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씨를 뿌려야 하는 이유
마태복음 13:1-9
오늘은 하나님 나라 네 번째 시간으로 “그래도 씨를 뿌려야 하는 이유”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합니다.
마태복음 13장에는 예수님께서 비유로 말씀하신 7개의 비유가 나오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13장에 나오는 예수님의 일곱 가지 비유에는 매우 중요한 공통점이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예수님의 일곱 가지 비유가 모두 하나님 나라에 관한 비유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일곱 가지 비유로 말씀하신 하나님 나라는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며 처음으로 선포하신 말씀이며 예수님께서 선포하시고 전하신 복음 중의 복음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오늘은 마태복음 13장에 나오는 첫 번째 비유인 씨 뿌리는 비유로 알려진 말씀을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씨 뿌리는 비유로 알려진 예수님의 첫 번째 비유를 해석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물론 비유 자체도 그리 어렵지 않지만, 예수님께서 직접 제자들에게 비유를 설명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엄밀히 말해서 오늘 살펴보는 씨 뿌리는 비유는 천국에 관한 비유 말씀이기보다는 앞으로 말씀하실 천국에 관한 비유 말씀에 대한 서론과 같은 비유의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공생애를 시작하시면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선포하셨고 비유로 하나님 나라를 자세하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하나님 나라에 대한 비유 말씀을 듣고도, 막상 사람들 대부분은 깨닫지도 못하고 심지어 관심을 두지도 않았습니다.
마13:13 그러므로 내가 그들에게 비유로 말하는 것은 그들이 보아도 보지 못하며 들어도 듣지 못하며 깨닫지 못함이니라
사람들이 하나님 나라에 대한 예수님의 비유를 듣고도 듣지 못하며 깨닫지 못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예수님의 비유 말씀이 사람들이 듣고 이해하기에 너무 어려운 말씀이었기 때문입니까? 아니요.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 나라에 대한 예수님의 비유는 누가 들어도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쉽게 설명하셨습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의 비유를 들었던 사람들 대부분은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하나님 나라를 제대로 이해하지도 받아들이지도 못했습니다.
도대체 사람들은 왜 예수님께서 그토록 쉽게 비유로 말씀하셨음에도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하나님 나라에 대해 깨닫지 못한 것입니까? 사람들이 왜 하나님 나라에 대해 깨닫지 못하는 것을 가르쳐 주시기 위해 비유로 하신 말씀이 씨 뿌리는 비유입니다. 물론 예수님의 비유는 지금 우리에게도 그대로 적용되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예수님 당시 군중들처럼 지금 우리도 여전히 같은 이유로 하나님 나라를 깨닫지 못하며 신앙생활 합니다.
예수님의 씨 뿌리는 비유는 이렇습니다. 어떤 사람이 씨를 뿌립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씨를 뿌리는 곳이 어딥니까? 이 사람이 씨를 뿌리는 곳은 경작해둔 자기 밭이 아니라 땅이 보이는 적당한 곳에서 씨를 뿌렸습니다. 그리고 이런 곳에 씨를 뿌리는 가장 일반적인 방법은 공중에 씨를 흩날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바람에 씨들은 사방으로 흩어지게 됩니다.
공중에 흩뿌린 씨들이 사방으로 흩어져 네 군데 땅에 떨어집니다. 첫 번째는 길가에 떨어졌습니다. 길가에 떨어진 씨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새들이 와서 먹어버렸습니다. 두 번째는 돌밭에 떨어졌습니다. 어떻게 되었습니까? 싹이 났으나 해가 나자 곧 타버렸습니다. 세 번째는 가시덤불 위에 떨어졌습니다. 어떻게 되었습니까? 가시 때문에 씨가 자라지 못했습니다. 네 번째는 좋은 땅에 떨어졌습니다. 어떻게 되었습니까?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육십 배, 어떤 것은 삼십 배의 열매로 자랐습니다.
