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와성경공부
룻기1-잃어버린 것과 남아 있는 것

잃어버린 것과 남아 있는 것

룻기 1:1-5

(설교제목을 클릭하면 유튜브영상으로 연결됩니다.)


지금 우리는 COVID-19의 전 세계적인 팬데믹(pandemic)으로 인해 우리 삶 전체가 송두리째 위협을 받고 있습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지극히 평화스러웠던 우리의 일상이 이젠 완전히 무너져 버렸습니다. 많은 이들이 근심과 염려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으며, 불안과 공포가 우리를 지배하고 있음을 여기저기서 발견하게 됩니다.


일찍이 하나님께서는 이사야 선지자에게 내 백성을 위로하라고 하셨습니다. 이사야 선지자에게 하신 내 백성을 위로하라는 말씀이 저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명령으로 들렸습니다. 도대체 어떤 말씀으로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로할까 고민하고 기도하던 중 룻기의 말씀을 함께 읽으며 룻기에 나타나신 하나님의 위로를 전하라는 감동이 저에게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나라 시리즈 설교를 잠시 중단하고 룻기의 말씀을 읽으며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위로를 전하려고 합니다.


40:1 너희의 하나님이 이르시되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


오늘은 룻기 강해 첫 번째 시간으로 룻기 11절부터 5절까지의 말씀을 가지고 잃어버린 것과 남아 있는 것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눕니다. 앞으로 계속되는 룻기 말씀이 우리가 겪고 있는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도우심과 보호하심 그리고 회복하심의 은혜를 소망할 수 있는 말씀이 되기를 바랍니다. 또한, 더욱 간절히 바라기는 룻기 강해가 끝나기 전에 이 모든 사태가 진정되어 함께 모여 예배드리며 룻기 강해를 마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앞으로 자세하게 살펴보겠지만 룻기는 신구약 성경을 통틀어 가장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로 알려진 성경의 말씀입니다. 하지만 알려진 것과는 전혀 다르게, 룻기는 매우 비극적인 이야기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룻기가 기록하고 있는 나오미와 룻의 이야기는 인생을 살면서 사람이 경험할 수 있는 최고의 불행한 사건으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역설적이지만 룻기의 말씀이 아름답고 은혜로울 수 있었던 것은 룻기에나오는 나오미와 룻이 겪어야 했던 고통과 아픔이 그 누구보다 컸기에 저들의 이야기가 더욱 아름다울 수 있었습니다. 저들이 극복해야 하는 고통과 아픔이 컸기에 저들의 사랑과 삶이 더욱 빛날 수 있었습니다. 저들이 감당해야 할 고통과 아픔이 컸기에 하나님께 받은 회복의 은혜가 더욱 아름다울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단지 룻기에 등장하는 나오미와 룻에게만 해당하는 영적 원리가 아닙니다. 우리 모두에게 적용되는 영적 원리입니다. 골짜기가 깊으면 깊을수록 봉우리가 높은 것처럼, 인생을 살면서 겪어야 하는 고난이나 시련이 클수록 장차 우리가 누리게 될 회복의 은혜가 더욱더 크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물론 지금 우리가 겪는 COVID-19가 절대 만만치 않은 대단한 시련이며 역경이라는 데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하지만 고난과 시련이 클수록 소망의 끈을 절대로 놓지 않아야 합니다. 그래야만 이 위기를 이겨낼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룻기의 말씀은 어떻게 우리가 절망 중에서 소망의 끈을 놓지 않을 수 있는지를 가르쳐 주는 매우 중요한 말씀입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룻기의 시작은 이러합니다. 1절이죠. 같이 읽겠습니다. "사사들이 치리하던 때에 그 땅에 흉년이 드니라." 간단한 구절을 통해 룻기는 당시의 상황과 형편이 어떠했는지를 아주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룻기가 기록하고 있는 사사들이 치리하던 때는 이집트에서 탈출한 히브리 민족이 40년의 광야 생활을 마치고 이제 막 가나안 땅에 정착하였던 시대였습니다.


