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와성경공부
시편23편 3절 -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 하나님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 하나님

시편 233

 

스물두 번째 온라인 라이브 예배입니다. 오늘은 시편 23편 가운데 3절 후반부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 도다.”라는 말씀으로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이라는 제목으로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우리를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 가에 대해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오늘도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주시는 은혜와 깨달음과 영적 도전으로 충만하길 바랍니다.


지난주 우리는 우리 영혼을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영혼을 보살피시고 고치시고 살려내는 선한 목자이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영혼을 소생시킨다는 말씀은 그 어떤 것보다 중요하고 기쁜 소식입니다. 비록 우리가 어떠한 형편과 처지와 상황에 놓였다 할지라도 우리 영혼이 무너지지 않으면 이겨내지 못할 형편과 처지와 상황은 아무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팔다리가 마비된 상태로 태어난 사람이 전신이 멀쩡한 사람보다도 더 행복하고 존귀하게 살기도 합니다. 반대로 전신이 멀쩡한데도 평생을 자신의 인생을 원망하고 불평하며 살기도 합니다. 가난하게 살면서도 부자들보다 더 행복하고 존귀하게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반대로 남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부자이면서도 평생을 불행하고 비천하게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도대체 왜 이런 현상이 생기는 것입니까? 그 이유는 바로 사람은 영적인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영적인 존재이기에 신체적으로 건강하기만 하다고 물질적으로 풍요롭기만 하다고 행복한 삶을 사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의 몸과 마음을 능히 다스리는 영혼이 살아 있어야 비로소 행복하고 존귀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의 영혼이 소생하기만 하면 어떤 환경이나 고난도 문제 될 것이 없습니다.


오늘 묵상하는 시편의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영혼을 소생시키고 난 후에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영혼을 소생케 하시는 이유는 하나님의 이름을 위하여 우리를 의의 길로 인도하시기 위함입니다. 영적 침체에 빠진 영혼, 죽어가는 영혼으로는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의의 길을 가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먼저 죽어가는 우리의 영혼을 소생시키시는 것입니다.


그럼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의의 길은 어떤 길입니까? 예수님은 여기에 대해 분명하고 확실한 답을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의의 길은 어떤 길입니까? 그 길은 좁고 험하고 힘들기에 사람들이 좀처럼 잘 가려고 하지 않는 좁은 문이며 좁은 길이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7:13-14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


넓은 문, 넓은 길을 선택하고 그 길을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특별히 해야 할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저 지금까지 내가 살던 그대로 살기만 하면 됩니다. 이 길을 가기 위해선 아무런 변화나 용기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저 내가 원하는 대로, 내가 욕심내는 대로,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살기만 하면 됩니다. 그래서 그 길은 넓은 길이며, 쉬운 길이며, 편한 길인 것입니다.


하지만 좁은 문, 좁은 길을 선택하고 그 길을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지금까지 우리가 살던 방식대로 살면 안 됩니다. 어떤 식으로든 반드시 변해야 합니다. 이전과는 완전히 달라져야 합니다. 세상의 방식에 순종하지 말고 세상에 저항해야 합니다. 대신에 하나님의 가르침에 순종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 길은 좁고 힘들고 불편한 길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사람들은 어떤 문 어떤 길을 가고 싶어 할까요? 대부분 사람은 당장 편하고 쉽고 넓은 길을 가려고 합니다. 반면에 좁고 험하고 힘든 길을 가려고 하는 사람들은 별로 많지 않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가르침에 의하면 그 두 길의 끝은 멸망과 생명이라는 서로 다른 두 목적지에서 끝이 납니다. 당장 편하고 쉽고 넓은 길은 사람들을 멸망으로 인도하고 당장 힘들고 어렵고 좁은 길은 생명으로 인도한다고 가르치셨습니다.


