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차별, 하나님의 구별
마태복음 13:4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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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나라 열 번째 시간입니다. 오늘 설교하는 예수님의 비유는 “그물의 비유”로 알려진 말씀으로 마태복음 13장에 나오는 일곱 가지 천국 비유 가운데 마지막 비유입니다. 오늘은 이 비유를 가지고 “사람의 차별, 하나님의 구별”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합니다.
지난 다른 비유와 마찬가지로 오늘 비유를 제대로 해석하기 위해선 먼저 예수님께서는 천국을 무엇으로 비유하셨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오늘 비유에서 예수님께서 천국으로 비유하신 것은 무엇입니까? 물고기 잡으려고 그물을 던진 어부입니까? 아니면 어부가 바다에 던진 그물입니다.
예수님께서 천국으로 비유하신 것은 어부가 아니라 그물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냥 바다에 던진 그물이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천국으로 비유하신 것은 그냥 그물이 아니라 갖가지 종류의 물고기를 모으기 위해 바다에 던져놓은 그물입니다.
마13:47 또 천국은 마치 바다에 치고 각종 물고기를 모는 그물과 같으니
예수님께서 천국을 각종 물고기를 모으기 위해 바다에 쳐놓은 그물로 비유하신 것은 당시 예수님의 제자들이나 예수님 주변에 모여들었던 사람들에게는 매우 충격적인 말씀이었을 것입니다. 물론 마태복음 13장에 나오는 천국에 관한 일곱 비유가 모두 충격적입니다. 어느 것 하나 충격적이지 않은 비유가 없습니다. 하지만 오늘 살펴보는 그물의 비유는 당시 비유를 들었던 유대인들에게는 가장 충격적인 비유였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그물의 비유가 당시 유대인들에게는 가장 충격적인 비유로 들렸을까요? 예수님의 비유에서 바다는 세상을 나타내는 메타포라면, 물고기는 사람을 나타내는 메타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바다에 사는 각종 물고기는 세상에 존재하는 각양각색의 민족과 사람들을 나타내는 메타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천국을 오직 한 종류의 물고기만을 잡는 그물이 아니라 바다에 사는 온갖 종류의 물고기를 모으는 그물과 같다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에게 하나님 나라는 결코, 모든 민족 모든 사람을 위한 나라가 아니었습니다. 저들에게 하나님 나라는 오로지 하나님께 선택받았다고 자부하였던 유대인들만을 위한 나라라고 믿었습니다. 자신들을 제외한 다른 민족은 모두 이방인이었으며 저들에게 이방인은 천국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종족으로 그저 지옥의 땔감쯤으로 쓴다고 여겼습니다.
이런 생각이나 믿음을 무엇이라고 합니까? 선민의식이라고 합니다. 선민의식이 무엇입니까? 자신들만이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유일한 백성이며 유일한 민족이라는 것입니다. 자신들의 나라만이 하나님께서 선택하시고 지켜주시는 유일한 나라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자신들만 하나님의 선택받은 백성이며 민족이기에 다른 이방 민족과 결혼하는 것을 엄격하게 제한하였습니다. 이방 민족과의 결혼하는 것을 마치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져버리는 배신, 배반, 배교로 여겼습니다.
유대인들에게 하나님 나라, 천국은 오로지 유대 민족만을 위한 것이라 믿었습니다. 당연히 여기에는 그 어떤 다른 이방 민족들은 절대로 해당할 수 없다고 여겼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천국을 각종 물고기를 모으는 그물로 비유하신 것입니다. 한 마디로 하나님 나라 천국이 유대 민족에게만 주신 특권이 아니라 모든 민족 모든 사람에게 해당하는 보편적 은혜라고 가르치신 것입니다. 비유를 듣던 당시 유대인들에게는 그야말로 청천벽력과 같은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히브리 민족을 이집트에서 구원하셔서 저들에게 율법을 주기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시어 이스라엘이라는 하나님 나라를 만들게 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뜻은 결코 저들만 구원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저들을 통해 다른 민족과 나라들을 구원하기 위한 제사장의 나라로 삼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저들에게 은혜를 베푼 것은 사명을 위해서이지 특권을 위해서가 아닙니다.
출19:5-6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지니라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을 통해 이루시려는 하나님의 뜻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자신들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를 사명으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대신에 자신들이 누리는 은혜를 자신들에게만 주신 특권으로 여겼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께서는 자신들에게만 은혜를 베푸시고 자신들만 구원하신다는 선민의식에 빠지게 된 것입니다.
이런 신앙의 착각과 오해는 지금도 여전히 많은 기독교인에게서 계속되고 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비슷한 생각을 하는 기독교인들이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경우가 신천지 교인들입니다. 그들이 주장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말씀을 이용해 하나님께서 구원하시는 사람의 숫자가 십사만 사천 명이라고 주장합니다. 구원을 받기 위해선 반드시 십사만 사천 명에 들어가야 한다고 합니다. 십사만 사천 일등만 되어도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며 공갈을 칩니다.
