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가 가져온 교회의 위기와 기회
누가복음 10:38-42
눅10:38 그들이 길 갈 때에 예수께서 한 마을에 들어가시매 마르다라 이름하는 한 여자가 자기 집으로 영접하더라
눅10:39 그에게 마리아라 하는 동생이 있어 주의 발치에 앉아 그의 말씀을 듣더니
눅10:40 마르다는 준비하는 일이 많아 마음이 분주한지라 예수께 나아가 이르되 주여 내 동생이 나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시나이까 그를 명하사 나를 도와 주라 하소서
눅10:41 주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눅10:42 몇 가지만 하든지 혹은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열여섯 번째 온라인 라이브 예배입니다. 오늘은 룻기 시리즈 설교를 한 주간 중단하고 “코로나가 가져온 교회의 위기와 기회”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하려고 합니다.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지금껏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초유의 상황에 대해 크리스천으로서 어떻게 대처해 나가야 할지에 대해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처음 코로나가 창궐하기 시작하고 급기야 전 세계적인 전염병으로 확산하여 WHO에서 팬데믹을 선언했을 때조차 많은 이들이 낙관적으로 생각했습니다. 비록 코로나바이러스가 전 세계적으로 유행하고는 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잠잠해질 것이라 막연하게 기대하였습니다. 저 역시 이런 사람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하지만 코로나-19에 관한 연구가 진행될수록 많은 전문가가 예측하기를 아무리 백신이 개발된다고 해도 코로나-19를 완전히 사라지게 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합니다. Flu 백신이 있다고는 하지만 미국에서 매년 수만 명에 이르는 사람이 독감으로 생명을 잃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앞으로 인류는 코로나-19 바이러스나 이와 비슷한 변종 바이러스와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암울한 전망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미국을 비롯하여 전 세계 많은 나라가 코로나바이러스의 유행과 확산을 막기 위해 이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강력한 규제정책을 폈습니다. 학교가 문을 닫았고, 많은 기업과 소규모 비즈니스들이 강제로 문을 닫아야 했고 교회도 문을 닫아야 했습니다. 물론, 이로 인해 코로나바이러스 확진자와 사망자가 조금씩 줄어드는 추세였습니다.
하지만 계속되는 셧다운으로 인해 1930년대 미국이 겪었던 대공황과 버금가는 경제적 위기를 겪게 되었습니다. 셧다운을 계속 유지하다가는 미국 경제가 완전히 망가질 수 있다는 위기감이 팽배해 있었습니다. 결국, 많은 주가 지난주부터 대부분의 경제활동을 시작하도록 셧다운을 중단하였습니다. 그러자 또다시 코로나바이러스 확진자들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며 이로 인한 사망자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제는 코로나-19 바이러스가 또다시 대유행한다고 해도 정부가 셧다운 명령을 또다시 내리기는 힘들 것이라고 많은 이들이 예상합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지금까지 과학자들이 밝혀내 코로나-19에 대한 정확한 지식을 가지고 코로나-19 바이러스와 함께 공존하며 살아갈 수 있는 지혜로운 방안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코로나-19는 그야말로 우리 삶 전반에 걸쳐 엄청난 영향을 끼쳤습니다. 교회 역시 코로나-19의 영향을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정부는 다른 비즈니스와 마찬가지로 교회에도 셧다운 명령을 내렸고 이로 인해 우리는 지금까지 열여섯 주일을 오프라인 대면 예배가 아닌 온라인 예배로 드리고 있습니다. 평생을 주일이면 반드시 교회에 가야 했던 저로서는 도무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교회에 대한 일부 셧다운 해제로 인해 지난주부터 그리고 이번 주부터 많은 교회가 오프라인 현장 예배를 시작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현장 예배에는 여전히 많은 제약이 있습니다. 함께 부르는 찬송이나 통성기도가 금지되며 교인마다 거리 두기를 해야 하고 예배 때에도 마스크를 착용해야 합니다. 그리고 예배 후 공동식사도 할 수 없습니다. 게다가 어려운 상황에서도 막상 오프라인 현장 예배를 시작했지만, 생각처럼 교인들이 모이지 않는다고 합니다.
지난 4개월간 계속되었던 온라인 예배와 여전히 계속되는 코로나-19의 위협은 교회와 목사와 교인들에게 많은 고민을 던져 주었습니다. 함께 모여 예배를 드리지도 못할 뿐만 아니라 그 어떤 교회 봉사나 활동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어떻게 믿음을 지키며 신앙생활을 지속해야 하는지 많은 교인이 의문을 가지며 당황스러워합니다.
