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와성경공부
하나님 나라8-일상에 감추어진 하나님 나라

일상에 감추어진 하나님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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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13:44


  

하나님 나라 여덟 번째 시간입니다. 오늘 설교하는 비유는 밭에 감추인 보화의 비유로 알려진 말씀입니다. 이 비유를 가지고 일상에 감추어진 하나님 나라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합니다. 평범한 목사가 전하는 평범한 설교 속에서 하나님 나라를 발견하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볼 천국의 비유에서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를 무엇과 같다고 비유하셨습니까? 예수님은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겨자씨 비유에서 가장 작고 하찮은 겨자 한 알로 천국을 비유하셨고, 누룩의 비유에서는 수천 년 이스라엘 역사에서 부정하다고 여겨왔던 누룩으로 천국을 비유하셨습니다. 하지만 밭에 감추인 보화의 비유에서는 보화로 천국을 비유하셨습니다.


13:44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며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사느니라


겨자씨 비유에서 겨자씨 한 알은 가장 작은 자, 가장 약한 자, 소수자를 나타내는 메타포였다면 누룩의 비유에서 누룩은 사람들이 부정하다고 여기거나 거룩하지 않다고 여기는 죄인들을 나타내는 메타포였습니다. 그렇다면 밭에 감추인 보화의 비유에서 천국으로 비유된 보화는 무엇에 대한 메타포일까요? 여기서 보화는 사람들이 가장 소중하고 귀하게 여기는 것을 나타내는 메타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앞선 다른 비유와 마찬가지로 이 비유 역시 교인들에게 아주 자주 잘못 이해되는 대표적인 비유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처음으로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것으로 천국을 비유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무엇으로 천국을 비유하셨습니까? 보화로 비유하셨습니다. 보화가 무엇입니까? 금은보석과 같은 값비싼 재물이나 돈을 의미합니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고 소중하고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보화입니다.


목사나 교인 중에는 밭에 감추인 보화의 비유와 요한계시록의 말씀을 연결하여 천국을 마치 금은보화로 만들어진 곳으로 생각합니다. 천국에는 길부터 모든 것들이 신비하고 아름다운 보석으로 만들어졌으며, 사람들이 사는 집들 역시 금은보석으로 휘황찬란하게 만들어졌다고 믿습니다. 제가 이렇게 말하면 목사가 과장한다고 여깁니다.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정말 생각보다 더 많은 교인이 천국에 대해 가장 먼저 떠올리는 이미지는 신기하고 값비싼 금은보석들로 만들어진 곳을 천국이라고 믿습니다.


하지만 밭에 감추인 비유를 제대로 이해하고 바르게 해석하기 위해선 비유의 초점을 보화에 두어서는 절대로 이 비유를 제대로 해석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보화를 천국으로 비유하신 이유는 문자 그대로 천국에 보화가 차고 넘치기 때문에 보화로 비유하신 것이 아닙니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이 가장 중요하고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 보화이기에 예수님은 사람들이 가장 중요하고 소중하게 여기는 보화로 천국을 비유하신 것입니다.


다시 말해 예수님께서 천국을 보화로 비유하시는 것은 천국이 정말 사람들이 중요하고 소중하게 여기는 보화로 가득 찼기 때문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천국을 보화로 비유하신 유일한 이유는 보화가 가지는 상징성 때문에 천국을 보화로 비유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보화가 가지는 상징성이 무엇입니까? 사람들이 가장 중요하고 소중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천국은 사람들이 가장 중요하고 소중하게 여겨야 하는 가장 값진 것임을 가르쳐주기 위함입니다.


하지만 너무나 많은 교인이 이것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비유를 문자 그대로 이해하여 천국을 마친 보화로 가득 찬 것으로 이해합니다. 그래서 더 많은 금은보화 재물을 가지는 것이 곧 천국이며 구원이라는 잘못된 믿음을 가지고 신앙 생활하는 교인이 있습니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너무나 답답한 노릇입니다. 하지만 세상에는 저나 여러분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는 것을 인정해야 하고 알아야 합니다.


