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나라의 주인공
마태복음 13:4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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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나라 아홉 번째 시간입니다. 오늘 설교하려는 예수님의 비유는 “좋은 진주의 비유”로 알려진 비유입니다. 이 비유를 가지고 “하나님 나라의 주인공”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합니다.
마태복음 13장에는 예수님의 일곱 비유가 나오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13장에 나오는 일곱 비유는 모두 천국에 관한 비유로 예수님은 지극히 일상적이며 평범한 사건과 일로 천국을 비유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천국에 대해 가르치시며 사람들이 좀처럼 이해하기 힘든 영적 비밀과 같은 신비한 이야기로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지극히 일상적이며 평범한 사건과 일로 천국을 비유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3장에 나오는 일곱 비유 가운데 어느 것 하나도 대단하고 신비한 이야기는 단 하나도 없습니다. 일곱 비유 모두 당시 예수님의 비유를 듣던 사람들이 자신들의 주변 일상에서 너무나 쉽게 찾아볼 수 있고 경험할 수 있는 지극히 일상적이고 평범한 이야기로 천국을 비유하시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선포하시고 가르쳐 주신 천국을 이해하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한 부분입니다.
도대체 예수님께서는 왜 주변에서 흔히 일어날 수 있는 평범한 사건이나 매일같이 반복되는 일상적인 일로 거룩하다고 여기고 신비하다고 생각하는 하나님 나라를 비유하셨을까요? 예수님의 가르침에 의하면 하나님 나라는 결코 죽어서나 가는 미지의 세계, 환상의 세계, 비밀의 세계, 영적 세계가 아닙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에 의하면 하나님 나라는 농사를 짓고, 장사하고, 빵을 만들고, 고기를 잡는 지극히 평범하고 구체적인 우리의 일상과 현실에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하나님 나라는 내가 숨 쉬며 살아가는 지금의 삶 속에 감추어져 있습니다. 우리의 일상에서 하나님 나라를 발견하지 못하는 이유가 있다면 여기에 하나님 나라가 없기 때문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내 일상과 삶에 하나님 나라를 감추어 두셨습니다. 따라서 아무리 지금 내 인생이나 일상이 힘들고 어렵더라도 찬찬히 내 삶의 구석구석을 믿음의 눈으로 살펴보며 누구라도 하나님 나라를 찾을 수 있습니다.
지난주 밭에 감추인 보화의 비유처럼 하나님 나라는 감추어져 있기에 우리가 쉽게 발견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믿음의 눈으로 찬찬히 자신의 삶과 주변을 살펴보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 구석구석에 심어 놓으신 하나님 나라를 반드시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무리 불행한 형편과 처지에 있다고 해도 그 삶에 숨겨진 하나님 나라는 반드시 있습니다. 이것을 찾아내고 발견하는 것이 믿음이고 신앙입니다.
빌4:11-12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사도 바울은 감옥에 갇혀서도 기쁨과 감사를 잃지 않고 천국의 삶을 살았습니다. 우리 역시 어떠한 형편과 처지 가운데서도 기쁨과 감사로 충만한 천국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생과 일상에 하나님 나라를 감추어 두셨습니다. 다만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과 일상에 감추어 두신 하나님 나라를 찾지 못하는 이유가 있다면 욕심과 죄가 우리의 눈을 가리기 때문에 우리 삶에 감추신 하나님 나라를 발견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생각해 볼 비유 역시 지난 비유들과 마찬가지로 대단히 간단하고 평범합니다. 진주를 사고파는 상인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상인은 단지 진주를 사고팔아 돈 버는 것으로 만족하는 상인이 아니었습니다. 비유에 의하면 이 사람은 세상에서 가장 좋은 진주를 구하기 위해서 여기저기 열심히 찾아다녔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다 정말 아주 좋은 진주 하나를 찾게 됩니다. 값진 진주를 발견한 상인은 자신의 모든 소유를 팔아서 값진 진주를 삽니다. 이것이 오늘 비유의 전부입니다.
여러분은 이 이야기에서 어떤 하나님 나라를 발견하셨는지요? 오늘 이 비유를 이해하고 해석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예수님께서는 천국을 무엇으로 비유하셨느냐는 것입니다. 지난주 살펴보았던 밭에 감춘 보화의 비유에서 천국으로 비유된 것은 무엇입니까? 보화였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살펴보는 비유에서 예수님께서 천국으로 비유하신 것은 무엇입니까? 자칫 지난주 비유 때문에 진주라고 오해하기 쉬운데 예수님께서 천국으로 비유하신 것은 진주가 아니라 장사였습니다.
