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와성경공부
룻기14-상처 입은 자를 통해 이루시는 하나님의 역사


상처 입은 자를 통해 이루시는 하나님의 역사

룻기 4:14-22

 

룻기 강해 열네 번째 시간이자 마지막 시간으로 룻기에 대한 긴 여정을 마무리하는 시간입니다. 오늘은 상처 입은 자를 통해 이루시는 하나님의 역사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합니다. 오늘도 같은 시간, 같은 찬양, 같은 말씀으로 각자의 가정에서 드리는 온라인 라이브 예배를 통해 하나님의 은혜가 충만하길 축복합니다.


룻기는 고통으로 시작했지만, 찬송으로 끝이 납니다. 룻기는 절망으로 시작했지만, 소망으로 끝납니다. 룻기는 죽음으로 시작했지만 새로운 생명의 출생으로 끝이 납니다. 시작보다 끝이 좋은 인생, 처음보다 나중이 좋은 인생 이것이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하나님의 도우심을 바라보며 살았던 사람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룻기가 보여주고 있는 것처럼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였던 사람의 마지막은 축복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낙심하지 않고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사람에게 아름다운 끝을 누릴 수 있도록 도와주십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은 하나님의 회복하심의 역사를 믿으며 지금의 고통과 고난을 견디어 내는 것입니다. 소망하며 이겨 내는 것입니다. 바라기는 룻과 나오미 그리고 보아스의 인생이 그러하였던 것처럼 우리의 인생도 어제보다 오늘이, 오늘보다 내일이, 시작보다 끝이 더욱 아름답고 존귀해지기를 축복합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룻기의 결말은 하나님이 베푸신 은혜와 축복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하지만 분명하게 기억해야 할 사실은 사람들의 넘치는 축복과 하나님의 넘치는 은혜를 받은 룻과 나오미의 시작은 결코, 행복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한 사람이 인생을 살면서 경험할 수 있는 최대의 불행으로 시작된 이야기가 바로 룻기입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나오미와 룻이 경험한 고통과 아픔이 컸기에 저들이 서로를 위해 베풀고 나눈 사랑과 하나님께 받은 은혜가 더욱 크고 아름다울 수 있었습니다.


룻기 1장은 인생의 불행과 고통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베들레헴에 흉년이 들자 나오미의 가정은 흉년을 피해 더 잘살아 보려고 모압 땅으로 이주합니다. 하지만 모압 땅으로 이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나오미는 남편을 잃었습니다. 그리고 그녀에게 남은 두 아들마저 잃고 맙니다. 나오미의 며느리 룻 역시 졸지에 남편을 잃은 과부 신세가 되었습니다.


룻기 1장은 사람의 인생이 사람의 뜻대로, 사람이 생각한 대로, 사람이 계획한 대로 되지 않음을 보여줍니다. 원하지 않는 재난, 예상하지 못한 고통, 계획하지 않은 일들이 생겨나는 게 우리의 인생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인생은 나오미와 룻의 인생처럼 인생은 비참하고 고통스럽습니다.


룻기 120절의 말씀은 나오미가 겪어야 했던 인생의 불행과 고통이 얼마나 컸는지를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나오미는 마을 사람들에게 자기를 더는 나오미라 부르지 말고 마라라 불러 달라고 부탁합니다. 마라는 쓰다, 고통이라는 의미입니다. 이처럼 룻기 1장은 고통에서 출발합니다.


1:20 나오미가 그들에게 이르되 나를 나오미라 칭하지 말고 마라라 칭하라 이는 전능자가 나를 심히 괴롭게 하셨음이니라


하지만 비참하고 고통스러운 저들의 인생의 여정에서 나오미와 룻은 그냥 그대로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비참하고 고통스러운 인생이지만 저들이 완전히 무너지지 않을 수 있었던 데에는 매우 중요한 영적 비결이 있었습니다.


무엇입니까? 저들은 남편과 자식을 잃고 자신의 전 재산을 잃어버리는 고통스러운 인생 속에서도 잃어버린 것에 초점을 두지 않고 여전히 자신들에게 남은 것에 초점을 두고 살았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저들이 회복의 은혜를 누릴 수 있었던 결정적인 이유가 되었습니다.


룻기1:3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이 죽고 나오미와 그의 두 아들이 남았으며

1:5 말론과 기룐 두 사람이 다 죽고 그 여인은 두 아들과 남편의 뒤에 남았더라


인생의 초점을 어디에 맞추느냐에 따라 우리의 생각이 달라집니다. 우리의 느낌이 달라집니다. 우리의 태도가 달라집니다. 우리의 언어가 달라집니다. 우리의 행동이 달라집니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의 앞날이 달라집니다. 회복과 치유의 첫 출발은 어디에 초점을 맞추느냐에 있습니다.


