에서 받는 비난이며 상처입니다.


우리는 격려와 칭찬을 통해 자랍니다. 격려와 칭찬이 생수와 같다면 비난이나 비판은 폭풍우와 같습니다. 생수를 많이 받으면 나무는 높이 잘 자랍니다. 그러나 폭풍우를 통해 나무가 부러지고 때로는 뿌리 채 뽑혀 버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폭풍우를 통해 나무는 땅 속 깊이 뿌리를 내린다는 사실 또한 알아야 합니다. 비난은 우리에게 상처를 주고 고통을 줍니다. 그러나 그 고통을 통해 교훈을 얻습니다. 고통을 통해 얻은 교훈은 우리를 무르익게 합니다. 성숙하게 합니다.


요나단의 격려는 다윗에게 큰 힘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사울 왕의 집요한 괴롭힘이나 시므이의 비난은 다윗을 성숙한 인물로 만들어 주었습니다. 따라서 비난 받을 때 제일 중요한 것은 태도입니다. 사람들이 무너지는 것은 비난 그 자체 때문에 무너지기 보다는 비난을 대하는 태도에 때문에 무너지는 경우가 훨씬 더 많습니다. 비난을 믿음의 눈으로 신앙의 힘으로 받아들이면 나를 넘어뜨리려는 비난이 오히려 우리를 복되게 합니다. 비난 때문에 더 나은 사람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비난을 받으면서도 우리가 성숙할 수 있습니까? 비난을 극복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첫 단계는 그 누구도 비난을 피해갈 수 없다는 사실을 아는 것입니다. 나만 남들에게 비난을 받는 것이 아니라 나도 남을 비난하는 것처럼 모든 사람은 비난을 받으며 살아간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아무리 훌륭한 사람도, 아무리 선한 사람도, 아무리 좋은 사람도 사람의 비난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이것을 인정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절대로 피할 수 없는 것 중 하나가 비난입니다. 성경을 보면 믿음의 사람들 가운데 사람들의 비난을 받지 않았던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요셉도 비난을 받았고, 모세도 비난을 받았고, 사무엘도 비난을 받았고, 다윗도 비난을 받았고, 베드로도 바울도 사람들의 비난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였습니다. 심지어 예수님조차도 늘 사람들의 비난을 받아야 했습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가리켜 죄인과 세리의 친구라고 비난했습니다. 먹기를 탐하며 포도주를 좋아한다고 했습니다. 귀신들렸다고 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비난받는 것이 가장 고통스러울 때는, 자신이 받는 비난이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일 때입니다. 또는 자신의 좋은 동기나 마음은 알아주지도 않고 겉으로 드러난 결과나 모습만 보고 비난할 때입니다. 억울한 비난을 받을 때마다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셨던 예수님조차 비난을 받았으며 심지어 하나님마저도 사람들의 비난을 받았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비난을 극복하고 여전히 사람을 사랑하고 섬길 수 있습니까? 비난은 만질수록 커지는 괴물입니다. 누군가의 비난을 받을 때 민감한 반응을 보이면 비난은 점점 커져 더 많은 상처와 아픔을 남깁니다. 비난하는 사람과 맞서 싸우거나 논쟁한다고 해결되지 않습니다. 물론 필요하다면 설명하고 해명도 해야 합니다. 하지만 적합한 때가 오기까지 침묵하는 것이 비난에 대한 가장 좋은 대응책입니다. 비난에 대한 최고의 방어는 침묵입니다.


하지만 무조건 침묵하라고 답답한 마음을 그대로 두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도 두면 사람은 화병이 나고 맙니다. 이 때 정말로 필요한 것이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입니다. 다윗이 사람들의 비난을 극복하고 사람에게 복수하는 일을 하지 않을 있었던 것은 다윗의 기도 때문입니다. 시편에 기록된 대부분의 시들은 하나님을 향한 다윗의 기도이며 노래입니다. 그는 자신이 당하는 억울한 비난과 저주를 하나님께 고하며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였습니다.


