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멘토 모리
전도서 12:1-8
누가 저에게 왜 사냐고 묻는다면? 저는 잘 죽기 위해 삽니다. 대답할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죽습니다. 이것은 누구도 피할 수 없는 가장 분명하고 확실한 인생의 진리입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누구도 피할 수 없는 가장 분명하고 확실한 죽음이라는 사실을 의도적으로 외면하며 살아갑니다. 그 결과 누구나 반드시 가야할 분명한 길임에도 불구하고 죽음에 대해서 별로 생각해 보지 않고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어떤 의미에서 갑자기 죽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존재했던 모든 사람은 다 죽었고 죽기 때문입니다. 비록 빠르고 늦고의 차이야 있겠지만 모든 죽음은 이미 예고된 것입니다. 하지만 막상 죽음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는 당연히 올 것이 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습니다. 아무리 장수한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자신의 죽음에 대해 마땅히 올 것이 왔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죽음이라는 사건을 대하는 태도는 “내 인생이 이렇게 끝날 줄 조금만 일찍 알았더라면 ... '입니다. 죽음에 대해 대부분의 사람들이 보이는 공통적인 반응은 후회입니다. 후회야 말로 죽음을 맞이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느끼는 공통적인 반응입니다. 누가 가장 잘 산 사람일까요? 저는 후회 없이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이야말로 가장 잘 산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반드시 죽을 수밖에 없는 사람이 죽음을 생각하지 않고 사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죽은 다음에는 죽음에 대해 생각할 수 없습니다. 죽음에 대해 생각할 때는 살아 숨 쉬는 지금 해야 하는 일입니다. 후회 없이 죽기를 원한다면, 조금이라도 후회를 줄이길 원한다면 지금 당장 죽음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죽음에 대해서 말하지 않습니다. 죽음을 회피하며 죽음에 대해서 말하는 것조차 꺼려하며 심지어는 두려워합니다. 죽음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금기(禁忌)처럼 여겨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매일 같은 수없이 많은 죽음에 대한 소식을 전하면서도 나와는 거리가 먼 사건으로 받아들입니다. 하지만 누구나 반드시 경험해야 하는 죽음을 생각하지도 않고 준비도 하지 않으려는 것은 매우 어리석은 일입니다.
건강은 건강할 때 지켜야 하는 것처럼 살아있을 때 죽음을 생각하고 죽음을 준비해야 합니다. 그래야 자신의 죽음을 존귀하게 맞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죽음의 질병에 걸려서야 죽음에 대해서 비로소 처음으로 진지한 생각을 해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죽음에 맞닥뜨리고 나서야 자신의 인생에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비로소 알게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그러다보니 후회할 것만 남긴 채 자신의 삶을 마감하게 됩니다.
인생에 있어서 그리고 신앙에 있어서 우리가 직면해야 할 가장 중요한 질문은 죽음입니다. 죽음에 관한 생각하고 기도하고 의식하며 살아가는 것은 결코 암울하고 부정적이며 염세적이고 절망적이지 않습니다. 죽음을 부정적이고 염세적이고 절망적이라고 가르치는 세상의 생각이 지독한 편견이며 세뇌입니다.
죽음을 올바로 생각하는 것이 삶을 더 풍성하고 아름답게 살아갈 수 있는 영적비밀입니다. 물론 죽음에 대해서 미리 준비하거나 준비하지 않는 것은 전적으로 우리의 자유입니다. 우리는 미리 생각해 볼 수도 있고, 그렇게 하기를 거부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어떠한 자세를 가지든지 분명한 것은 죽음은 우리의 삶 속으로 지금도 찾아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솔로몬은 젊어서 최고의 부와 명예와 쾌락을 누렸던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자 자신이 살아왔던 모든 것들이 부질없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인생에 대해 “헛되고 헛되며 모든 것이 헛되다” 고백했습니다. 도대체 무엇이 최고의 부와 명예와 쾌락을 누리던 솔로몬으로 하여금 그 인생에 대해 헛되고 헛되며 모든 것이 헛되다 고백하게 만들었습니까?
전12:8 전도자가 말한다. 헛되고 헛되다. 모든 것이 헛되다.
많은 사람들이 솔로몬으로 하여금 그 인생을 허무하다고 고백하게 만든 것은 그에게 다가온 죽음이 그의 인생을 허무하게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정말 그럴까요? 정말 죽음이 솔로몬의 인생을 더 나아가 우리의 인생을 허무하게 만드는 가장 결정적인 이유일까요? 아니오. 그렇지 않습니다. 죽음이 우리의 삶을 무의미하게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무의미한 것을 위해 살았던 그의 삶이 무의미해진 것입니다.
