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와성경공부
하나님 나라2-현실 세상과 하나님 나라의 간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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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 세상과 하나님 나라의 간격

마태복음 6:10

 

 

오늘은 하나님 나라 두 번째 시간으로 오늘은 현실 세상과 하나님 나라의 차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합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 사역을 시작하면서 가장 먼저 선포하신 말씀은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복음이 무엇입니까? 하나님 나라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이며 제자들과 사람들에게 가르쳐 주신 복음의 전부라고 해도 조금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4:4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다른 동네들에서도 하나님의 나라 복음을 전하여야 하리니 나는 이 일을 위해 보내심을 받았노라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선포하시고 가르쳐 주신 하나님 나라는 무엇입니까? 하나님 나라가 되기 위해선 결정적인 두 가지 조건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첫 번째는 하나님이 계셔야 합니다. 천국 또는 하나님 나라라고 하면 아마도 교인 대부분의 생각은 그 어떤 슬픔도 고통도 없는 완벽하게 행복한 곳이며, 신기하고 아름다운 보석과 보물들로 만들어진 낙원을 천국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런 것들로 하나님 나라라고 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그곳이 세상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낙원(paradise)이라고 해도 단 하나가 없으면 그곳은 절대로 하나님 나라가 될 수 없습니다. 무엇입니까?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다면 그곳이 아무리 파라다이스라고 할지라도, 그곳에 더는 슬픔도 사망도 없는 곳이라 해도, 그곳이 온갖 신비하고 아름다운 보석과 보물로 만들어진 곳이라고 할지라도 그곳은 결코 하나님 나라가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가 하나님 나라인 유일한 이유는 그곳에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찬송가의 가사처럼 높은 산이나 거친 들이나 초막이나 궁궐이나 어떤 곳이라고 해도 하나님이 계신 곳이 하나님 나라요 천국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곳이 아무리 에덴동산과 같은 낙원이라고 할지라도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다면 거기는 지옥일 경우가 확실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계신 곳을 하나님 나라라고 하기에는 문제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신학적으로 하나님은 계시지 않은 곳이 하나도 없으신 무소부재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계시지 않은 곳은 그 어디에도 없습니다. 따라서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 첫 번째 조건이라고 하는 하나님이 계셔야 한다는 조건은 사실 별 큰 의미가 없는 조건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 가장 결정적인 조건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통치하시고 다스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계신다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통치하시고 다스릴 때만 하나님 나라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통치하시고 다스리는 것을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하나님께서 지으신 곳이며 하나님께서 임재 하시는 곳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하나님이 지으시고 하나님께서 임재 하시는 이곳을 하나님 나라라고 하지 않고 세상이라고 합니다. 왜 이렇게 말합니까?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지 않고 사람의 뜻이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목사와 교인들은 교회를 하나님께서 지으셨고 하나님께서 임재 하신다고 믿으면서도 교회를 하나님 나라라고 하지 않습니까?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의 뜻보다는 목사의 뜻이나 장로의 뜻 또는 교인들의 뜻만 이루어진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교인들은 하나님께서 지으신 가정을 하나님 나라라고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뜻 대신에 아빠의 뜻 엄마의 뜻 또는 자녀들의 뜻만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하나님 나라라고 하는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그곳에서는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선포하시고 가르치신 하나님 나라는 바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나라를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우리는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하나님 나라를 살 수 있습니까? 하나님 나라를 사는 방법으로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것은 회개하고 복음을 믿는 것입니다.


1:15 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여기서 복음은 하나님 나라를 의미합니다. 하나님 나라가 복음이고 복음이 곧 하나님 나라입니다. 회개는 하나님 나를 살게 만드는 유일한 길로 삶의 방식을 송두리째 바꾸는 것을 의미합니다. 지금까지 내 뜻, 세상의 방식대로 살아왔다면 이제부터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하나님의 방식대로 살기로 생각과 마음(의지)과 행동을 바꾸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회개입니다.


이렇게 말씀을 드리면, 도대체 하나님의 뜻이 무엇이냐고 반문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모르기에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못한다고 변명합니다. 물론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아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렇다고 무작정 하나님의 뜻을 모른다고 부인해서도 안 됩니다. 비록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다 알 수는 없다고 해도 우리가 이 땅에서 이루며 살아야 하는 하나님의 뜻은 이미 성경을 통해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정의롭고 공의로운 세상과 불의하고 부패한 세상 가운데 어떤 세상이 하나님의 뜻과 가깝다고 생각하십니까? 불공평한 일이 많아지는 세상과 공평한 일이 많아지는 세상 중 어떤 세상이 하나님의 뜻에 가깝다고 생각하십니까? 갈수록 빈부의 격차가 커지며 병들고 가난한 사람들이 많아지는 세상과 갈수록 굶는 사람들, 노숙자들, 병들고 가난한 사람들이 줄어드는 세상 중 어떤 세상이 하나님의 뜻에 가깝다고 생각하십니까?