이게 어디 신천지에서만 나타나는 문제입니까! 구원파, 여호와 증인, 각종 시한부 종말론자들, 그리고 교회 안에 있는 수많은 바리새인과 같은 교인들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이들 역시 유대인들이 가졌던 선민의식에 사로잡혀서 신앙 생활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스스로 의롭다고 여기는 자신들에게만 구원을 베푸실 것이라고 제멋대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자신들의 신앙 기준에 맞지 않는 사람들을 제멋대로 정죄하고 판단합니다.
정말 안타까운 노릇이 아닐 수 없습니다. 지극히 평범한 상식을 가지고 조금만 생각을 해도 절대로 이런 어리석은 생각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맨날 누구도 모르는 천국의 비밀이라며 마치 자신들만 천국의 비밀을 알고 있다고 떠벌리는 종교인들에게 미혹 당합니다. 종교 사기꾼들의 주장에 세뇌되어서는 엉뚱한 짓거리 하면서도 마치 자신은 하나님 잘 믿는 것처럼 착각하며 신앙 생활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왜 바다에 내려 각종 물고기를 모으는 그물로 천국을 비유하셨을까요? 바다에서 물고기를 잡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습니다. 낚시로 잡을 수 있고, 작살로 잡을 수도 있고, 어항으로 잡을 수도 있고, 투망으로도 잡을 수 있습니다. 낚시나 작살은 자신이 잡고자 하는 특정한 고기를 잡을 때 사용합니다. 하지만 그물은 그렇지 않습니다. 물속에 사는 물고기라면 그 어떤 물고기라도 가리지 않고 그물에 걸려들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낚시나 작살로 천국을 비유하지 않으시고 각종 물고기를 잡는 그물로 천국을 비유하신 것은 천국에 대한 예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이루시길 원하셨던 천국은 스스로 선택받았다고 자부하는 유대인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천국은 모든 민족 모든 사람을 위한 것임을 가르쳐주는 비유라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물 비유는 이것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그물로 천국을 비유하시며 그 그물을 특정한 물고기를 잡기 위한 그물이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대신에 예수님은 각종 물고기를 잡는 그물을 천국으로 비유하신 것입니다. 특정한 물고기가 아니라 각종 물고기를 잡는 그물이라고 비유하신 것은 천국에는 그 어떠한 차별이 없음을 강조하기 위한 말씀입니다.
예수님 당시 사회는 차별이 정당화된 시대였습니다. 차별이 당연하게 여겨졌던 세상이었습니다. 민족과 인종의 차별이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이방인들을 차별하고 무시하였습니다. 로마인들도 다른 민족들을 야만인이라고 차별하고 무시하였습니다. 신분의 차별도 있었습니다. 사람을 마치 짐승처럼 부려먹는 노예제도를 당연하게 여겼습니다. 성별에 따른 차별도 있었습니다. 남자는 신의 은총을 받은 존재이고 여자는 신의 저주를 받은 존재라고 여겼습니다. 재산에 관한 권리는 오직 남자만이 가질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차별은 이상한 것이 아니라 너무나 당연하였습니다. 심지어 차별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이며 태어나면서부터 결정된 하나님의 은총이자 저주라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천국을 각종 물고기를 모으는 그물로 비유하신 예수님의 말씀은 지금까지 그 어떤 예수님의 비유보다 더 충격적이고 말씀으로 들렸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각종 물고기를 모으는 그물의 천국 비유를 통해 하나님의 다스리는 천국이 어떤 곳인지를 분명하게 가르쳐 주십니다. 사람이 다스리는 세상, 사람이 통치하는 나라에는 늘 차별과 억압과 불평등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다스리는 나라에는 그 어떠한 차별도 없음을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각양각색의 물고기를 모으는 그물처럼, 하나님 나라는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얻을 수 있고 누릴 수 있는 나라입니다.
