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도다
시편 23편 2절
스무 번째 온라인 라이브 예배입니다. 오늘은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도다”라는 제목으로 고단한 인생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에 대해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먼저 오늘도 같은 시간 같은 찬양 같은 말씀 같은 기도로 예배드리는 자유교회 성도님들 가정마다 고단한 인생에 베푸시는 하나님의 위로와 안식으로 충만하길 축복합니다.
설교에 앞서 질문하나 하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은 일하기 위해 쉽니까? 아니면 쉬기 위해 일하십니까? 지금까지 이렇게 물어보면 대부분 사람이 일하기 위해 쉰다고 대답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사는 것이 바른 삶의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예전에는 꽤 오랫동안 사람은 일하기 위해서 쉼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얼핏 생각하기에는 일하기 위해 쉬는 것이나, 쉬기 위해 일하는 것이나 그게 그것처럼 들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일하기 위해 쉬는 것과 쉬기 위해 일하는 것에는 생각하는 것보다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마치 닭이 먼저냐? 알이 먼저냐? 또는 먹기 위해 사느냐? 살기 위해 먹느냐?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삶의 의미와 목적이 달라지는 것처럼 어떻게 생각하고 사느냐에 따라 매우 큰 인생의 차이를 만들어 냅니다.
일하기 위해 쉰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쉬는 것은 일을 잘하기 위한 수단이며 도구가 됩니다. 일하기 위해 쉰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일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이런 사람에게 쉬는 것은 그저 월요일 아침 직장이나 일터에 나가 다시 일할 힘을 충전하는 것으로 여깁니다. 그래서 이런 사람의 경우 쉬는 것은 아무것도 안 하고 침대나 소파에 누워있는 것을 쉬는 것이라 여깁니다. 마치 방전된 전기차나 휴대폰을 다시 사용하기 위해서 충전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반면에 쉬기 위해 일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일은 더 잘 쉬기 위한 수단이며 도구가 됩니다. 쉬기 위해 일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잘 쉬는 것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필요한 만큼만 일하지 필요 이상으로 일하여 몸을 함부로 혹사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하는 일 없이 마냥 빈둥거리며 지내지도 않습니다. 땀 흘려 수고하여 얻은 열매가 있어야만 잘 쉴 수 있음을 알기에 일할 때 열심히 일합니다. 다시 말해 일해도 돈을 벌어야만 잘 쉴 수 있다는 것을 알기에 필요한 돈을 벌기 위해 일합니다.
다시 한번 묻겠습니다. 일하기 위해 쉬는 것과 쉬기 위해 일하는 것 가운데 어떤 것이 더 성경의 가르침에 가까운 삶의 태도라고 생각하십니까? 일하기 위해 쉬는 것과 쉬기 위해 일하는 것 가운데 어떤 것이 하나님 창조의 원리에 더 가까운 삶의 방식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일하기 위해 쉬느냐? 쉬기 위해 일하느냐? 이것은 단순히 삶의 방식이나 태도에 관한 문제가 아닙니다. 이것은 기독교 신앙에 있어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다윗은 시편 23편에서 여호와 하나님에 대해 고백하기를 자신의 목자 되시는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푸른 초장에 누이시고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신다 했습니다. 다윗의 고백처럼 우리의 선한 목자 되시는 하나님께서는 우리 역시 푸른 초장에 누이시고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시어 우리가 쉼을 누리도록 하십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사람이 쉼을 누리는 것을 성경은 안식이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안식하며 살기를 원하시며 우리를 안식하도록 인도하십니다. 우리가 안식을 누리며 살기를 원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매 주일 규칙적으로 안식할 수 있도록 일주일에 하루를 안식하는 날로 정하셨습니다. 이날을 성경은 안식일이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반드시 지키라고 명하신 안식일은 두 개의 중요한 사건에서 비롯되었습니다. 하나는 창세기에 기록된 하나님의 창조사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엿새 동안 천지 만물을 모두 창조하시고는 일곱 번째 되는 날 모든 일을 마치고 안식하심으로 하나님의 창조를 완성하셨습니다. 이처럼 창세기에 기록된 하나님의 천지창조 사건에서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하나님께서 안식하셨다는 데 있습니다.