예수님의 분명하고 명확한 가르침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여전히 좁은 문, 좁은 길보다는 넓은 문, 넓은 길을 찾고 그 길을 가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 이야기가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많은 이들이 예수님의 가르침과는 전혀 다른 길을 갑니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기독교의 역사에서 반복되고 있는 것입니까? 그것은 바로 선택과 결정을 하는 우리의 기준에 문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문으로 들어가야 할지, 어떤 길로 가야 할지를 결정하는 우리의 가장 중요한 기준이나 원칙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어떤 것이 당장 내게 더 큰 이익이 되느냐를 가장 중요한 선택과 결정의 기준으로 삼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너무나 당연한 듯이 어떤 것이 당장 내게 더 이익이 되느냐를 가장 중요한 선택과 결정의 기준이나 원칙으로 삼습니다. 당장 내가 얻을 이익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여기는 사람에게는 당연히 어떤 것이 더 쉬운 길이며, 어떤 것이 더 편한 길이고, 어떤 것이 더 많은 이익을 줄 것인지가 선택과 결정에 있어 가장 중요한 문제가 됩니다.


당장 눈앞에 보이는 이익을 가장 중요한 선택의 기준으로 삼으니까 그것이 나중에 또는 훗날 나를 어떤 곳으로 인도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저 당장 어떤 것에 나에게 더 편한지, 어떤 것이 나에게 쉬운지, 어떤 것이 나에게 더 많은 이익을 줄 것인가? 오로지 이것만 생각하며 살아갑니다.


그 결과가 무엇입니까?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우리를 생명으로 인도하는 좁은 문, 좁은 길을 선택하고 그 길을 가며 살려고 하지 않습니다. 대신에 당장 편한 넓은 문, 넓은 길에 마음을 빼앗기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심지어 그 끝이 우리를 멸망으로 인도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당장 편함을 위해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어리석은 우리의 현실이며 모습입니다.


멸망을 향해 가는 삶이 아니라 생명을 향해 가는 삶을 살기를 원한다면 지금 당장 우리의 선택과 결정에 대한 기준을 바꾸어야 합니다. 무엇이 당장 내게 이익이 되느냐가 더는 우리의 선택의 기준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대신에 무엇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르는 길인가? 무엇이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길인가? 무엇이 우리가 마땅히 가야 하는 옳은 길인가가? 이것을 우리의 선택과 결정의 기준으로 삼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신앙이란 근본적으로 좁은 길을 가는 것입니다. 남들이 가지 않으려는 좁은 문, 좁은 길, 어려운 길을 가는 것이 신앙입니다. 세상 사람들과 똑같은 것을 원하고 바란다면 굳이 이 힘들고 어려운 신앙의 길을 가실 필요가 없습니다. 세상 사람들과는 다른 것을 추구하고, 세상과는 다른 것을 바라고, 세상과는 다른 것을 이루기 위해 우리는 신앙의 길을 가는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날 너무나 많은 교인이 세상과 다른 것을 구하고 바라기 위해 교회에 다니지 않습니다. 아무도 교회를 다니는 것을 좁은 길을 가는 것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세상이 구하고 바라는 것을 어떻게 하면 좀 더 빠르게 그리고 쉽게 얻을 수 있을까 하는 마음으로 예수를 믿습니다. 부와 권세를 가진 연줄을 얻기 위해 교회를 다닙니다. 가짜 복음이 주는 일시적이고 감정적인 위로를 얻기 위해 교회를 다닙니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교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입니까? 세상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인 돈과 권력과 성공이 교회와 교인들에게도 가장 중요한 가치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더 많은 돈이, 더 큰 힘이, 더 높은 성공이 세상에 영향을 줄 수 있고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생각이 교회와 교인들의 신앙이 되고 믿음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은, 교회를 다니면서 좀 더 편하게 그리고 좀 더 쉽게 교회를 다니려고 교회를 선택하고 결정하는 사람들입니다. 신앙을 가진다는 것은 그 자체가 세상과는 다른 길을 가기 위해 스스로 좁은 길을 가는 것인데 신앙의 길을 간다고 하면서 편하고 쉬운 길을 찾아 교회를 찾고 교회를 다니는 것은 스스로 자신의 신앙을 왜곡하는 것입니다.


