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나라의 신비
마태복음 13:10-17
오늘은 하나님 나라 세 번째 시간으로 “하나님 나라의 신비”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합니다.
하나님 나라는 예수님께서 공생애 사역을 시작하시며 세상에 선포하신 첫 번째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 사역을 시작하시며 가장 먼저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고 선포하신 것은 한 마디로 예수님의 공생애 사역은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가르치시고 전파하시기 위함입니다. 실제로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 보내심을 받았다고 말씀하십니다.
눅4:4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다른 동네들에서도 하나님의 나라 복음을 전하여야 하리니 나는 이 일을 위해 보내심을 받았노라
하나님 나라야말로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복음의 전부이며 제자들과 예수님 주변에 모여든 사람들에게 가르쳐 주신 복음의 전부라고 해도 조금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실제로 복음서에 기록된 예수님의 가르침 대부분은 하나님 나라에 대한 가르침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 대부분은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특별히 마태복음 13장은 복음서 전체를 통틀어 하나님 나라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이 집중적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마태복음 13장에는 예수님의 비유가 7개가 나오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13장에 나오는 7가지의 비유가 무엇입니까? 첫 번째는 씨 뿌리는 자의 비유입니다. 두 번째는 알곡과 가라지의 비유이고, 세 번째는 겨자씨의 비유, 네 번째는 누룩의 비유, 다섯 번째는 밭에 감춘 보화의 비유, 여섯 번째는 값진 진주의 비유이고 마지막 일곱 번째는 그물의 비유입니다.
마태복음 13장에 기록된 일곱 개의 비유는 모두 분명히 하나님 나라에 관한 예수님의 비유 말씀입니다. 그런데 마태복음 13장에 나오는 천국에 관해 일곱 가지 비유의 말씀을 보면 매우 일관된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는 천국에 대해 비유로 가르치시고 말씀하시며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이 일상적인 삶 속에서 경험되어지는 평범한 사건으로 천국을 비유하시고 가르치셨다는 것입니다.
마13:3 예수께서 비유로 여러 가지를 그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
마13:24 천국은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사람과 같으니
마13:31 천국은 마치 사람이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마13:33 천국은 마치 여자가 가루 서 말 속에 갖다 넣어 전부 부풀게 한 누룩과 같으니라
마13:44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마13:45 천국은 마치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으니
마13:47 천국은 마치 바다에 치고 각종 물고기를 모는 그물과 같으니
마태복음 13장에 나오는 비유 가운데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는 도무지 일어날 수 없는 사건으로 비유하신 것이 단 하나라도 있습니까? 마태복음 13장에 나오는 비유 가운데 육체와는 상관없는 오로지 영적인 것으로만 비유하신 것이 단 하나라도 있습니까? 마태복음 13장에 나오는 비유 가운데 요한계시록의 말씀처럼 세상에서는 도무지 볼 수 없는 것 이상야릇한 초자연적인 사건으로 비유하신 것이 단 하나라도 있습니까?
마태복음에 13장에 나오는 일곱 개의 천국 비유 모두가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서 지극히 평범하게 살아가는 사람들 누구나 경험할 수 있는 사건으로 천국을 비유하셨습니다. 이것은 마태복음 13장에 나오는 일곱 개의 천국 비유 말씀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닙니다. 복음서에 나오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 모두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이 지극히 일상적인 육신의 삶에서 경험할 수 있는 것들로만 가르치시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왜 하나님 나라를 지극히 평범하고 일상적인 것만으로 가르치셨을까요? 이것은 예수님께서 사람들에게 선포하시고 가르치시려고 했던 하나님 나라가 어떤 것인가를 분명하게 보여주시기 위함입니다. 예수님께서 선포하시고 가르치신 하나님 나라는 이 땅에서 경험되고 이루어지는 지극히 현실적이며 육체적인 사건으로 말씀하시기 위해 지극히 평범하고 일상적인 사건으로 하나님 나라를 비유하시고 그렇게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천국을 죽은 다음에나 가는 나라로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천국을 육신의 삶과는 상관없는 영적인 일 로만 여기시지도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천국을 이 세상에서는 없는 저세상에 있는 나라로 가르치지도 않으셨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교인들 대부분이 생각하는 천국은 어떻습니까? 죽어서 가는 것이며, 육체가 아닌 영혼이 가는 것이며, 이 세상에는 없는 제가 세상에 있는 것으로 여깁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천국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천국입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우리는 왜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예수님의 가장 중요하게 가르쳐 주신 천국과는 거리가 멀어도 너무나 먼 천국을 믿으며 신앙 생활하는 것입니까? 도대체 우리는 왜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하나님 나라와는 전혀 상관없는 천국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신앙 생활하는 것입니까?