앞서도 말씀을 드렸지만 씨 뿌리는 비유는 예수님께서 직접 설명을 해주셨습니다. 그래서 특별히 해석의 어려움이 없습니다. 씨는 무엇에 대한 메타포입니까? 천국 말씀 즉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씨를 뿌리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세상에 전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씨를 뿌리는 사람은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세상에 선포하고 전하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것은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세상에 전하는 것을 단순히 자기 교회 교인 늘리는 전도로만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의 비유를 이런 식으로 적용하는 이유는 너무나 많은 목사와 교인들이 자기 교회 교인들 숫자 늘리는 것을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것으로 오해하기 때문입니다. 씨를 뿌린다는 것을 땅을 넓히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려고 애를 쓰고 노력을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씨 뿌리는 자의 비유는 더 많은 씨를 뿌려 더 많은 열매를 거두라고 하신 비유의 말씀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씨 뿌리는 비유는 아무리 선한 의도와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나라의 복음을 전하며, 하나님 나라를 만들려고 애를 쓰고 노력하지만 그게 생각하고 기대한 것처럼 잘되지 않는다는 것을 경고하시기 위해 하신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천국 말씀을 듣고도 깨닫지 못할까요?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설명하셨습니다. 천국 말씀을 듣고도 깨닫지 못하는 첫 번째 이유는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려진 것을 빼앗아 가기 때문이라고 하십니다. 악한 자는 누구입니까? 하나님 나라보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세상 질서와 권세를 지키려는 사람들입니다. 누가 세상 나라를 더 유지하고 싶어 할까요? 세상에서 잘 나가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는 것을 방해하고 이런 사람에게 세뇌된 사람을 길가에 뿌려진 씨로 비유하신 것입니다.
마13:19 아무나 천국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할 때는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려진 것을 빼앗나니 이는 곧 길가에 뿌려진 자요
천국 말씀을 듣고도 깨닫지 못하는 두 번째 이유는 처음에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듣고는 기쁨으로 받아들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질서와 방식이 자신에게 이전보다 더 나은 이익을 보장해 줄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 나라의 질서와 방식 때문에 손해 보는 일이 생기고 자신이 감당해야 할 어려움이 생겨나면 금세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포기해 버립니다. 예수님은 이런 사람을 돌밭에 떨어진 씨와 같다고 비유하셨습니다.
마13:20-21 돌밭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즉시 기쁨으로 받되 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시 견디다가 말씀으로 말미암아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날 때에는 곧 넘어지는 자요
천국 말씀을 듣고도 깨닫지 못하는 세 번째 이유는 세상의 염려와 재물에 대한 욕심으로 마음이 가득 차 있어서 이 사람에게는 다른 것이 마음에 들어올 일말의 틈이 없는 사람입니다. 당장 먹고 사는 것만이 인생의 전부라 여기며 다른 사람은 어떻게 되든, 세상이 어떻게 되든 상관하지 않습니다. 오직 자기만, 오직 자기 가족만 잘살면 만사 Okay라고 여기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에게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예수님은 이런 사람을 가시덤불에 떨어진 씨와 같다고 비유하셨습니다.
마13:22 가시 떨기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들으나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결실하지 못하는 자요
하지만 이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비록 뿌려진 씨 가운데 아주 적은 일부이기는 하지만 좋은 땅에 떨어진 씨도 있다고 했습니다. 좋은 땅에 뿌려졌다는 것은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듣고 깨닫는 자라로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듣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열매를 맺게 되는 데 씨 하나가 그냥 열매 하나를 맺는 것이 아니라 어떤 것은 백 백, 어떤 것은 육십 배, 어떤 것은 삼십 배의 열매를 맺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마13:23 좋은 땅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니 결실하여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육십 배, 어떤 것은 삼십 배가 되느니라 하시더라
똑같은 씨를 뿌렸지만 모든 씨가 열매를 맺지 못했습니다. 똑같이 씨가 떨어졌음에도 싹도 내지 못하고 사라진 씨도 있고, 싹만 피우다 말라버린 씨도 있고, 조금 자라다 말라버린 씨도 있고, 수십, 수백 배의 열매를 맺은 씨도 있었습니다. 도대체 무엇이 이런 차이를 만든 것입니까? 씨를 뿌렸다고 모든 씨가 열매를 맺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땅에 떨어지느냐가 열매를 맺느냐 못하느냐를 결정합니다.
아무리 교회를 오랫동안 다니며 수없이 많은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들었음에도 내 생각과 태도와 행동에 아무런 변화도 없다면 나는 아무런 열매도 맺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며 아무런 열매를 맺지 못한다는 것은 매우 심각한 문제입니다. 열매 맺지 못하는 나무에 대해 예수님은 너무도 단호하게 경고하셨습니다.
마태복음 7:19-20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느니라. 이러므로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그렇다면 우리가 맺어야 하는 신앙의 열매는 무엇입니까? 성경은 여기에 대해 분명하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성도가 이 세상을 살면서 맺어야 할 열매는 대단한 일을 하거나 엄청난 업적을 세우는 것이 아닙니다. 성도가 맺어야 할 열매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닮은 성품의 변화, 가치관과 인격의 변화입니다. 여기에서부터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하나님 나라가 시작됩니다.
