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와성경공부
시편23편 3절-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시편 233

 

스물한 번째 온라인 라이브 예배입니다. 오늘은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라는 제목으로 절망에 빠진 인생을 다시 회복시키시고 살게 하시는 성경의 가르침에 대해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오늘도 같은 시간 같은 찬양 같은 말씀 같은 기도로 예배드리는 자유교회 성도님들 가정마다 고단한 인생에 베푸시는 하나님의 위로와 안식으로 충만하길 축복합니다.


인생을 살다 보면 누구나 몸에 상처를 입거나 병이 듭니다. 아무리 건강한 사람이라도 상처 하나 없이, 한 번도 병에 걸리지 않고 성장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몸에 상처를 입고 병에 걸리며 살아갑니다. 그런데도 죽지 않고 지금까지 살아 있는 이유는 상처나 병을 제때 치료하였기 때문입니다.


물론 사람의 몸에는 스스로 자신의 몸을 치유하는 힘이 있습니다. 그래서 작은 상처나 병은 잘 먹고 잘 쉬기만 해도 저절로 상처가 치료되거나 병이 낫기도 합니다. 하지만 모든 상처나 병이 저절로 치료되지는 않습니다. 어떤 상처나 병은 약을 바르거나 먹어야 하고 보다 심각한 상처나 병은 반드시 병원을 찾아가서 의사의 치료를 받아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사람의 영혼 역시 인생을 살다 보면 누구나 상처를 입거나 병이 듭니다. 여기에는 그 누구도 예외가 없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살면서 그 영혼에 상처를 입고 병이 듭니다. 치료하지 못한 육신의 상처가 사람을 심각한 질병으로 이끄는 것처럼, 치유하지 못한 영혼의 상처는 우리의 영혼을 병들게 하고 마침내 그 영혼을 죽게 만듭니다.


사람의 신체 가운데 가장 많이 상처가 나는 곳이 어딜까요? 사람의 피부라고 합니다. 스치고 넘어지고 부딪히기만 해도 베이고 찢어지고 멍들고 피가 나는 곳이 사람의 피부입니다. 그래서 대부분 사람이 찢어지고 베이고 찔리고 멍든 상처 하나쯤은 가지고 살아갑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의 피부보다도 더 약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의 마음과 영혼입니다. 무심코 던진 말 한마디에도 상처를 받는 것이 마음이며 영혼입니다. 사람의 눈에서 레이저 광선이 나가는 것도 아닌데 눈빛 하나에도 마음과 영혼이 상처를 받기도 합니다. 사람의 손에서 장풍이 나가는 것도 아닌데 사소한 손짓 하나에도 상처를 받을 수 있는 것이 사람의 마음이며 영혼입니다.


이처럼 우리의 마음과 영혼은 정말 사소해 보이는 작은 것에도 너무나 쉽게 상처받고 병이 듭니다. 몸에 난 상처나 병을 제때 치료해야 몸에 난 상처나 병이 커지고 심각해지는 것을 막을 수 있는 것처럼 마음의 상처나 영혼의 병도 마찬가지입니다. 제때 치료하고 회복하지 않으면 마음의 상처와 영혼의 병은 점점 커지고 심각해져 우리의 몸은 물론이고 우리의 삶 전체를 무너뜨리고 맙니다.


병원과 의사가 약과 메스를 가지고 사람 몸의 상처나 병을 치료한다면 교회와 목사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영혼의 상처나 병을 치료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의 영혼을 치료하는 메스와 같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가르치기를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고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한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4: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죄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하지만 여기에는 매우 주의해야 할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성경의 말씀처럼 하나님의 말씀은 좌우에 날이 선 검보다 예리하고 날카롭습니다. 그래서 잘못 사용하면 치료는커녕 오히려 마음과 영혼에 더 큰 상처를 낼 수 있습니다. 마치 의사의 손에 쥐어진 메스를 잘못 사용하면 사람을 죽일 수 있는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잘못 사용하면 사람의 영혼에 더 큰 상처를 낼 수도 있음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해야 하는 목사로서 이 사실이 늘 큰 부담이 됩니다. 불완전하며 성숙하지 못한 인격을 가진 목사의 말로 전달되는 하나님의 말씀이기에 어떤 사람에게는 치유가 될 수도 있겠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상처가 될 수도 있음을 제가 너무 잘 압니다. 그래서 저는 설교하는 것이 늘 부담스럽고 힘이 듭니다.


