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와성경공부
하나님 나라5-가라지를 뽑지 말아야 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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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라지를 뽑지 말아야 하는 이유

마태복음 13:24-30

 

 

하나님 나라 다섯 번째 시간입니다. 오늘은 가라지를 뽑지 말아야 하는 이유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합니다.


마태복음 13장에는 예수님께서 비유로 말씀하신 일곱 가지의 비유가 나옵니다. 마태복음 13장에 나오는 예수님의 일곱 가지의 비유에는 매우 중요한 공통점 두 가지가 있습니다. 일곱 가지 비유에서 발견할 수 있는 두 가지 공통점을 알아야만 마태복음 13장에 나오는 일곱 가지 비유를 제대로 해석하고 바르게 적용할 수 있습니다.


일곱 가지 비유에서 발견할 수 있는 두 가지 공통점이 무엇입니까? 첫 번째 공통점은 일곱 가지 비유가 모두 하나님 나라에 관한 비유라는 것입니다. 단순한 신앙 교훈을 주기 위해 하신 말씀이 아닙니다. 일곱 가지 비유는 모두 하나님 나라를 가르쳐 주시기 위해 비유로 하신 말씀입니다. 따라서 일곱 가지 비유가 하나님 나라에 관한 비유라는 사실을 늘 염두에 두고 비유를 해석하고 적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두 번째 공통점입니다. 두 번째 공통점은 하나님 나라에 대한 비유라고 하는 일곱 가지 비유가 모두 평범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평범한 자신들의 일상에서 누구나 경험할 수 있는 지극히 평범한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은 세상에서는 도무지 경험할 수 없는 초자연적인 신비스러운 사건이나 이야기로 천국을 비유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의 비유는 누구나 경험할 수 있는 지극히 평범한 사건이나 이야기로 천국을 비유하셨습니다.


이것은 마태복음 13장에 나오는 일곱 개의 천국 비유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닙니다. 복음서에 나오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예수님의 모든 가르침이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이 지극히 일상적인 육신의 삶에서 경험할 수 있는 것들로만 가르치시고 말씀하셨습니다. 도대체 예수님은 왜 하나님 나라를 지극히 평범한 일상적인 사건이나 이야기들로 천국을 비유하신 것일까요?


너무나 많은 교인이 천국에 대해 매우 심각한 오해를 하며 신앙생활 합니다. 교인들 대부분이 생각하는 천국은 죽어야만 갈 수 있는 낙원쯤으로만 여깁니다. 하지만 천국을 이렇게 생각해서는 마태복음 13장에 나오는 예수님의 천국 비유를 이해할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우리 신앙생활에 제대로 적용할 수도 없습니다.


지극히 평범하고 일상적인 이야기들로 천국을 비유하신 예수님의 가르침을 통해 반드시 배워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천국은 지극히 평범한 우리 삶의 일상에서 발견되고 경험되고 이루어진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은 천국을 죽어야만 가는 신비한 나라가 아니라 이 땅에서 경험하고 누릴 수 있는 나라로 가르치신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생각하려는 예수님의 비유입니다. 어떤 사람이 자기 밭에 좋은 씨를 뿌렸습니다. 그런데 모두가 잠들었을 때 원수가 몰래 와서는 좋은 씨를 뿌린 밭에 가라지를 덧뿌리고 도망을 쳤습니다. 한동안은 아무도 밭에 가라지가 뿌려진 것을 몰랐습니다. 하지만 뿌려진 가라지 씨앗에 싹이 나고 줄기가 자라자 곡식 가운데 가라지도 함께 자라 는 것을 비로소 발견하게 됩니다.


주인의 밭에 많은 양의 가라지가 자라는 것을 발견한 종들이 깜짝 놀라서는 주인을 찾아가 이 사실을 알립니다. ‘주인님 밭에 좋은 씨를 뿌렸는데, 가라지가 함께 자라고 있습니다.’ 하지만 주인은 종들처럼 놀라지 않았습니다. 주인은 별일 아닌 듯 대수롭지 않게 말합니다. ‘원수가 이렇게 하였구나.’