룻기는 남겨진 사람들을 통해 저들의 가정에 닥친 비극적인 상처를 치유하시고 회복시키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를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남겨진 사람을 통해 펼치시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남편도 아들도 다 잃었지만, 여전히 남겨진 사람이 있었습니다. 엘리멜렉의 가정에 남겨진 나오미와 룻을 통해서 하나님은 기가 막힌 회복의 은혜를 베푸십니다.


우리는 늘 없는 것을 봅니다. 없는 것 때문에 낙심합니다. 절망합니다. 하지만 룻기는 잃어버린 것, 사라진 것, 죽은 사람 붙잡고 살지 말고 남아있는 것을 찾고 남은 사람을 보며 살라고 합니다. 잃어버린 것, 사라진 것 대신 여전히 나에게 남은 것, 여전히 내가 가지고 있는 것, 여전히 나에게 남은 사람에 초점을 둘 때 인생은 회복될 수 있습니다.


지금 당하는 고통이 크다고 낙심하시지 마시기 바랍니다. 지금 당면한 어려움이 힘들다고 절망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남은 것을 통해서도 우리를 치유하시고 회복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역전케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룻과 나오미의 비극적인 인생을 회복하시고 역전케 하신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의 하나님 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룻기 2장은 쓰디쓴 인생에 베푸시는 하나님의 은혜로 가득 차 있습니다. 룻은 이스라엘이 저주하는 모압 출신의 이방 여인이었습니다. 그렇지만 룻은 다윗의 계보에 오르고 더 나아가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에 기록되는 존귀한 자가 되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 수 있었습니까? 룻은 은혜를 사모하는 사람이었고 은혜를 사모하는 이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였기 때문에 이 모든 일이 일어날 수 있었습니다.


2:13 룻이 이르되 내 주여 내가 당신께 은혜 입기를 원하나이다 나는 당신의 하녀 중의 하나와도 같지 못하오나 당신이 이 하녀를 위로하시고 마음을 기쁘게 하는 말씀을 하셨나이다 하니라


룻기 2장은 우리의 실력과 노력만 가지고 인생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며 살아갈 수 없음을 보여줍니다. 어느 사람도 자기 혼자의 실력과 노력만으로 살 수 없습니다. 우리는 모두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하고 하나님께서 도와주셔야만 살 수 있는 존재입니다. 믿음이란 내 힘과 능력 그리고 노력만으로 되는 것이 아님을 깨닫는 것이 믿음입니다. 이것을 인정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그리고 그 믿음으로 얻는 것이 은혜입니다.


그래서 룻기서 2장의 주제는 은혜입니다. 룻기 1장에는 은혜라는 단어가 한 번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오직 사람의 계획만 있었습니다. 사람의 계획만 있고 하나님의 은혜가 나오지 않는 룻기 1장에서의 나오미와 룻의 인생은 절망적이었습니다. 하지만 룻기 2장에는 네 번에 걸쳐 은혜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나오미와 룻의 인생에 은혜가 나타나기 시작하자 저들의 인생이 회복의 실마리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저들에게 나타난 은혜에는 매우 중요한 영적 원리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라고 하늘에서 그냥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하나님의 은혜는 사람을 통해 나타납니다. 이것이 룻기가 가르치는 은혜에 관한 중요한 원리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통해 은혜를 베푸신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사람을 함부로 대하지 않습니다. 사람은 하나님께서 쓰시는 은혜의 통로이며, 축복의 통로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제대로 믿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형상대로 지으신 사람을 존귀하게 여길 줄 아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이런 사람에게 하나님은 좋은 사람을 만나게 해 주십니다. 좋은 사람을 만나게 하심으로 하나님은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십니다. 좋은 사람과의 만남은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시는 가장 분명하고 확실한 축복의 통로입니다.


룻기 3장은 비참하고 고통스러운 룻의 인생에 비로소 안식이 찾아옵니다. 하나님께서는 나오미를 통해 룻과 보아스가 한 가정을 이루도록 돕게 하십니다. 그리고 그 가정을 통해 서로의 상처와 고통을 치유하고 회복하게 하십니다. 가정은 하나님이 사람에게 주신 최고의 축복이며 선물입니다. 가정을 통해 사람은 비로소 안식할 수 있고 새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3:1 룻의 시어머니 나오미가 그에게 이르되 내 딸아 내가 너를 위하여 안식할 곳을 구하여 너를 복되게 하여야 하지 않겠느냐


가정은 전혀 생판 모르는 두 사람이 하나가 되는 게 가정입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신비가 아닐 수 없습니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사람을 가족으로 묶어주는 유일한 힘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사랑입니다. 사랑만이 온전한 가정을 이루게 하며 안식을 누리는 가정이 되게 합니다.


