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와성경공부
요나강해3-내 편이 아니신 하나님(남편 같으신 하나님)
[ 첨부파일 일괄 다운로드 ] [ 첨부파일 2개 ]
  • 요나강해3-내 편이 아니신 하나님.pdf

    다운로드

  • 요나강해3-내편이 아니신 하나님.mp3

    다운로드

요나강해3-내편이 아니신 하나님.mp3

내 편이 아니신 하나님

(남편 같으신 하나님)

요나서 1:1-3

 

 

요나서 강해 3번째 시간입니다. 계속해서 요나서 11절로 3절의 말씀을 가지고 오늘은 내 편이 아니신 하나님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합니다. 처음 생각한 제목은 남편 같으신 하나님입니다. 여기서 남편은 husband가 아니라 남의 편이라는 중의적 의미의 남편입니다.


선지자 요나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선지자 요나에게 하신 말씀은 이방도시 니느웨로 가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선지자 요나에게 뿐만 아니라 요나서의 말씀을 읽는 당시 유대인들에게 여러 가지로 충격적인 말씀입니다. 이 사건에서 가장 충격적인 것은 이스라엘의 선지자에게 이방 도시로 가라는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이스라엘의 선지자 요나에게 이방인들의 도시 니느웨로 가라는 하나님의 말씀은 그야말로 충격적인 사건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전까지 선지자들은 오직 하나님의 선택받은 백성이라는 이스라엘 백성에게만 보냄을 받았습니다. 물론 예레미야 선지자, 이사야 선지자, 아모스 선지자와 같은 몇몇 선지자들은 이방 나라들에 대한 예언의 말씀을 전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들 중 누구도 다른 이방 나라로 직접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라는 보냄을 받진 않았습니다.


이스라엘의 선지자들 가운데에는 두 부류의 선지자가 있었습니다. 한 부류는 이스라엘의 부패와 타락 우상숭배를 강력히 비판하는 선지자들입니다. 이들은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민족일지라도 하나님의 뜻에서 벗어나면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 선포하였던 선지자입니다. 다른 한 부류는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시며 하나님의 뜻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세상에 우뚝 서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였던 유대 중심적인 생각을 가진 선지자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방 도시 니느웨로 가라고 명하신 선지자 요나는 이스라엘의 상반된 두 부류의 선지자들 가운데 보수적이고 민족주의적이며 유대 중심주의적 사고를 가진 선지자였습니다. 하나님은 가장 유대 중심주의적인 생각과 믿음을 가진 선지자 요나에게 이방 민족 니느웨로 가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요나의 입장에서는 자신에게 임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기가 결코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게다가 하나님께서 가라고 하신 니느웨는 이스라엘을 오랫동안 괴롭혀 왔던 원수의 나라 앗수르의 제국의 수도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선지자 요나에게 자신의 조국 이스라엘이 원수로 여기는 나라로 가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라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선지자 요나를 비롯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이 믿는 여호와 하나님은 오직 자신들의 조국 이스라엘만을 위한 하나님이라고 믿었습니다. 이것은 아주 오랫동안 지속되어왔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확고부동한 믿음이었습니다.


하지만 이게 어찌된 일입니까?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라고 믿었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심지어 훗날 이스라엘을 멸망시키고 정복할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로 가라는 것입니다. 니느웨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확정되었다면 굳이 요나를 보내어 경고하실 이유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니느웨에 대한 심판을 미루시고 그들에게 회개를 기회를 주시려고 하신 것입니다. 요나는 이미 이러한 하나님의 의도를 너무나 잘 알고 있었습니다.


4:2 그는 주께 기도하며 아뢰었다. "주님, 내가 고국에 있을 때에 이렇게 될 것이라고 이미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내가 서둘러 다시스로 달아났던 것도 바로 이것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좀처럼 노하지 않으시며 사랑이 한없는 분이셔서, 내리시려던 재앙마저 거두실 것임을 내가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교훈과 도전을 주는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요나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한 이유는 결코 하나님의 뜻을 몰라서가 아닙니다. 니느웨에 대한 하나님의 마음을 몰라서도 아닙니다. 요나는 니느웨로 가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숨겨진 하나님의 의도와 니느웨 사람들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습니다.


