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 때문입니까?
요나서 1:1-3-5
요나서 강해 4번째 시간입니다. 오늘은 요나서 1장 3절로 5절의 말씀을 가지고 “누구 때문입니까?”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합니다.
요나는 자신에게 임하신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가라고 하신 니느웨 대신에 다시스로 가려고 합니다. 요나는 하나님의 뜻을 분명히 알고도 니느웨가 아니라 다시스로 향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보다는 하나님의 뜻과는 전혀 다른 자신의 생각을 따르고 자신의 뜻을 이루기 위해 다시스로 향한 것입니다.
욘1:3 그러나 요나가 여호와의 얼굴을 피하려고 일어나 다시스로 도망하려 하여 욥바로 내려갔더니 마침 다시스로 가는 배를 만난 지라 여호와의 얼굴을 피하여 그들과 함께 다시스로 가려고 배삯을 주고 배에 올랐더라.
요나가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고 다시스로 가려고 욥바 항에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마침 다시스로 가는 배를 만나게 됩니다. 마침 자신이 가려는 배가 욥바 항에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야 할 선지자가 자신의 뜻을 이루기 위해 다시스로 가려고 하면 하면 하나님께서 그 길을 막아야 할 텐데 현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모든 것이 척척 들어맞았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니느웨로 가는 길보다 자신의 뜻을 이루는 다시스로 가는 길이 훨씬 더 순조롭고 형통하게 보입니다.
요나 당시에는 다시스로 가는 배들이 그렇게 자주 있지 않았습니다. 구약성경 열왕기상을 보면 솔로몬은 3년에 한 번씩 그 곳에서 여러 가지 보화들을 실어 왔다고 했습니다. 물론 요나의 이야기는 솔로몬 시대로부터 몇 백 년이 지난 상황이지만 여전히 다시스로 가는 배가 그렇게 자주 있지는 않았던 것이 분명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뜻을 피해 도망하려는 요나가 욥바 항에 도착하니 마침 다시스로 출발하려는 배가 우연히도 거기에 있었던 것입니다.
열왕기상10:22 왕이 바다에 다시스 배들을 두어 히람의 배와 함께 있게 하고 그 다시스 배로 삼 년에 한 번씩 금과 은과 상아와 원숭이와 공작을 실어 왔음이더라
너무나 많은 목사와 교인들이 마침 우연히 자신에게 일어나는 유리한 일 또는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일을 막연히 하나님의 은혜라고 생각합니다. 심지어는 이런 것을 사람들에게 자랑하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과 뜻을 왜곡하게 되는 매우 위험한 생각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않기 위해, 하나님의 얼굴을 피하기 위해 다시스로 도망하려는 요나가 마침 우연히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타게 된 것을 가지고 하나님의 은혜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뜻과는 상관없는 일을 하면서 우연히 얻게 된 자신에게 유리한 일을 가지고 하나님의 은혜라고 말하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매우 위험한 생각입니다.
잠언은 우리에게 권면하기를 처음에 속히 잡은 산업은 결국은 복이 되지 않는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여기서 속히 잡은 산업이란 정당한 노력에 의해서 얻은 재산이 아닙니다. 우연히 운이 좋아 어쩌다 보니 소위 말하는 대박이 난 것입니다. 우연히 또는 운이 좋아 노력한 것 이상의 대박이 난 것이 당장은 좋은 것 같아 보입니다. 하지만 이런 것으로 사람을 복되게 하지 못합니다. 결국은 그 사람의 인격을 파괴하고, 가정을 파괴하고, 심각한 근심을 가져옵니다.