더욱 암담한 것은 이런 상황이 얼마나 더 계속될지 아무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교회는 이 상황을 무기력하게 방관하며 코로나바이러스가 사라지기만을 기다리기만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적극적으로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교회와 신앙에 대해 준비해야 합니다. 많은 전문가가 이제 우리는 언택트의 일상화 시대를 살아야 한다고 합니다.
교회 전문가들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는 교회가 그 어떤 곳보다 가장 심각한 위기를 맞을 것이라고 예상합니다. 교회 전문가들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극복할 수 있는 신학과 신앙을 가지지 못하게 되면 한국교회와 이민교회는 쇠락의 길로 들어서게 될 것이라고 예상합니다. 실제로 교회는 코로나-19로 인해 심각한 위기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우선 코로나-19로 인해 주일에는 반드시 교회가 가서 예배를 드려야 한다는 교인들의 주일성수에 관한 믿음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이제까지 많은 교회와 목사들이 주일성수를 신앙이 좋고 나쁨을 나누는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여겼습니다. 그래서 교인들에게 주일성수를 목숨처럼 여기도록 가르쳤습니다. 하지만 4개월간 계속된 온라인 예배로 인해 주일성수가 신앙이 좋고 나쁨을 나누는 기준이 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또한, 지금까지 많은 교회와 목사들이 교회 건물을 성전이라고 여기며 무리해서라도 교회 건물을 사거나 지으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지난 4개월간 교인들이 교회 건물에 모이는 것이 제한되거나 금지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경험은 또다시 바이러스가 창궐하면 또다시 반복될 수 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아름답게 건축하고 화려하게 꾸민 교회 건물이라도 바이러스 앞에서는 비용만 축내는 무용지물임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게다가 대부분 교회와 교인들이 중요하게 여겼던 교회 사역들 대부분이 예전처럼 할 수 없을 것이라고 합니다. 많은 교회의 목사와 교인들이 믿음이 좋고 나쁨에 대한 기준을 주일성수 다음으로 삼은 것이 무엇입니까? 교회에서 시행하는 성경 공부를 비롯하여 단기선교나 봉사활동에 얼마나 열심히 참여하는가를 가지고 판단하였습니다. 하지만 오프라인 예배를 시작하는 거의 모든 교회가 주일예배를 제외한 거의 모든 교회 사역을 취소하였습니다.
더 나아가 포스트 코로나 시대는 예전과 같은 대규모 집회가 갈수록 어려워질 것이라고 합니다. 많은 주가 오프라인 예배를 허용하고 있지만, 대부분 예배 인원을 100명으로 제한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코로나바이러스 백신이 나오기 전까지 이런 식의 인원 제한은 계속될 것입니다. 그리고 백신이 나온다고 해도 코로나바이러스가 완전히 사라지기 전까진 이전과 같은 대규모 군중 집회나 예배는 어려워질 것입니다.
이처럼 코로나-19는 이처럼 전통적인 교회에 심각한 위기가 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모든 위기는 위기인 동시에 새로운 시대를 여는 기회가 되기도 합니다. 저는 코로나-19로 지금 교회가 겪고 있는 심각한 위기는 교회를 급격히 쇠락하게 만드는 위기가 될 수도 있겠지만 제2의 종교개혁을 이루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고 믿습니다.
코로나-19이 가져온 전대미문 초유의 위기로 인해 많은 교회가 교회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많은 교인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기회가 되고 있습니다. 저는 이번 코로나-19로 인한 교회가 겪는 위기가 단지 위기로만 끝나지 않고 지금까지 관습적으로 가지고 있던 전통적인 교회에 대한 개념을 뛰어넘어 기회가 되기를 원합니다.
지금까지 우리 교회를 스쳐 지나갔던 여러 교인에게서 가장 많이 들었던 이야기는 우리 교회에는 신앙 프로그램이 너무 없다는 것입니다. 좀 규모가 있던 교회를 다니다 우리 교회에 오신 분들은 처음에는 많이 당황하십니다. 주일예배 말고는 주중에 모이는 프로그램이 하나도 없으니 불안해하십니다. 이렇게 신앙 생활해도 괜찮은지 걱정이 되나 봅니다.
너무나 많은 목사나 교인들이 많은 예배나 기도회에 열심히 참석하고, 제자훈련과 같은 성경 공부를 많이 하고, 여러 가지 교회 봉사나 단기선교 같은 것을 자주 해야만 신앙이 자라고 성숙한다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 오랫동안 이런 생각을 가지고 목회했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목회하며 저뿐만 아니라 교인들을 오랫동안 지켜보면서 이런 생각과 믿음이 완전히 깨졌습니다.