룻이 보아스를 통해 경험한 사랑은 어떤 사랑이었습니까? 보아스의 사랑은 룻의 아픔과 상처를 덮어주고 용납하는 사랑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덮으시는 사랑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죄를 용서하시고 자유롭게 하셔다는 뜻을 가진 구속이라는 말의 어원은 보면 덮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의 허물을 덮어주시는 사랑입니다. 다른 사람이 볼 수 없도록 덮어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필요한 사랑은 용납하시는 주님의 사랑입니다. 허물을 덮어주는 것이 사랑입니다. 제 아내가 제 허물을 덮어주지 않고 들추기 시작하면 아마 저는 이렇게 목회하지 못할 것입니다.


더 나아가 룻기가 가르쳐주는 사랑은 책임지는 사랑입니다. 룻기가 가르쳐주는 참된 사랑은 책임을 지는 것입니다. 보아스는 룻이 요구한 기업 무르기의 책임을 기꺼이 지려고 했기에 안식을 누리는 가정을 만들 수 있습니다. 상대방에 대해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면 정말 그 사람을 사랑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전에는 사랑하는 사람 사이에 너를 책임질게 라는 말을 많이 했는데 요즘은 서로에게 책임을 바라지도 원하지도 않습니다. (첫 키스라고 해서 책임지고 결혼했습니다.) 사랑을 그저 순간의 감정과 느낌에만 의지합니다. 이것은 사랑을 변하게 만드는 가장 결정적인 원인이 됩니다. 보아스를 통해 배우는 사랑의 원리는 책임입니다. 책임의 사랑만이 안식하는 가정을 만들게 할 것입니다.


룻기 4장의 핵심은 414절에 나오는 찬송이라는 단어입니다. 무엇이 비참하고 고통스러운 나오미의 인생을 찬송하는 인생으로 변화시켰습니까?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저들의 인생을 변화시켰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은 사람의 상처를 치유합니다. 병든 인생을 치유합니다. 사랑할 수 없는 사람들을 사랑할 수 있게 합니다. 죽음으로 가득 찬 인생에 새 생명이 태어나게 합니다. 가슴 아픈 소리를 내야 하는 가정에 찬송이 울려 퍼지게 합니다.


4:14 여인들이 나오미에게 이르되 찬송할지로다 여호와께서 오늘 네게 기업 무를 자가 없게 하지 아니하셨도다 이 아이의 이름이 이스라엘 중에 유명하게 되기를 원하노라


룻기 4장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비천한 인생들이 존귀해지고 아름다워진 축복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비천한 모압 여인 룻만 행복하게 된 것이 아닙니다. 보아스의 인생도 행복하게 됩니다. 복된 인생이 됩니다. 보아스만 행복하게 된 것이 아닙니다. 보아스와 룻이 아들을 낳았을 때 나오미는 손자를 품에 안고 감격했습니다. 나오미도 행복해집니다. 이것을 본 모든 여인이 나오미를 축복하신 하나님을 찬송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세상은 너의 행복은 나의 불행이고 너의 불행은 곧 나의 행복이라고 여깁니다. 왜냐하면, 세상의 방식은 한정된 것을 가지고 여러 사람이 나누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가지면 상대방이 가질 수 없고, 상대방이 가지면 내가 가질 수 없습니다. 이것을 제로섬 게임이라고 합니다. 이것이 세상의 방식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무한하신 하나님,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축복은 나눈다고 줄어들거나 없어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베풀고 나눌수록 점점 더 커지는 것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이며 축복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사람은 축복을 받은 사람뿐만 아니라 그 주변의 사람들에게까지 하나님의 축복이 넘쳐흐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축복이 있는 곳엔 찬송이 넘쳐납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과 세상이 주는 복의 가장 중요한 차이입니다. 내가 누리는 것으로 다른 사람도 복되게 할 수 있는 것이 정말 하나님이 주신 복입니다. 그런데 내가 누리는 것 때문에 다른 사람이 불행해진다면 이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복이 아닙니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룻기는 삶의 밑바닥까지 내려갔던 절망적인 한 가정이 하나님의 은혜로 회복을 이루어가는 가정사를 다루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 가정의 회복을 다루고 있는 이 이야기는 매우 심상치 않은 방식으로 끝을 맺고 있습니다. 룻기 마지막 부분 4:18-22절은 베레스의 계보를 기록한 것으로 끝마치고 있습니다.


