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와성경공부
시편 23편 5절-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시편 235

 

스물네 번째 온라인 라이브 예배입니다. 오늘은 시편 235절 전반부의 말씀으로 내 원수의 목전에서라는 제목으로 시편 23편의 노래를 통해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오늘 말씀에서 등장하는 원수는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원수가 아닙니다. 다윗이 노래하고 있는 원수는 다윗이 미워하고 싫어했던 원수가 아니라 다윗을 미워하고 싫어했던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이 사실을 주의하여 오늘도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주시는 은혜와 깨달음 그리고 영적 도전으로 충만하길 바랍니다.


많은 사람이 다른 사람들이 모두 자기를 좋아할 것이라는 착각과 오해 속에서 살아갑니다. 하지만 현실은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세상에 그 어떤 사람도 모든 사람으로부터 사랑받기만 하고 미움받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물론 이것은 너무나 당연한 사실이지만 사람들 대부분은 이 사실을 경험할 때마다 당혹해합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나름대로 목회를 하며 산전수전 다 겪었다고는 하지만 지금도 여전히 제가 섬기는 우리 교회 교인 중에 저를 좋아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하거나 깨달을 때마다 당혹스럽습니다. 좋아하기는커녕 저를 미워하거나 싫어하여 교회를 떠난 사람들도 꽤 많이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너무나 당혹스럽습니다.


물론 머리로는 아무리 제가 섬기는 우리 교회 교인이라고 해도 모든 교인이 다 저를 좋아하지 않는 것이 너무나 당연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막상 저를 미워하거나 싫어하는 사람을 만나거나 경험하게 되면 지금도 여전히 당혹스럽고 상처를 받고 마음이 아프고 힘이 듭니다.


미움받는 것에 대해 반드시 명심해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아무리 모두가 좋아할 만한 착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아무리 모두가 사랑할 만한 의로운 사람이라 할지라도 모든 사람에게서 사랑받을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사람이라도, 아무리 의로운 사람이라도 세상에는 그런 사람을 미워하고 싫어하는 사람들이 반드시 있습니다. 그것도 한두 명이 아니라 꽤 많이 있습니다.


반대의 경우도 있습니다. 내 생각에는 저 사람은 반드시 모든 사람이 미워하고 싫어해야 할 나쁜 사람, 악한 사람이 있습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그를 미워하거나 싫어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런 사람을 좋아하고 그런 사람에게 열광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 또한 한두 명이 아니라 꽤 많이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사는 세상의 엄연한 현실입니다.


똑같은 사람을 두고 그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지만, 반대로 그 사람을 싫어하는 사람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합니까? 어떤 한 사람에 대해 좋고 싫음은 반드시 그 사람에게만 달린 문제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좋고 싫음은 그 사람 자체의 문제이기보다는 그 사람을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사람에게 달린 문제라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것은 그 사람에 대한 객관적이고 공정한 평가에 의한 것이 아닙니다. 철저히 개인의 감정과 취향에 따라 좋아하는 사람과 싫어하는 사람으로 나누어진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 때문에 아무리 선하고 바른 삶을 산다고 해도 모든 사람에게 좋은 감정을 얻지 못합니다. 오히려 선하고 바른 삶을 사는 것 때문에 미운 감정을 받을 수도 있는 것이 사람과의 관계입니다.


결국, 아무리 모든 사람에게 사랑받기 위해 노력하며 산다고 해도 모든 사람이 좋아하고 모든 사람에게 사랑받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아무리 좋은 사람이라고 해도, 아무리 선한 사람이라고 해도, 누군가에겐 시기와 질투 또는 미움과 증오를 받으며 살아갑니다. 모든 사람이 나를 좋아하도록 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여기에는 예외가 없습니다. 다만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입니다.


따라서 모든 사람이 나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또는 모든 사람이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실망하거나 낙심할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물론 모든 사람이 나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모든 교인이 나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우리를 당혹스럽게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이 다른 사람이 자신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 때문에 불안해하며 힘들어합니다.


하지만 조금만 진지하게 생각해 보면 모든 사람이 나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전혀 당혹스러운 일도 불안해할 일도 아님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오히려 나를 좋아하지 않거나 미워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사실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을 것입니다.