5:24 오직 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할지어다

딤전5:21 너는 편견이 없이 이것들을 지켜 아무 일도 불공평하게 하지 말며

15:5 너희 중에 가난한 자가 없으리라


이런 것들은 모두 성경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굳이 성경을 알지 못한다고 해도 상식과 양심만 가지고 있어도 충분히 알 수 있는 것들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이 하나님의 뜻을 알고 있습니다. 교회는 많아졌고 교인들은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많아졌지만, 여전히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서 이루어지지 않는 이유는 하나님의 뜻을 모르기 때문이 아닙니다.


목사나 교인들이 하나님의 뜻을 모른다고 말하는 것은 정말 하나님의 뜻을 모르기 때문에 모른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을 모른다고 말하는 사람들 대부분의 진짜 숨겨진 속내는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이 힘들거나 어려울 뿐만 아니라 자신에게 이익이 되기보다는 손해가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을 모른다고 것을 핑계로 변명으로 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않는 이유는 하나님의 뜻보다 우리의 욕심을 앞세우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야고보 사도는 인간의 욕심이야말로 모든 죄의 근원이라고 가르쳤습니다. 이 땅에서 우리가 경험하고 누리고 만들어야 하는 하나님 나라는 욕심을 다스리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욕심을 다스릴수록 하나님 나라는 우리 인생에서, 우리가 사는 이 땅에서 훨씬 더 많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1:15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물론 욕심을 다스리는 것은 기독교 신앙만이 아니라 불교도 강조하는 중요한 가르침입니다. 하지만 욕심을 다스리는 것에 대해 기독교와 불교 사이에는 매우 중요한 차이가 있습니다. 불교는 욕심을 버리기 위해 세상을 피하려고 합니다. 욕심을 버리기 위해 머리를 깎고 세상과의 모든 인연을 끊고 세상을 떠나 아무도 없는 산속으로 들어갑니다.


하지만 욕심을 다스리는 일에 기독교 신앙은 불교의 가르침과 완전히 다릅니다. 기독교는 욕심을 다스리기 위해 세상을 피하거나 세상과 인연을 끊어야 한다고 가르치지 않습니다. 기독교가 가르치는 세상에 대한 욕심을 버리는 방법은 세상을 바르게 쓰고 사용함으로 욕심을 버리고 욕심을 다스리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불교는 돈에 대한 욕심을 다스리기 위해 무소유를 강조합니다. 하지만 기독교는 돈에 대한 욕심을 다스리기 위해 돈 자체를 부정하거나 무소유를 가르치지 않습니다. 물론 불교처럼 돈 자체를 버리고 떠나면 더는 돈에 대한 욕심을 부릴 수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하면 돈을 통하여 할 수 있는 선하고 귀한 일까지도 할 수 없게 됩니다. 기독교는 세상과 돈을 버리는 것을 가르치지 않습니다. 오히려 세상과 돈을 바르게 쓰는 것을 가르치는 신앙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사는 이 땅을 버리고 떠나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대신에 이 땅에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하나님 나라를 만들기 위해 기도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예배 때마다 모일 때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기도를 합니다. 하지만 정작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서 이루어지는 것에 대해서는 아무런 기대도 소망도 가지지 않습니다. 그저 습관적으로 예배 때마다 주기도문을 암송만 합니다.


6:10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예배 때마다, 모일 때마다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하나님 나라가 임하기를 습관적으로 기도하면서 정작 이 땅에서 이루어지는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아무런 기대도 소망도 하지 않는 이유가 도대체 무엇 때문입니까?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가 분명 마땅히 해야 하는 올바른 기도라고는 생각하지만, 도무지 실현 불가능한 비현실적인 기도라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옳은 얘기이긴 한데 현실적이지 않아서…….” 살면서 우리가 자주 하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는 하나님 나라가 임하기를 기도하라는 예수님의 가르침이 분명 옳은 말씀이기는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한 사건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만 혼자 예수님 말씀처럼 살았다가는 쪽박 차기 십상이라 생각합니다.