갈라디아서 5:22-23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에베소서 5:9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씨앗이 뿌려졌음에도 열매를 맺지 못하는 이유는 두 가지밖에 없습니다. 애당초 씨가 불량이거나 아니면 씨가 뿌려진 땅에 문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씨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고 땅은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들은 저와 여러분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불량일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복음이라는 씨에 문제가 없는 것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기업가들이 유전자들 조작하고 변형하여 GMO 농산물을 만들어 내듯이 목사들도 복음을 조작하고 변형하여 GMO 복음을 만들어 냅니다. 기업가들이 GMO 농산물을 만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더 빠르게 성장시키고 더 많이 수확하여 이전보다 더 많은 이익을 얻기 위함입니다. 목사들이 GMO 복음을 만드는 이유도 기업가들이 GMO 농산물을 만드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하며 수없이 많은 설교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음에도 내 삶에 성령의 열매나 빛의 열매와 같은 것들이 조금도 나타나고 있지 않는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먼저 내게 뿌려진 씨앗이 가짜가 아닌지를 생각해 봐야 합니다. 모양만 씨앗이지 생명이 없는, 가짜 씨앗은 아무리 많이 아무리 자주 뿌린다고 거기서 싹이 나고 잎이 나고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하지만 모든 책임을 씨앗에게만 돌려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의 비유에서 서로 다른 땅에 뿌려진 씨는 결코 다른 품질이나 종류의 씨가 아니라 똑같은 품질, 똑같은 종류의 씨앗이었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비유에서 땅에 뿌려진 씨가 열매를 맺지 못했던 결정적인 이유는 뿌려진 씨앗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씨앗이 떨어진 땅에 있었습니다. 똑같은 씨를 뿌렸지만, 싹을 피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것은 그 씨가 떨어진 땅에 따라 달라졌습니다.
똑같은 씨가 땅에 떨어졌음에도 어느 땅은 아무런 열매도 맺지 못하고 어느 땅은 수십 배의 열매를 맺는 것은 뿌려진 씨앗의 문제가 아니라 뿌려진 씨앗을 품지 못하는 땅의 문제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말씀이 바르게 선포되었음에도 아무런 열매도 맺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듣지 않거나 말씀대로 살려고 애쓰지 않는 불신앙 때문입니다.
이 같은 사실은 같은 교회의 교인들을 유심히 살펴보면 너무나 분명해집니다. 똑같은 교회에 다니며 똑같은 말씀을 들으며 신앙생활 했다면 다른 사람이 열매를 맺으면 나도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물론 사람에 따라 삼십 배, 육십 배, 혹은 백배의 양적인 차이는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주변에 열매를 맺는 사람이 있음에도 나는 아무런 열매를 맺지 못한다면 그 책임은 전적으로 자신이 져야 합니다.
하지만 이것이 예수님 비유의 핵심 메시지가 아닙니다. 대부분 예수님의 이 비유는 주로 씨가 떨어진 땅에다 초점을 두고 해석하고 적용됩니다. 그래서 나는 길가의 땅인지, 아니면 돌밭과 같은 땅인지, 가시덤불이 자라는 땅인지, 좋은 땅인지를 생각해 보라고 합니다. 만약 길가의 땅이나 돌밭이거나 가시덤불이 자라는 땅이라면 열심히 마음의 땅을 경작해서 백 배, 육십 배, 삼십 배 열매를 맺는 좋은 땅이 되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비유를 해석하고 적용한다면 이 비유는 씨 뿌리는 비유가 아니라 씨가 뿌려진 네 땅의 비유라고 해야 합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이 비유를 네 땅의 비유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씨 뿌리는 비유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이유는 이 비유의 초점은 네 땅에 있는 것이 아니라 씨를 뿌리는 일에 있음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마13:18 그런즉 씨 뿌리는 비유를 들으라
그렇다면 네 땅에 관한 이야기가 주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물론 앞서 설명해 드린 것처럼 천국 말씀을 듣고도 열매 맺지 못하는 자기 자신을 성찰하고 돌아보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보다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님께서 아무리 천국 말씀을 전한다고 해도 모든 사람이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좋아하고 받아들이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천국 말씀을 들었지만 대부분 예수님이 선포하시고 가르치신 천국 말씀을 외면하거나 거절했습니다.
이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진리의 말씀,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한다고 해도 모든 사람이 그것을 좋아하며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좋아하고 받아들이는 사람보다 외면하고 거절하는 경우가 훨씬 더 많습니다. 전도를 한 번이라도 해 본 사람이면 너무나 쉽게 경험하고 알 수 있는 일입니다. 수십 명에게 복음을 전해도 한 명 전도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습니다. 이것은 전도를 안 해 본 사람은 절대로 모르는 일입니다.