그럼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어떻게 의의 길로 인도하십니까? 우리를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방법은 시험입니다. 교인들 대부분은 예상치 못한 인생의 시험을 만나면 당황해합니다. 내가 얼마나 열심히 신앙생활 하는 왜 내게 이런 시험을 주시는지 의문을 가집니다. 때로는 원망도 합니다. 어떤 이들은 시험을 받는다는 사실만으로 낙심하거나 좌절합니다.


하지만 인생의 시험에 관해 분명히 알아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시험은 우리의 신앙에 문제가 있거나 믿음이 부족하기에 받는 것이 아닙니다. 시험받을 때마다 우리가 잊지 않고 반드시 명심해야 하는 것은 우리가 받는 시험은 우리를 넘어뜨리기 위함이 아니라 우리를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방법이라는 것입니다.


어떤 면에서 본다면 우리는 시험을 하나님의 칭찬으로 여길 수 있습니다. 시험을 받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에게 속하였다는 강력한 증거이기도 합니다. 사탄은 자기의 뜻을 따르는 사람들은 결코, 시험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이미 사탄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시험을 받는 것은 우리가 약하거나 타락하셨기 때문이 아니라, 사탄이 우리를 싫어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시험을 당하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께 속하여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의의 길로 인도하시기 위해 우리를 시험하십니다. 물론 때론 하나님과의 관계를 깨기 위해 사탄이 우리를 시험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어떤 경우라 할지라도 시험이 있다는 것은 우리가 세상에 속하지 않고 하나님께 속하였다는 증거입니다. 시험이 있다는 것은 내가 제대로 믿기 시작하였다는 증거입니다.


우리가 겪는 시험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든지 사탄에게 온 것이든 우리가 겪는 모든 시험에는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우리에게 시험을 겪게 하고 시험을 통과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많은 이들이 시험을 믿음이 적은 자들이나 없는 자들을 구별하고 추려내기 위함이라고 여깁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넘어뜨리고 정죄하고 심판하기 위해 시험을 허락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시험을 허락하시는 유일한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오로지 우리를 이전보다 더 성숙하고 신실한 믿음의 사람이 되게 하기 위함입니다.


4:13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예수님을 닮아가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예수님께서 경험하신 것과 같은 경험을 하게 하십니다. 예수님이 그러하셨던 것처럼 우리 역시 신앙생활을 통해 외로움, 유혹, 비난, 거절, 배신 그리고 그 외의 여러 가지 인생의 문제를 겪게 하십니다. 그 이유는 오로지 우리가 날마다 예수님을 더욱 닮아가는 사람이 되길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물론 우리가 겪는 시험들이 항상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결과를 가져오지는 않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믿음의 사람들도 항상 시험을 통과하고 이기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아담과 하와는 유혹을 이기는 시험을 통과하지 못했고, 다윗도 여러 번 시험에 실패했습니다. 엘리야 선지자도 시험에 들어 낙심하고 절망하기도 했습니다.


많은 사람이 시험을 통해 그 믿음이 성장하기보다는 오히려 낙심하고 절망하며 심지어 믿음마저 포기하기도 합니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생기는 것입니까? 시험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놓쳐버렸기 때문입니다. 시험을 통해 이루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아니 알려고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든 심지어 사탄에게서 온 것이라도 모든 시험은 우리의 영성과 믿음을 성장하게 만드는 가장 좋은 기회입니다. 시험을 당할 때마다 우리는 시험에 들어 잘못된 선택과 결정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가 겪는 시험을 통해 옳은 일을 선택하고 결정하는 기회가 되기도 합니다.


시험은 항상 우리에게 선택의 기회를 줍니다. 사탄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파괴하는 도구로 우리를 시험한다면 하나님께서는 이런 사탄의 시험마저도 하나님과 관계를 더 친밀하고 깊게 만드는 도구로 사용하십니다. 시험당할 때 죄를 짓는 대신 선을 행하기로 선택할 때마다 우리는 예수님을 닮아가며 더욱 자라나게 될 것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이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이웃을 좀더 사랑하는 사람이 되시기를 원하실 때면 우리 주변에 전혀 사랑스럽지 않은 사람들, 도무지 사랑할 수 없을 것 같은 사람들을 가까이 두십니다. 그리고 이런 사람과 상황을 통해 우리에게 사랑을 가르치십니다.