역설적이지만 요나가 니느웨로 가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하고 다시스로 간 것은 니느웨를 향한 하나님의 의도와 마음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한 것입니다. 요나의 불순종의 지금 우리의 불순종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몰라서, 하나님의 마음을 몰라서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지 않습니다.


물론 어떤 경우에는 하나님의 뜻을 몰라서 불순종하는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경우는 얼마 되지 않습니다. 대부분 우리의 불순종은 하나님의 뜻과 마음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불순종하는 경우가 훨씬 더 많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하나님의 뜻과 마음을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과 마음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불순종합니다.


요나는 니느웨로 가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분명히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니느웨로 가라는 하나님의 말씀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도 너무나 잘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요나는 니느웨를 향한 하나님의 의도와 말씀을 인정하기도 받아들이기도 싫었습니다.


요나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의 마음을 알았지만, 그의 마음은 하나님의 마음과 달랐습니다. 하나님은 자비로우신 분이심을 알았지만, 요나의 마음에는 자비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은혜로우신 분이심을 믿었지만, 요나의 마음에는 은혜가 없었습니다. 요나도 자신과 관계가 좋은 사람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자기를 아프게 한 사람을 용서하지는 못하였습니다. 결정적으로 요나에게는 하나님의 마음과 성품이 없었습니다.


이것은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우리가 하나님의 뜻과 마음을 너무나 잘고 있으면서도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합니다. 도대체 왜 우리는 하나님의 뜻과 마음을 알면서도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합니까? 물론 우리의 연약한 육신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우리의 불순종은 하나님의 마음이 자신의 마음과 너무나 다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이 자신에게 이익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이 자신의 마음과 다르면 누구의 마음을 따르는 것이 옳은 일입니까? 하나님의 마음을 따르는 것이 옳은 일입니다. 하지만 우리 대부분은 어떻게 합니까? 하나님의 마음을 따르기 보다는 하나님께서 내 마음을 따라 주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따르기 보다는 내 마음이 내키는 대로 선택하고 결정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내린 선택과 결정을 하나님께서 도와주시길 기도하고 바랍니다. 이것은 창조주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아니라 창조주 하나님을 자기를 도와주는 수호신으로 전락시키는 불신앙입니다.


교인들은 모든 생명의 주인 되시는 하나님을 자기편으로만 만들려고 합니다. 다른 교인들은 어찌됐든 상관하지 않습니다. 오로지 자기만 잘되도록 돕기만 하는 하나님이 되길 원합니다. 교회는 모든 교회의 머리 되시는 예수님을 자기 교회 편으로만 여깁니다. 다른 교회들은 어찌됐든 상관하지 않습니다. 오로지 자기 교회만 성장하도록 도와주는 예수님이시길 원합니다. 기독교 특히 개신교는 온 인류의 창조주 되시는 하나님을 개신교 편만 되어주길 원합니다. 다른 종교인들은 어찌됐든 상관하지 않습니다. 오로지 개신교만 잘되도록 도와주시는 하나님이시길 원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에 대한 매우 위험한 신앙입니다.


제가 몇 번 인용했던 링컨 대통령에 대한 예화입니다. 대부분의 예화가 그러하듯이 이 이야기는 실제 있었던 일이라기보다는 종교적 교훈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이 예화를 자주 반복하는 이유는 이 예화에 담겨진 의미가 우리에게 하나님에 대해 새로운 관점을 가지게 하는 도전이 되기 때문입니다.


미국이 노예제 폐지 문제를 놓고 남북으로 나뉘어 전쟁을 할 때였습니다. 미국의 목사들 역시 남부 연합군을 지지하는 목사들과 북부 연합군을 지지하는 목사들로 나누어졌습니다. 당시 북부 연합군을 지지했던 목사들이 북부 연합군을 이끄는 링컨 대통령을 찾아와서는 저희들이 날마다 하나님께서 우리 북부 연합군의 편이 되어주셔서 이 전쟁에서 우리가 이기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자랑하듯 말 했습니다.