오늘 비유를 해석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초점은 보화가 아닙니다. 오늘 비유를 해석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초점은 보화로 비유된 하나님 나라가 어디에 감추어져 있었느냐는 것입니다. 보화가 어디에 감추어져 있었습니까? 밭입니다. 그래서 오늘 비유를 단순히 보화의 비유라고 하지 않고 밭에 감추인 보화의 비유라고 하는 것입니다. 비유를 해석하는 가장 중요한 핵심은 보화가 아니라 밭에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보화가 천국을 의미한다는 것에는 별다른 이견이 있을 수 없습니다. 따라서 비유를 제대로 해석하기 위해선 밭이 무엇에 대한 메타포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밭이 무엇에 대한 메타포입니다. 예수님 당시 이 비유를 들었던 사람에게, 밭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그들이 매일 같이 아침 일찍 일어나 나가서 일해야 하는 일터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이 가장 소중하고 중요하게 여기는 보화가 대단히 엄청나고 신비한 곳에 감추어져 있다고 비유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농부가 매일같이 가서 일해야 하는 밭에 보화가 숨겨져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비유를 통해 천국이라는 보화가 지극히 평범하고 일상적인 우리의 삶 속에 숨겨져 있음을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밭은 여러분의 직장일 수도 있고, 내가 관계 맺는 이웃일 수도 있고, 오늘 여러분이 앉아 있는 이 자리일 수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천국이 보화와 같다는 것이 복음이 아닙니다. 밭에 보화가 감추어져 있다는 사실이야말로 복음 가운데 복음입니다. 할리우드 영화를 보면 보화는 주로 어디에 감추어져 있습니까? 대단히 신비하고 찾기 어려운 곳에 숨겨져 있습니다. 그래서 보화를 찾기 위해선 대단한 노력이 필요하고, 별의별 모험과 역경을 다 겪어야만 비로소 찾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모르지만 대부분 사람은 막연하게 보화는 신비한 곳이나 대단한 곳, 아니면 대단한 일에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비유는 우리의 생각과 믿음을 송두리째 뒤집어 놓습니다. 예수님의 비유에 의하면 보화는 밭에 숨겨져 있습니다. 그래서 보화를 찾으러 높은 곳에 올라가거나 한 번도 가지 않았던 신비한 곳을 찾아갈 필요가 없습니다. 보화를 얻기 위해 대단한 일을 해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매일같이 가는 가장 가깝고 평범해 보이는 일상에서 보화를 찾을 수 있다고 하십니다. 이것보다 더 기쁜 소식이 어디에 있습니까! 이것보다 더 큰 복음이 어디에 있습니까!


예수님의 비유에서처럼 하나님 나라는 대단한 곳에서 발견되는 것이 아닙니다. 보화를 발견한 농부는 보화를 찾기 위해, 마치 산삼을 찾아 이산 저산을 헤매고 다니듯 여러 곳을 찾아다녔던 사람이 아닙니다. 매일같이 똑같이 반복되는 지극히 평범한 일을 하는 중에 보화를 발견한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 나라로 비유된 보화를 발견하는 길은 대단한 데 있지 않습니다. 지극히 평범하고 일상적인 삶에서 누구라도 하나님 나라 천국을 발견할 수 있다는 사실이 우리 모두에게 중요한 영적 도전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 비유에서 우리가 주목해서 보아야 할 또 하나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밭에 감추어진 보화를 발견한 사람이 누구였습니까? 밭에 감추어진 보화를 발견한 사람이 밭 주인이 아니었습니다. 누구였습니까? 아마도 소작을 내고 밭을 빌려 농사짓는 농부였습니다. 그렇다면 왜 밭 주인이 자기 밭의 감추어진 보화를 발견하지 못했을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한 번도 자기 밭에 나가 쟁기로, 호미로 밭을 갈고 일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비록 남의 밭이지만 열심히 일한 사람이 밭에 감추어진 보화를 발견했습니다.