잠20:21 처음에 속히 잡은 산업은 마침내 복이 되지 아니하느니라
Beginner’s Luck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한국어로는 초보자에게 따르는 운이라 번역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말입니까? 난생 처음 고스톱 처음 치는 사람이 게임을 이깁니다. 고스톱 룰도 모르고 게임을 했는데 초보자가 돈을 땁니다. 카지노에 처음 간 사람이 어떻게 하는 지도 모른 채 게임을 했는데 신기하게 잭팟이 터져 많은 돈을 땁니다. 운동도 그렇습니다. 처음 필드에 나갔는데 홀인원 합니다. 처음 낚시를 갔는데 월척을 낚습니다.
Beginner’s Luck이라는 말 그대로 이것은 일종의 대단한 행운입니다. 어쩌다 한 번 있는 행운에 지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실력 이상으로 얻는 결과에 대해 단순히 자신이 운이 좋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자신에게 마치 타고난 재능이 있어서 게임에 이겼고, 잭팟이 터졌고, 홀인원을 했고 월척을 잡았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에게 어쩌다 한 번 일어난 행운을 타고난 재능이나 자신의 실력으로 잘못 생각하는 것은 인생에 있어 매우 위험한 결과를 가져오게 만듭니다.
많은 목사나 교인들이 하나님의 뜻을 너무나 잘 알고 있으면서도 하나님의 뜻에 불순종하며 자기 뜻대로, 자기 생각대로 자기 마음대로 사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너무나 많은 목사나 교인들이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않아도 당장 자신에게 큰 손해가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보다는 자기 마음대로 또는 세상의 방식대로 사는 것이 별다른 어려움 없이 자신이 원하는 대로 인생이 술술 잘 풀려 나가기 때문입니다.
만약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면 그 즉시로 하늘로부터 불 심판이 내리고 저주를 받는다면 누가 감히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겠습니까! 하지만 하나님은 결코 이런 식으로 우리를 훈련시키지 않습니다. 물론 일부 목사들 중에는 주일 성수하지 않고 여행가면 교통사고가 난다거나 십일조 하지 않으면 암에 걸린다며 하나님의 심판을 앞세워 공갈을 치는 목사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매우 심각한 왜곡입니다. 예전에는 이런 공갈들이 그런대로 잘 먹혔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이런 공갈에 속는 교인들이 별로 없습니다.
하지만 일부 삯꾼 목사들의 공갈보다 더 심각하면서도 교묘한 하나님 말씀에 대한 왜곡이 있습니다. 너무나 많은 목사나 교인들이 자신이 하는 일이 하나님의 말씀이나 뜻에 어긋나는 일이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으면서도 자신이 하는 일이 술술 잘 풀려가거나 자신이 원하는 결과를 얻기만 하면 이것이 모두 하나님의 은혜이며 하나님의 도우신 결과라고 주장합니다. 이것은 일부 삯꾼 목사들의 하나님의 심판을 앞세운 공갈보다 더 위험하면서도 교묘한 왜곡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주일 성수나 십일조를 가지고 하나님의 심판을 앞세우는 일부 목사들의 주장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교인들이 쉽게 목사가 공갈친다는 것을 알아챕니다. 물론 조금은 찜찜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목사의 공갈에 쉽게 속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내가 성공하고 승승장구 하고 형통하는 일을 하나님의 은혜나 도우심이라고 하는 주장에는 대부분의 교인들이 고개를 끄덕입니다. 심지어 그것이 하나님의 뜻과는 거리가 먼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나타난 결과가 성공적이고 자신에게 유리하면 하나님의 은혜요 도우심이라고 여깁니다.
대부분의 목사나 교인들이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가 무엇 때문입니까? 대부분의 목사나 교인들이 믿는 하나님의 뜻은 성도가 세상에서 번영과 성공을 누리는 것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의 성공과 번영에만 지나치게 집착한 나머지 자신이 하는 일이 성공하거나 승승장구하며 번창하면 그것이 어떤 일이든 상관하지 않고 무조건 하나님의 은혜이고 도우심이라고 믿습니다. 하지만 이런 식의 믿음은 하나님의 뜻에 대한 매우 심각한 신앙적인 왜곡을 가져오게 합니다.