역으로 생각해서 싫어하거나 미워하는 사람이 한 명도 없는 사람이 세상에 있을까요? 싫어하는 사람이 미워하는 사람이 한 명도 없는 사람은 세상에 단 한 명도 없습니다. 누구라도 세상 모든 사람을 다 좋아하지 않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좋아하는 사람도 있으면, 싫어하는 사람도 반드시 있기 마련입니다. 물론 이것은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따라서 내가 그러한 것처럼 세상 모든 사람이 다 나를 좋아하지 않고 미워하고 싫어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당연한 사실로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합니다. 나를 미워하거나 싫어하는 사람을 만나면 불안해 할 것이 아니라 마땅히 겪어야 하는 일을 겪는다는 당당함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야만 상대방의 미움이나 증오 때문에 내가 상처받고 무너지는 것을 막을 수 있습니다.


신약성경 사도행전은 다윗에 대해 하나님 마음에 꼭 맞는 사람이며 하나님의 뜻을 다 이룰 사람이라고 기록했습니다. 성경의 기록처럼 다윗이 비록 하나님 마음에 꼭 맞는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다윗을 아는 모든 사람이 다윗을 마음에 들어 하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다윗은 그 어떤 사람보다 많은 미움과 증오를 받으며 살아야 했습니다.


13:22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증언하여 이르시되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리라 하시더니


비록 다윗이 하나님 마음에 맞는 사람이었지만 그는 자기를 낳은 아버지 이새의 마음에도 들지 못했던 아들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무엘 선지자를 이새의 집으로 보내며 타락한 사울을 대신해 장차 왕으로 세울 자에게 기름을 부으라고 했습니다. 이새는 자기 아들 일곱을 사무엘 선지자에게 불러 모으면서도 막내아들 다윗은 부르지 않았습니다.


삼상16:11 또 사무엘이 이새에게 이르되 네 아들들이 다 여기 있느냐 이새가 이르되 아직 막내가 남았는데 그는 양을 지키나이다


다윗은 형들에게도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다윗이 아버지의 심부름으로 블레셋과의 전쟁에 나간 형들에게 음식을 가져다주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다윗의 맏형 엘리압은 자신들을 위해 음식을 가지고 먼 길을 찾아온 다윗에게 화를 냅니다. 도대체 돌보라는 양은 돌보지 않고 전쟁터에 와서는 건방지게 쓸데없는 이야기나 떠벌리고 다닌다는 것입니다. 여기는 어린 다윗이 구경하고 참견할 만한 만만한 곳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삼상17:28 큰형 엘리압이 다윗이 사람들에게 하는 말을 들은지라 그가 다윗에게 노를 발하여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이리로 내려왔느냐 들에 있는 양들을 누구에게 맡겼느냐 나는 네 교만과 네 마음의 완악함을 아노니 네가 전쟁을 구경하러 왔도다


게다가 다윗은 사울 왕에게서 아주 오랫동안 적대감을 받으며 살아야 했습니다. 다윗에 대한 사울의 적대감은 단지 미움과 증오에서만 그치지 않았습니다. 사울은 자기가 죽을 때까지 평생을 다윗을 미워하며 그를 죽이려고 수많은 시도와 노력을 했습니다. 성경은 사울에 대해 다윗 평생의 대적이었다고 기록하였습니다.


삼상18:28-29 여호와께서 다윗과 함께 계심을 사울이 보고 알았고 사울의 딸 미갈도 그를 사랑하므로 사울이 다윗을 더욱 더욱 두려워하여 평생에 다윗의 대적이 되니라