내 밭에 아무리 귀중한 보화가 감추어져 있다고 해도 저절로 내 것이 되지 않습니다. 발견해야만 비로소 내 것이 됩니다. 왜 그렇습니까? 밭에 감추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를 아무리 오래 다녀도 죽을 때까지 하나님의 나라를 경험하지 못하고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도 꽤 많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입니까? 교회 오면 늘 주인 노릇만 하며 대접만 받으려고 하는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천국이 어떤 나라입니까?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나라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기도를 가르치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처럼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기도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내 뜻이 이루어지는 세상이 좋은 세상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세상이 좋은 세상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리고 내 뜻이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답답해하기보다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에 대해 안타까움을 가져야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말씀을 드리면 그럼 도대체 하나님의 뜻이 무엇이냐고 반문합니다. 물론 인간이 하나님의 뜻을 모두 알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도무지 알기 어려운 하나님의 뜻도 많이 있지만 분명하게 알 수 있는 하나님의 뜻도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따라서 모르는 것은 모르는 대로 살아가면 되는 것이고 우리는 다만 분명히 알 수 있는 하나님의 뜻을 위해 살아가면 됩니다.


너무나 많은 교인이 자신이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몰라서라고 변명합니다. 스스로 합리화합니다. 하지만 진실은 하나님의 뜻을 몰라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를 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모른다고 하지만 사실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하나님의 뜻은 결코, 어렵지 않습니다.


사도 바울은 분명하게 가르치기를 하나님과 사람에 대해 상식과 양심에 따라 살기만 해도 하나님의 뜻을 이루며 살 수 있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상식과 양심은 우리 모두에게 주신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양심을 따르기만 해도 너무나 쉽게 발견할 수 있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런데 상식과 양심은 다 엿 바꿔 먹고는 하나님의 뜻을 모른다고 합니다.


24:16 그러므로 나도 언제나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서 거리낌 없는 양심을 가지려고 힘쓰고 있습니다.

2:14-15 율법을 가지지 않은 이방 사람이, 사람의 본성을 따라 율법이 명하는 바를 실천하면 그들은 율법을 가지고 있지 않아도 자기가 자기에게 율법이 됩니다. 그런 사람은 율법이 요구하는 일이 자기의 마음에 적혀 있음을 드러내 보입니다. 그들의 양심도 이 사실을 증언합니다


십여 년 전, 한국의 유명한 삯꾼 목사가 쓴 기적이 상식이 되는 교회라는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었습니다. 이런 신앙이 교회에서 대대적인 유행을 하고, 이런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는 것이 오늘날 한국교회의 현실입니다. 한 번 진지하게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기적이 상식이 되는 교회가 좋은 교회일까요? 아니면 상식이 이루어지는 교회가 좋은 교회일까요? 저는 아무리 생각해도 상식을 지킬 줄 아는 교회가 기적이 상식이 되게 하는 교회보다 훨씬 더 좋은 교회라고 생각합니다.


기적이라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 후에 그래도 도저히 할 수 없을 때 기적을 구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이 할 수 있는 지극히 평범한 상식도 양심은 제대로 지키지도 않으면서 맨날 기적만을 설교하고 맨날 기적만을 바라고 맨날 기적을 팔아먹는 것이 정말 좋은 교회인지는 깊이 생각해 보셔야 할 것입니다.


코로나 19 바이러스의 급격한 확산으로 이번 주부터 한국 천주교회 16개 모든 교구가 신도들과 함께 드리는 미사를 중단했습니다. 한국 천주교회 236년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라고 합니다. 개신교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대형교회들을 중심으로 대부분 교회가 온라인 예배로 대체하였고 온라인 예배를 할 수 없는 중소형 교회들은 반반으로 갈리었다고 합니다.