마13:45 또 천국은 마치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으니
얼핏 생각하기에 지난주 살펴보았던 밭에 감추인 보화의 비유와 좋은 진주를 구하는 상인의 비유는 매우 비슷한 비유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비슷해 보이는 겨자씨의 비유와 누룩의 비유가 천국에 대해 전혀 다른 메시지와 가르침을 준 것처럼 밭에 감추인 보화의 비유와 좋은 진주를 구하는 상인의 비유 역시 두 비유가 전하려고 하는 천국에 대한 가르침은 전혀 다릅니다. 따라서 이 두 비유의 차이와 전하려고 하는 메시지를 제대로 분별할 수 있어야 비유의 의미를 보다 분명하게 찾을 수 있습니다.
지난주 밭에 감추인 보화 비유에서 하나님 나라는 밭에 감추어진 보화였습니다. 비유에 나오는 농부는 일확천금과 같은 보화를 찾기 위해서 이 밭 저 밭을 찾아 헤매고 다니지 않았습니다. 매일 가는 자신의 일터였던 밭에서 농사를 짓다가 보화를 발견한 것입니다. 하지만 좋은 진주를 구하는 상인의 비유에서는 값진 좋은 진주를 하나님 나라로 비유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비유하신 천국은 좋은 진주를 구하기 위해 이리저리 애쓰며 찾아다닌 장사꾼을 천국으로 비유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천국으로 비유하신 진주 상인은 단지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진주를 사고파는 장사꾼이 아니었습니다. 비유에 등장하는 진주 상인은 좋은 진주를 구하는 것에 대한 열정이 있는 장사꾼입니다. 진주 장사로서 최고의 진주, 가장 좋은 진주를 가지기를 소원했습니다. 그리고 좋은 진주를 찾는 일에 수고와 노력을 마다하지 않고 있습니다. 최선을 다해 더 좋은 진주를 찾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단지 더 많은 이익을 얻기 위해서만 일하는 것으로는 그 어떤 일을 한다고 해도 그 일을 통해 감추어진 하나님 나라를 발견하지 못할 것입니다. 어떠한 일이라 할지라도 자기 일을 통해 자신이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것을 하려고 애써야 합니다. 이것은 목사도 마찬가지입니다. 목사가 단지 더 많은 사례비 받기 위해 목회를 한다면, 아무리 하나님의 일이라고 하는 목회라 할지라도 하나님 나라와는 아무런 상관없는 일이 되고 맙니다.
한국 서울에 있는 동안교회의 어느 집사님의 이야기입니다. 한국에서 들었던 아주 오래된 이야기지만 지금까지도 잊지 않고 생생하게 기억하는 이야기입니다. 제가 이미 설교 시간에 몇 번 설교했습니다. 아마도 기억하시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 그래도 기회가 있으면 앞으로도 몇 번이고 반복하여 설교하려고 합니다.
서울 동안교회에 다니며 식당을 하던 집사님 부부가 전라도 광주로 이사를 하였습니다. 전라도 광주로 이사하신 집사님 내외는 거기서 설렁탕집을 개업하셨습니다. 그런데 전라도 광주로 이사를 하신 집사님 부부가 5시간이나 버스를 타고는 동안교회로 주일마다 예배를 드리러 오시는 것입니다. 예배를 드리고는 그날로 다시 5시간 버스를 타고 광주로 내려가시는 것입니다.
당시 그 교회 담임목사님이셨던 김동호 목사님이 전라도 광주에 있는 집사님 부부가 경영하는 가게로 심방을 가게 되었습니다.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려 교회를 나오시는 것을 아신 목사님께서 이제는 그만 서울로 올라오시라고 말씀드리려고 작정을 하고 심방을 가신 것입니다. 그런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가게에 어렵사리 찾아갔는데 마침 가게 문이 닫혀 있었답니다. 대신 가게 문에는 메모가 한 장 붙어있었는데 “오늘은 재료가 나빠서 문을 닫습니다.”라는 메모가 붙어있었답니다.
급하게 집사님을 수소문해서 목사님이 집사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도대체 무슨 일인가 물어보니 설렁탕 한 그릇을 끓여도 예수님을 대접하는 마음으로 끓여서 파는 것이 집사님의 사업 정신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뼈를 공급하는 가게에서 좋지 못한 재료를 보내왔는지 아무리 설렁탕을 끓여도 이전 맛이 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냥 적당히 넘어갈 수 없어 부득이하게 가게 문을 닫았다는 것입니다.
목사님이 처음 광주로 심방을 갈 때는 더는 서울로 올라오지 마시고 가까운 근처 교회를 다닐 것을 권면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집사님 내외가 장사하는 마음을 보고는 저들이 어떤 마음과 심정으로 왕복 열 시간을 걸리는 교회를 다니고 계신지를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집사님의 간증에 목사님이 감동하였습니다.
