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와성경공부
시편23편 1절-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염려에 대한 하나님의 도우심)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시편 231

 

열아홉 번째 온라인 라이브 예배입니다. 지난주로 열네 번에 걸친 룻기 강해 설교를 모두 마쳤습니다. 룻기 강해를 시작하면서 룻기 강해가 끝나기 전까지 Covid-19 사태가 해결될 것이라 막연하게 기대했습니다. 하지만 예상보다 사태가 길어지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얼마가 될지 모릅니다. 모두 마음 단단히 먹으시고 차분하게 그리고 서로 조심하고 도우며 안전하고 건강하게 대처해 나가시길 바랍니다.


요즘 아침 묵상에서 사무엘서의 말씀을 가지고 다윗의 생애를 살펴보고 있습니다. 다윗은 살면서 많은 시를 지었습니다. 시편 150편 중 다윗이 지은 시가 절반가량인 73편에 이르고 있습니다. 특별히 시편 23편은 다윗이 자기 인생 노년에 지은 시로서 아마 가장 많은 사람에게 알려진 가장 유명한 시입니다. 오늘부터는 시편 23편의 말씀을 가지고 인생을 살면서 누구나 겪게 되는 여러 가지 인생의 문제들에 관해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다윗은 파란만장했던 자신의 지난 삶을 돌아보며 때를 따라 도우시고 섭리하셨던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 노래한 것이 시편 23편입니다. 오늘은 첫 번째 시간으로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라는 제목으로 염려라는 인생의 문제에 대해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바라기는 다윗의 삶에 나타났던 하나님의 간섭과 섭리가 오늘 우리에게도 역사하는 하나님의 간섭과 섭리임을 깨닫고 체험하고 누릴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저의 가정이 미국에 이민 온 날짜가 2001813일입니다. 미국에 이민 온 지 막 4개월쯤 지났을 때 일이었습니다. 자동차로 LA를 여행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막 이민을 온 때라 돈도 아끼려고 자동차에 전기밥솥을 싣고는 밥을 해 먹으며 싸구려 모텔에서 숙박하며 여행을 했습니다. 여행은 무사히 잘 다녀왔습니다.


하지만 여행을 다녀오고 나서부터 몸에 붉은 반점이 돋기 시작하더니 온몸으로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며칠 지나면 괜찮아지겠지 했는데 날이 갈수록 상태가 자꾸만 심각해졌습니다. 다행히 목 위로는 아무렇지도 않아도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갈수록 상태는 심각해지는데 보험도 없고 돈도 없고 해서 도무지 병원을 찾아갈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누구에게 말도 못 하고, 병원도 가지 못하고 혼자만 끙끙대면 염려를 하다 하다 보니까 별의별 병으로 다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급기야 무슨 염려까지 하게 되었느냐면 미국에는 에이즈 환자가 많다고 하던데 제가 묵었던 방에 에이즈 환자가 묵어서 제가 그 병에 전염이 되었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에이스의 초기 증상은 붉은 반점이라고 이야기만 듣고는 제 몸에 난 붉은 반점이 에이즈의 초기 증상이라고 여긴 것입니다.


지금의 Covid-19처럼 심각하지는 않았지만 제가 이민 올 당시 에이즈는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전염병으로 여겨졌던 시기였습니다. 물론 에이즈가 단지 같은 침구를 사용했다고 옮는 것이 아닌데 한 번 의심하고 염려하다 보니 제 병은 분명 에이즈라고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쩜 그리 무식하고 어리석었는지 도무지 이해되지 않습니다.


아무튼, 제 병이 에이즈라고 확신한 순간부터 도무지 밤이 되도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미국에 온 지 채 1년도 않되 그 많은 병중에 하필이면 에이즈로 죽는다고 생각하니까 도무지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남편은 죽어 가는데 옆에서 잠만 잘 자는 아내와 아들이 야속해 보였습니다. 며칠을 아무에게도 말도 못 하고 밥도 제대로 못 먹고 잠도 못 자고 걱정만 하며 지냈습니다.


그러던 중 어느 집사님 한 분이 우연히 제 목 뒤에 난 붉은 반점을 보더니, “목사님 Bedbug에 물리셨나봐요?” 하는 것입니다. 저는 Bedbug가 뭔지도 몰라 도대체 그게 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 집사님이 침대에 사는 빈대와 같은 벌레라면서 자신도 예전에 Bedbug에 물려 저랑 비슷한 증상이 있었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무슨 약을 사서 바르고 먹으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제가 그 말을 듣고 나서는 그날부터 며칠 동안 밤잠을 설치던 잠을 잤습니다. 게다가 더욱 신기하고 놀라운 것은 미처 약을 사서 바르거나 먹지도 않았는데 그다음 날부터 증세가 호전되어 굳이 약을 사서 바르거나 먹지도 않았는데 온몸에 난 붉은 반점이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현대 심리학과 기독교를 통합하였던 스위스 출신의 정신과 의사 폴 투르니에는 아무도 사람을 죽이지 않는다. 스스로가 자신을 죽일 뿐이다.”라며 사람의 지나친 염려와 근심이 스스로 약하게 만들고 병들게 한다고 했습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밤에 잠을 못 자는 불면증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밤에 잠을 못 자면 건강을 해칠지도 모른다는 염려가 더 심각하게 사람의 건강을 해친다고 했습니다.