그런데도 설교를 듣고 마음과 영혼에 상처가 되었다면 모든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 저의 부족이며 예수님의 마음을 가지지 못한 목사의 잘못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결코 여러분을 정죄하거나 상처 주기 위함이 아님을 늘 마음에 두고 말씀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부족한 목사가 전하는 하나님 말씀이 상처가 되지 않고 저와 여러분의 영혼을 치료하고 소생케 하는 은혜로 충만하기를 바랄 뿐입니다.


시편 233절 나의 영혼을 소생시키신다는 다윗의 고백은 오늘 우리에게도 기쁜 소식이 아닐 수 없습니다. 다윗의 영혼을 소생시키신 하나님은 오늘 우리의 영혼도 소생시키시는 같으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럼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우리의 영혼을 소생시키십니까? 하나님께서 다윗을 어떻게 소생시키셨는가를 살펴보면 우리의 영혼을 어떻게 소생시키시는 가를 알 수 있습니다.


다윗은 누구보다도 신실한 믿음의 사람이었지만 동시에 누구보다도 심각한 죄를 지은 사람이었습니다. 우리가 그러하듯 다윗 역시 살면서 많은 실수와 죄를 지었습니다. 다윗의 수많은 실수와 죄 가운데 가장 심각하고 중대한 것을 들라고 한다면 다윗이 욕정에 사로잡혀서 전쟁에 나간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와 간음을 하고는 자신의 죄를 감추기 위해 우리야를 죽인 것입니다.


이 사건은 다윗의 생애에서 다윗의 영혼을 송두리째 무너뜨린 가장 심각하고 중대한 죄였습니다. 이 사건으로 다윗의 영혼은 완전히 망가졌습니다. 더는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그의 영혼은 망가지고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죽어가는 다윗의 영혼을 그냥 그대로 내버려 두지 않으셨습니다. 나단 선지자를 보내어 그가 지은 죄를 깨닫게 하시고 그의 영혼을 치유하고 소생시키시길 원하셨습니다.


죄로 인해 죽어가는 다윗의 영혼을 회복시키는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이 밧세바와의 불륜으로 인해 낳게 된 아이를 병들게 하셨습니다. 물론 다윗과 밧세바가 지은 죄의 대가를 아이에게 돌리는 것이 잘 이해는 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아버지 다윗의 죄를 대신해 병든 아이는 마치 우리의 죄를 대신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메타포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삼하12:15 나단이 자기 집으로 돌아가니라 우리아의 아내가 다윗에게 낳은 아이를 여호와께서 치시매 심히 앓는지라


다윗은 자신의 불륜으로 태어난 아이가 병들어 시름시름 앓는 것을 보고는 자신이 저지를 죄로 인한 것임을 인정하고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병들어 죽어가는 아기를 살리기 위해 무릎을 꿇고 금식하면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이 아기는 잘못한 것이 없습니다. 모든 것이 전적으로 저의 죄 때문입니다. 저를 벌하시고 아기를 살려 주세요.”


삼하12:16-17 다윗이 그 아이를 위하여 하나님께 간구하되 다윗이 금식하고 안에 들어가서 밤새도록 땅에 엎드렸으니 그 집의 늙은 자들이 그 곁에 서서 다윗을 땅에서 일으키려 하되 왕이 듣지 아니하고 그들과 더불어 먹지도 아니하더라


죄책감보다 영혼을 더 빨리 무너뜨리고 파괴하는 것은 없습니다. 우리 역시 많은 죄책감을 느끼고 살아갑니다. 왜냐하면, 우리도 다윗과 다를 바 없는 탐욕스러운 불완전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역시 살면서 숱한 실수를 하고 탐욕 때문에 죄를 짓습니다. 그리고 그 죄로 인해 타인에게 상처를 주고 고통을 받는 것을 보면서 죄책감을 느끼며 살아갑니다.


어떻게 해야 죄책감에서 벗어나 죽어가는 우리의 영혼을 소생시킬 수 있습니까? 많은 이들이 자신의 실수나 죄를 부인하고 부정하는 것으로 죄책감에서 벗어나려고 합니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감추려고 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부인하고 감춘다고 해도 그렇게 되지 않습니다. 해결되지 않은 죄책감은 우리 마음 깊숙한 곳에 숨어 있다가 예상치 못한 순간에 마음 위로 떠 올라 우리의 삶을 괴롭힙니다. 죄를 부인하거나 감추는 것으로는 하는 것으로는 결코 죄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또 다른 방법으로는 자신의 죄를 합리화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죄를 합리화하는 것은 사람은 누구나 다 그런 일을 저질러라고 스스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물론 당연히 그럴 수 있습니다. 사람은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누구나 죄를 짓고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다른 사람들도 모두 죄를 지으며 살아간다고 하더라도, 다른 사람의 행동에 근거하여 자신이 잘못한 것을 합리화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같이 죽은 길이지 결코 죽어가는 영혼을 살리는 길이 아닙니다.