자신을 위해 기도해 주는 목사들의 말을 들은 링컨 대통령이 목사님들 우리 북군이 이기게 해달라고 기도해주시는 것은 너무나 감사한 일이지만 다음부터는 기도하실 때 하나님께서 우리 북부 연합군의 편이 되기보다는 우리 북부 연합군이 하나님의 편에서 떠나지 않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말했다고 합니다. 저는 이것이 우리 모두에게 매우 중요한 영적도전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대부분은 하나님을 내 편이라고 여깁니다. 그러다 인생이나 신앙이 내 뜻대로 되지 않으면 하나님이 내 편이 아니라며 금방 실망하고 실족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에 대한 잘못된 믿음입니다. 믿음이란 하나님을 내 편으로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하나님의 편에 서는 것을 배우는 것이 믿음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것이지 하나님이 우리를 믿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내 편 아니라고 원망할 것이 아니라 과연 나는 하나님 편에 서 있는지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믿음이란 믿음의 대상이 되시는 하나님의 뜻에 우리의 뜻을 맞추는 것이지 우리의 뜻에 하나님의 뜻을 맞추는 것 아닙니다. 결국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면 그 하나님의 마음과 나의 마음이 같아지도록 배우고 노력하는 것이 믿음인 것입니다. 우리의 관심사에 하나님을 끌어드리려 하지 말아야 합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관심하는 일에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이것이 창조주 하나님을 믿는 제대로 된 믿음입니다.


목회를 하면서 가장 어려운 일 가운데 하나는 교인들의 비위를 맞추는 것입니다. 교인들이 비슷비슷하면 교인들 비위를 맞추는 게 그리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저도 알고 여러분들도 알다시피 우리 교회 교인들이 하나같이 다 개성 넘치는 사람들로 가득합니다.


생각하는 것도 다르고, 정치색도 다르고,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관도 다르고, 심지어 하나님에 대한 믿음도 다 다릅니다. 그러니 이러 교인들 비위를 맞추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모릅니다. 이 사람이 비위 맞추면 저 사람이 삐지고, 저 사람 비위 맞추다 보면 이 사람이 삐집니다. 이렇게 해도 문제고 저렇게 해도 문제입니다.


그래서 저는 교인들 비위 맞추려고 노력하지 않습니다. 우리 교회 교인들을 내 편 만들려고 애쓰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가운데 누구라도 목사인 제 편이 되어달라는 은밀한 부탁을 받은 적이 있으십니까? 아마 단 한 명도 없을 것입니다. 조금 가까워져서 금방이라도 제 편이 되실 것 같은 교인이 있으면 제가 의도적으로 거리를 둡니다. 물론 이런 저의 태도 때문에 섭섭해 하시는 분들도 계실 수 있을 것이라 생각도 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목사인 저에게도 좋은 일이지만 그 분에게도 좋은 일이라 믿습니다.


물론 저도 사람인지라 한편으론 교인들이 제 편이 되어주길 바라는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최대한 많은 교인들을 목사의 편으로 만들면 목회하기가 쉽고 이러 저러한 도움을 받기가 쉽다는 것을 제가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교회 교인들을 목사인 제 편으로 만들려는 그 어떤 시도나 노력도 하지 않으려고 애를 씁니다.


그래서인지 우리 교인들 대부분이 저를 크게 미워하거나 반대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오해가 있거나 의견이 분분할 때 강력하게 제 편이 되어 저를 지지해 주거나 이해해 주는 교인도 없습니다. 혹시 제가 여러분들 목사 편 만들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다는 것을 알고는 계셨습니까? 아마 대부분이 모르셨을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여러분들이 제 편이 아니라는 강력한 증거입니다.


더 많은 교인들을 목사의 편으로 만들면 목사의 힘을 커지고 그렇게 키운 힘을 이용해 목회를 하면 당장은 목회하기가 편할 것입니다. 하지만 목사가 저지르는 가장 심각한 실수 중 하나는 자꾸만 교인들을 내 사람으로, 내 편으로 만들려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교회를 사유화하려는 매우 위험한 시도입니다. 이런 시도는 결국 교인들뿐만 아니라 교회를 무너뜨리는 가장 위험한 목회가 될 것입니다.