요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롬10:13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따라서 하나님의 다스림, 하나님의 통치하심을 믿는 사람은 절대로 사람을 차별할 수 없습니다. 민족으로도, 인종으로도, 신분으로도, 성별로도, 재산이나 학력으로도 차별하지 않습니다. 사람을 차별하며 함부로 대하는 사람은 절대로 하나님의 다스리심,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제아무리 경건한 척한다고 해도 다 가짜 신앙인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 대표적인 경우가 사도 바울입니다. 예수님을 만나기 전까지 바울은 바리새파 사람으로 철저한 선민주의자였으며 차별주의자였습니다. 그러던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이방인을 차별하고 예수 믿는 사람을 핍박하고 학식이 없는 사람을 무시하였던 바울이 예수님을 만나고 하나님 나라를 경험하게 되자 어떻게 변화되었습니까? 사람에 대한 그 어떤 차별도 인정하지 않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갈3:28-29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너희가 그리스도의 것이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
이 말씀이 지금 우리에게는 그렇게 큰 감동이 있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당시 이 말씀을 들었던 이방인들이나 종들 그리고 여자들에게 이 말씀은 그 어떤 말씀보다 충격적이며 놀라운 복음이었습니다.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한 유대인들이나 헬라인 종이나 자유인 그리고 남자나 여자들은 모두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세상이 만들어내 그 어떤 차별도 없음을 깨닫고 경험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천국으로 비유하신 그물은 오늘날 교회를 나타내는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교회는 하나님 나라 천국을 세상에 보여주고 가르쳐 주어야 하는 하나님의 도구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세상의 방식이 아니라 하나님의 방식 하나님의 다스림이 나타나야 합니다.
그렇다면 각종 물고기를 모으는 그물과 같은 교회가 감당해는 가장 중요한 사명이 무엇입니까? 교회는 어떠한 차별도 없이 모든 사람에게 열려있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 더 나아가 차별을 당연하게 여기는 세상의 방식에 저항해야 하는 것이 교회의 중요한 사명입니다.
하지만 각종 물고기를 모으는 그물과 같은 천국에도 문제가 있습니다. 모든 차별이 사라진 것은 좋습니다. 하지만 바다에서 각종 물고기를 모으다 보니 거기에는 좋은 물고기도 있지만 나쁜 물고기도 함께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차별 없이 모든 사람에게 열려있는 곳이다 보니 교회는 좋은 사람도 있지만 나쁜 사람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교회에 나온다고 모든 사람이 다 좋은 사람이 되는 것 또한 아닙니다.
하나님의 선하신 창조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타락하였습니다. 좋은 씨를 뿌린 밭에도 원수가 가라지를 뿌려 가라지도 함께 자랍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세우신 교회에도 좋은 사람도 있지만 나쁜 사람도 있을 수 있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물론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나라가 시작되었습니다. 하지만 아직 그 하나님의 나라가 완성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악인과 함께 하는 것이 영원하지는 않습니다. 오늘 비유 말씀에 의하면 그물이 가득 차면 어떻게 한다고 했습니까? 그물을 물가로 끌어내어 좋은 것은 그릇에 담고 나쁜 것은 내버린다고 하였습니다. 좋은 물고기와 나쁜 물고기를 구별하는 것처럼 세상 끝에도 천사들이 와서 의인 중에서 악인을 갈라낸다고 하였습니다.
마13:48 그물에 가득하매 물가로 끌어내고 앉아서 좋은 것은 그릇에 담고 못된 것은 내버리느니라
마13:49 세상 끝에도 이러하리라 천사들이 와서 의인 중에서 악인을 갈라 내어
이렇게 말씀을 드리면 좋은 물고기와 나쁜 물고기를 갈라내며 의인 중에서 악인을 갈라내는 것 역시 또 다른 차별이 아니냐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차별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분별 또는 구별이라고 합니다. 물론 하나님은 어떤 식으로든 사람을 차별하지 않으십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를 구별하십니다.
그럼 도대체 어떤 것은 차별이고 어떤 것은 구별이라고 할까요? 차별은 “등급을 만들어 나누어 가르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를 들자면 그 사람의 인종이나 신분, 또는 학력이나 재산과 같은 것으로 사람의 등급을 나누어 서로 차이를 두고 대우하는 것을 차별이라고 합니다. 반면에 구별은 종류에 맞추어 분류해 놓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코스코와 같은 마트에 가면 물건들을 어떻게 정리합니다. 종류별로 나누어 정리해 놓습니다. 종류별로 나누어 놓는 것을 구별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똑같은 스테이크용 소고기인데 소고기마다 프라임, 초이스, 셀렉트라는 등급을 매겨 놓았습니다. 등급을 매겨 가격을 다르게 매기는 것을 차별이라고 합니다.
물론 소고기야 등급을 나눌 수 있다고 하지만 사람을 마치 소고기처럼 등급을 나누고 차별하는 것은 악한 일입니다. 하나님은 결코, 우리를 차별하지 않으십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알곡과 가라지를 구별하시고, 양과 염소를 구별하시는 것처럼 의인 중에서 악인을 구별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성도는 세상과 구별된 자입니다. 그러므로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구별은 세상과 다른 특권이 아니라 세상을 위한 사명입니다.
