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와성경공부
요나강해10-두 번이나 니느웨로 가라고 하신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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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이나 니느웨로 가라고 하신 이유

요나서 3:1-2

 

 

요나서 강해 10번째 시간입니다. 오늘은 요나서 31절과 2절의 말씀을 가지고 두 번이나 니느웨로 가라고 하신 이유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합니다.


지금까지 9번의 요나서 설교 가운데 지난 주 설교 요나의 기도, 회개인가? 과시인가?”는 저에게는 대단히 힘들고 불편했던 설교였습니다. 설교준비도 대단히 고통스러웠습니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목사나 교인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저 역시도 요나서 2장에 기록된 요나의 기도를 풍랑이 이는 바다에 던져진 자신을 구원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자신의 불순종에 대해 참회와 회개를 하는 기도라고 여기고 그렇게 설교해 왔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지난 주 설교 준비를 하며 지금까지 가져왔던 저의 생각에 심각한 의문이 들었습니다. 아무리 요나의 기도를 읽어도 요나가 자신의 불순종에 대한 참회와 회개하는 기도는 단 한 구절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오히려 자신의 기도가 주의 성전에 이르렀고 하나님께서 자신의 기도에 응답하시어 풍랑이 이는 바다에서 자신을 구원해 주셨다며, 하나님의 은혜를 자기 기도의 결과로 여기는 요나의 과시를 발견하게 됩니다.


저의 생각을 더욱 분명히 만든 것은 요나서의 전체적인 구조 때문입니다. 요나서 강해를 시작하면서도 설명을 드렸지만 요나서 1, 2장과 34장은 완벽하게 동일한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이것을 신학에서는 평행구조라고 합니다. 평행구조는 여러 성경에서 자주 사용되는 표현 방식 중에 하나입니다. 분명 요나의 기도는 해석의 여지가 분분합니다. 하지만 요나서 2장과 평행을 이루는 요나서 4장은 해석의 여지가 없이 분명합니다.


요나는 박 넝쿨이 시들어 버린 것을 두고 하나님께 화를 내며 끝까지 자신의 잘못을 깨닫지 못한 채로 요나서가 끝납니다. 그렇다면 요나서 4장과 평행을 이루는 요나서 2장에 기록된 요나의 기도 역시 자신의 불순종을 깨닫는 참회와 회개의 기도가 아닙니다. 오히려 정반대로 요나의 기도는 자신의 의를 드러내고 자랑하는 도구로 사용한 것입니다.


요나서는 선지자 요나의 하나님에 대한 잘못된 믿음과 편견을 고발하는 말씀입니다. 성경은 요나서를 통해 여전히 오늘 우리에게도 나타나고 있는 하나님에 대한 잘못된 믿음과 편견을 고발하고 있습니다. 오늘도 함께 나누는 말씀을 통해 하나님에 대한 잘못된 믿음이나 편견에서 조금이라고 벗어날 수 있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요나서는 선지자 요나에게 하나님의 말씀의 임하였다는 말씀으로 시작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요나에게 들려주신 말씀이 무엇이었습니까?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저들의 악독이 하나님에게까지 알려졌다는 사실을 외치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선지자라고 하는 요나는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사명을 외면했습니다. 무시했습니다. 심지어 하나님께서 가라고 하신 니느웨의 반대편인 다시스로 도망치려고 했습니다.


1:1 여호와의 말씀이 아밋대의 아들 요나에게 임하니라


요나서는 다시스로 도망치는 요나에 대해 소개하기를 요나가 하나님의 얼굴을 피해 도망쳤다는 것을 두 번이나 반복하여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합니까? 요나가 하나님의 명령을 고의로 그리고 의도적으로 불순종했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함입니다. 요나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몰라서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한 것이 아닙니다. 요나가 하나님의 말씀을 의도적으로 불순종한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이 자신의 생각이나 뜻에 맞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1:3 그러나 요나가 여호와의 얼굴을 피하려고 일어나 다시스로 도망하려 하여 욥바로 내려갔더니 마침 다시스로 가는 배를 만난지라 여호와의 얼굴을 피하여 그들과 함께 다시스로 가려고 배삯을 주고 배에 올랐더라


요나의 불순종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우리의 불순종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우리가 여전히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며 살아가는 이유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모르기 때문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요나가 그러했던 것처럼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너무나 잘 알면서도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면서도 불순종하는 이유가 도대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것이 자신에게 이익이 되지 않고 손해가 된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요나는 니느웨로 가서 외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사명으로 받았습니다. 하지만 요나는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을 피해 도망쳤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피해 도망치는 요나를 순순히 그냥 내버려 두지 않으셨습니다. 도망치는 요나가 탄 배에 풍랑을 일으키고 뱃사람들로 하여금 요나를 바다에 던지게 만듭니다. 바다에 던져진 요나를 큰 물고기가 삼키게 합니다. 물고기 뱃속에서 밤낮 삼일을 보낸 요나는 마침내 육지로 토해져 다시 살아나게 되었습니다.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요나에게 하나님께서 다시 말씀하십니다.