교회에서 자꾸만 자기 편 만들려고 하는 목사는 삯꾼이지 목사가 아닙니다. 목회는 교인들을 내 편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교인들을 내 편이 되도록 노력하는 것이 목회가 아니라 교인들을 하나님의 편이 되도록 만드는 것이 목사의 가장 중요한 사명입니다. 아무리 목회가 힘들고 교인들이 힘들게 한다고 해도 교인들을 자기 편 만들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이것은 단지 목사인 저에게만 해당하는 원리가 아닙니다. 교회를 다니는 모든 교인들에게 해당하는 원리입니다. 교인들 역시 교회를 다니며 자꾸만 교인들을 자기편으로 만들려고 합니다. 어느 교회든 파벌이 없는 교회는 단 하나도 없습니다. 사람마다 취향이 다르고 생각이 다르고 가치관이 다르고 신앙관이 다르기 때문에 사람이 결코 모든 사람을 다 좋아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어느 정도 비슷한 사람들끼리 파벌이 생기게 됩니다.


하지만 자기편을 만들려는 노력이 지나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교회에서 교인들을 자기편으로 만들려는 노력이 지나치게 되면 결국 하나님마저 자기편으로 여기게 되는 신앙의 왜곡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내 편이 아니라고 섭섭해 하지 말아야 합니다.


대신에 나는 과연 하나님의 편에 서 있는가를 고민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편에 설 수 있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결코 내 편으로 만들 수 있는 분이 아닙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내가 하나님의 편에 서야 할지 말아야 할지를 결정할 수 있을 뿐입니다.


결국 끝까지 교회를 지키고 신앙을 지키는 사람은 목사의 편이 되거나 특정한 교인의 편이 되었던 사람이 아닙니다. 끝까지 교회를 지키고 신앙을 지키는 사람은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저는 우리교회 교인들이 목사 편이 아니라 오로지 하나님의 편에 서시는 교인들이 될 수 있도록 목회하려고 애씁니다. 여러분도 하나님의 편에 서는 성도가 되도록 늘 깨워 기도하시길 바랍니다. 저 역시 특정한 교인들 편이 아니라 하나님의 편에 서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신앙은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것이지 하나님이 우리를 믿는 것 아닙니다. 믿음이란 하나님의 뜻에 우리의 뜻을 맞추는 것이지 우리의 뜻에 하나님의 뜻을 맞추는 것 아닙니다. 결국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면 그 하나님의 마음과 나의 마음이 같아지도록 노력하는 것이 믿음인 것입니다.


우리의 뜻과 관심사에 하나님을 끌어드리려 하지 마세요. 오히려 하나님의 뜻과 관심사에 우리의 뜻과 관심사를 맞추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요나의 불순종이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영적 도전입니다. 바라기는 이 깨달음이 저와 여러분의 신앙의 여정에 있기를 바랍니다

새글 0 / 341 

검색

번호 제목 작성자 등록일 조회수
공지 자유교회 주일예배 영상 Youtube 링크 2021.04.21 4697
341 십계명20-사람의 생명이 존엄한 이유 2025.07.20 119
340 십계명19-약속 있는 첫 계명 2025.07.19 114
339 십계명18-어떻게 하는 것이 부모를 공경하.. 2025.07.19 105
338 십계명17-왜 부모 공경이 살인 금지보다 먼.. 2025.07.19 112
337 십계명16-누구를 위한 그리고 무엇을 위한 .. 2025.07.19 108
336 십계명15-어떻게 하는 것이 안식일을 잘 지.. 2025.07.19 112
335 십계명14-안식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 2025.06.07 197
334 십계명13-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는 삶 2025.05.24 291
333 십계명12-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는.. 2025.05.24 309
332 십계명11-하나님의 이름에 담긴 의미 2025.05.24 304
331 십계명10-우리가 만들어내는 하나님 2025.05.24 343
330 십계명9-우리의 신앙, 믿음입니까? 미신입.. 2025.04.06 324
329 십계명8-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 2025.04.06 311
328 십계명7-어떤 것으로도 하나님을 제한하지 .. 2025.03.18 393
327 십계명6-코람데오(Coram Deo) 2025.03.18 3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