도대체 이것이 어떤 심각한 신앙의 왜곡을 가져옵니까? 자신이 하는 일이 어떤 일인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는 상관없습니다. 오로지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믿는다는 내 믿음으로 자신이 하는 일이 성공하고 번영하기만 하면 그것이 곧 하나님의 은혜이고 도우심이라고 믿습니다. 이것은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대부분의 목사와 교인들은 교회가 하는 일은 무조건 막힘없이 형통해야 하고, 어떤 방식이든 어떤 신앙이든 상관하지 않고 그저 교회가 크게 성장한 것만 가지고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요 하나님의 도우심이라고 여긴다는 것입니다.
요나가 그랬습니다. 요나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여 니느웨가 아니라 다시스로 가면 그 가는 길을 하나님이 막으셔야 할 텐데 오히려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타게 됩니다. 마치 모든 것이 요나의 계획대로 순조롭게 되는 듯이 보였습니다. 아마도 요나는 스스로 하나님을 피해 도망하면서도 모든 것이 척척 맞아 떨어지는 현실을 경험하면서 니느웨로 가라는 하나님의 명령이 잘못된 것이고 다시스로 가려는 자신이 생각이 맞았다 여겼을 것입니다.
모든 것이 자신의 뜻대로 순조롭게 풀려 나가는 요나의 행운은 요나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마저도 왜곡하고 스스로를 합리화 하게 만든 것입니다. 하지만 계속되는 요나의 이야기는 모든 것이 자신의 뜻대로 술술 풀리는 것이 결코 하나님의 은혜도 하나님의 도우심도 아니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요나를 태우고 다시스를 향해 가던 배가 큰 폭풍을 만나게 되어 요나가 탄 배는 금방이라도 침몰할 위기에 놓이게 된 것입니다.
욘1:4 여호와께서 큰 바람을 바다 위에 내리시매 바다 가운데에 큰 폭풍이 일어나 배가 거의 깨지게 된지라
요나가 탄 배에 들이닥친 큰 폭풍에 대해 여호와 하나님께서 큰 바람을 내리셨기 때문에 생겨난 폭풍이라고 요나서의 말씀은 매우 세심한 주의와 해석이 필요한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근거로 해서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태풍이나 자연재해를 마치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심판이라고 일반화시키는 것은 매우 어리석으면서도 위험한 생각입니다.
요나가 탄 배에 닥친 폭풍은 여러 가지로 매우 중요한 교훈을 줍니다. 우선적으로 생각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불순종에는 반드시 폭풍이 따른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인생의 폭풍에 대한 구약성경의 중요한 가르침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분명히 구별하여 주의해야 할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인생에 닥친 폭풍을 모두 불순종이나 죄에 대한 결과로 여기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입니다.
요나가 탄 배에 하나님께서 내리신 폭풍이 일었습니다. 누구 때문에 생겨난 폭풍입니까? 요나의 불순종 때문에 생겨난 폭풍입니다. 하지만 폭풍 때문에 고통당하는 사람은 누구였습니까? 정작 폭풍의 원인이 되었던 요나는 배 밑에서 깊은 잠에 빠져 있었고 뱃사람들만 폭풍에서 배를 지키려고 온갖 고생을 하였습니다. 이처럼 인생에서 겪게 되는 폭풍에는 나의 죄나 불순종으로 인한 폭풍도 있지만 나와는 아무런 상관없지만 겪어야 하는 폭풍도 있습니다.