창2:3 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그날에 안식하셨음이니라
창세기는 기록하기를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시고 거룩하게 하셨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무슨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피조물에게 주신 가장 위대한 복은 하나님께 함께 누리는 안식임을 가르쳐 주는 말씀입니다. 특별히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사람에게 있어 안식은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누려야 할 가장 중요한 인생의 목적이자 의미라고 해도 조금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반드시 지키라고 명하신 안식일의 두 번째 근거가 되는 사건은 출애굽 사건에서 비롯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430년 동안 이집트의 노예로 살던 히브리인들을 이집트에서 구원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단 하루도 편히 안식하지 못하고 죽을 때까지 평생 노예로 일 만하며 살아야 했던 이들을 구원하여 저들에게 참된 안식을 누리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신5:15 너는 기억하라 네가 애굽 땅에서 종이 되었더니 네 하나님 여호와가 강한 손과 편 팔로 거기서 너를 인도하여 내었나니 그러므로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명령하여 안식일을 지키라 하느니라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안식일을 구별하여 지키는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그 어떤 계명보다 가장 중요하게 지켜야 하는 계명이었습니다. 안식일에 대한 계명은 그 어떤 계명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강력했습니다. 율법에 따르면 안식일을 지키지 않고 안식일에 일하는 사람은 누구라도 반드시 죽이라고 했습니다. 안식에 대한 명령이 너무나 강력해서 자칫 당황스럽게 느껴질 정도입니다.
출31:14-15 너희는 안식일을 지킬지니 이는 너희에게 거룩한 날이 됨이니라 그날을 더럽히는 자는 모두 죽일지며 그날에 일하는 자는 모두 그 백성 중에서 그 생명이 끊어지리라 엿새 동안은 일할 것이나 일곱째 날은 큰 안식일이니 여호와께 거룩한 것이라 안식일에 일하는 자는 누구든지 반드시 죽일지니라
하나님께서는 도대체 왜 그토록 강력하게 안식일을 구별하여 지킬 것을 명령하신 것일까요? 하나님께서 이집트에서 구원하신 히브리인들은 무려 430년 동안을 이집트의 노예로 살면서 단 하루도 쉴 수 없이 일만 했던 이들이 험난한 광야 생활을 하면서 일주일에 하루는 아무 일도 안 하는 것은 차라리 일하는 것보다 더 지키기 어려운 명령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저들을 이집트에서 구원하시고는 그 어떤 계명보다 강력하고 엄중하게 안식일을 지키도록 명령하셨습니다. 그리고는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야말로 저들이 곧 하나님의 백성임을 드러내는 어떤 것보다 중요한 표징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께서는 안식일을 지키는 것으로 저들의 하나님 되심을 증명하는 영원한 언약으로 삼으셨습니다.
출31:13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 이는 나와 너희 사이에 너희 대대의 표징이니 나는 너희를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인 줄 너희가 알게 함이라
출31:16 이같이 이스라엘 자손이 안식일을 지켜서 그것으로 대대로 영원한 언약을 삼을 것이니
안식일을 지키라는 하나님 명령의 핵심이 무엇입니까? 일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은 단지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만 해당하는 명령이 아니었습니다. 저들이 데리고 있는 남종과 여종에게도 적용해야 하는 명령이었습니다. 안식일에는 종들에게도 일을 시켜서는 안 되었습니다. 심지어 일하지 말라는 안식일에 관한 명령은 키우는 짐승과 성에 거하는 외국인에까지 적용되어야 하는 하나님의 법이었습니다.
출20:10 일곱째 날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가축이나 네 문안에 머무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이처럼 안식일에 대한 두 가지 성경의 기원은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영적 도전을 주고 있습니다. 안식일이 하나님의 창조사건에서 비롯되었든지 아니면 출애굽 사건에서 비롯되었든지 안식일의 가장 중요한 핵심은 하던 일을 모두 중단하고 쉬는 것입니다. 끊임없는 생존경쟁과 노동을 하며 살아야 하는 인간의 고통과 수고를 생각할 때 하던 일을 중단하고 쉼을 누리는 안식이야말로 하나님의 위대한 구원 사건입니다.