종들이 주인에게 묻습니다. ‘우리가 가서 밭에 난 저 가라지를 모두 뽑아버릴까요?’ 당장이라도 밭에 가서는 가라지를 뽑아낼 기세로 말하는 종들에게 그냥 내버려 두라고 주인이 말합니다. 주인은 종들이 혹여 가라 지를 뽑으려다가 곡식까지 뽑게 될까 걱정이 된다며 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라고 하십니다. 추수 때에 추수하는 자들에게 가라지는 따로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따로 모아 곳간에 넣겠다고 합니다.


비유에 나오는 가라지는 독보리라고도 하는데 싹이 나고 자랄 때는 밀 이삭이나 보리 이삭과 비슷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싹이 자랄 때는 분간하기가 쉽지 않다고 합니다. 하지만 완전히 다 자라서 추수할 때가 되면 그 차이가 분명해져서 쉽게 구별할 수 있다고 합니다. 또한 가라지 이삭을 먹으면 구토가 나거나 심한 배탈이 난다고 합니다. 따라서 가라지 이삭은 반드시 따로 구별해서 사람이 먹지 않도록 해야 했습니다.


지난주에 살펴보았던 씨를 뿌리는 비유와 함께 오늘 살펴보는 가라지의 비유는 교인들 대부분이 가장 잘 아는 비유이지만 동시에 가장 잘못 이해하는 비유이기도 합니다. 너무나 많은 목사나 교인이 이 비유를 가지고 교회 안에 교인들을 알곡 교인과 가라지 교인으로 나누려고 합니다. 그리고 알곡 교인이 되어 천국에 가야지 가라지 교인이 되면 불타는 지옥에 간다는 식의 적용을 합니다.


얼핏 듣기에 대단히 그럴듯해 보입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가라지 비유를 해석하고 적용하는 것은 예수님께서 비유하신 말씀과는 정반대의 해석이 되고 맙니다. 예수님의 비유는 당장이라도 밭에 난 가라지를 뽑으려고 하는 종들을 말리고 있습니다. 또한, 예수님의 비유에서 천국으로 비유된 것이 무엇입니까? 알곡을 들이는 곳간을 천국이라고 하신 것이 아닙니다. 자기 밭에 좋은 씨를 뿌리는 사람이 천국과 같다고 하셨습니다.


13:24 예수께서 그들에게 또 다른 비유를 들어서 말씀하셨다. "하늘 나라는 자기 밭에다가 좋은 씨를 뿌리는 사람과 같다.


지난주 설교했던 씨 뿌리는 자의 비유에서도 비유의 초점을 어디에 두느냐가 비유를 해석하고 적용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됩니다. 예수님의 비유를 씨가 뿌려진 네 종류의 땅에 초점을 두느냐, 아니면 씨를 뿌리는 사람에게 초점을 두느냐에 따라 비유의 의미와 해석 그리고 우리 신앙생활에서 적용하는 것이 완전히 달라질 수 있습니다.


씨 뿌리는 자의 비유를 네 종류의 땅에다 초점을 두게 되면 나는 과연 어떤 종류의 땅인가를 생각하고 반성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비유의 교훈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길가의 땅이나 돌짝밭이나 가시덤불이 자라는 당이 아니라 좋은 땅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가장 중요한 교훈이며 적용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씨 뿌리는 비유는 서로 다른 네 종류의 땅에 초점을 두고 말씀하신 비유가 아닙니다. 씨 뿌리는 비유에 등장하는 나쁜 땅들은 아무리 좋은 씨를 뿌린다고 할지라도 모든 땅이 씨를 품고 싹을 내고 열매를 맺지는 않는다는 것을 가르쳐 주기 위함입니다. 심지어 좋은 땅에 뿌려진 씨조차도 서로 다른 열매를 맺었습니다. 어떤 것은 백 배의 열매를 맺었고, 어떤 것은 육십 배의 열매를 맺었고, 어떤 것은 삼십 배의 열매를 맺었습니다.


따라서 씨 뿌리는 비유에서 우리가 배우고 적용해야 할 가장 중요한 교훈은 드러난 결과에 연연하여 원하는 열매를 얻지 못한다고 해서 씨를 뿌리는 일을 중단하거나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아무리 좋은 씨를 뿌린다고 해도 그 씨를 품은 땅이 어떠 하느냐에 따라 풍성한 열매를 맺기도 하지만 아무런 열매도 맺지 못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중도에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씨를 뿌리는 것입니다.