차별하지 않으시고 구별하시는 예수님께서 물고기를 구별하는 기준으로 말씀하신 것이 무엇입니까? 오늘 비유에서 그물에 가득 찬 물고기를 구별하는 예수님의 기준은 어떤 것이 좋은 물고기이고, 어떤 것이 못된 것 즉 나쁜 물고기냐입니다. 예수님의 기준은 큰 물고기냐 작은 물고기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좋고 나쁜 것이 유일한 기준이었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에게 좋은 물고기는 어떤 물고기였으며, 나쁜 물고기는 어떤 물고기였습니까? 레위기 11장을 보면 지느러미와 비늘 있는 물고기를 좋은 물고기라고 했고 지느러미와 비늘 없는 물고기는 나쁜 물고기라고 했습니다. 도대체 율법은 왜 이런 기준을 주셨을까요? 그 이유는 분명합니다. 지느러미와 비늘 있는 물고기는 먹어도 안전했지만, 지느러미와 비늘 없는 물고기는 쉬이 상해 먹으면 탈이 났습니다.
레11:9-10 물에 있는 모든 것 중에서 너희가 먹을 만한 것은 이것이니 강과 바다와 다른 물에 있는 모든 것 중에서 지느러미와 비늘 있는 것은 너희가 먹되 물에서 움직이는 모든 것과 물에서 사는 모든 것 곧 강과 바다에 있는 것으로서 지느러미와 비늘 없는 모든 것은 너희에게 가증한 것이라
율법에 따르면, 사람이 먹을 수 있느냐 없느냐, 사람에게 안전하냐 그렇지않느냐가 좋은 물고기와 나쁜 물고기를 구별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이 기준은 사람을 구별하는 데도 동일하게 적용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누가 의인이고 누가 악한 사람입니까? 사람에게 유익을 끼치는 사람, 사람을 사랑하고 도움을 주는 사람이 의인입니다. 반대로 사람을 해치고 차별하고 미워하는 사람이 악인입니다.
요일4:7-8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오늘 비유에서 우리가 반드시 주목해서 보아야 할 말씀이 있습니다. 49절의 말씀입니다. 세상 끝에 있을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서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이 의미심장합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시길 세상 끝에 천사들이 와서는 세상 중에서 악인을 갈라낸다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의인 중에서 악인을 갈라낸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매우 엄중한 경고의 말씀입니다.
마13:49 세상 끝에도 이러하리라 천사들이 와서 의인 중에서 악인을 갈라 내어
너무나 많은 교인이 착각하기를 교회에 다니기만 하면 구원과 천국은 이미 받아 놓은 밥상처럼 여깁니다. 유대인들이 가졌던 선민의식이 하나님의 뜻과는 전혀 상관없는 어리석은 착각이며 잘못된 믿음인 것처럼 교회에 다니기만 하면 천국을 마치 받아 놓은 밥상처럼 여기는 것 역시 매우 어리석은 착각이며 잘못된 믿음입니다.
교회를 다닌다고 누구나 구원을 받지 않습니다. 이런 말씀은 성경에 나오지 않습니다. 성경은 분명하게 가르치기를 교회를 다닌다고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어야 구원을 받습니다. 이렇게 말씀을 드리면 많은 교인이 예수님을 믿지 않는데 교회를 다니는 사람이 있을까 생각합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교회에는 예수님을 믿기에 교회를 다니는 사람보다 예수님 믿지 않으며 교회를 열심히 다니는 사람이 더 많습니다.
물론 이런 사람은 겉으로는 예수님을 잘 믿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잘 믿기 보다는 많은 경우 자신을 잘 믿는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자신의 확신을 믿고, 자신의 신념을 믿고, 자신의 계획을 믿고, 자신의 야망을 믿고, 자신의 돈을 믿습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단지 자신들이 확신하고 믿는 것을 이루어지도록 도와주는 도우미에 불과합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하나님께서 통치하시고 다스리시는 하나님 나라 천국에는 그 어떤 차별도 없습니다. 차별이 있다면 천국이라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예수님을 제대로 믿기만 하면 구원을 받고 하나님 나라를 경험하며 천국과 같은 삶을 살 수 있습니다.
하지만 분명히 알아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차별하지 않으시지만 구별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살면서 가짜 신앙으로 사람을 속일 수는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속일 수는 없습니다. 천사들이 의인 중에서 악인을 갈라내듯이 가짜 신앙, 거짓 신앙을 마침내 세상에 낱낱이 드러나기 마련입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면 초점을 두어야 하는 인생의 승부처는 세상에서의 차별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별입니다. 다시 말해 세상을 살면 남들보다 좀 더 나은 차별대우를 받기 위해 애쓰는 인생이 결코 지혜로운 인생이 아닙니다. 세상의 차별보다 더욱 엄중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구별입니다. 자신의 기준을 가지고 사람을 함부로 차별하는 사람은 결국 하나님의 엄중한 구별을 받을 것입니다. 바라기는 이 깨달음이 저와 여러분의 신앙의 여정에 충만하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