물론 모든 교인이 그렇지는 않겠지만, 대부분 경우 지나치게 많은 예배나 교회 사역은 교인들에게 바른 신앙을 가지게 하거나 신앙의 성숙을 돕기보다는 방해하는 경우가 훨씬 많다는 사실입니다. 바른 신앙과 영적 성숙이 목적이라고 한다면 저는 우리 교회 주일예배와 아침 묵상으로도 차고 넘친다고 확신합니다.
자기반성이나 성찰이 없이 교회에서 시행하는 수많은 집회와 프로그램에 열심히 참석하는 것으로는 신앙의 성숙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교회의 여러 가지 사역에 남들보다 열심히 참여하는 열정과 헌신이 자기 과시나 자기 의가 되어 외식하는 신앙을 만드는 경우가 훨씬 더 많습니다.
예전에 부목사로 있던 교회에서 임원회를 하는 중이었습니다. 어느 장로님이 담임목사의 의견에 반대했습니다. 그러자 담임목사 편이라고 알려진 장로님이 담임목사의 의견을 반대한 장로님에게 말하길 새벽 기도회도 잘 안 나오는 장로가 무슨 말이 그렇게 많으냐며 핀잔을 주었습니다.
이런 일이 그 교회에서만 일어났던 특별한 일일까요? 아니요. 이것은 대부분 교회에서 지금도 흔하게 일어나는 일입니다. 너무나 많은 교인이 자신이 잘 지키는 종교적 행위를 가지고 그렇지 못한 교인을 무시하거나 정죄하고 판단하려고 합니다. 오죽하며 이런 일이 교회마다 너무 많이 일어나니까 이런 현상을 두고 경건의 폭력이라는 말이 생겨날 정도입니다.
물론 이것은 지금의 교회에서만 일어나는 특별한 현상은 아닙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이런 식으로 자신들의 종교적 경건을 이용해 다른 사람들을 책망했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당시 종교지도자들이라고 하는 율법학자와 바리새인들이 그러했습니다. 이들은 자신들을 자랑하고 과시하기 위해 율법과 기도와 구제와 금식과 같은 종교적 행위를 이용했습니다. 심지어 자신들이 지키는 종교적 경건으로 다른 사람들을 책망하고 정죄하려고 했습니다. 이것을 외식하는 신앙이라고 합니다.
오늘 성경 말씀을 보면 예수님께서 어떤 마을을 지나는데 ‘마르다’라는 여자가 예수님과 제자들을 자기 집으로 초대하였습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을 초대한 마르다는 예수님을 잘 대접하기 위해서 분주하게 일하였습니다. 아마도 마르다는 예수님을 잘 대접하고 싶은 마음에 더욱 분주하게 움직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동생 마리아는 예수님 앞에 앉더니만 일어설 줄 모르는 것입니다. 참다못한 언니 마르다가 예수님을 찾아와서는 아무 일도 안 하고 앉아서 예수님 말씀만 듣고 있는 동생 마리아를 꾸짖어서는 자기 일을 도우라고 부탁을 합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그래 네 말이 맞다. 너는 이렇게 수고하고 있는데 동생이 얌체같이 내 옆에 앉아서는 내 이야기만 듣는다며 마리아를 책망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마리아를 꾸짖기는커녕 오히려 예수님을 대접하기 위해 혼자서 동분서주하며 분주하게 일하는 마르다를 꾸짖는 말씀을 하십니다.
눅10:41-42 그러나 주께서는 마르다에게 대답하셨다. 마르다야, 마르다야, 너는 많은 일로 염려하며 들떠 있다. 그러나 필요한 일은 하나뿐이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택하였다. 그러니 그는 그것을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지나친 열심과 많은 일이 오히려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일에 방해가 된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아무리 예수님을 대접하는 좋은 일이라 할지라도 너무 분주하여 마음에 근심이 생기고 불평과 불만이 생긴다면 이것은 매우 심각한 신앙의 위기입니다. 아무리 교회를 위한 좋은 일이라 하더라도 힘에 지나쳐 분주해지고 마음에 불평과 원망이 생기는 것은 결코 신앙에 아무런 유익이 되지 못합니다. 오히려 자기 의에 빠져 남을 정죄하게 됩니다.