35:19 부당하게 나의 원수 된 자가 나로 말미암아 기뻐하지 못하게 하시며 까닭 없이 나를 미워하는 자들이 서로 눈짓하지 못하게 하소서


69:4 까닭 없이 나를 미워하는 자가 나의 머리털보다 많고 부당하게 나의 원수가 되어 나를 끊으려 하는 자가 강하였으니 내가 빼앗지 아니한 것도 물어 주게 되었나이다


더 나아가 비난을 극복하는 가장 좋은 태도는 비난을 스승으로 여기는 것입니다. 마음만 열면 우리는 누구에게든지 배울 수 있습니다. 어떤 환경에서든지 배울 수 있습니다. 비난을 스승으로 삼기 위해선 자신이 받은 비난을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다윗은 시므이의 비난으로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다윗은 자신을 저주하고 비난하는 시므이가 하나님이 보내신 사자일 수도 있다고 겸허한 자세로 시므이의 비난을 하나님의 손길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다윗은 자신이 받는 억울한 비난을 하나님의 손길로 받아들이는 겸손이 있었습니다. 겸손한 사람은 모든 기회를 배움의 기회로 선용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다윗은 시므이에게서 받는 억울한 비난을 자신을 위한 하나님의 축복의 수단으로 삼았습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원통함을 풀어 주실 것을 믿었습니다. 시므이를 통해 비참하게 된 자신의 상처를 치료해 주실 것을 믿었습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시므이의 비난을 통해 더욱 자신을 축복하실 것을 믿었습니다. 다윗은 억울한 자를 도우시는 공의로우신 하나님의 은혜를 구한 것입니다. 다윗은 자신이 받는 비난이 억울할수록 하나님으로부터 받을 수 있는 은혜가 크다고 믿은 것입니다.


삼하16:12 혹시 주께서 나의 이 비참한 모습을 보시고, 오늘 시므이가 한 저주 대신에, 오히려 나에게 좋은 것으로 갚아 주실지, 누가 알겠소?"


이스라엘 사람들이 최고로 존경한다는 다윗은 평생을 비난 받으며 살아야 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도 공생애 사역 내내 사람들로부터 근거 없는 억울한 비난을 받으셨습니다. 하지만 다윗은 자신이 받은 비난을 하나님께 맡겼습니다. 예수님 역시 당신이 받은 모든 비난을 하나님께 맡겼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모욕하고 비난하는 자들에게 복수하지 않으셨습니다. 이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복수할 힘이나 능력이 없어서 하나님께 맡기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맡기는 것만이 가장 공의롭게 문제를 해결하는 것임을 가르쳐주시기 위함입니다.


벧전2:23 그는 모욕을 당하셨으나 모욕으로 갚지 않으시고, 고난을 당하셨으나 위협하지 않으시고, 정의롭게 심판하시는 분에게 다 맡기셨습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비난을 잘 극복하는 사람이 되려면 자신을 존귀하게 여길 줄 알아야 합니다. 사람들은 비난을 받으면 쉽게 포기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자신을 존귀하게 여길 줄 아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비난에 쉽게 낙심하지 않습니다. 좌절하지 않습니다. 민감한 반응을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늘 자신을 존귀하게 여기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자신을 존귀하게 여기는 사람은 자신의 억울한 마음을 다스릴 줄 아는 사람입니다.


다윗이 존귀한 사람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의 억울한 마음을 다스릴 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자신을 비난하는 시므이를 다스리기 전에 자신의 마음을 다스렸습니다. 미움을 다스렸고, 복수하고 싶은 마음을 다스렸습니다. 인생을 무너뜨리고 인간관계를 깨뜨리는 가장 무서운 적은 비난이 아닙니다. 비난에 대처하는 우리의 마음에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도 다윗처럼 위대한 왕처럼 살기를 원합니다. 사람들의 비난에 무너지는 사람이 아니라 사람들의 비난으로 인해 더욱 더 존귀한 사람이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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