저는 아침 묵상을 보낼 때마다 내가 계속해서 이것을 해야 하나 고민에 빠질 때가 종종 있습니다. 제가 쏟는 노력에 비해 거두는 열매는 별로 없어 보이기 때문입니다. 과연 몇 명이나 진지하게 읽고 묵상할까 생각하면 도대체 이렇게 하는 것이 우리 교회나 제 목회에 무슨 소용이 있나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 차라리 이 정성과 노력으로 아침마다 교인들에게 안부 전화하고 심방 하는 게 훨씬 낫지 않나 생각도 합니다.
심지어 저의 어머니는 아침 묵상을 들을 때마다 저에게 이 목사 그렇게 설교하면 교회가 성장하지 않는다며 걱정을 늘어놓으십니다. 실제로 우리 교회가 양적으로 성장하지 못하는 가장 중요한 원인은 제 설교와 아침 묵상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들을 때마다 고민이 되고, 들을 때마다 지금까지 자신의 믿음과 충돌하는 설교나 아침 묵상을 듣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해 씨를 뿌리는 것이 당장 보기에는 아무런 소용도 없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많습니다. 대부분 아무런 열매를 맺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이 있습니다. 뿌린 씨앗 대부분이 열매 맺지 못하는 땅에 떨어지지만, 비록 적은 일부분이지만 좋은 땅에 뿌려지는 씨도 분명히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놀라운 사실은 좋은 땅에 떨어진 씨는 반드시 열매를 맺습니다. 그것도 삼십 배, 육십 배, 백배의 열매를 맺습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반드시 주의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비유에 등장하는 씨를 뿌리는 사람은 씨를 뿌릴 때, 좋은 땅과 나쁜 땅을 미리 구별해서 자기 생각에 좋은 땅에만 씨를 뿌린 것이 아닙니다. 또는 좋은 땅에만 씨를 뿌리려고 했는데 실수로 몇 개의 씨가 나쁜 땅에 잘못 떨어진 것이 아닙니다. 씨를 뿌리는 사람은 자신의 가진 씨를 공중으로 흩뿌려 사방으로 흩어지게 했습니다. 좋은 땅, 나쁜 땅 상관없이 사방으로 씨를 뿌렸습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주는 매우 중요한 영적 도전이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는 사람은 복음을 전할 때 자신이 가진 기준으로 사람들을 함부로 선별하여 전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 대상자를 우리가 맘대로 선별해서 전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생각하기에 “저 사람은 말씀을 전할 만하겠다.” “저 인간은 말씀을 전해도 소용없겠다.” 함부로 구별하는 것은 결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람의 바른 자세나 태도가 아닙니다.
내가 가진 선입관으로 말씀을 전할 사람과 말씀을 전하지 않을 사람을 내가 선별하고 결정하는 것은 매우 교만한 일입니다. 우리는 누가 길가의 땅인지, 누가 자갈밭과 같은지, 누가 가시덤불과 같은지, 누가 좋은 땅인지를 알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결코 우리에게 사람이 좋고 나쁨을 판단하거나 심판할 능력이나 권한을 주지 않으셨습니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혀 받아들이지 않을 것 같지만 예상외로 그 누구보다 더 진지하게 말씀을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습니다. 첫인상과 같은 선입관이나 편견으로 사람을 판단하고, 결정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정말 사람에 대해서 모릅니다. 따라서 우리는 누구에게든지 최선을 다해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도무지 씨알도 먹히지 않을 것 같아 보이는 사람이라도 복음을 전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에 대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기회가 닿는 한 최선을 다해 전하려고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는 어떤 사람이 길가의 땅과 같은지 어떤 사람이 자갈밭과 같은지 어떤 사람이 가시덤불과 같은지 어떤 사람이 좋은 땅과 같은지 알 수 있는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분별하고 판단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그 사람에게 하나님 나라의 씨를 뿌려 보아야만 알 수 있습니다. 씨를 뿌리고 나면 그 사람에게 뿌려진 씨가 어떻게 되는 가를 보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가 비로소 분명하게 드러날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내가 어떤 사람에게 복음을 전해야, 내가 어떤 사람에게 사랑을 나누어야, 내가 어떤 사람에게 친절을 베풀어야 효과가 있을지를 생각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선 그 사람이 누구라 할지라도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복음을 전하고, 사랑은 나누고, 친절을 베풀어야 합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는 일은 예수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맡기신 사명입니다. 하지만 막상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한다는 것이 아무런 소용도 없는 일처럼 보일 때가 너무나 많습니다. 그래도 계속해서 씨를 뿌려야 하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비록 아주 적은 씨지만 좋은 땅에 떨어져 열매 맺는 씨가 반드시 있습니다. 당장 눈에 보이지 않는 열매가 없다고 하더라도 중간에 포기하지 않아야 합니다. 끝까지 맡은 바 사명을 계속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귀 있는 자는 들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