세상에, 현실에, 이 땅에 발을 딛고 사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하나님 나라를 위해 기도하며 그것을 위해 살아가라는 예수님의 말씀이 너무나 비현실적인 말씀처럼 들립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의 현실과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살라는 말씀에는 그야말로 너무나 엄청난 간격과 차이가 있습니다.


심지어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배우고 믿는다는 교회에서도 하나님 나라의 이상과 실제 교회의 현실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가르치고 하나님의 방식대로 운영하는 교회보다 사람의 욕심을 충족해 주고 세상의 방식대로 운영하는 교회가 사람들에게 항상 더 많은 인기를 얻습니다. 이것이 부정할 수 없는 교회의 현실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사는 세상은 심지어 교회조차도 옳다고 생각하는 것과 현실적인 것이 늘 일치하지 않습니다. 현실이 이렇다 보니 사람들은 하나님 나라에 대한 꿈과 이상을 잃어버리고 살아갑니다. 그저 현실적인 생각과 현실적인 이익이 세상살이 전부인 것처럼 살아갑니다. 그렇게 사는 것이 똑똑하게 세상을 사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런 생각이 지나쳐 이 땅에서 이루어지는 하나님 나라를 말하고 이것을 이루기 위해 살아가는 것을 어리석은 삶이라고 여깁니다.


하지만 분명하게 알아야 하고 우리가 반드시 인정해야 하는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갈수록 세상이 살기 힘들어지는 이유는 지극히 현실적인 생각과 오로지 현실적인 이익만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들이 점점 더 많아지기 때문입니다. 그나마 세상이 여전히 살만한 구석이 있는 것은 비현실적인 꿈이라 여기는 하나님 나라를 이루기 위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여전히 우리 주변에는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불과 백여 년 전만 해도 꽤 많은 나라가 사람을 물건처럼 사고파는 노예제도를 시행했습니다. 물론 지금도 노예제도가 완전히 없어진 것은 아닙니다. 우리의 조국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양반과 상놈이라는 신분제도와 노예제도가 있어 양반과 상놈을 엄격하게 차별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차별은 지극히 당연하고 현실적인 생각이라 여겼습니다.


선교사들이 복음을 들고 와서는 태어난 신분과 상관없이 모든 사람은 조물주가 창조하신 평등한 존재라고 가르치자 많은 사람이 이렇게 가르친 선교사들을 미친놈 취급을 했습니다. 정부에서는 불순한 가르침은 전파한다며 선교사들과 이들의 가르침을 따르는 수많은 교인을 붙잡아 가서는 고문하고 교수형에 처했습니다.


1월 셋째 주 월요일인 내일은 매년 공휴일로 보내는 Martin Luther King Jr Day입니다. 인종차별을 없애기 위해 비폭력 저항 운동을 했던 마틴 루터 킹 목사님을 기념하기 위한 국가 공휴일입니다. 마틴 루터 킹 주니어 목사님이 암살당한 날짜는 196844일입니다. 제가 태어난 해로 불과 52년 전입니다. 그때만 해도 우리가 사는 미국 땅에서 흑인은 백인과 같은 버스에도 타지 못했고, 같은 학교에도 다니지 못했고, 심지어 같은 교회에 다니지도 못했습니다.


당시 미국 사회는 백인과 흑인은 결코 동등한 사람이 아니라 여겼으면, 백인과 흑인을 차별하였던 당시 사회의 제도를 지극히 당연하고 제도로 여겼습니다. 백인과 흑인은 절대로 동등하지 않기에 인종을 차별하는 것이 지극히 현실적이고 상식적인 생각이라고 백인들 대부분이 믿었습니다. 심지어 흑인 중에도 백인들의 이러한 주장에 동의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극히 당연하고 현실적이라 믿었던 백인과 흑인 사이의 인종차별에 대해 반기를 들었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이 지으신 사람에게는 그 어떤 차별도 있을 수 없다는 이상과 꿈을 가졌습니다. 물론 많은 사람이 이들을 미친놈으로 여겼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인종에 상관없이 사람은 모두가 평등하다는 하나님 나라의 꿈을 품고는 잘못된 현실을 바꾸기 위해 싸웠습니다. 이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오늘 우리가 인종차별을 법으로 금지하고 있는 혜택을 누리며 사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우리가 사는 세상이 남자와 여자를 차별하지 않고 공평하게 여긴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내가 아들 상준이를 낳은 때가 1998년입니다.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22년 전입니다. 병원에서 상준이를 낳고 일주일 정도 입원했다가 퇴원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병원비를 정산하는 직원이 아들을 낳았으니까 딸을 낳았을 때보다 오만 원이 더 비싸다며 35만 원을 내라고 했습니다. 저 역시 아들을 낳은 기쁨에 군말 없이 오만 원을 더 냈습니다. 물론 지금 같으면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면 난리가 났을 것입니다.