또 다른 방법으로는 같은 죄를 반복함으로 죄의식이나 죄책감을 느끼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죄를 두 번 저지르게 되면 처음 저지를 때보다 훨씬 죄의식을 덜 느끼게 된다." 물론 같은 죄를 세 번 네 번 반복하며 처음 할 때처럼 그렇게 심각한 죄의식이나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우리의 양심을 무디게 만드는 것입니다. 양심을 무디게 만드는 것으로는 우리의 영혼을 살릴 수 없습니다. 오히려 우리의 영혼을 죽일 뿐입니다.


이런 방법으로는 우리의 영혼을 죽이는 죄의식을 해결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영혼을 죽이는 죄의식을 해결하는 유일한 해결책은 다윗이 그러했던 것처럼 우리의 죄를 그대로 인정하고 하나님께 고백하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다른 방법으로는 우리의 죄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우리를 죄를 해결하시고 용서하시고 제거하실 수 있는 유일한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밖에 없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하지만 다윗의 금식과 기도에도 불구하고 아기는 살아나지 못했습니다. 다윗이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회개함으로 그의 죄가 용서받았다고는 하지만 죄의 대가, 죄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용서하시는 것은, 우리의 죄이지 죄에 대한 대가나 죄에 대한 책임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분명 다윗의 죄를 용서하셨습니다. 하지만 다윗이 지은 죄에 대한 대가나 책임까지 면제시켜주시는 것은 아닙니다. 이것을 분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내가 지은 죄에 대한 대가를 감당하고 책임을 지게 하는 것은 우리를 용서하지 않으셨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를 죄에서 완전히 자유롭게 하려는 하나님의 방법이십니다.


다윗은 갓 태어난 아기가 병들자 아이를 살려달라고 금식하고 울며 하나님께 매달렸습니다. 하지만 병든 아기는 살아나지 못하고 죽고 말았습니다. 신하들 모두 걱정했습니다. 아기가 병들었을 때도 왕이 엎드려 금식하고 울었는데 아기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는 더 깊은 좌절과 절망에 빠질 것을 염려했습니다.


하지만 다윗은 아기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는 즉시로 땅에서 일어나 몸을 씻고 기름을 바르고 의복을 갈아입었습니다. 그리고 여호와의 전에 들어가서는 하나님을 경배하고는 왕궁으로 돌아와 음식을 먹었습니다. 신하들은 다윗의 행동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신하들이 다윗에게 묻습니다. 아이가 살았을 때는 그를 위하여 금식하고 우시더니 죽은 후에는 일어나서 음식을 드시는 것이 어찌 된 일입니까?


삼하12:20 다윗이 땅에서 일어나 몸을 씻고 기름을 바르고 의복을 갈아입고 여호와의 전에 들어가서 경배하고 왕궁으로 돌아와 명령하여 음식을 그 앞에 차리게 하고 먹은지라


다윗이 뭐라고 대답했습니까? 아이가 살았을 때 다윗이 금식하고 운 것은 혹시 여호와께서 자신을 불쌍히 여기시어 아이를 살려 주시지 않을까 여겼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아이가 죽었으니 더는 자신이 울고불고 매달린다고 죽은 아기가 다시 살아 올 수 없음을 알기 때문이라고 대답합니다.


삼하12:22-23 이르되 아이가 살았을 때에 내가 금식하고 운 것은 혹시 여호와께서 나를 불쌍히 여기사 아이를 살려 주실는지 누가 알까 생각함이거니와 지금은 죽었으니 내가 어찌 금식하랴 내가 다시 돌아오게 할 수 있느냐 나는 그에게로 가려니와 그는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리라 하니라


다윗은 더는 바꿀 수 없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인정했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슬퍼하고 억울해도 흘러가 지나가 버린 과거를 바꿀 수는 없습니다. 이미 지나간 과거의 사건으로 인해 상처 난 내 영혼이 소생하기를 원한다면 내가 바꿀 수 없는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인정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깊은 좌절과 절망에 빠진 영혼이 다시 살아날 수 있습니다.