만약 우리 주위에 사랑할 만하고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로만 가득 차 있다면 이런 사람들을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과는 아무런 상관없는 일이 됩니다. 굳이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아니어도 나를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사랑하는 것은 조금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아니어도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분명하고 단호하게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는 것에는 아무런 상이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사랑을 배우길 원하고 우리의 믿음이 성숙하길 원하실 때면 우리가 도무지 사랑하기 힘든 사람들은 주변에 두시고 우리에게 사랑을 배우게 하십니다. 이런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절대로 저절로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신실한 믿음이 없고서는 도무지 불가능합니다.


5:46-47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또 너희가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과 정반대의 상황과 시험을 겪게 하심으로 하나님께선 정말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을 이루어가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계획대로 일이 진행되지 않고 혼란스럽고 당황스러운 상황을 경험하게 하심으로 우리 안에 진정한 평안을 배우게 하십니다. 아름다운 자연을 보면서, 혹은 휴가를 즐기면서는 누구라도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정말 우리에게 주시길 원하시는 평안은 걱정과 두려움으로 시험당하는 상황 속에서 하나님을 신뢰하기로 선택함으로써 세상이 주는 것과는 전혀 다른 오직 하나님께서만 주시는 참된 평안을 배우고 누리게 하십니다. 마찬가지로 분노와 조급함의 상황과 시험을 통해 인내를 가르치고 배우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믿음과 영성은 상황과 형편에 따라 매일같이 변하고 흔들리는 믿음이 아닙니다. 어떠한 상황과 형편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믿음과 영성을 가지길 원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바라시는 것과 정반대의 상황을 사용하시어 우리를 시험하고 훈련하여 우리를 의의 길로 인도하십니다.


만약 한 번도 시험을 받지 못했다면 누구도 자신의 믿음이 온전하다고 주장할 수 없습니다. 거짓을 말해야 하는 시험을 겪지 않았다면 결코 우리는 정직하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진정한 겸손은 우리가 교만해질 수 있는 상황에 놓였을 때만 만들어집니다. 인내는 포기하려는 시험을 이겨낼 때마다 강해집니다.


시험을 받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시험을 이기는 것이 우리의 문제입니다. 시험을 이기려면 내가 겪고 있는 시험이나 고통에 초점을 맞추어서는 절대로 시험을 이길 수 없습니다. 지금 내가 겪는 시험이나 문제가 아닌 하나님의 계획에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어디에 초점을 두느냐가 내가 겪는 시험을 이기게도 하도 넘어지게도 하는 도구가 됩니다. 무엇에 집중하느냐에 따라 생각과 감정이 결정됩니다.


다윗은 그 인생에 누구보다 많은 시험을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다윗은 자신이 겪어야 하는 시험이 자신을 넘어뜨리기 위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이루는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 시험임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며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 도다.” 고백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의 삶은 인생 그 자체가 모두 시험입니다. 삶이, 인생이 시험이라는 사실을 깨달으면 우리는 삶에서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하루하루가 중요한 날이고, 매 순간이 우리의 믿음과 영성을 성장하게 하는 하나님의 시험이라는 사실을 마음에 두어야 합니다.


삶 그 자체가 시험이라는 불편한 진리 가운데 복된 소식이 있다면 하나님은 우리가 겪는 모든 삶의 시험을 통과하길 원하신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직면하는 모든 시험은 우리는 능히 감당할 수 있고, 이겨낼 수 있는 길을 주십니다. 이겨내지 못할 시험은 없습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시험을 허락하신 하나님의 언약입니다.


고전10:13 사람이 감당할 시험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말씀을 마칩니다. 만일 여러분이 지금 시험을 받고 있다면 왜 저입니까?” 또는 왜 지금입니까?”라는 질문 대신에 하나님 제가 무엇을 배우기 원하십니까?” 질문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시험받는 우리를 하나님의 이름을 걸고 의의 길로 선한 길로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 은혜가 저와 여러분이 삶과 신앙의 여정에 풍성하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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