다윗은 하나님 마음에 꼭 드는 사람이었습니다. 다윗이 비록 하나님 마음에는 합당했지만 모든 사람 마음에 합당한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다윗은 살면서 그 누구보다 많은 이들에게 미움과 증오를 받아야 했습니다. 특별히 사울에게 받은 미움과 증오의 적대감으로 인해 다윗은 여러 차례 죽음의 위협을 받아야만 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꼭 들었던 다윗이 많은 사람에게서 미움과 증오의 대상이 되었다는 것은 오늘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영적 도전을 줍니다. 아무리 하나님께서 나를 마음에 드신다고 해도 사람들이 모두 나를 좋아하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하나님께 받는 사랑이 클수록 사람들에게는 더 큰 미움과 증오를 받을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다윗은 그의 생애 많은 부분을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이 미움과 증오를 받으며 살아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가 받으며 살아야 했던 미움과 증오의 적대감은 그 어떤 것보다 그의 삶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습니다. 다윗이 살면서 겪어야 했던 미움과 증오의 적대감에 대해서 제대로 알아야만 다윗의 영성, 다윗의 기도, 다윗의 수많은 노래와 시, 그리고 그의 인생 많은 부분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에게도 같은 원리로 작용합니다. 우리의 인격이나 하나님에 대한 신실한 믿음은 나를 좋아하고 아껴주고 사랑하는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다른 사람에게서 받는 미움이나 적대감에 대해 어떻게 대처하고 반응하느냐에 우리의 인격과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다듬어지고 성숙하고 자라게 된다는 사실을 늘 마음에 두어야 할 것입니다.


다윗이 경험한 대부분의 미움과 적대감은 사울 왕으로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사울은 다윗을 증오했고 여러 번 그를 죽이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다윗이 경험해야 했던 적대감은 우리를 어리둥절하게 만드는 적대감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사울이 다윗을 그토록 미워하고 증오했던 가장 중요한 이유는 다윗이 사울보다 옳았고 선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단지 다윗과 사울의 이야기만이 아닙니다. 예수님 역시 많은 사람에게 미움을 받으셨습니다. 특별히 예수님은 당시 종교지도자들에게서 많은 미움과 증오를 받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저들에게 미움과 증오를 받았던 이유가 무엇 때문입니까? 예수님께서 잘못하셨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정반대로 예수님께서 바르고 선하였기 때문에 사람과 세상으로부터 미움을 받으신 것입니다.


요한복음 15:18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


물론 이것은 지금도 여전히 반복하여 계속되는 세상의 현실입니다. 지금도 여전히 바르고 옳고 선함이 사람들에게 사랑과 존경을 받기보다는 미움과 증오를 받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바르고 선한 사람을 존중하고 존경해야 우리가 사는 세상이 더 좋아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 우리는 그렇지 않습니다. 너만 잘났냐며 오히려 이런 미워하고 싫어합니다.


따라서 옳은 일을 하는데, 선한 일을 하는데, 칭찬은커녕 오히려 미움을 받는다면 당황해하거나 불안해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것을 마땅히 일어날 수 있는 당연한 일로 여길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인생을 살면서 누구나 경험하게 되는 적대감을 바르게 대처할 수 있을 것이며, 내가 받는 미움이나 적대감이 나를 무너뜨리지 못하게 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남을 미워하다 못해 증오해 본 적이 있습니까? 불행히도 저는 그런 경험이 있었습니다. 남을 미워하고 증오하면, 물론 미움을 받는 대상도 상처가 되고 상처를 받을 것입니다. 하지만 미움받는 대상보다 더 심각한 상처를 받는 사람은 남을 미워하고 증오하는 사람입니다. 미움을 받는 것보다 남을 미워하고 증오하는 사람의 영혼이 훨씬 더 심각하게 황폐해지고 무너지고 파괴되고 맙니다.


분노나 미움을 지속하는 것은 분노나 미움의 대상을 파괴하기 이전에 먼저 자신의 영혼을 파괴하고 맙니다. 누구나 순간적인 감정으로 다른 사람을 미워하거나 분노하거나 적대감을 가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감정을 제때 치유하고 누그러뜨리지 못하고 계속해서 마음에 담고 있으면 결국은 미워하고 증오하는 대상보다 자신이 먼저 무너지고 만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사울이 꼭 그러하였습니다. 옳고 그름을 떠나 사울이 가진 다윗에 대한 미움이나 적대감은 다윗을 넘어뜨리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자기 자신을 먼저 넘어뜨리고 말았습니다. 다윗에 대한 사울의 미움과 증오는 자신을 악신에 사로잡히게 했습니다. 다윗에 대한 사울의 미움과 증오가 다윗을 넘어뜨린 것이 아니라 먼저 자기 영혼을 무너뜨리고 파괴한 것입니다.