이제 막 가나안 땅에 정착한 이스라엘의 초기 역사는 정치와 종교 모든 분야에 걸쳐 그야말로 모든 것이 엉망진창이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을 다스리던 최고 지도자를 사사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이 시대를 사사 시대라고 합니다. 사사 시대는 이스라엘의 역사 가운데 최고의 정치적 혼돈의 시대였을 뿐만 아니라 종교적 혼란과 함께 심각한 영적 타락의 시대였습니다.


정치적 혼란과 영적 타락으로 뒤숭숭하던 사사 시대에 설상가상으로 흉년까지 겹치게 된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겪는 혼란이나 역경과는 비교할 수 없는 엄청난 역경이 이스라엘 땅에 닥친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시고 인도하셨다는 젖과 꿀이 흐른다는 가나안 땅에 엄청난 흉년이 들자 이 위기를 피해 도망치는 한 가족이 있었습니다. 룻기는 12절에서 그 가족의 이름을 한 사람씩 소개하고 있습니다. 같이 읽겠습니다.


1:2 그 사람의 이름은 엘리멜렉이요 그의 아내의 이름은 나오미요 그의 두 아들의 이름은 말론과 기룐이니 유다 베들레헴 에브랏 사람들이더라 그들이 모압 지방에 들어가서 거기 살더니


엘리멜렉과 그의 식구들이 살았던 유다 베들레헴은 가나안 땅에서도 가장 풍요로운 땅이었습니다. 베들레헴이라는 지명은 빵집이라는 뜻으로 가나안 땅에서 가장 풍성하게 수확하였던 곳입니다. 그야말로 가장 풍요로운 곳이라 먹고 사는 데 전혀 어려움이 없었던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젖과 꿀이 흐른다는 가나안 땅 그리고 거기서도 가장 풍요롭다는 베들레헴 땅에 도무지 감당하기 힘든 흉년이 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시고 인도하신 가나안 땅에 흉년이 들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에 대해 매우 중요한 교훈을 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시고 인도하신 가나안 땅에 가기만 한다고 해서 인생의 모든 문제로부터 면제받는 것이 결코,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타신 배에도 풍랑이 일고 침몰하기 직전까지 간 것처럼 하나님께서 인도하셨다는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도 흉년이 들 수 있습니다.


같은 원리입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이 된다고 하는 것은 결코, 인생의 모든 문제로부터 면제를 받는 것이 결코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은 결코 인생을 살면서 겪게 되는 시련이나 역경으로부터 면제받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과는 상관없이 누구나 언젠가는 인생의 흉년을 통과하며 살아야 하는 것이 우리 모두의 인생입니다.


살다 보면 우리는 누구나 경제적 흉년을 맞이하게 됩니다. COVID-19로 인해 세계의 수많은 나라의 경제가 휘청거리고 있습니다. 세계 최강대국이라는 미국 역시 이 흉년의 때를 피할 수는 없는 것 같습니다. 그 여파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우리 대부분은 한동안 흉년의 때를 지내야 할 처지에 놓여있습니다.


또한, 살다 보면 내가 믿고 신뢰하던 사람에게서 배신을 당하거나 가깝게 지내던 이들과의 관계가 깨어지는 것을 경험합니다. 이것을 인간관계의 흉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른 것은 몰라도 건강만은 자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도 건강의 흉년이 찾아옵니다. 건강하던 몸이 아프기 시작하고 병이 듭니다. 이것을 육신의 흉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육신의 흉년보다 더 무서운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영적인 흉년입니다. 다른 흉년들은 기껏해야 삶의 한 부분에만 영향을 미칩니다. 하지만 영적인 흉년은 우리의 삶의 전부를 송두리째 무너뜨리게 합니다. 사람들이 완전히 무너지고 넘어지는 것은 경제적인 흉년이나 육신의 흉년 때문이 아닙니다. 이런 흉년의 때를 극복할 수 있는 영적인 능력을 잃어버렸을 때 사람은 완전히 무너지고 맙니다.