병원에 가면 의사들이 단골 멘트로 하는 말이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스트레스받지 말라는 것입니다. 사람이 인생을 살며 가장 많은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것은 염려라고 합니다. 스트레스는 한 마디로 근심과 염려를 뜻한다고 해도 조금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지나친 염려가 우리의 건강을 해치고 있습니다. 이것은 단지 의사들의 가르침만이 아닙니다. 성경의 오래된 가르침이며 교훈이기도 합니다.


17:22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를 마르게 하느니라


사람은 염려 하는 것으로도 여러 가지 신체적 질병이 나타납니다. 근심이나 염려로도 사람은 위궤양, 두통, 불면증 등 여러 가지의 질병에 시달리게 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사람이 질병으로 죽는 것보다 질병에 대한 염려 때문에 죽는 확률이 더 높다.”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실제로 많은 사람이 암과 같은 병에 걸리면 병에 대한 지나친 염려로 인해 몸보다 먼저 마음이 무너진다고 합니다.


사람마다 정도의 차이나, 내용의 차이는 있겠지만 사람이라면 누구나 근심과 염려에 사로잡혀 살아갑니다. 어떤 사람은 경제적인 문제일 수도 있고, 어떤 사람은 직업이나, 인간관계의 문제일 수 있고, 미혼의 남녀라고 한다면 결혼 문제일 수 있고 부모들은 자녀나 건강의 문제로 염려하며 살아갑니다.


염려란 짙은 안개와도 같습니다. 짙은 안개가 몰려오면 잘 볼 수가 없습니다. 짙은 안개 속을 운전해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앞을 볼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도시 전체를 한 치 앞도 보이지 않게 뿌옇게 만드는 안개를 모두 모아 압축하면 한 양동이의 물밖에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사람의 염려도 안개와 같습니다. 막상 정신 차리고 생각하면 별것 아니지만, 한 번 염려에 사로잡히면 한 치 앞도 볼 수 없게 만드는 안개처럼 제대로 된 생각을 하지 못하게 합니다.


성경을 찾아보면 염려나 근심이라는 단어가 구약성경 창세기부터 시작하여 신약성경에 이르기까지 성경 전반에 걸쳐 나타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처럼 염려와 근심은 나만의 문제만이 아니라 시대와 사람을 불문하고 모든 시대 모든 사람을 괴롭히는 인생의 근본적인 문제임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말씀에 의하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피조물 가운데 염려하며 사는 존재는 오직 사람뿐이라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피조물은 염려하지 않고 살도록 창조되었습니다. 그 어떤 동물이나 식물도 염려하며 살지 않습니다. 왜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창조 원리를 따라 살아가기 때문에 염려할 것이 없습니다. 다시 말해 모든 피조물은 하나님의 창조 원리를 믿기에 아무것도 염려하지 않고 살아갑니다.


6:26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6:28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예수님은 염려 하는 사람에게 염려 하는 것으로는 그 어떤 문제도 해결할 수 없다고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627절에서 키라는 단어는 헬라어로 헬리키아라고 하는데 이 단어는 두 가지 뜻이 있습니다. 하나는 사람의 수명을 뜻하고 다른 하나는 사람의 키를 뜻한다고 합니다. 한글 성경은 라고 번역을 했고 영어 성경은 Life라고 번역을 했습니다.


6:27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겠느냐

Matt.6:27 Who of you by worrying can add a single hour to his life?


어떤 것으로 번역하여야 하는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어떤 것이든 사람의 염려로 해결할 수 없는 것은 분명합니다. 염려 하는 것으로는 사람의 키를 순식간에 한자(삼십 센티)를 키울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염려 하는 것으로는 사람의 생명을 단 한 시간도 연장할 수 없습니다. 이처럼 염려란 내가 할 수 없는 것을 내가 하려고 시도하는 것이며, 내가 다스릴 수 없는 것을 내가 다스리려고 시도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왜 염려하며 살아갑니까? 하나님의 창조 원리대로 살지 않기 자신의 방식대로 살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을 믿으며 살지 않고 자신의 욕심을 따라 살기 때문입니다. 결국, 염려란 하나님께 지음 받은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기보다 스스로 하나님이 되어 자기가 하나님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왜 염려하며 살아갑니까?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염려 하는 자들에 대해 분명하게 말씀하시길 믿음이 적은 자들이라 책망하셨습니다. 왜 염려합니까?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반대말은 불신이 아니라 염려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에 따르면 염려는 하나님을 믿지 않는 불신입니다.