3:1 여호와의 말씀이 두 번째로 요나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죽다 살아난 요나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이 무엇입니까? 또 다시 니느웨로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라는 것입니다. 니느웨 가는 것이 죽기보다 싫어 하나님을 피해 다시스로 도망쳤던 요나였습니다. 그런데 죽을 고비를 넘긴 요나에게 하나님께서는 또 다시 니느웨로 가라는 사명을 맡기신 것입니다. 요나서 1장에서 요나에게 주셨던 사명을 요나서 3장에서도 반복하여 똑같은 사명을 맡기신 것입니다.


3:2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내가 네게 명한 바를 그들에게 선포하라 하신지라


도대체 하나님께서는 왜 요나에게 또 다시 니느웨로 가라는 사명을 맡기신 것일까요? 니느웨 가기 싫어 하나님의 얼굴을 피해 도망쳤던 요나를 붙잡아 와서는 또 다시 니느웨로 가라고 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은 좀처럼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도대체 하나님께서는 무슨 이유로 그토록 집요하게 요나로 하여금 또 다시 니느웨로 가라고 명령하시는 것일까요? 반드시 요나를 보내셔야만 했던 이유가 있었던 것일까요?


우리나라 속담에 평안감사도 저 싫으면 그만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평안 감사는 많은 양반들이 서로 자기가 가기를 원했던 매우 좋은 곳이며 좋은 벼슬자리였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곳이라고 해도, 아무리 좋은 벼슬이라도 해도 자기가 싫으며 억지로 시킬 수 없다는 뜻입니다. 아무리 좋은 곳,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본인이 싫다고 하면 억지로 시키지 않는 것이 세상사는 이치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니느웨 가기 싫어 다시스로 도망치는 요나를 끝까지 쫓아가셨습니다. 심지어 큰 물고기로 하여금 요나를 삼키게 하시고 육지에 토해내는 번잡스러운 과정을 거치면서까지 요나를 붙잡아 와서는 또 다시 니느웨로 갈 것을 명령하셨습니다. 이 모든 과정을 통해 발견할 수 있는 분명한 사실은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요나를 니느웨로 보내시려고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도대체 왜 니느웨 가는 것을 그토록 싫어하는 요나를 반드시 보내시려고 하신 것일까요? 요나서를 통해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요나서를 통해 우리에게 주시려는 하나님의 메시지를 제대로 발견할 수 있습니다.


만약 니느웨로 가서 임박한 하나님의 심판을 전하여 니느웨 백성들을 구원하는 것이 요나서의 핵심 메시지였다면 하나님께서는 굳이 불순종하는 요나가 아니더라도 다른 선지자를 대신 보내실 수 있으셨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제멋대로 불순종하는 요나 대신 순종 잘하는 다른 선지자를 찾으실 수도 있으셨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반드시 요나를 보내시길 원하셨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하나님을 피해 다시스로 도망쳤던 요나를 붙잡아 와서는 또 다시 똑같은 사명을 요나에게 맡기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굳이 불순종하며 심지어는 반항하는 요나를 니느웨로 보내시려고 하셨던 가장 중요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역설적이지만 도망치는 요나를 붙잡아 또 다시 니느웨로 가라는 하나님의 말씀은 불순종하고 심지어 반항하는 요나를 포기하지 않고 기다려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는 메타포입니다.


요나서는 선지자 요나가 니느웨로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였더니 이교도 니느웨 사람들이 참회하고 회개하였다는 것을 가르쳐 주기 위한 말씀이 아닙니다. 요나서는 이방인이나 이교도 선교를 권장하기 위해 기록한 말씀도 아닙니다. 니느웨라고 하면 죽기보다 싫어했던 요나를 기어이 니느웨로 보내시려고 하신 것은 이방인에 대한 잘못된 편견과 하나님에 대해 잘못된 믿음을 가지고 있는 요나를 변화시키고 깨닫게 하기 위함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께서 불순종하며 도망쳤던 요나를 반드시 니느웨로 보내려고 하셨던 가장 중요한 이유는 요나가 니느웨에 가서 해야 하는 사역이 중요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니느웨에 가서 말씀을 전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여기셨다면 굳이 요나를 니느웨로 보내실 필요가 없으셨습니다. 불순종하고 반항하는 요나 대신 순종적인 다른 선지자를 찾아서 보내시면 됩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요나에게 다른 선지자들과는 다른 대단히 특별한 능력이 있었기 때문에 니느웨로 보내려고 하셨던 것이 아닙니다. 요나가 니느웨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던 태도는 대단히 불성실했습니다. 사흘 길이나 되는 니느웨 성을 단 하루만 돌아다니며 하나님의 경고를 전했습니다. 그럼에도 니느웨 사람들이 참회하고 회개했던 것은 요나의 사역이 대단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니느웨 사람들의 악독한 마음을 친히 움직여 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두 번씩이나 요나에게 니느웨로 가라고 말씀하신 것은 요나가 니느웨에서 해야 하는 사역이 중요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요나를 반드시 니느웨로 보내시려고 하셨던 이유는 비록 원하지 않는 하나님의 일이지만 억지로라도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므로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요나가 변화되기를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선 요나의 변화를 위해, 요나의 깨달음을 위해, 요나의 참회와 회개를 위해 그를 니느웨로 보내시길 원하셨던 것입니다.