룻기에 나오는 엘리멜렉의 가정은 베들레헴 땅에 흉년이 들자 어떻게 했습니까? 엘리멜렉의 가정은 모압 땅으로 갔다고 룻기는 기록하고 있습니다. 가족들을 데리고 모압 땅으로 도망치는 엘리멜렉이 어떤 사람입니까? 그의 이름은 하나님은 나의 왕이라는 뜻으로 장차 이스라엘 최고의 왕이 되는 다윗의 고조부가 되는 사람입니다. 그런 그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에 흉년이 들자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을 버리고는 가족들을 데리고 모압으로 도망친 것입니다.


그렇다면 엘리멜렉이 베들레헴에서 도망친 모압이 어떤 곳입니까? 창세기 19장을 보면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할 때 아브라함의 조카 롯의 아내가 불타는 자기 집에 미련이 있었는지 절대로 뒤돌아보지 말라는 명령을 어기고는 뒤돌아보다가 소금기둥이 됩니다. 결국, 롯은 두 딸만 데리고 소돔과 고모라를 탈출하였습니다. 훗날 롯의 두 딸이 자신들의 가문을 이루려는 욕심에 아버지에게 술을 마시고는 아버지와 동침하여 자손을 얻게 됩니다.


아버지와의 근친상간으로 두 딸은 각각 가문을 이루게 됩니다. 하나는 모압의 조상이 되었고 다른 하나가 암몬의 조상이 된 것입니다. 근친상간으로 이루어진 모압과 암몬 족속은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 신을 숭배하였습니다. 게다가 히브리 민족이 출애굽하여 가나안 땅에 정착하려는 것을 방해하고 저주하였습니다. 그래서 신명기 율법은 저들에 대해 엄중히 명령하기를 영원히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올 수 없다고 금하였습니다.


23:3 암몬 사람과 모압 사람은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리니 그들에게 속한 자는 십 대뿐 아니라 영원히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나님은 나의 왕이라는 이름을 가진 엘리멜렉이 하나님께서 인도하신 땅 베들레헴 땅에 흉년이 들자 하나님께서 인도하신 땅을 버리고는 이방의 땅 모압으로 도망쳤습니다. 모압과 암몬은 하나님께서 엄중히 명하시길 저들의 누리는 평안함과 형통함을 절대로 부러워하지도 말고, 도움을 구하지도 말라고 명하신 곳이었습니다.


23:6 네 평생에 그들의 평안함과 형통함을 영원히 구하지 말지니라


하지만 하나님은 나의 왕이라는 이름의 엘리멜렉이 하나님께서 인도하신 땅 베들레헴에 흉년이 들자 하나님께서 인도하신 땅을 버리고 결코, 가지 말아야 할 모압 땅으로 도망친 것입니다. 흉년이 닥치자 하나님의 약속이나 명령을 모두 내팽개치고 무조건 도망부터 치고 보는 엘리멜렉 가정의 이야기는 우리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너무나 많은 사람이 감당하기 힘든 문제를 만나게 되면 가장 먼저 취하는 행동은 문제로부터 도망치거나 피하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평소 하나님을 잘 믿는다고 자부하던 교인들도 별반 다를 바 없습니다. 우리 대부분은 예상치 못한 어려움을 당하면 어떻게 생각합니까? 도대체 왜 나에게만 이렇게 힘든 일이 생기냐고 생각합니다. 도대체 왜 우리 가정만 이렇게 힘든 일을 겪어야 하느냐고 반문합니다.


하지만 조금만 더 넓게 그리고 길게 세상과 인생을 보시기 바랍니다. 정말 나에게만 내 가정에만 이런 고통이 임합니까? 아니요.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결코 나만, 내 가정만 어려움과 역경을 겪으며 사는 것이 아닙니다. 고통과 시련은 세상을 사는 모든 인생이 다 겪는 것입니다. 시기의 차이만 있을 뿐이지 살면서 누구나 인생의 흉년을 통과하게 됩니다. 여기에는 그 어떤 예외도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가나안 땅 베들레헴에 닥친 흉년! 그것은 엘리멜렉과 나오미 가정에만 닥친 흉년이 아니었습니다. 당시 베들레헴 땅에 살고 있던 모든 사람, 모든 가정에 닥친 흉년입니다. COVID-19로 인해 우리가 겪고 있는 어려움은 나만 겪는 어려움이 아닙니다. 미국 땅에 사는 모든 사람이 겪는 어려움이며 나아가 전 세계 모든 사람이 겪는 고통이고 역경입니다.