이것을 가장 잘 보여주는 말씀이 구약성경 욥기의 말씀입니다. 욥은 그야말로 그 어떤 흠도 없는 가장 완벽한 의인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욥에게 도무지 감당하기 힘든 시련과 고난이 닥쳤습니다. 욥의 친구들이 찾아와서는 욥에게 내려진 시련과 고난은 사람들 모르게 욥이 저지른 죄 때문에 내려진 하나님의 심판이라며 그가 감춘 죄를 고백하고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라고 합니다. 한 마디로 욥의 친구들은 까닭 없는 인생의 시련이나 고난은 절대로 없다는 것입니다. 욥에게는 반드시 숨겨진 죄가 있기 때문에 그토록 큰 시련과 고난을 겪는 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욥기는 친구들의 이런 믿음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를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욥의 친구들만의 생각과 믿음이 아닙니다. 지금까지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진 통상적이며 일반적인 믿음입니다. 욥기는 너무나 분명하고 명확하게 세상에서 누리는 성공이나 부요함을 가지고 그 사람은 의인이어서 복을 받은 것이고, 세상에서 겪는 시련이나 고통을 가지고 그 사람은 죄를 지어 벌을 받는 것이라 여기는 것은 매우 잘못된 믿음임을 분명하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성경은 폭풍과 같은 인생의 시련이나 실패 또는 질병과 같은 고난에 대해 이런 것들이 모두 불순종의 결과요 하나님이 내리시는 심판이라고 가르치지 않습니다. 따라서 타인이 겪는 시련이나 고통에 대해 하나님의 심판을 운운하며 함부로 말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고 악한 일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와 도우심에 대해 바라고 기대하길 성공, 승승장구, 부요함, 형통으로만 나타나길 원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피해 도망치려고 했던 요나가 자신이 바라는 대로 마침 우연히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탄 것에 대해서조차 하나님의 은혜와 도우심이라고 여기거나, 결국 다시스로 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스스로를 합리화 하려고 합니다. 이것은 매우 위험한 신앙입니다.
물론 하나님의 은혜와 도우심이 성도의 성공과 형통으로도 나타나기도 합니다. 하지만 더 많은 경우 하나님의 은혜와 도우심은 폭풍과 같은 인생의 시련과 역경을 통해 나타납니다. 만약 요나가 탄 배가 요나가 원하는 대로 다시스로 무사히 갔다면 요나는 더 이상 하나님과는 상관없는 사람이 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큰 바람을 일으키시어 요나가 가려는 길을 막아선 것입니다.
우리는 할 수만 있으면 인생에서 역경이나 시련이 없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역경이나 시련을 통하지 않고는 절대로 깨달을 수 없는 인생의 진실들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인생에 닥친 폭풍은 우리를 일깨워 폭풍 없이는 결코 볼 수 없었을 진실을 마주치게 합니다. 다른 식으로는 절대로 생겨날 수 없는 믿음, 소망, 사랑, 인내, 겸손, 절제가 우리가 살면서 겪어야 했던 폭풍으로 인해 생겨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자신이 이룬 성공이나 부요함 때문에 하나님을 깊이 생각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는 사람들은 거의 없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나님을 깊이 체험하는 된 것은 인생의 큰 폭풍에 떠밀려 억지로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바람에 비로소 하나님을 체험하고 믿을 수 있었다고 증언합니다. 따라서 인생의 폭풍 속 깊은 곳에는 하나님의 크신 자비가 숨어 있음을 믿어야 합니다.
물론 당장은 내가 겪어야 하는 인생의 시련과 어려움이 너무나 크기 때문에. 너무나 힘들기 때문에, 너무나 고통스럽게 때문에 폭풍 속에 숨겨져 있는 하나님의 크신 자비하심을 발견하기란 결코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내리는 그 어떤 폭풍과 같은 인생이 시련이나 어려움도 우리를 침몰시키기 위한 것은 없습니다. 다만 잘못된 길로 향하는 우리를 멈추시고 우리의 방향을 돌이키기 위한 것임을 믿어야 합니다.