물론 기독교인 우리는 구약성경의 안식일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가 부활하신 주일을 안식일로 지키고 있습니다. 하지만 비록 지키는 요일은 다르지만, 하나님께서 안식일을 통해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주셨던 안식의 은혜는 여전히 지금 우리에게도 유효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또한, 이스라엘 백성이 안식일을 구별하여 지키는 것으로 하나님의 백성임을 드러냈던 것처럼 주일을 구별하여 지키는 것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우리가 반드시 회복해야 할 영성입니다.
그렇다면 기독교인인 우리에게 있어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합니까? 앞서도 말씀을 드렸지만, 구약성경이 가르치고 있는 안식일을 지키는 방법은 일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집트 노예로 살던 히브리인들에게 일주일에 하루는 일하지 않고 쉬게 하심으로 사람은 일하기 위해 사는 존재가 아니라 일한 것을 누리고 즐기며 살아가는 존재임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것은 신약시대를 사는 지금도 마찬가지 중요한 원리라고 생각하고 믿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평생토록 일만 하는 존재로 창조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자연과 우리가 일한 것을 누리고 즐기며 살아가는 존재로 우리를 창조하셨다고 믿습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일하기 위한 존재로 만드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것을 누리며 사는 존재로 만드셨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사람에게 참된 안식을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요 은총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안식일에 대한 본래의 의미와 목적을 제대로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 결과 안식일을 지키라는 하나님의 계명이 사람을 복 주시는 하나님의 은총이 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못한 죄인만 만들어 내는 억압적인 종교 규례가 되고 말았습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안식일을 정확히 잘 지키기 위해 다양한 규칙과 법규를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들이 안식일을 잘 지키기 위해 종교지도자들이 만든 여러 가지 제도와 규칙에만 집착하다 보니 안식일을 지키게 하신 본래 하나님의 뜻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그 결과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 사람을 위한 일이 아니라 오히려 사람의 삶을 억압하고 속박하고 규제하는 부담스럽고 힘든 일이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당시 종교지도자들이었던 바리새인들과 율법 학자들에게 미움과 증오를 받게 된 결정적인 원인이 무엇입니까? 당시 종교지도자들과 했던 안식일 논쟁 때문이었습니다. 당시 종교지도자들은 안식일에 관한 규정과 규칙을 지키는 것을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안식일을 사람에게 지키게 하신 본질과 뜻을 회복하는 것이 중요하다 가르치셨습니다.
막2:27 또 가라사대 안식일은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니
그렇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안식일을 잘 지키는 것입니까?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결코 안식일에 관한 복잡한 규칙이나 규정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안식일에 관한 여러 가지 규칙과 율례는 안식이라는 목적을 이루기 위한 도구나 수단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유대인 대부분은 안식일에 하나님께서 주신 안식을 누리는 것보다 사람들이 만든 안식일에 관한 규정이나 규칙을 지키는 것에만 집착하였습니다. 그 결과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 사람들에게 안식이 되기는커녕 오히려 사람을 피곤하고 힘들게 만들었으며 심지어 사람들을 정죄하는 수단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것은 기독교인인 우리가 주일을 구별하여 지키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주일을 구별하고 하나님을 기억하고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것은 결국 우리가 하나님께서 주신 안식을 제대로 누리기 위함입니다. 하지만 주일성수라는 교리와 지나치게 많은 예배나 교회 사역에 얽매이는 것은 결국 구약시대 바리새인들의 실수를 그대로 반복하는 것이 되고 맙니다.
안식일을 지키라는 하나님의 명령은 마치 Stop 사인과 같습니다. 신호등의 빨간불과 같습니다. 달력에 주일이 빨간색으로 되어 있는 것도 Stop 사인이라고 생각합니다. Stop 사인을 만나면, 빨간불이 켜지면 달리던 모든 차는 멈추어 서야 합니다. 멈추어서는 직진을 할 것인지 좌회전을 할 것인지 우회전을 할 것인지 아니면 유턴을 해야 할 것인지 내가 가는 방향을 확인해야 합니다. 그리고 올바른 방향을 찾아가야 합니다.