이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가 제대로 된 역할을 하려면 감당해야 하는 많은 사역들이 있습니다. 교회가 제대로 유지되려면 봉사해야 하는 많은 일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분명히 기억해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교회에서 하는 그 어떤 사역이나 봉사든지 그 차체가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앞세우며 교회가 하는 그 어떤 사역이든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그 사역을 하는 사람의 변화와 회개 그리고 구원이 최우선의 목적이 되어야 합니다.


집에서는 설거지나 청소 한 번도 안하는 사람이 교회에 와서는 설거지도 하고 청소도 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다. 자기가 인정받기 위함도 아니고 교회를 위해서도 아닙니다. 이웃을 섬기는 것을 배우고 이런 일들을 통해 내가, 우리가 먼저 변화되기 위함입니다. 일의 결과는 그 다음의 문제입니다. 교회는 사역을 하는 사람을 위해 사역이 필요한 것이지 일을 하기 위해 사람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교회에서 봉사를 하거나, 하나님의 이름을 앞세워 사역을 할 때 가장 중요하게 여겨야 하는 것은 내가 무엇을 하느냐 또는 내가 그것을 잘 하느냐가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교회에서 봉사를 하거나, 하나님의 이름을 앞세워 사역을 할 때 가장 중요하게 여겨야 하는 것은 내가 하는 봉사나 사역을 통해 내가 어떤 사람이 되어 가느냐가 중요합니다. 내가 하는 사역이나 봉사 또는 전도나 선교를 통해 이전에 자신이 가졌던 편견이나 잘못된 생각들을 바꾸는 것이 중요합니다.


교회는 무엇을 하는 것이 중요한 곳이 아닙니다. 교회는 어떤 사람이 되느냐가 중요한 곳입니다. 교회에서 하는 모든 일은 일 자체가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통해 어떤 사람이 되느냐가 중요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교회 일로 바쁘다고 하는 사람은 영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입니다. 지금은 고인이 되신 유진 피터슨 목사님은 생전에 목사나 교인 앞에 분주한또는 바쁜이라는 형용사가 붙는 것은 은행원 앞에 횡령하는형용사가 붙는 것과 똑같다고 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분주하게 그리고 열심히 신앙생활 하는 것 같은데 신앙이 주는 참된 만족과 기쁨을 누리는 사람은 적습니다. 왜 이런 일이 교회에서 일어나고 있습니까? 바쁜 생활 속에서 건조해지고 세속화되어 영적이고 내적인 것을 소홀히 하기 때문입니다. 봉사하기 전에 하나님 앞에 앉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합니다. 하나님과 대화해야 합니다. 우리 신앙이 분주하고 바쁜 것은 하나님 중심이 아니라 일 중심의 신앙생활을 하기 때문입니다.


교인들의 착각이 있습니다. 특별히 교회에 열심히 헌신하는 사람들의 착각입니다. 교회를 향한 열심이 너무 지나쳐 마치 자기가 아니면 교회가 안 될 것이라는 착각입니다. 목사도 이런 생각하면 안 됩니다. 우리는 너무나 자주 내가 없으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건방진 기도도 많이 합니다. 하나님 나 죽으면 하나님만 손해라고! 하나님 나 살려두는 것이 이익 아니냐고! 내가 있어야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는 것 아니냐고! 웃기지 마십시오.


흔히 농담으로 내가 없어도 한국이 잘 돌아 가냐?”고 합니다. 네 여러분 모두 미국으로 이민 왔는데도 한국 잘 돌아 가고 있습니다. 너무 잘 돌아가고 있습니다. 교회를 떠나시는 분들 중에 가끔 내가 없어도 교회 잘 돌아가나 봅시다.” 이렇게 말하고 떠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 분 떠나서 우리교회가 망했나요? 아니오. 안 망했습니다. 심지어 여러분이 죽는다고 해도 세상은 여전히 잘 굴러갈 것입니다. 그러니 교회 일로 가정 일로, 회사 일로 그렇게 분주할 이유가 없습니다.