당장 극복하기 힘든 문제를 만나면 누구나 회피하고 싶고 도망치고 싶은 것이 우리 대부분의 생각일 것입니다. 그리고 회피하고 도망치는 것이 약삭빠른 임기응변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은 요즘 영국이나 일본이 COVID-19를 대처하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영국이나 일본은 코로나19 바이러스가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확산하니까 많은 사람을 검사하여 확진자를 찾아내어 전염을 막기보다는 확진자 수를 줄여 국민을 안심시키는 방법을 취한다고 합니다.


물론 당장은 당면한 문제로부터 회피하고 도망치는 것이 약삭빠른 임기응변이 될 수는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약삭빠른 임기응변으로는 도무지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합니다. 물론 사소한 문제들은 회피하고 도망치는 것으로 시간이 지나가면 해결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겪는 대부분 문제는 회피하고 도망치는 것으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더 심각하고 어려운 문제로 곪아버리고 맙니다.


모압으로 도망쳤던 엘리멜렉 가정의 이야기는 이러한 사실은 너무나 분명하고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저들이 하나님께서 인도하신 베들레헴 땅에서 도망친 결과는 무엇입니까? 물론 모압으로 도망쳐서 당장의 흉년은 피할 수 있었을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저들은 저들이 피하려고 했던 흉년보다 더 크고 심각한 비극을 모압 땅에서 맞이하게 됩니다.


흉년을 피해 도망한 엘레멜렉의 가정에 비극적인 재앙이 반복됩니다. 모압 땅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이 죽었습니다. 나오미의 비극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나오미에게 남은 두 아들 말론과 기룐마저 죽고 맙니다. 흉년을 피해 모압 땅으로 도망쳤지만, 저들이 피하려고 했던 흉년보다 더 크고 엄청난 비극을 겪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 비극적인 상황에서도 저들을 향한 은혜를 거두지 않았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룻기는 나오미에게 계속되는 비극적인 사건을 기록하면서 매우 의미심장한 단어를 덧붙여 기록하였습니다. 그것은 바로 남았더라는 말씀이었습니다. 룻기 13절에서는 엘리멜렉이 죽었지만, 그의 두 아들이 남았다고 했습니다. 5절에서는 두 아들이 죽었지만, 아들의 아내였던 나오미의 두 며느리가 남았다고 기록하였습니다.


1:3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이 죽고 나오미와 그의 두 아들이 남았으며

1:5 말론과 기룐 두 사람이 다 죽고 그 여인은 두 아들과 남편의 뒤에 남았더라


물론 남았다는 것이 남편 엘리멜렉이 죽고, 두 아들 말론 기룐이 죽은 다음 아무 대책 없이 남겨진 비극인 사건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룻기가 기록하고 있는 죽고남았더라는 의도적인 반복에서 성경은 우리에게 어디에 초점을 맞추느냐에 따라 남은 사람의 인생이 달라진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잃어버린 것에 초점을 두고 살 것인지 아니면 여전히 나에게 남아 있는 것에 초점을 둘 것인가를 선택해야 합니다. 초점을 어디에 맞추느냐에 따라 우리의 생각이 달라집니다. 우리의 느낌이 달라집니다. 우리의 태도가 달라집니다. 우리의 언어가 달라집니다. 우리의 행동이 달라집니다. 회복과 치유의 첫 출발은 어디에 초점을 맞추느냐에 있습니다.


룻기는 남겨진 사람들을 통해 저들의 가정에 닥친 비극적인 상처를 치유하시고 회복시키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를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남겨진 사람을 통해 펼치시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나오미는 남편 엘리멜렉이 죽자 절망하지 않고 남은 두 아들을 잘 키웠습니다. 두 아들을 장가보내어 두 며느리를 얻었습니다. 한 사람을 잃었지만 두 사람을 얻은 것입니다.