4:18 베레스의 계보는 이러하니라 베레스는 헤스론을 낳고

4:22 오벳은 이새를 낳고 이새는 다윗을 낳았더라


얼핏 룻기가 모든 이야기를 마치면서 기록한 베레스의 계보가 뜬금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베레스의 계보는 매우 중요한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베레스로부터 시작한 계보가 누구에게까지 이어졌습니까? 다윗입니다. 베레스의 계보는 단순한 계보가 아닙니다. 다윗을 통해 세우시려는 하나님 왕국에 대한 계보라 할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다윗의 계보가 어디까지 이어지고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1:1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


룻기가 결론의 말씀으로 기록한 베레스의 계보에는 3명의 불행했던 여인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습니다. 누구입니까? 다말과 라합과 룻입니다. 이 세 여인은 마태복음 1장에 기록된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에 등장하는 인물이기도 합니다. 베레스의 계보와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에 등장하는 세 명의 이방 여인은 하나님의 구원에 대한 매우 중요한 메타포입니다.


1:3 유다는 다말에게서 베레스와 세라를 낳고

1:5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스를 낳고 보아스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


하나님께서는 왜 다윗의 계보와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에 세 명의 이방 여인들이 들어가게 하신 것입니까? 다윗을 통해 이루실 하나님의 왕국은 이방인을 배척하거나 차별하지 않음을 가르쳐 주기 위함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실 하나님의 구원 역시 이방인을 배척하거나 차별하지 않음을 가르쳐 주기 위함입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뜻을 제대로 깨닫지 못했습니다. 선민주의에 빠져 이방인들을 배척하고 차별하였습니다. 이것은 우리도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의 신앙이 더 많은 사람을 포용하고 품어주기보다는 자기 신앙 기준에 맞지 않는 사람을 배척하고 차별하는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룻기에 등장하는 나오미, , 보아스의 중요한 공통점은 이들은 모두 상처 많은 인생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들의 상처가 저들을 무너뜨리지 못했습니다. 저들의 상처가 한이 되고 원망이 되고 운명이 되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받은 상처를 흉기로 만들어 남을 미워하거나 해치지도 않았습니다. 이들은 모두 하나님의 은혜로 상처 입은 치유자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반드시 알아야 할 사실은 단순히 상처를 입은 경험만으로는 다른 사람의 상처를 치유할 줄 아는 사람이 되지 않습니다. 남의 상처를 치유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선 먼저 자신의 상처를 치유 받은 경험이 있어야 합니다. 상처는 시간이 흐른다고 저절로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시간이 가도 치유되지 않은 상처는 그대로 남아 계속해서 사람을 괴롭힙니다.


치유 받지 못한 상처는 고름이 생기고 그 고름이 독이 되어 우리 인생을 더욱 해칠 수 있습니다. 상처가 분이 되고, 상처가 한이 되고, 상처가 흉기로 바뀔 수 있습니다. 상처는 치유되어야 합니다. 상처가 치유되면 향나무처럼 아름답게 향기를 발할 수 있습니다. 상처에서 향기가 나오고 상처에서 다른 사람을 치유하는 약이 나옵니다.


우리 역시 상처투성이인 사람들이 모여 가정을 만들고, 교회를 만들고 사회를 만들며 살아갑니다. 그런데 문제는 상처 입은 사람들이 모여서는 자신이 받은 상처를 다른 사람들에게 전가하려고 합니다. 왜 이렇게 합니까? 상처를 떠넘기는 것으로 자신의 상처를 해결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해선 내 상처가 치유되지 않습니다. 남에게 떠넘기는 것으로는 더 큰 상처를 만드는 악순환만 계속됩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하나님께서는 상처 입은 사람들을 통해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어가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겪은 상처와 아픔을 낭비하지 않고 아름답게 선용하시길 원하십니다. 내가 겪은 상처와 아픔 때문에 이전보다 더 독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러하셨던 것처럼 상처 입은 나를 통해 상처받은 다른 사람의 영혼을 치유하시길 원하십니다.


하지만 타인의 상처와 아픔을 공감하고 치유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내가 먼저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치유의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치유의 은혜를 간절히 바라는 이에게 반드시 치유와 회복의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내가 겪은 상처와 아픔으로 인해 이전보다 더 많은 사람을 공감하고 품어주고 덮어주는 사람이 되길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바라기는 보아스와 룻처럼 상처 많은 우리의 인생이 그저 상처 많은 고통스러운 인생으로 끝나지 않고 상처 입은 치유자로 살아가실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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