다윗은 아기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는 즉시로 금식하며 기도하는 것을 중단하고는 하나님께 경배드리고 음식을 먹었습니다. 음식을 먹고 힘을 얻은 다윗이 가장 먼저 한 일이 무엇입니까? 그의 아내 밧세바를 위로한 것입니다. 성경은 이전까지 밧세바를 우리야의 아내라고 기록하였습니다. 하지만 이제 밧세바를 다윗의 아내라고 기록합니다.


삼하12:24 다윗이 그의 아내 밧세바를 위로하고 그에게 들어가 그와 동침하였더니 그가 아들을 낳으매 그의 이름을 솔로몬이라 하니라


이 사실이 주는 영적 도전이 무엇입니까? 잃어버린 것들이 아니라 남아 있는 자들에게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미 잃어버린 것으로는 무너져버린 우리의 기업이나 영혼을 다시 살릴 수 없습니다. 무너져버린 우리의 기업이나 영혼을 다시 살릴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여전히 우리에게 남아 있는 것들입니다. 남아 있는 것들에 초점을 맞출 수 있을 때 다윗이 그러했던 것처럼 우리 역시 소생의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영어로 ‘bitter’‘better’‘I’의 차이입니다. 이 사실은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교훈을 준다고 생각합니다. bitterbetter‘I’ 즉 나의 선택에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내가 저지른 실수나 죄 또는 내가 겪은 인생의 좌절이나 절망이 내 인생이나 영혼을 쓰디쓴 인생이나 영혼이 되게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이전보다 더 나은 인생이나 영혼이 되게 하는 것 역시 전적으로 나의 선택과 결정에 달려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내 실수나 죄로 인해 또는 Covid-19과 같은 전혀 예상치 못한 역경으로 인해 겪어야 하는 상처나 고난이 우리를 이전보다 더 쓰디쓴 인생이나 영혼이 되게도 하지만 반면에 내가 겪은 시련이나 어려움으로 인해 이전보다 훨씬 더 나은 사람이 되게도 하는 능력이 우리가 겪는 고난이나 역경에 있습니다.


사람은 결코 승승장구할 때, 형통할 때, 인생이 잘 나간다고 생각할 때 변화되지 않습니다. 하는 일마다 승승장구하고 형통한 데 누가 자신의 삶을 바꾸려고 하겠습니까! 다윗이 꼭 그러했습니다. 그는 나가는 전쟁마다 승리하고 하는 일마다 형통했습니다. 그러자 그는 교만해져서 자신이 못 할 일은 없다고 여긴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목욕하는 밧세바를 보고는 그녀가 우리야의 아내임을 알면서도 자기 여자로 만드는 죄를 지었습니다.


반면에 우리가 실수하거나 잘못을 했을 때 또는 예상치 못한 고난이나 어려움을 만나게 되면 비로소 우리는 자신에게 문제가 있음을 알게 됩니다. 내 힘이나 능력으로 내 인생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럴 때 비로소 우리는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의 의지하고 하나님께 자기 인생과 영혼을 맡기는 변화를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많은 분이 계속되는 Covid-19으로 인해 심각한 경제적 어려움이나, 정서적 고통 또는 신체적 고통으로 힘들어하고 계십니다. 도무지 언제 끝날 줄 모르는 Covid-19 사태를 겪으며 깊은 좌절과 절망에 빠진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버리시고 벌주시는 것이 아닌가 의심이 드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저는 이러한 생각에 조금도 동의할 수 없습니다. 성경이 가르쳐주는 하나님의 뜻은 분명합니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은 심판이나 멸망이 아닙니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은 구원이며 회복이고 우리를 다시 살리시려는 소생이라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이러한 어려움을 겪도록 내버려 두시는 것은 병들어가는 지구 생태계를 살리시고 도무지 끝이라고는 찾을 수 없는 인간들의 탐욕을 중단시키기 위함이라 믿습니다.


좌절하지도. 절망하지도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무너지고 쓰러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영혼을 소생시키시는 좋으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탐욕을 멈추시므로 지구 생태계를 소생시키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들의 탐욕을 위해 하나님마저 제멋대로 이용하는 이 땅의 교회를 중단시키어 신앙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고민하게 하시고 기도하게 하십니다.


바라기는 우리가 겪는 이 어려움이 우리를 이전보다 훨씬 더 나은 인생과 영혼으로 소생시키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되실 수 있기를 정말 간절히 바라고 축복하고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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