주일을 잘 지키기 위해서는 매일같이 하던 일을 중단하고는 하나님을 기억하고 하나님에 대해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일할 때는 우리는 스스로 하나님과 같아져서는 하나님에 대해 제대로 생각할 수 없습니다. 하던 일을 멈추어야만 비로소 우리는 하나님에 대해 깊이 그리고 제대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던 일을 멈추고 하나님을 깊이 생각할 때에만 우리는 인생 내 힘과 내 능력으로 사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가고 있음을 비로소 깨닫게 될 것입니다.
신학교를 졸업하고 막 목회를 시작했을 때 선배 목사님들에게 가장 많이 들었던 목회 비법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교인들을 느슨하게 풀어 주면 딴생각을 하니까 딴생각하지 못하도록 다양한 예배와 교회 사역과 프로그램으로 교인들을 일주일 내내 뺑뺑이 돌리듯 달달 볶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교인들이 딴생각하지 않고 목사와 교회에 충성한다는 것입니다.
너무나 충격적이어서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지금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선배 목사들의 충고에 하나도 동의가 되지 않았습니다. 이런 마음으로 목회를 하면 목회를 하는 저도 행복하지 못할 것이고 이런 목회자에게 뺑뺑이를 돌리듯 달달 볶이며 신앙 생활하는 교인들도 행복하지 못할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한 번도 그렇게 목회한 적은 없습니다. 오히려 정반대로 목회하려고 애썼습니다.
실제로 너무나 많은 교회가 수없이 많은 예배와 기도회, 성경 공부, 소그룹 모임, 절기마다 열리는 부흥회 노방전도, 단기선교, 각종 바자회 등 이루 셀 수 없는 많은 교회 예배와 행사에 시달리며 신앙 생활합니다. 주일에 안식하기는커녕 평일 직장에 다니는 것보다 더 힘들고 바쁘게 지내야 합니다. 심지어 교회에서 시행하는 모든 예배와 행사에 참여하려면 사회생활이나 가정생활을 아예 포기해야만 할 정도입니다.
도대체 왜 이런 일들이 계속해서 교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까? 교회에 대한 잘못된 생각 때문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잘못된 믿음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교회를 통해 이루시려는 것은, 일이나 사역이 아니라 안식이고 은혜입니다. 그런데 교회는 안식과 은혜는 뒷전이고 일만 하려고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안식과 은혜는 눈에 잘 보이지 않지만 일이나 사역은 금방 눈에 드러나 보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명령하신 안식일 지키라는 말씀은 생존을 위한 일을 멈추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통해 내 삶과 내 일을 뒤돌아보고 내가 정말 하나님의 뜻대로 잘살고 있는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안식의 복을 누리고 있는지 점검해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 힘으로 내 능력으로 사는 인생이 아니라 하나님의 도우심과 인도하심이 필요한 인생임을 깨닫고 인정하는 것입니다.
안식할 줄 알아야 내 가족만 위해서 살던 삶에서 벗어나 이웃의 아픔과 신음도 들을 수 있습니다. 이웃의 아픔과 신음을 듣고 그들을 섬김으로 우리의 행복의 크기를 더 넓혀가야 합니다. 나만 위해 살면 한 사람의 행복만 누리며 살아가게 될 것이고 내 가족만 위해 살면 내 가족의 크기만큼만 행복을 누릴 것이고 더 많은 사람을 위해 살아가는 만큼 우리가 누리는 행복의 크기는 점점 더 커질 것입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시23:2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도다 다윗의 고백처럼 고단하고 피곤한 인생을 위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안식으로 인도하십니다. 안식은 내가 하던 일을 모두 멈추고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르는 것입니다. 왜 우리가 안식을 누리지 못합니까? 내 뜻대로 내 계획대로 안 된다고 안달복달하기 때문입니다. 안식을 누리길 원한다면 내일 일도 모르고 살아가는 내 뜻과 계획보다 영원하신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해야 합니다.
우리는 일하기 위해 지음 받은 존재가 아니라 안식을 누리도록 지음 받은 존재입니다. 안식을 누리길 원한다면 욕심을 좀 내려놓으시기 바랍니다. 건강에 대한 염려도 내려놓으시기 바랍니다. 물질에 대한 염려도 내려놓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내 인생을 가장 좋은 곳으로 이끄시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고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의 피곤한 육신과 상처받은 감정과 감격을 상실한 영혼이 치료되고 회복하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