그렇다면 두 아들마저 세상을 떠나간 다음은 어떻게 했습니까? 이젠 나오미에겐 아무도 남지 않은 것 같은데 룻기는 여전히 나오미에게 남은 것이 있다고 기록하였습니다. 나오미에게 남은 것이 무엇이었습니까? 비록 남편도 잃고 두 아들마저 다 잃었지만, 그녀에겐 여전히 남겨진 사람이 있었습니다. 누구였습니까? 두 며느리 오르바와 룻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나오미 가정에 남은 두 며느리 가운데 룻을 통하여 기가 막힌 회복의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우리는 늘 없는 것을 봅니다. 없는 것 때문에 낙심합니다. 절망합니다. "잃은 것이 너무 많습니다.", "쓰러지기 일보 직전입니다." 이렇게 하소연하는 우리에게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물으실까요? “잃어버린 것이 많다고 하는데, 쓰러지기 직전이라고 하는데 그래도 여전히 지금 네 손에 남아 있는 것이 있는데 그것이 무엇이냐? 그것을 내게 말해다오!” 이렇게 물으십니다. 이것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것이 엘리멜렉과 두 아들의 죽음을 기록하며 반복하여 남았더라고 기록하고 있는 룻기가 주는 영적 도전입니다.


우리는 늘 잃어버린 것, 없는 것만을 보는 데 성경은 우리가 잃어버렸다고 하는 중에도 아무것도 없다고 하는 중에도 여전히 우리에게 남아 있는 것을 찾으라는 것입니다. 남아 있는 것을 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늘 없다고 하는 데 성경은 없는 중에 여전히 남아 있는 것을 찾으라는 것입니다. 여전히 우리에게 남아 있는 것을 보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셔서 이집트의 노예로 신음하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해 내라고 명하셨습니다. 그러자 모세가 하나님의 말씀에 뭐라고 대답했습니까? 자신은 자신감이 없다고 합니다. 리더쉽이 없다고 합니다. 말재주가 없다고 합니다. 자기에게는 아무것도 없다고 하는 모세에게 하나님께서 뭐라고 물으셨습니까?


출애굽기 4:2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 그가 이르되 지팡이니이다


모세는 자신에겐 겨우 양을 치는 지팡이 하나밖에 없다고 대답하자 하나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모세가 들고 있는 지팡이 그거 가지고 하나님의 구원 사역을 시작하라고 하셨습니다. 모세의 생각에는 양이나 치는 지팡이로 어떻게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로부터 구원해 낼 수 있을까 생각하였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모세가 가진 지팡이 하나로 시작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모세의 손에 들려진 지팡이를 통해 놀라운 하나님의 구원을 이루셨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기 때문에, 직장을 잃었기 때문에, 사회적인 지위를 잃었기 때문에, 많은 것을 잃었기 때문에 용기를 잃고 괴로워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는 네가 잃어버린 것이 무엇이냐?" 묻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생각하기에는 야속하게만 들리지만 그래도 여전히 너에게 남은 것이 무엇이냐?" 묻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우리에게 남은 것을 가지고 우리를 도우시는 분이십니다. 살길을 열어 주시고 회복시켜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지금 우리는 그 어느 때와 비교할 수 없는 흉년의 위기를 통과하고 있습니다. 벌써 많은 것을 잃어버렸고 앞으로도 예상한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잃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럴 때 중요한 것은 우리의 태도입니다. 어디에 초점을 맞출 것인가를 선택하고 결정해야 합니다. 잃어버린 것에 초점을 맞출 것인가 아니면 아직도 남아 있는 것에 초점을 맞출 것인가를 선택해야 합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잃어버린 것과 남아 있는 것 사이에 어떤 것에 초점을 맞추느냐에 따라 우리의 삶이 달라집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은 모든 것을 잃은 것 같은 절망 가운데서도 남겨진 소망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바라기는 이 믿음으로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COVID-19의 심각한 위기 가운데서도 불안과 공포, 근심과 염려에 사로잡히지 않고 넉넉히 이겨내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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