그런 분들에게 힘드시니, 이제는 그만 올라오시라는 말씀을 전할 수 없으셨다고 합니다. 대신 그 목사님은 자신도 그 먼 곳에서 오시는 집사님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목회하고 설교할 테니 힘닿는 데까지 열심히 교회에 나오시다가 나중에 정 힘에 부치시면 그때는 언제라도 주변 가까운 곳에서 더 좋은 교회를 찾아다니시라고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먹고 살기 위해서는 자신이 하는 일을 통해 돈을 벌어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 나라를 원하는 사람이라면 일하는 목적이 오로지 이익과 돈에만 있지 않아야 합니다. 자신이 하는 일을 통해 예수님의 마음이 나타나야 합니다. 그리고 이런 사람은 어떤 일을 하더라도 그 사람이 바로 하나님 나라를 사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이 있기에 여전히 세상은 살만한 세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주어진 인생이니까 그냥 살아가는 인생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어떻게 살아야 값진 인생을 살 수 있을까? 하나님께서는 내가 어떻게 살기를 원하실까? 인생의 참된 진리는 무엇인가? 하나님께서 주신 우리에게 주신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가지고 인생의 참된 진리를 찾으려는 노력과 수고를 아끼지 않아야 합니다. 그래야만 비로소 하나님 나라와 같은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비유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46절의 말씀입니다. 앞부분을 주목하여 보면 “극히 값진 진주 하나를 발견하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진주 장사는 좋은 진주를 구하기 위해 사방팔방 찾아다녔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마침내 진주 장사가 그렇게 찾기를 원하던 ‘극히 값진’ 진주 하나를 발견한 것입니다. 진주 장사가 발견한 진주는 지금까지 자신이 보았던 진주 중에서도 최고의 진주였습니다.
마13:46 극히 값진 진주 하나를 발견하매 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진주를 사느니라
진주는 누구나 쉽게 알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극히 값진 최상급의 진주를 구별하는 것은 전문가가 아니면 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진주를 사고판다고 좋은 진주인지 아니지 그 가치를 제대로 분별할 수 있는 상인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비유에 나오는 진주 장사가 인생 최고의 진주를 가질 수 있었던 것은 누구보다 열심히 좋은 진주를 찾기도 했지만, 이것보다 더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자신이 발견한 진주의 진가와 가치를 제대로 구별할 줄 알았기 때문입니다.
밭에 감춘 보화의 비유처럼 하나님 나라는 지극히 평범하고 일상적인 우리의 삶 구석구석에 숨겨져 있습니다. 그래서 누구나 믿음의 눈으로 자신의 인생을 살펴보면 하나님께서 숨겨 놓으신 천국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눈앞에서 천국을 발견하고도 그것이 얼마나 중요하고 가치가 있는지를 몰라 그냥 지나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단순히 진주 장사를 천국에 비유하신 것이 아닙니다. 좋은 진주를 구별할 줄 아는 장사꾼을 천국으로 비유하신 것입니다. 여기에 숨겨진 의미를 알아야 예수님의 비유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왜 밭에 감추인 보화의 비유로 천국을 가르치시고는 곧이어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로 천국을 비유하셨습니까? 보화를 보화로 볼 수 있는 안목, 좋은 진주를 분별할 수 있는 안목을 가진 사람만이 천국을 살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 아주 어렸을 때 엿장수들이 동네를 돌아다니며 아이들을 꾀었습니다. 솥단지를 가지고 오면 엿 바꿔 준다고 꾀었습니다. 저도 그 꼬임에 넘어가 멀쩡한 솥단지 가져다 엿 바꿔 먹고는 어머니에게 들켜서 뒤지게 혼났던 적이 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가치를 분별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솥단지의 값어치를 모르는 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맛있는 엿 한 주먹이지 솥단지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단지 어린 시절의 실수가 아니라 어른이 된 지금도 수없이 겪는 실수입니다. 우리는 어떤 것에 대한 중요한 가치를 제대로 분별하지 못하고 때문에 정말 값지고 소중한 것을 그냥 놓쳐버리는 경우가 너무나도 많습니다. 시간의 가치를 모르고 허송세월할 때가 있습니다. 인생의 소중함을 모르고 함부로 낭비하며 살 때가 많습니다. 부모님의 소중함을 모르고 불효할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르고 믿음보다는 당장의 이익이나 즐거움을 찾을 때가 너무나 많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살았던 에덴동산 그곳이 바로 하나님 나라였지만 하나님과 같아지려는 욕심 때문에 하나님 나라를 잃어버렸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사는 세상은 하나님이 지으신 세상입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이 세상에서 우리는 하나님 나라를 경험하며 살 수 있게 하셨습니다. 하지만 아담과 하와처럼 눈앞의 욕심 때문에 하나님 나라를 잃어버리고 살고 있습니다.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덜 중요한지를 분별하지 못하는 어리석은 자가 되었습니다.