아마도 우리 대부분의 생각에는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이 땅에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하나님 나라는 불가능하다고 여기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 세상 일상의 삶에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하나님 나라는 현실적으로는 도무지 실현 불가능한 사건이라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교인들 대부분은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서 사건이 아니라 죽은 이후에 일어나는 저 세상의 사건으로 제한해 버린 것입니다.
앞으로 저는 마태복음 13장에 나오는 일곱 가지 비유의 말씀을 매주 하나씩 살펴보면서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하나님 나라가 어떤 것인지 구체적으로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오늘은 일곱 가지 비유 말씀을 살펴보기에 앞서 예수님께서는 왜 하필이면 비유라는 형식으로 하나님 나라에 대해 가르치셨는지, 하나님 나라를 비유로 가르치신 특별한 의미가 있다면 그것은 무엇인지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예수님 주변에 많은 사람이 몰려들었습니다. 예수님은 모여든 많은 사람에게 여러 가지 비유로 하나님 나라에 대해 가르치셨습니다. 마태복음 13장에 나오는 일곱 가지 비유는 모두 예수님 주변에 모여든 사람들에게 가르쳐 주신 하나님 나라의 비유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모여든 사람들에게 하나님 나라를 가르치기 위해 가장 처음으로 하신 비유 말씀은 씨뿌리는 비유 말씀이었습니다.
모여든 사람들과 함께 씨 뿌리는 비유를 들은 제자들이 예수님께 묻습니다. “예수님 어찌하여 비유로 말씀하셨습니까?” 왜 비유로 말씀하시냐고 묻는 제자들의 질문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이 무엇입니까? 마태복음 13장 11절의 말씀을 함께 읽어 보겠습니다.
마13:11 대답하여 이르시되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그들에게는 아니되었나니
예수님의 답변은 좀처럼 이해하기 어려운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천국을 누구나 경험할 수 있는 지극히 평범한 일상의 사건을 비유로 들어 말씀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 천국을 평범하고 일상적인 사건으로 비유하시며 가르쳐 주신 이유가 사람들에게 천국을 좀 더 잘 이해시키기 위함일까요? 아니면 사람들에게 천국의 비밀을 알지도, 깨닫지도 못하게 감추기 위함일까요?
분명한 사실은 예수님께서 천국의 비밀을 감추고 숨기기 위해서 비유로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천국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을 알아듣지 못하게 하려고 비유로 가르치신 것이 결코 아닙니다. 마태복음 13장 34로 35절의 말씀은 예수님께서 왜 천국을 비유로 말씀하셨는지를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의도는 감추기 위함이 아니라 오히려 감춘 것을 낱낱이 드러내기 위함입니다.