마르다는 왜 예수님을 대접하는 좋은 일을 하면서 불평과 불만이 가득하였을까요? 어떤 사람이 되느냐(to be)보다 무엇을 할 것이냐(to do)에 초점을 두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신앙에 대한 매우 중요한 메타포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 신앙은 마리아와 마르다의 이야기와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기독교 신앙을 항상 무슨 일을 하느냐에 초점을 둔 신앙은 늘 분주하고 바빠서 쉽게 지쳐 불평불만을 하거나 아니면 자기 자랑이나 우월감에 빠져 외식하는 신앙인이 될 가능성이 큽니다. 반면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자신의 신앙을 어떤 사람이 되느냐에 초점을 둔 신앙은 늘 여유로우면서 겸손한 신앙인이 될 가능성이 훨씬 더 큽니다.
교회는 그리고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고 따르는 기독교 신앙은 무엇을 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무엇을 하느냐가 중요한 신앙은 구약의 신앙이며 율법의 신앙이지 신약의 신앙이나 복음의 신앙이 아닙니다. 교회는 무슨 일을 하느냐가 중요한 곳이 아니라 어떤 사람이 되느냐가 중요한 곳입니다.
고전3:16-17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교회에서 하는 모든 일은 일 자체가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통해 어떤 사람이 되느냐가 중요합니다. 많은 교인이 열심히 신앙생활 하는 것 같은데 정작 신앙이 주는 참된 만족과 기쁨을 누리는 사람은 별로 많지 않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어떤 사람이 되느냐에 초점을 두지 않고 오로지 사역 중심의 신앙생활만 하였기 때문입니다.
교회에서 시행하였던 수많은 예배와 성경 공부와 봉사의 가장 중요한 목적이 무엇입니까? 교회와 목사에게 충성하는 교인을 만드는 것입니까? 아니면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그리스도인을 만드는 것입니까? 안타깝게도 지금까지 교회는 수많은 예배와 프로그램과 봉사로 교인들을 충성된 자기 교인으로 만드는 데만 열중했지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배우고,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그리스도인을 만드는 데는 철저하게 실패했습니다.
그 결과 대부분 교인이 교회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것을 배우고 훈련하기보다는, 교회를 열심히 다니는 것으로, 교회를 위해 여러 가지 봉사를 하는 것으로 자신의 책임과 사명을 다했다고 여깁니다. 그리고 이런 교인들 대부분은 자신처럼 교회 행사나 사역에 열심히 참석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책망하고 정죄하였습니다. 이것은 차라리 안 하는 것보다 못한 일이 되고 맙니다.
빌2:3-5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각각 자기 일을 돌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코로나-19로 인해 지난 4개월 동안 대부분 교회가 온라인으로 예배를 드리는 것 말고는 딱히 할 수 있는 것이 없었습니다. 교회로 모일 수도 없고, 모일 수 없으니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상황은 교인들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것이 무엇인지를 진지하게 고민하도록 만들었습니다. 저는 코로나-19로 인한 교회의 심각한 위기야말로 교회의 본질을 회복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기회라고 믿습니다.
이 위기를 겪고 난 다음에도 여전히 교회가 무엇을 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는 곳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앞으로 어떤 상황이 되더라고 교회는 무슨 일을 하느냐를 중요하게 여기기보다 어떤 사람이 되느냐를 더 중요하게 여기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신앙은 무슨 일을 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가 하는 일을 통해 내가 어떤 사람이 되어가고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프로테스탄트 개신교 신앙은 목사만 제사장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교인이 세상을 위한 제사장이라는 만인 제사장임을 믿습니다. 이것은 목사가 교회에서 하는 일만 거룩한 일이 아니라 교인들이 자신들의 가정과 자신들만의 직장과 기업에서 하는 모든 일이 하나님 나라를 위한 거룩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굳이 교회에 모여 하는 일이나 교회를 위한 일이 아니더라도 여러분들이 가정과 직장과 비즈니스에서 하는 모든 일이 곧 하나님과 하나님 나라를 위한 일입니다. 저는 우리 교회 교인들이 교회에서 좋은 교인이 되는 것보다 여러분들의 가정과 일터에서 좋은 크리스천이 되기를 정말 간절히 소망합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여러분의 가정을 교회로 만들고 여러분의 일터를 교회로 만드는 것이 만인 제사장 교리의 핵심입니다. 무슨 일을 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내가 하는 일을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합니다. 목사의 직분이 거룩한 것이 아니라 그 직을 거룩하게 수행할 때만 목사의 직분이 거룩해지는 것입니다. 이것은 여러분이 하는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이 하는 일을 통해 날마다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는 것 이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어디에도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