6:30-31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염려란 내가 다스릴 수 없는 것을 다스리려고 시도하는 것입니다. 염려란 내 삶의 주인이 되셔야 하는 하나님을 뒤로하고 자기 자신이 자기 삶의 주인이고자 하는 경고의 신호등과도 같습니다. 스스로 하나님과 같아져서는 다스릴 수도 없는 것을, 너무 많이 다스리려고 하고 있다는 경고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하는 모든 염려의 근본 원인입니다.


염려할 때마다 결코 다스리려고 시도하지 말아야 할 것을 다스리려고 하는 자기 자신을 발견해야 합니다. 내가 자신의 삶을 다스리려고 한다면 내가 하나님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노릇을 하는 것이 바로 염려의 근원입니다. 우리가 마치 하나님인 것처럼 행동할 때마다 우리는 염려하게 될 것입니다.


'염려하지 않을 이유'란 글이 있습니다. "염려하려면 두 가지만 염려해라. 지금 아픈가, 안 아픈가? 안 아프면 염려하지 마라. 아프면 두 가지만 염려해라. 고칠 병인가, 못 고칠 병인가? 고칠 병이면 염려하지 마라. 못 고칠 병이면 두 가지만 염려해라. 죽을병인가, 안 죽을병인가? 안 죽을병이면 염려하지 마라. 죽을병이면 두 가지만 염려해라. 천국 갈 것인가, 지옥 갈 것 같은가? 천국에 갈 것 같으면 염려하지 마라. 지옥에 간다면? 지옥 갈 놈이 무슨 염려냐? 벌 받는 게 당연하지!"


매일같이 이런저런 염려와 근심으로 인해 힘겨운 날들을 보내고 계십니까? 오랜 삶의 습관으로 굳어져 버린 염려, 근심, 걱정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은 무엇입니까? 여호와 하나님을 나의 목자로 삼는 것입니다. 시편 231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라는 다윗의 고백은 끊임없는 근심과 염려에 사로잡혀서 매일을 사는 우리에게 분명하고 명확한 영적 도전을 줍니다.


다윗이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고백하였던 것처럼 우리 역시 날마다 여호와 하나님을 나의 목자로 고백하는 것입니다. 다윗은 여호와 하나님이 그의 목자가 되셨기에 자신에게는 부족함이 없었다고 고백하였습니다. 이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자신의 목자로 인정하고 고백하는 사람에게 부족함이 없도록 채워 주십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매우 주의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부족함 없이 채워 주실 것이라고 약속하신 것은 우리의 필요이지 우리의 욕심이 아닙니다. 우리가 필요한 것과 우리가 원하는 것에는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빌립보서 419절은 이것을 분명하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우리의 목자 되시는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욕심이 아니라 우리의 필요를 채우시는 분이십니다. 왜 우리가 염려하며 삽니까? 혹시 우리의 염려가 필요를 넘어서 욕심을 채우려고 하기 때문은 아닌지요?


4:19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우리는 우리 인생에서 일어나는 대부분 문제를 우리 힘과 능력으로는 제대로 다스릴 수가 없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염려하며 살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의 목자가 되셔서 우리의 삶을 인도하신다면 우리는 더는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염려로부터 자유로워지기를 원하신다면 하나님을 목자로 고백하시기 바랍니다.


염려와 근심이 우리의 삶을 짓누르고 있습니까? 우리의 목자 되시는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겨 버리면 됩니다. 양은 아침마다 오늘은 어디에 가서 풀을 먹을까 걱정하지 않습니다. 양은 목자가 모든 것을 맡기고 목자가 인도하는 데로만 갑니다. 우리고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선한 목자되신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겨 버리면 됩니다.


벧전5:7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


여기서

새글 0 / 341 

검색

번호 제목 작성자 등록일 조회수
공지 자유교회 주일예배 영상 Youtube 링크 2021.04.21 4777
341 십계명20-사람의 생명이 존엄한 이유 2025.07.20 132
340 십계명19-약속 있는 첫 계명 2025.07.19 127
339 십계명18-어떻게 하는 것이 부모를 공경하.. 2025.07.19 127
338 십계명17-왜 부모 공경이 살인 금지보다 먼.. 2025.07.19 127
337 십계명16-누구를 위한 그리고 무엇을 위한 .. 2025.07.19 126
336 십계명15-어떻게 하는 것이 안식일을 잘 지.. 2025.07.19 130
335 십계명14-안식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 2025.06.07 214
334 십계명13-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는 삶 2025.05.24 305
333 십계명12-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는.. 2025.05.24 318
332 십계명11-하나님의 이름에 담긴 의미 2025.05.24 316
331 십계명10-우리가 만들어내는 하나님 2025.05.24 365
330 십계명9-우리의 신앙, 믿음입니까? 미신입.. 2025.04.06 333
329 십계명8-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 2025.04.06 321
328 십계명7-어떤 것으로도 하나님을 제한하지 .. 2025.03.18 413
327 십계명6-코람데오(Coram Deo) 2025.03.18 4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