천주교회와 개신교회가 주일예배를 중단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이번 코로나 19 바이러스의 전국적 확산에 교회의 책임이 결코 적다고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물론 직접적인 원인은 교회에 침투한 신천지들 때문이라고 책임을 전가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신천지라는 변종 바이러스와 같은 사이비 집단이 생겨난 것에 대한 책임은 교회에 있다고 해도 조금도 지나치지 않을 것입니다.


한국에서 신천지가 이번 사태에 결정적 원인이 된 이유가 무엇입니까? 코로나19 바이러스쯤이야 천국을 약속받은 자신들은 피해갈 것이라는 잘못된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심지어 코로나19 바이러스에 감염돼도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치료해 주실 것이라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게 신천지들만의 믿음이 아닙니다. 개신교회 교인 중에도 이런 생각을 믿음이라고 착각하는 교인들이 아마도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습니다.


너무나 많은 교인이 기적이나 신비한 일에 하나님 나라와 구원이 있다고 오해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비유에 의하면 결코 기적이나 신비한 일 또는 심오하고 어려운 영적 비밀과 같은 곳에 하나님 나라가 숨겨져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지극히 평범한 상식과 양심 속에 하나님 나라가 감추어져 있다고 가르쳐 주십니다. 물론 상식과 양심이 전부는 아니지만, 상식과 양심이라는 밭 속에 하나님 나라가 감추어져 있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조금만 깊이 생각하면 누구나 발견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은 천국이라는 보화가 사람이 세상을 살면서 결코 쉽게 발견할 수도 없는 깊은 산속이나, 바다 깊은 곳에, 기적 같은 일에, 또는 죽어서만 갈 수 있는 신비한 영적 세계에 감추어져 있다고 가르쳐 주지 않으셨습니다. 대신에 예수님은 매일 같이 가야 하는 밭에 보화가 감추어져 있고, 그 보화는 그 밭에서 열심히 땀 흘리고 수고한 사람에게 발견된다고 비유로 가르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비유에서 중요한 사실 또 한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라는 보화를 발견한 농부가 어떻게 그 보화를 자기 것으로 만들었느냐는 것입니다. 자신이 일하는 밭에서 보화를 발견했다고는 하지만 그 밭의 주인은 엄연히 따로 있었습니다. 실제로 예수님 당시 유대 지역에서는 밭에서 보화를 발견하는 일은 종종 일어났다고 합니다.


당시는 지금과 같은 은행이 없었기에 금은보화가 있었던 부자들이 자기만 아는 땅에다 보화를 묻어두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전쟁이나 사고로 인해 보물의 주인이 아무 말도 남기지 못하고 죽고 나면 땅에 묻힌 보물은 아무도 모르는 것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땅을 파다가 우연히 보물을 발견하는 일이 종종 있었다고 합니다. 물론 이런 경우 보물은 일차적으로 땅 주인의 소유로 인정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보화를 발견한 농부가 어떻게 했습니까? 그 즉시로 돌아가서 자신이 가진 것을 다 팔아서 그 밭을 샀다고 했습니다. 어떤 분들은 농부의 태도를 부도덕하다고 비판합니다. 자신이 일하던 밭에서 보화를 발견했으면, 당연히 주인에게 알려야지 주인 몰래 밭을 산 것에 대해 부도덕하다고 합니다.