요나는 하나님을 피하기 위해 다시스로 도망치려고 했고 마침 욥바 항에서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타게 된 것을 행운으로 여겼습니다. 하지만 요나의 행운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요나가 행운으로 여겼던 것이 얼마가지 않아 그를 가장 큰 위험에 빠지게 만들었습니다. 요나가 탄 배는 큰 폭풍을 만나 당장이라도 침몰할 지경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폭풍이 얼마나 즉각적이고 맹렬했던지 평생을 배를 타던 이교도 이방인 뱃사람들조차 이것이 단순한 자연재해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챘습니다. 자신이 겪는 폭풍이 특별한 목적이 있는 초자연적인 사건임을 알아챈 것입니다. 사공들은 두려움에 빠졌으며 각각 자신들이 믿던 신의 이름을 부르며 기도하였습니다. 심지어 침몰하려는 배를 가볍게 하려고 자신들이 싣고 가던 물건들마저 바다로 던지며 그야말로 사력을 다해 노력하였습니다.
욘1:5 사공들이 두려워하여 각각 자기의 신을 부르고 또 배를 가볍게 하려고 그 가운데 물건들을 바다에 던지니라 그러나 요나는 배 밑층에 내려가서 누워 깊이 잠이 든지라
충격적인 것은 모든 사람들이 범상치 않은 폭풍 가운데서 그야말로 사력을 다해 배를 지키는 동안 요나는 어떻게 하고 있었습니까? 배 가장 밑에 층에 내려가서는 깊은 잠에 빠져있었던 것입니다. 폭풍으로 인해 배가 당장이라도 침몰할 위기 가운데서도 요나가 깊은 잠이 빠졌다는 요나서의 표현은 요나가 다시스로 도망하여 하나님을 피하려고 했던 것처럼, 깊은 잠에 빠져버림으로 배를 구해야 한다는 책임감으로부터 도망치고 있는 요나의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요나가 탄 배에 몰아닥친 폭풍은 결국 누구 때문에 생겨난 폭풍입니까? 하나님이 아닌 다른 신을 믿던 이교도들 때문에 폭풍이 일어난 것입니까? 아니오. 그렇지 않습니다. 이 모든 폭풍의 이유는 하나님의 선지자라고 하는 요나 때문에 벌어진 일입니다. 하나님을 피해 도망치려는 요나를 막기 위해 일어난 폭풍입니다. 하지만 정작 모든 책임을 져야 하는 요나는 배 밑층으로 내려가 깊은 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대신에 아무런 책임도 없는 이교도 뱃사람들이 자신들의 신을 부르며 배를 지키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하고 있었습니다.
다시스로 가는 배가 만난 풍랑은 오늘 우리 사회가 처한 상황을 보여주는 메타포입니다. 이교도 이방인 뱃사람들은 어떻게 했습니까? 그들은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을 다 하였습니다. 요나가 깊은 잠을 자는 동안 그들이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총동원하였습니다. 심지어 목숨처럼 여기는 물건들을 바다에 던지며 포기하기 까지 그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야말로 이방인으로서 더 이상 요구할 것이 없는 최선을 다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들에게 몰아치는 폭풍은 좀처럼 누그러지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당장이라도 배가 침몰할 위기입니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뱃사람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폭풍의 위협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까? 이 모든 것이 여전히 배 가장 밑에서 깊은 잠에 빠져 있던 요나 때문입니다. 요나로 인해 벌어진 폭풍이기에 요나가 책임을 지기 전까지는 도무지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우리는 모두 세상이라는 한 배를 탄 사람들입니다. 신자나 비신자나 할 것 없이 우리는 모두는 세상이라는 한 배를 탄 사람들입니다. 대부분의 교회와 교인들은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벌어지는 폭풍에 대한 모든 책임을 세상 탓으로 돌립니다. 세상이 타락하고 부패했기 때문에 폭풍이 일어났다고 여깁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생각과 다르십니다. 세상에서 벌어지는 폭풍과 같은 위기와 어려움은 세상 때문이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세상을 깨워야 할 교회가 오히려 깊은 곳에 숨어서 잠만 자고 있는 타락하고 부패한 교회 때문에 벌어지고 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