가라지의 비유도 씨 뿌리는 비유와 같은 원리입니다. 어디에다 비유의 초점을 두느냐가 중요합니다. 가라지의 비유에서 가장 중요한 초점은 무엇입니까? 가라지의 비유는 가라지가 되지 말고 알곡이 되자는 단순한 도덕적 교훈이 아닙니다. 가라지의 비유를 해석하고 적용하는 가장 중요한 질문은 주인은 왜 당장이라도 가라지를 뽑으려는 종들에게 가라지를 추수 때까지 그대로 두라고 하셨느냐?” 이 질문을 가지고 비유를 읽어야 합니다.


씨 뿌리는 자의 비유와 같이 오늘 설교하는 가라지의 비유도 마태복음 1336절부터 43까지 예수님의 설며이 나오고 있습니다. 가라지의 비유에 대한 예수님의 설명은 이렇습니다. 좋은 씨를 뿌리는 자는 인자이며, 밭은 세상이고, 좋은 씨는 천국의 아들들이며, 가라지는 악한 자의 아들들입니다. 가라지를 심은 원수는 악마며 추수 때는 세상 끝이고 추수꾼은 천사들이라고 하십니다.


13:37-39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좋은 씨를 뿌리는 이는 인자요, 밭은 세상이다. 좋은 씨는 그 나라의 자녀들이요, 가라지는 악한 자의 자녀들이다. 가라지를 뿌린 원수는 악마요, 추수 때는 세상 끝 날이요, 추수꾼은 천사들이다.


예수님의 설명에서 말씀해 주지 않은 한 부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누구입니까? 종들입니다. 그렇다면 이 비유에 나오는 종들은 누구로 해석해야 할까요? 일차적으로는 이 비유에 대해 듣고 이 비유의 뜻을 물었던 제자들입니다. 예수님께서 비유에서 종들이 누구인지를 설명하지 않는 이유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종들이 누구를 뜻하는지 제자들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13:36 그 뒤에 예수께서 무리를 떠나서, 집으로 들어가셨다. 제자들이 그에게 다가와서 "밭의 가라지 비유를 우리에게 설명하여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예수님의 가라지 비유를 들은 제자들은 예수님에게 비유를 설명해 달라고 부탁합니다. 비유를 들은 제자들이 예수님께 설명을 부탁한 것은 비유를 듣고도 비유의 의미를 제대 로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일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은 비유에 나오는 종들이 가졌던 의문과 같습니다.


주인은 분명 밭에다가 좋은 씨만 뿌렸습니다. 하지만 좋은 씨를 뿌린 밭에 좋은 곡식만 자라지 않았습니다. 주인이 심지도 않은 가라지도 자라났습니다. 이것을 본 종들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좋은 씨만 뿌린 밭에 도대체 왜 가라지가 생겨났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13:27 집 주인의 종들이 와서 말하되 주여 밭에 좋은 씨를 뿌리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런데 가라지가 어디서 생겼나이까


이것은 제자들이 가졌던 의문이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파하시고 그 결과로 좋은 열매를 맺는 사람들이 생겨났습니다. 하지만 좋은 열매를 맺는 사람만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예수님의 사역과 제자들을 핍박하고 방해하는 사람들도 많이 생겨났습니다.


제자들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시고 가르치는 지극히 선하고 좋은 일을 하시는데 그 일을 방해하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는 것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이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해 선한 일, 좋은 일을 한다고 하면 격려하고 도움을 주는 사람들도 물론 있습니다. 하지만 더 많은 사람들이 그 일을 비웃거나 방해하고 심지어는 핍박하고 훼방하려고 듭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가졌던 도무지 이해하기 힘든 의문에 대해 마치 이런 일이 생기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것처럼 대답하십니다. 종들은 도대체 왜 좋은 씨를 뿌린 밭에서 가라지가 자라는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주인은 원수가 몰래와서는 좋은 씨를 뿌린 밭에다 가라지를 뿌렸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시대를 막론하고 어느 시대든 하나님 나라를 방해하는 거짓 선지자들 사이비 삯꾼 종교 지도자들이 늘 있었습니다.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하나님을 이용하고 교회를 이용하고 교인들을 이용하려는 사이비 종교 지도자들, 삯꾼 목사, 사기꾼 교인들은 늘 존재할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이미 엄중히 경고하신 말씀이기도 합니다.