일단 비유에서 보화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그런 금은보석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의미합니다. 그런데 비유에서 나오는 보화를 금은보석으로만 생각하니까 이런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밭에서 발견한 보물의 소유권이 땅 주인에게 있다는 것이 당시의 법이라고는 하지만 과연 이것을 정당한 법이라고 여길 수 있는지는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아무튼, 밭에서 보화를 발견한 농부는 집으로 돌아가서는 자신의 전 재산을 팔아 밭을 샀습니다. 이 사람이 자기 소유를 다 팔아 밭을 산 이유는 무엇 때문입니까? 밭이 좋아서요? 아니요. 밭을 산 이유는 오로지 밭에 감추어진 보화 때문에 그 밭을 산 것입니다. 보화가 목적이라면 보화만 사지 굳이 밭을 샀습니까? 자기 재산을 다 팔아도 밭에 감추어진 보화는 살 수 없습니다. 하지만 밭은 살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영적 도전을 주는 말씀입니다.


밭에 감추인 보화를 얻기 위해서는 보화를 사는 것이 아니라 밭을 살 줄 아는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밭에 감추어진 보화를 얻기 위해서는 밭을 사야 하는 것처럼, 때로는 불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것들을 감수해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를 얻기 위해서는 교회라는 공동체에 소속되어야 합니다. 때로 교회 공동체가 자신에게 상처를 주고, 불쾌감을 줄 때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모든 불편함을 감수하고 감당할 수 있는 용기와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 나라를 얻을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커플들은 그저 서로 쳐다만 보기만 해도 황홀해하고 좋아합니다. 서로에게 두 사람은 마치 보화와 같은 존재로 여겨질 것입니다. 그래서 사랑하는 이들이 결혼을 결심합니다. 하지만 이 두 사람이 결혼하기로 마음먹은 그 순간부터 결혼은 결코, 두 사람만의 관계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 순간부터 그들은 고민하게 될 것입니다. 바로 현실에 부딪히게 되는 것입니다.


결혼은 서로가 보물이라고 여겨지는 상대방을 그 집에서 쏙 빼어내 둘만 살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그 남자를 정말 사랑한다면 그 부모님도 사랑해야 할 것입니다. 그 여자를 정말 사랑한다면 그 부모님이 어떤 분일지라도 그 부모님까지도 받아들여야 합니다. 진정한 결혼의 의미는 내가 원하는 그 사람하고만 결혼하는 것이 아닙니다. 때론 원하지 않는 상대방의 가족들과 더불어 살아야 합니다. 심지어 두 사람의 결혼을 반대했던 부모, 형제일지라도 품고 사랑하며 더불어 살아야 합니다.


다시 말해 사랑하는 보화를 원한다면 그 보화가 숨겨진 상대방의 가족이라는 밭을 사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결혼을 앞두고 많은 이들이 갈등하고 주저합니다. 보물은 좋은데 밭은 마음에 들지 않아서 결혼을 고민합니다. 하지만 지혜로운 사람은 밭을 삽니다. 그 밭에 보물이 숨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 밭을 사지 않고는 보화를 얻을 수 있는 길은 없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입니다. 보화만 따로 있지 않습니다. 보화는 항상 밭과 함께 있습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밭에 감추어진 보화를 얻는 유일한 길은 보화를 사는 것이 아니라 밭을 사는 것입니다. 하지만 아무 밭이나 산다고 되지 않습니다. 보화가 숨겨진 밭을 사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평생을 보화를 가지길 원하지만 가지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보화가 숨겨지지 않은 엉뚱한 곳에 가서 보화를 찾으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자기들 생각에 보화가 있을 것 같은 곳에서 보화를 찾으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보화는 대단하고 엄청난 곳에 있지 않습니다. 가장 평범한 일상과 같은 밭에 감추어져 있습니다.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인해 막연한 불안과 공포에 사로잡혀서는 사람을 혐오하고 미워하지 않아야 합니다. 이럴 때일수록 친절과 배려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불안과 공포를 선동하지 않고 따듯한 말 한마디 격려하고 위로하는 말로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가 가져오는 두려움을 떨쳐 내야 할 것입니다.


바라기는 어려운 위기 가운데서도 하나님 나라를 발견하시는 기쁨과 감격이 있기를 바라며, 각자가 발견한 하나님 나라를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는 믿음과 용기가 있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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