말씀으로 천지를 지으신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내가 없어서 하나님의 일을 하지 못하신다고 생각하면 이건 정말 큰 교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지팡이 하나로도 돌멩이 하나로도 모세나 또는 다윗보다 더 위대한 일을 하실 수 있으신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셔서 하나님의 일을 맡기시는 것은 내가 아니면 하나님의 일을 할 사람이 없기 때문이 아닙니다. 우리로 하여금 인생을 가치 있고 의미 있게 만드는 하나님의 일을 하도록 해서, 우리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를 배우고 닮아 가게 하기 위함입니다.


따라서 여기에는 어떠한 교만이나 자랑도 내세울 것이 없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일뿐입니다. 하나님께서 교회를 통해 하시고자 하시는 것은 일이 아니라 사람을 변화시키는 은혜입니다. 그런데 정작 교회는 하나님의 은혜는 뒷전이고 일만하려고 합니다.


왜 이렇게 합니까? 교회에 하나님의 은혜가 없으니 자꾸만 많은 일로, 여러 가지 집회나 프로그램으로 교인들을 분주하게 만들어 하나님의 은혜를 대신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분명히 알아야 할 사실은 사람은 내가 이룬 업적이나 일이 아니라 은혜로 구원을 받고 은혜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사실입니다.


교회는 일하기 위해 모이는 곳이 아니라 은혜 받고 받은 은혜를 나누기 위해 모이는 곳입니다. 따라서 교회에서 우리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의 속사람을 변화시키는 은혜받기를 사모해야 합니다. 따라서 교회에서 하는 모든 일은 은혜로 감사로 자원하는 마음으로 해야지 다른 사람에게 자신을 자랑하거나, 과시하거나, 경쟁하기 위해 해서는 안 됩니다.


신학교를 졸업하고 목회를 시작하면서 선배 목사님들로부터 가장 많은 들은 목회의 비법이 있습니다. 숨 돌릴 틈도 없이 많은 집회와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교인들을 일주일 내내 달달 볶으라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교인들이 딴 생각 안하고 딴 마음 안 품고 목사에게 충성하고 교회가 성장한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너무나 많은 교회들마다 경쟁적으로 온갖 종류의 집회와 프로그램들을 만들어 일주일 내내 그야말로 교인들을 달달 볶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이것이야 말로 오늘날 한국 교회를 이토록 심각한 타락에 빠지게 만든 가장 결정적인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목사들이 교인들을 달달 복아 교회와 목사에게만 의존하는 교인들을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그 결과 혼자 성경을 읽고 기도를 하며 스스로 고민하고 질문하고 성찰하는 기독교인들은 찾아보기 힘든 지경이 되었습니다. 스스로를 성찰할 수 있는 기독교인들이 없는 한국교회가 심각한 위기에 빠지는 것은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이런 일들이 교회에서 그리고 목사들에게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도대체 왜 이런 일들이 계속해서 교회와 목사들에게서 일어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교회에 대한 잘못된 생각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대한 잘못된 생각과 믿음 때문입니다. 과연 하나님께서는 교회를 통해 가장 이루고자 하시는 것이 무엇일까요? 하나님께서는 원하시는 것이 우리가 이전보다 더 많은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을 원하실까요? 아니면 우리가 이전보다 예수 그리스도를 더 닮은 그리스도인이라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일까요?


성경이 가르쳐 주는 하나님의 뜻은 분명합니다. 하나님께서 이 땅에 교회를 세우신 이유는 교인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일을 하도록 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교회를 세우신 이유는 우리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사람이 되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아무리 좋은 일이나 대단한 일을 많이 한다고 해도 예수 그리스도를 닮은 그리스도인을 만들지 못한다면 그것은 더 이상 교회가 아니라 봉사 단체나 선교 단체에 지나지 않습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하나님께서는 두 번씩이나 요나에게 니느웨로 가서 하나님의 명하신 것을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도대체 하나님께서는 니느웨 가기 싫어 도망쳤던 요나를 붙잡아 와서는 또 다시 니느웨로 가라고 말씀하신 것일까요? 요나가 아니면 니느웨로 갈 선지자가 하나도 없었기 때문입니까? 아니오. 요나가 아니면 도무지 니느웨를 회심시킬 수 없었기 때문입니까? 아니오.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니느웨를 가기 싫어하는 요나에게 두 번씩이나 니느웨로 가라고 하신 것은 지금까지 요나가 가지고 있던 자기 확신과 편견에서 벗어나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근본적으로 바꾸라는 명령입니다. 요나에게 자기 확신과 편견에서 벗어날 것을 명령하신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오늘 우리에게도 자기 확신과 편견에서 벗어나 날마다 하나님을 더욱 깊이 알아갈 것을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이 저와 여러분의 신앙의 여정에 심각한 도전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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