이처럼 죽음이 우리의 삶을 허무하고 무의미하게 만드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죽음을 생각하거나 죽음에 직면했을 때 커다란 허무감을 느끼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역설적이지만 언젠가 죽는다는 사실을 평소에 생각하며 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솔로몬이 가졌던 노년의 허무함은 젊은 시절 그가 창조주 하나님을 떠났고 죽음을 의식하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솔로몬은 젊을 때에, 살아 있을 때에 창조주를 기억하며, 하나님께 돌아가기 전에 창조주를 기억하라고 강력하게 권면한 것입니다.
전12:1-2 젊을 때에 너는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여라. 고생스러운 날들이 오고, 사는 것이 즐겁지 않다고 할 나이가 되기 전에 해와 빛과 달과 별들이 어두워지기 전에, 먹구름이 곧 비를 몰고 오기 전에, 그렇게 하여라.
전12:7 육체가 원래 왔던 흙으로 돌아가고, 숨이 그것을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전에 네 창조주를 기억하여라.
창조주를 기억하라는 솔로몬의 권면을 다른 말로 하면 죽음을 기억하라는 말씀입니다. 죽음을 외면한 채 삶에 대해서만 지나치게 집착하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끊임없는 탐욕과 욕심에 빠지게 합니다. 반대로 죽음에 대해 지나치게 집착하고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되면 삶은 허무하고 무가치하게 느껴집니다. 그리고 인생에 대한 허무하게 느끼거나 무의미하다고 여기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방탕과 타락한 삶으로 전락하게 만들 것입니다.
따라서 죽음을 두려워하여 외면하거나 망각함으로서 삶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어떠한 시도도 결국은 실패하고 말 것입니다. 삶의 문제는 죽음을 외면하거나 망각함으로서 해결되지 않고 오히려 우리는 언젠가 죽는다는 사실을 일상의 삶에서 늘 의식하고 살아감으로써 해결할 수 있습니다. 죽음을 응시할 때만 주어진 삶의 순간순간들이 얼마나 소중하고 중요한지를 비로소 깨달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일상에서 죽음을 의식하고 죽음에 대해서 생각하며 살아야 하는 이유는 죽음을 진지하게 생각하기 전에는 내가 무엇을 하며 살고 싶은 지를 제대로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죽음을 의식하며 살아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죽음이야말로 우리 인생의 가장 중요한 삶의 기준이 되기 때문입니다. 죽음이라는 인생의 명확한 기준이 없이는 삶을 살면서 내가 무엇을 하며 살고 싶은지를 제대로 알 수 없습니다.
내일 나의 죽음이 정해졌다면 오늘 나는 무엇을 하게 될까요? 한 달 후에 죽는다고 한다면 지금과 똑같이 행동할 수 있을까요? 물론 예외는 있겠지만 한 달 후에 죽을 것을 안 사람이 내가 산 주가가 대박을 쳤다고 미친 듯이 좋아할 사람도 별로 없을 것이고 반대로 내가 산 주가가 곤두박질 쳐 반 토막이 되었다고 절망할 사람도 별로 없을 것입니다. 죽음이라는 기준에서 생각하지 않는 것은 결국 다 죽음 앞에서 솔로몬의 고백처럼 헛되고 헛된 것이 되고 말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기억하며 사는 삶은 죽음을 기억하며 사는 삶입니다. 죽음을 생각하고, 끝을 기억하고, 마음에 두고 살아가는 것은 기독교의 중요한 영성입니다. 모두가 잘 살고 싶어 합니다. 그런데 정말 잘 살기를 원한다면 잘 죽을 수 있어야 합니다. 후회 없이 죽을 수 있는 사람은 오로지 후회 없는 삶을 산 사람만이 후회 없이 죽을 수 있습니다.
잘 죽는 것을 생각하고 배우는 것은 공포와 두려움에 사로잡혀 살기 위함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한 번뿐이 짧은 인생을 더욱 잘 살기 위함입니다. 죽음은 공포와 두려움이 아니라 우리로 하여금 주어진 삶을 더욱 소중하게 살아가게 하는 은혜이며 영성입니다. 바라기는 이 깨달음이 저와 여러분의 신앙의 여정에 풍성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