사울의 증오와 적대감을 받으면서도 다윗은 당혹해하지도 두려워하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사울의 증오와 적대감을 받을수록 다윗은 점점 더 나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사울이 다윗을 죽이려 할 때마다 오히려 다윗은 사울에게 자비와 용서를 베풀었습니다.


그 결과 다윗을 미워하고 증오하는 사울이 오히려 두려움에 빠졌습니다. 자신의 증오와 적대감에도 흔들리지 않는 다윗을 보며 사울이 두려움에 빠진 것입니다. 억울하게 받는 증오와 적대감으로 인해 무너지지 않아야 합니다. 억울한 증오나 적대감에 흔들리거나 두려워하지 않으면 오히려 미워하고 증오하는 사람이 더 두려워하게 될 것입니다.


삼상 18:12 여호와께서 사울을 떠나 다윗과 함께 계시므로 사울이 그를 두려워한지라


말씀을 마칩니다. 누구에게도 미움받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내가 만나는 모든 사람의 안색과 기분을 살피면서 저들의 비위를 맞추며 살면 됩니다. 하지만 이렇게 사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이 사람에게 비위 맞추면 저 사람 비위에 맞지 않고, 저 사람에게 비위 맞추면 이 사람 비위에 맞지 않는다는 것을 금방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살아서는 단 한 순간도 행복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 마음에 합하였다는 다윗도 평생을 미움과 증오를 받으며 살아야 했습니다. 하물며 우리야 말해 무엇 하겠습니까? 따라서 나를 미워하고 싫어하는 사람 때문에 불안해하거나 두려워하거나 낙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당연한 일로 여기는 당당함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미움받는 것을 당연하게 여길 수 있어야 내가 받는 미움 때문에 무너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다윗은 계속되는 사울의 미움과 증오 그리고 살해위협 가운데서도 어떻게 당혹해하지도 두려워하지도 않을 수 있었습니까? 자신의 억울함과 원통함을 아시는 하나님께서 자신과 함께 계신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자신을 미워하고 증오하는 사울에게 초점을 맞춘 것이 아니라 자신의 억울함과 원통함을 아시는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고 살았기 때문입니다.


다윗이 그러했던 것처럼 우리 역시 많은 미움과 증오를 받으며 살아가야 합니다. 하지만 그를 미워하고 증오하는 이들 앞에서 상을 베푸시고 기름을 발라 그를 치유하셨던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의 하나님이십니다. 바라기는 우리가 겪는 미움과 증오로 인해 낙심하고 무너지는 인생 아니라 이전보다 더 나은 믿음의 사람이 되게 하는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시길 축복합니다.

 

우리의 선한 목자되신 하나님, 사람의 몸으로 세상에 오신 하나님을 세상이 미워했고 사람들이 미워했음을 기억하게 하옵소서. 세상에서 억울하게 받는 미움과 적대감 때문에 무너지지 않고 오히려 내가 받는 미움과 적대감 때문에 이전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새글 0 / 330 

검색

번호 제목 작성자 등록일 조회수
공지 자유교회 주일예배 영상 Youtube 링크 2021.04.21 3835
330 십계명9-우리의 신앙, 믿음입니까? 미신입.. 2025.04.06 106
329 십계명8-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 2025.04.06 95
328 십계명7-어떤 것으로도 하나님을 제한하지 .. 2025.03.18 134
327 십계명6-코람데오(Coram Deo) 2025.03.18 131
326 십계명5-우리는 누구를 섬기며 살고 있는가? 2025.03.18 132
325 십계명4-왜 첫 번째 계명이 하나님에 대한 .. 2025.03.18 128
324 십계명3-십계명을 주신 하나님은 어떤 하나.. 2025.03.18 124
323 십계명2-십계명을 주신 하나님은 어떤 분인.. 2025.03.18 126
322 십계명1-십계명 지금도 여전히 필요한 이유 2025.03.18 166
321 시험15-얼마 동안 떠나갔다 2025.02.01 343
320 시험14-하나님을 시험하지 말고 자신의 믿.. 2025.02.01 369
319 시험13-성경 말씀을 이용한 시험 2024.12.17 538
318 시험12-성전에서 시험받으신 예수님 2024.12.17 575
317 시험11-누구를 경배하며 살 것인가? 2024.12.17 518
316 시험10-세상의 질서를 거스르는 믿음의 삶 2024.12.17 5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