24:24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여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리라


그리고 예수님은 거짓 선지자들이 양의 옷을 입고 우리에게 다가온다고 하셨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사람들이 좋다고 반길만한 그럴듯한 모습으로 사람들에게 다가온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들은 양이 아니라 양의 옷을 입은 이리라고 했습니다. 이리가 양의 옷을 입고 이유가 무엇입니까? 노략질하기 위함입니다. 양의 것을 빼앗기 위해서입니다.


7:15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따라서 기독교에는 왜 사이비 종교지도자들이 많냐고, 교회에는 왜 삯꾼 목사나 사기꾼 교인들이 많냐고 답답해하지도 마시기 바랍니다. 교회에는 하나님을 이용하거나 교인들을 이용해 얻을 수 있는 돈이 있고, 권세가 있고 명예가 있습니다. 따라서 이런 것을 욕심내는 삯꾼 목사나 사기꾼 교인들이 생겨나고 모여드는 것은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이치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교회의 문제만이 아닙니다. 다른 종교는 말할 것도 없고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과 사회의 거의 모든 분야에 걸쳐서 나타나고 있는 지극히 공통적인 문제이며 당연한 현상입니다. 아무리 좋은 일이라 할지라도 오로지 자신들의 더 많은 탐욕을 위해 자신의 지위와 권세를 이용하려는 수많은 사탄 마귀들이 있습니다.


학문을 가르치는 교수들 가운데도 양심에 따라 학문을 가르치는 교수도 있지만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학문을 왜곡하는 삯꾼 교수가 있습니다. 사람의 병을 고치는 의사도 마찬가지입니다. 환자를 고치는 일을 사명으로 감당하는 의사도 있겠지만 오로지 더 많은 돈이나 명예를 위해 환자들을 함부로 이용하는 의사들도 있습니다.


가라지 비유에는 제자나 종들이 가졌던 좋 은 씨만 뿌린 밭에서 왜 가라지가 자라느냐는 의문보다 더 충격적인 말씀이 나옵니다. 무엇입니까? 당장 밭에 난 가라지를 뽑으려고 하는 종들에게 가라지를 추수때까지 그냥 내버려 두라는 주인의 말씀입니다. 여러분은 추수때까지 가라지를 그냥 내버려 두라는 주인의 말씀이 잘 이해가 되고 공감이 되십니까? 밭에 난 가라지를 발견했으면 당장 뽑는 것이 당연한 일 아닌가요.


예수님 당시 바리새인들과 율법학자들은 자신들의 종교적 기준을 가지고 사람들을 의인과 죄인으로 나누는 일에 적극적이었습니다. 이들은 자신들이 세운 기준을 가지고 사람들을 의인과 죄인으로 나누었습니다. 물론 예수님께서 이들의 나눈 의인과 죄인의 기준을 인정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은께서는 당시 종교지도자들이 죄인이라고 정죄하며 멀리했던 사람들과 가까이 지냈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세리와 죄인의 친구 비난하며 예수님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당장이라도 가라지를 뽑으려는 시도는 예수님 당시에만 있었던 일이 아닙니다. 지금도 여전히 교회에서 빈번하게 일어나는 일입니다. 물론 눈에 거슬리는 가라지를 당장이라도 뽑아내려는 하는 것이 누구나 가진 일반적인 생각이며 마음일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마음은 스스로 자신이 경건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일수록, 스스로 자신은 남들보다 더 신실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일수록 더욱 절실할 것입니다.


하지만 주인은 당장이라도 밭에 난 가라지를 뽑으려는 종들을 말렸습니다. 가라지를 뽑으려는 종들을 말린 주인의 의도는 분명했습니다. 가라지를 뽑으려다 혹시 좋은 곡식까지 뽑을 수 있으니 그냥 내버려 두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가라지는 곡식보다 그 뿌리가 강하여 가라지를 뽑으면 주위의 곡식도 함께 뽑히게 됩니다. 그렇다고 마냥 가라지를 내버려 두신다고는 하지 않았습니다. 언제까지만 내버려 두라고 하셨습니까? 추수할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라고 하셨습니다.