오늘 비유의 말씀처럼 어떤 것이 정말 가치 있고 값진 진주인지를 분별할 수 있어야만 좋은 진주의 주인이 되는 것처럼 인생에 있어서 무엇이 정말 소중하고 가치 있는가를 아는 사람만이 하나님 나라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46절 후반부입니다. 극히 값진 진주를 발견한 상인은 어떻게 했습니다.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진주를 샀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이 여기에 있습니다.
마13:46 극히 값진 진주 하나를 발견하매 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진주를 사느니라
좋은 진주를 구하는 상인은 값진 진주를 분별할 줄 아는 안목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좋은 진주를 분별할 줄 안다고 누구나 최고의 진주를 가지는 것은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너무나 많은 사람이 인생의 참된 진리를 발견하고도 진리가 주는 자유를 누리지 못합니다. 너무나 많은 사람이 신앙을 통해 하나님 나라를 발견하지만, 하나님 나라를 자기 것으로 만들지 못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결단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마땅한 대가를 치르려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늘 비유에 나오는 진주 장사는 어떻게 자신이 발견한 값진 진주를 자기 것으로 만들었습니까? 자기 소유를 ‘다 팔아’ 그 진주를 샀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다’라는 표현에 주목해야 합니다. 진주 ‘하나’를 사기 위해 있는 것 자신이 가진 ‘다’를 판 것입니다. 사람들은 그의 행동을 보고 어리석다고 비웃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는 무엇이 정말 좋은 진주인지를 아는 장사였기 때문에 오히려 기뻐했습니다.
지난주 밭에 감추어진 보화의 비유에서도 농부가 어떻게 밭을 샀습니까?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밭을 샀습니다. 밭에 감추인 보화를 발견한 농부가 자기 소유 전부를 다 팔아 밭을 산 것처럼, 최고의 진주를 발견한 진주 장사 역시 자기 소유를 다 팔아 값진 진주 하나를 샀습니다.
마13:44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며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사느니라
사랑이 실패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전부 ‘다’를 주는 사랑을 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항상 전부를 요구합니다. 남자가 사랑하는 여자에게 프로포즈를 하면 당신을 98% 사랑하고 2%는 다른 여자를 조금만 사랑한다고 고백했다면 그 프로포즈를 받을 여자가 있을까요? 심지어 이것은 아무리 오랜 결혼생활을 했다고 해도 이것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습니다. 오래 살았으니 이젠 당신을 90%만 사랑하고 10%는 다른 여자를 사랑한다고 하면 그 결혼생활을 지속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을 믿는 것도 다르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이 무엇을 의미합니까? 나의 전부를 드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복음성가의 가사처럼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란 나의 모습 나의 소유 나의 아픔 나의 기쁨 나의 소망 나의 계획 모든 것을, 주님 앞에 드리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전부의 종교입니다. 하나님은 내 인생의 부분이 아니라 내 인생 전부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 나라를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 우리가 치루어야 할 대가는 항상 전부 다입니다. 많은 것을 가지고 있든지 적은 것을 가지고 있든지 상관이 없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대가는 항상 전부 ‘다’입니다. 이것은 사이비 이단 종교인들처럼 교주에게 또는 교회에 자신의 전 재산을 다 바치라는 뜻이 아닙니다. 더 좋은 것을 소유하려고 하면 더 못한 것들을 과감하게 버려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아브라함은 평생을 살아온 갈대아 우르를 떠났기에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모세는 바로의 궁을 버렸기에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하는 지도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 안드레도 배와 그물을 모두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랐기에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도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배설물 같이 여겼기에 위대한 사도가 될 수 있었습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저는 목사라는 직업을 통해 먹고 살아야 합니다. 하지만 단지 먹고 살기 위해서 목회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목사로서의 제 꿈은 돈 잘 버는 성공한 목사가 아니라 좋은 목사가 되는 것입니다.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물론 교회도 성공한 목사가 되어야만 교인들에게 좋은 목사 대접받는 것을 제가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성공한 목사에 욕심내지 않고 끝까지 좋은 목사 되는 것을 목표로 삼고 목회하려고 노력할 것입니다.
하지만 좋은 목사가 되려고 노력하는 목사만으로 좋은 교회를 만들지 못합니다. 좋은 사람, 좋은 교인이 되려는 교인들이 있어야만 비로소 좋은 교회가 될 수 있습니다. 당장 눈에 보이는 이익이나 편리보다는 진리에 대한 간절함과 갈급함이 있는 성도, 영원한 가치를 최우선 할 수 있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좋은 진주를 찾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했던 진주 장사처럼 가장 좋은 교회를 만들기 위해 애쓰고 노력하는 성도가 많아질 때 우리 교회는 더 좋은 교회가 될 것입니다. 좋은 교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저와 여러분이 곧 하나님 나라 천국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