마13:34-35 예수께서 이 모든 것을 무리에게 비유로 말씀하시고 비유가 아니면 아무 것도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선지자를 통하여 말씀하신 바 내가 입을 열어 비유로 말하고 창세부터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리라 함을 이루려 하심이라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제자들에게만 허락되었고 무리에게는 허락되지 않았다고 하십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의 이 말씀이 잘 이해가 가십니까? 모든 사람이 알아듣고 이해할 수 있도록 가장 평범하고 일상적인 사건과 이야기들로 천국을 비유하시고는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제자들에게만 허락되었다고 말씀하십니다. 도대체 이렇게 말씀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 비유로 말씀하신 천국은 감추어진 것도 숨겨진 것도 드러나지도 않은 비밀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비유로 말씀하신 천국은 지극히 평범하고 일상적인 삶에서 누구나 경험하고 이루어 갈 수 있는 어쩌면 너무나 사소하고 작은 것들입니다. 하지만 너무나 평범하고 일상적이며 사소하고 작아서 바로 옆에 있어도 있는 줄 모르고, 바로 옆에 있어도 소중한 줄 모르고 무시해 버리는 것입니다. 마치 여러분의 남편이 그러합니다.
너무나 당연하게 여기지만 그 당연한 것이 가장 소중하고 귀하다는 진실을 너무나 자주 잊고 살아갑니다. 예수님께서 천국을 가장 평범하고 일상적인 것으로 비유하시면서 천국의 비밀이라고 하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하나님 나라는 숨은 것도 아니고, 감추어진 것도 아니고, 저 멀리 우주 끝자락 안드로메다에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는 지금 여기에 있으며, 세상에 드러났고, 세상에 존재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하나님 나라를 사람들 대부분은 모릅니다. 예수님의 비유를 듣고도 모릅니다. 우리 역시 교회를 다니면 하나님 나라에 대한 여러 가지 예수님의 비유 말씀을 숱하게 들으면서도 예수님의 말씀과는 전혀 상관없는 천국만 생각하며 신앙생활 합니다.
왜 이런 일이 생기는 것입니까? 예수님 말씀에 의하면 하나님 나라는 지극히 평범하고 사소한 것에 있는데 우리는 그것이 너무나 평범하고 사소하다고 여겨 무시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말씀에 의하면 하나님 나라는 이미 우리 안에 시작되었는데 우리는 여전히 하나님 나라를 지금 나와는 상관없는 죽음 이후의 사건으로 미루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우리가 알려고 해도 도무지 알 수 없는 신비하고 놀라운 영적 비밀이 아닙니다. 그저 평범하고 일상적인 삶과 인생에서 하나님 나라를 살려고 애쓰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하나님 나라가 명백하게 확연하게 드러납니다. 하지만 하나님 나라를 죽음 이후의 사건으로 여기거나, 현재의 삶에서 누리는 하나님 나라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 나라가 바로 옆에 있어도 감추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모든 사람에게 허락된 것이 아니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가장 평범한 일상에서 발견해야 하는 하나님 나라를 외면하고 거절한 결과에 대해 예수님은 매우 엄중하게 경고하셨습니다. 무릇 있는 자는 받아 넉넉하게 되지만 없는 자는 있는 것도 빼앗긴다는 마태복음 13장 12절의 말씀입니다. 이것을 나타내는 경제 용어가 무엇입니까? 부익부 빈익빈입니다. 예수님의 경고 말씀은 부자는 점점 더 부자가 되고, 가난한 사람은 점점 더 가난해지는 부익부 빈익빈이라는 경제 현실과 조금도 다르지 않습니다.
마13:12 무릇 있는 자는 받아 넉넉하게 되되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
있는 자는 더 넉넉해지고, 없는 자는 있는 것마저 빼앗기는 “부익부 빈익빈” 경제 현상은 사람 사는 세상 그 어디에서나 나타나는 지극히 일반적이며 보편적인 경제 원리입니다. 게다가 부익부 빈익빈의 원리는 경제에만 적용되는 원리가 아닙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거진 대부분 분야에서 흔하게 나타나는 일반적인 현상입니다.
하지만 무릇 있는 자는 받아 넉넉하게 되고 없는 자는 있는 것도 빼앗길 것이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결코 이렇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하신 말씀이 아닙니다. 세상의 질서의 비정함으로 드러내시며 영적 차원에서도 진리를 깨달은 자는 더욱 깨닫게 되고 진리를 거부하는 자는 더욱 비참해지는 것을 한탄하시며 경고하시는 말씀입니다.