인종차별보다 더 심각하고 끈질긴 우리 사회의 차별은 남자와 여자 사이의 성차별입니다. 불과 이삼십 년 전만 해도 남자와 여자의 차별은 지극히 당연한 것으로 여겼습니다. 남자와 여자가 동등한 존재라고 하면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았습니다. 물론 지금도 여전히 우리 사회 구석구석에서 보이지 않는 성차별이 존재합니다. 하지만 이제는 누구도 드러내 놓고 남자와 여자를 차별하지는 못합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뜻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는 하나님 나라를 위하는 기도는 분명 비현실적인 가르침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이것을 비현실이라 여겨 무시해 버리고 포기해 버린다면 우리는 앞으로도 지금과 크게 다를 바 없는 비정한 세상에서 비참하고 힘든 인생을 계속해서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이런 세상을 우리 자녀들에게 물려 주어야 합니다.


교회는 하나님 나라의 이상과 현실의 간격을 좁히기 위해 이 땅의 현실을 바꾸려고 노력하는 곳이어야 합니다. 하지만 현실을 바꾸기가 절대 쉽지 않습니다. 많은 노력과 희생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많은 교회가 많은 목사와 교인들이 뜻이 땅에서 이루어지는 하나님 나라를 포기하고 현실과 타협하는 것을 선택합니다.


이 땅에서 이루어지는 하나님 나라를 포기한 교회와 교인들에게 현실적인 성공과 당장 손에 쥘 수 있는 부가 가장 중요한 신앙의 목표가 되었습니다. 그 결과가 무엇입니까? 세상을 바꾸고 변화시키는 교회가 아니라 세상을 똑같이 닮아가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를 죽은 다음에만 갈 수 있는 곳으로 변질시켰습니다.


많은 사람이 세상이 불의하다고 생각합니다. 세상이 악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세상이 잘못된 것인 줄 알면서도 이런 세상을 바꾸려고 하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너무나 많은 교인이 교회가 문제가 많다고 생각합니다. 교회가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교회가 잘못되고 있는 줄만 알지 교회를 바꾸려고 하지 않습니다.


불의한 세상으로 인해 억울한 일을 당하지 않으려면 세상을 바꾸려고 해야 합니다. 잘못된 교회로 인해 상처를 받고 아프면 더는 상처를 받지 않기 위해 잘못된 교회를 바꾸어야 해야 합니다. 그런데 한두 번 시도하고는 뜻대로 잘 안되니까, 힘드니까, 어려우니까, 감당해야 할 손해가 너무 크니까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세상과 교회를 포기해 버립니다. 그리고는 세상을 바꾸고 교회를 바꾸자고 하면 비현실적인 쓸데없는 일이라 여깁니다.


제가 설교를 하면 자주 듣는 말이 있습니다. “목사님 말씀이 옳은 말씀이기 하지만 그다지 현실적이진 않다.”라는 것입니다. 제 설교가 현실적으로 적용 가능한 설교라기보다는 막연하고 이상적인 설교라는 것입니다. 제 앞이라 좋게 말해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지 아마도 속마음은 목사가 세상 물정은 쥐뿔도 모르면서 그저 속 편한 소리나 하고 있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저라고 왜 세상 사는 게 힘든지 모르겠습니까! 저라고 왜 현실이 얼마나 무서운지 모르겠습니까! 하지만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믿는 것은 도무지 이루어지지 않을 것 같은 하나님 나라를 믿는 믿음에서부터 시작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믿는 우리는 모두 비록 땅에 발을 딛고 살지만, 현실에 발을 딛고 있지만, 하늘을 바라고 하늘을 꿈꾸는 이상주의자여야 합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아무리 현재의 현실이 힘들고 어렵더라도 현실과 타협하여 하나님 나라를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아무리 현재의 현실이 힘들고 어렵다고 해도 조금씩 현실을 바꾸고 변화시키며 하나님 나라를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 이것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며 이런 믿음 만이 우리를 바르게 행복하게 그리고 존귀하게 할 것입니다. 바라기는 뜻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는 하나님 나라를 생각으로 마음으로 그리고 삶으로 믿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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