13:29-30a 주인이 이르되 가만 두라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하노라 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라


하지만 주인의 명령은 당장 가라지를 뽑지 말고 추수 때까지 곡식과 함께 자라게 두라는 것만이 아니었습니다. 주인은 종들에게 말씀하시길 추수 때에 추수꾼들을 보내겠다는 것입니다. 주인은 곡식과 가라지를 구별하여 심판하는 것을 종들에게 맡기지 않고 주인이 보내는 추수꾼들에게 맡기신다는 것입니다.


13:30b 추수 때에 내가 추수꾼들에게 말하기를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 내 곳간에 넣으라 하리라


주인은 종들에게 당장 가라지를 뽑는 것만 막으신 것이 아닙니다. 추수 때에 곡식과 가라지를 구별하고 가라지를 심판하는 일도 추수꾼에게 맡기셨습니다. 가라지의 비유에서 등장하는 추수꾼은 누구라고 했습니까? 예수님은 친히 설명하시길 추수꾼은 천사들이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무엇을 뜻합니까? 알곡과 가라지를 구분하여 심판하는 것은 사람에게 속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속한 일이라는 것을 강조하시는 말씀입니다.


사람이 사람을 자기 기준에 따라 함부로 판단하고 심판하는 것은 우리에게 주신 임무나 사명이 아닙니다. 알곡과 가라지를 구별하고 심판하는 것이 종들이 아니라 추수꾼에게만 있었던 것처럼, 사람을 판단하고 심판하는 것은 오로지 하나님께만 속한 권한입니다. 여기에는 그 어떤 사람의 개입도 허락하지 않으십니다.


저를 대단히 좋은 목사 또는 괜찮은 목사라고 말하시는 분들이 비록 드물지만 아예 없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저를 대단히 나쁜 목사라고 말하거나 생각하는 분들도 없지는 않습니다. 아마도 저를 좋은 목사라고 생각하는 분보다 어쩌면 나쁜 목사라 여기는 분들이 더 많을 수도 있습니다. 이처럼 똑같은 목사를 두고 어떤 사람은 대단히 좋은 목사라고 착각하지만 또 어떤 사람은 나쁜 목사라고 매도하기도 합니다. 이것은 저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 모두에게 해당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왜 이런 일이 생기는 것입니까? 사람들이 생각하는 선과 악의 기준이 결코 공평하고 공의롭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모두 스스로 자기 자신이 대단히 공평하고 공정하다고 착각하며 살아갑니다. 하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선과 악, 알곡과 가라지의 기준은 항상 자기에게 이익이 되느냐 그렇지 못하느냐에 달려 있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사람이 생각하는 알곡이나 선은 자신에게 이익이 되거나 도움이 되는 경우이며, 가라지나 악은 자신에게 손해가 되거나 피해를 입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우리가 감당해야 할 가장 중요한 사명은 가라지를 뽑아내는 것이 아닙니다. 가라지에게 지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사명을 악한 사람에게 물들거나, 악한 권세에 지지 않는 것이지 내 마음대로 악한 자를 판단하고 심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마지막 심판이 있을 때까지 결코 악에게 지지 않는 것 이것이야 말로 가라지가 득실되는 세상을 살면서 우리가 감당해야 하는 최고의 사명이입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권면하기를 원수 갚는 것은 하나님께 속한 일이며 다만 우리가 할 일은 원수에게까지 선을 베풀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저들을 부끄럽게 만들라고 하십니다. 이것이 곧 선으로 악을 이기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사도 바울의 이 말씀이야말로 가라지의 비유에 대한 가장 완벽한 해석이며 적용입니다.


12:19-21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게 하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예수님은 천국을 무엇이라고 비유하셨습니까? 천국은 자기 밭에 좋은 씨를 뿌리는 사람과 같다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를 위해 해야 할 일은 가라지를 뽑아내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를 해야 할 유일한 일은 원수가 뿌리는 가라지를 두려워하지 말고 밭에다 좋은 씨를 뿌리는 것입니다. 설령 사탄 마귀가 가라지를 뿌리고 간다고 해도 놀라지 말고 주눅들지 말고 포기하지 말고 계속해서 좋은 씨를 뿌리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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