예수님 주변에 모인 사람들 모두가 예수님께서 비유로 말씀하시는 하나님 나라에 대해 들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비유를 들은 모든 사람이 예수님 말씀을 듣고 하나님 나라를 깨달은 것이 아닙니다. 듣고 깨달은 사람보다, 들었어도 깨닫지 못한 사람이 훨씬 더 많았습니다. 왜 이런 일이 생긴 것입니까?
사람들이 너무 많아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이 잘 안 들렸기 때문입니까? 아니면 예수님 말씀이 너무 어려웠기 때문입니까?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잘 안 들린 것도 어려운 것도 아닙니다. 예수님은 누가 들어도 이해할 수 있도록 가장 평범하고 일상적인 사건과 이야기로 하나님 나라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가장 쉬운 비유로 하나님 나라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런데도 깨닫는 사람들보다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았습니다. 왜 이런 일이 생긴 것입니까? 문제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하나님 나라의 비유 말씀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문제는 비유를 들었던 사람들에게 있었습니다. 이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도 깨닫지 못한 이유는 예수님의 말씀이 자신들이 기대했던 말씀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자신들이 듣고 싶었던 말씀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나라에 대한 예수님의 비유 말씀을 들었지만 모여든 사람 대부분이 그 말씀을 깨닫지 못한 것은 예수님의 비유가 이해하기 어려웠기 때문이 아닙니다. 저들이 듣고 싶었던 말씀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저들이 기대했던 말씀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들어도 깨닫지 못한 것입니다. 보다 정확히 말하면 깨닫지 못한 것이 아니라 깨닫지 않은 것입니다. 이것을 경고하는 말씀이 마태복음 13장 13절의 말씀입니다.
마13:13 그러므로 내가 그들에게 비유로 말하는 것은 그들이 보아도 보지 못하며 들어도 듣지 못하며 깨닫지 못함이니라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하며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한 예수님의 안타까움과 한탄은 예수님께서 인용하신 이사야서의 말씀에서 분명하고 명확하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예수님 께서 인용하신 이사야서의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우상숭배와 영적 타락에 대한 하나님의 안타까움과 한탄을 나타내시는 말씀입니다.
마13:14-15 이사야의 예언이 그들에게 이루어졌으니 일렀으되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는 듣기에 둔하고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을까 두려워함이라 하였느니라
하나님께서는 이사야 선지자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보내어 저들의 우상숭배와 영적 타락을 책망하시고 장차 있을 하나님의 심판을 경고하셨습니다. 하지만 유대 백성들은 자신들의 우상숭배와 영적 타락을 보고도 못 본 척했으며,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도 못 들은 척했습니다.
이스라엘에는 하나님의 말 씀을 전한다고 하는 많은 선지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크게 두 부류의 선지자로 나뉘었습니다. 한 부류의 선지자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듣기를 원하고 기대하는 말씀만 전하는 선지자들이었습니다. 다른 한 부류의 선지자들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반드시 듣기를 원하는 말씀을 전하는 선지자들이었습니다.
이 두 부류의 선지자들 가운데 어떤 부류의 선지자가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에서 더 인기가 많았을까요? 당연히 자신들이 원하고 기대하고 듣고 싶은 하나님 말씀만 전하는 선지자들이었습니다. 반면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듣기를 원하는 말씀을 전하는 선지자는 백성들 사이에서 인기가 없었습니다. 단순히 인기만 없었던 것이 아니라 극심한 박해와 핍박을 받아야 했습니다.
겔13:16 이들은 예루살렘에 대하여 예언하기를 평강이 없으나 평강의 묵시를 보았다고 하는 이스라엘의 선지자들이니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것은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교인들 대부분이 듣기를 원하는 말씀은 당장 입에 달고 귀에 듣기 좋은 소리지, 입에 쓰고 귀에 거슬리는 말씀은 듣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말로는 좋은 약은 입에 쓰다고 말하면서도 당장 입에 단것을 원합니다.
자신들이 원하는 이야기를 해 주는 목사의 설교에는 귀를 쫑긋하고는 목사가 한마디 할 때마다 아멘을 연발합니다. 심지어 쓸데없는 농담에도 아멘을 남발합니다. 하지만 자신들이 원하지 않는 설교, 자신들이 듣기 불편한 설교를 하면 아멘은 커녕 들어도 들은 척도 안 합니다.
저의 설교에 대해 제가 가장 많이 듣는 피드백이 있습니다. 무엇일 것 같아요? 제 설교가 불편하다는 피드백을 가장 많이 듣습니다. 하도 많이 들어 이젠 그러려니 합니다. 그런데 제 설교가 불편한 걸까요 듣는 여러분의 마음이 불편한 것일까요? 여러분은 자유교회를 목회하는 제가 어떤 말씀을 전하는 목사가 되기를 원하십니까? 여러분이 듣고 싶은 말씀을 전하는 목사입니까? 아니면 하나님께서 우리가 듣기를 원하는 말씀을 전하길 원하십니까?
한국교회와 우리의 신앙은 그야말로 심각한 위기에 놓여있습 니다. 한국 기독교 원로이며 고신대 석좌교수인 손봉호 교수는 한국교회에 대해 개신교 역사상 작금의 한국교회보다 더 타락했던 적은 없다고 했습니다. 심지어 한국교회는 완전히 몰락해야만 개혁될 수 있다며 한국교회 미래에 대한 엄중히 경고했습니다. 하지만 더 심각한 문제는 이런 주장은 기독교 언론이 아니라 세상 언론에만 소개되고 있습니다.
너무나 많은 목사가 교회를 비판하는 자들은 다 사탄의 무리라며 한국교회 괜찮다. 아무 문제 없다. 다 잘 될 것이다. 주장합니다. 이들의 영향으로 실제로 너무나 많은 교인이 한국교회에 정말 아무런 문제도 없는 것처럼 생각하며 교회를 다닙니다. 교회의 영적 타락을 보면서도 보지 못합니다. 들어도 듣지 못합니다. 마치 예수님께서 인용하셨던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이 지금도 그대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교회는 여러분들이 원하는 것만 알고, 듣고 싶은 말씀만 듣기 위해 모이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하고 반드시 들어야 하는 것을 알기 위해 듣기 위해 교회로 모여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 나라를 경험할 수 있고 하나님께서 기뻐하는 교회로 변화될 수 있습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예수님께서는 지극히 평범하고 일상적인 사건과 이야기들로 하나님 나라를 비유하셨습니다. 왜 이렇게 하셨습니까? 물론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하나님 나라가 지극히 평범하고 일상적인 사건에서 경험되고 누릴 수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예수님께서는 누구나 이해하고 깨달을 수 있도록 가장 평범하고 일상적인 사건과 이야기로 하나님 나라를 비유하신 것입니다.
마13:16-17 그러나 너희 눈은 봄으로, 너희 귀는 들음으로 복이 있도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많은 선지자와 의인이 너희가 보는 것들을 보고자 하여도 보지 못하였고 너희가 듣는 것들을 듣고자 하여도 듣지 못하였느니라
예수님께서는 가장 평범하고 일상적인 하나님 나라의 비유를 보고 듣는 사람이 복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하나님 나라에 대한 비유 말씀은 너무나 평범하고 일상적이어서 많은 선지자와 신앙의 의인들조차 보지도 듣지도 깨닫지도 못한 것이라 말씀하셨습니다. 가장 평범하고 일상적인 것에 가장 위대한 것이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 나라의 가장 놀라운 신비입니다.
바라기는 예수님의 가르침처럼 천국을 죽은 이후 저세상의 사건으로 미루지 마시고 가장 평범하고 일상적인 우리 삶 가운데서 하나님 나라를 경험하고 누리실 수 있는 깨달음이 저와 여러분의 신앙의 여정에 충만하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