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와성경공부
예수님과 시험5-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마태복음 4:3-4

 

예수님과 시험연속설교, 다섯 번째 시간입니다. 예수님께서 마귀에게 받으셨던 첫 번째 시험은 돌을 떡으로 만들라는 시험이었습니다. 돌을 떡으로 만들라는 마귀의 첫 번째 시험에 예수님께서 어떻게 대처하셨는가를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제목으로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오늘도 전하는 말씀을 통해 우리 각자에게 향하신 하나님의 세미하고 부드러운 음성을 들을 수 있기 바랍니다.


마태복음은 기록하기를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40일 밤낮으로 금식하시어 굶주렸을 때 시험하는 자가 찾아왔다고 했습니다. 40일을 굶주린 예수님을 찾아온 마귀는 어떻게 예수님을 시험했습니까? 광야에 수없이 널려 있는 돌멩이를 가리키며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이 돌들로 떡 덩이로 만들라고 합니다.


4:3 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나아와서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로 떡 덩이가 되게 하라


시험하는 자 마귀는 돌을 떡으로 만드는 능력을 보여서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증명해 보라고 합니다. 하지만 마귀가 정말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몰라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증명하라고 한 것이 아닙니다. 마귀는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로 오신 분임을 이미 너무나 잘 알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돌을 떡으로 만들라는 마귀의 시험의 본질은 돌을 떡으로 만드는 신비한 능력을 보여서 하나님의 아들임을 증명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마귀는 예수님에게 네 능력으로 얼마든지 충분히 돌을 떡으로 만들 수 있으니 돌을 떡으로 만들어 굶주린 너의 배를 네 힘으로, 네 능력으로 해결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시험하는 자 마귀의 교묘한 유혹입니다. 도대체 자기 힘으로 자기 능력으로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라고 하는 것이 왜 마귀의 유혹일까요?


지난주에도 말씀을 드렸지만, 육신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반드시 먹을 양식이 필요하고, 매일같이 양식을 먹어야만 살 수 있습니다. 이것은 사람의 몸으로 오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라도 피할 수 없는 자연의 생존 법칙입니다. 먹지 않고 살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아무도 없습니다. 따라서 굶주린 예수님에게 광야 여기저기 널려 있는 돌로 떡을 만들어 굶주림을 해결하라는 마귀의 제안은 대단히 그럴듯해 보입니다.


하지만 사람은 반드시 먹어야만 살 수 있다는 자연의 생존 법칙은 단순한 육체의 원리만이 아닙니다. 먹어야만 살 수 있다는 사람의 가장 기본적이며 근본적인 생존 법칙은 결국 사람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으로 살아야 하는 존재, 사람은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아야 하는 존재임을 가르쳐 주는 매우 중요한 영적 원리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먹고살아야 하는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굶주린 예수님에게 돌을 떡으로 만들어 먹으라는 마귀의 제안은 하나님 의지하지 말고 네 힘, 네 능력으로 살라는 것입니다. 물론 예수님께서는 물을 포도주로 만들 수 있으셨던 것처럼 돌로 떡을 만드실 충분한 능력이 있으신 분입니다. 하지만 돌은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먹을 양식으로 주신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돌을 떡으로 만들라는 마귀의 유혹은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 살지 말고 네 힘으로 네 능력으로 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에덴동산에서 뱀이 아담과 하와에게 했던 유혹과 다르지 않습니다. 뱀은 아담과 하와에게 선악과를 먹으면 하나님처럼 될 것이라고 유혹했습니다. 하나님 없이도 너희 힘으로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시험하는 자 마귀는 예수님에게 너는 하나님의 아들 아니냐? 그러면 네 힘으로, 네 능력으로도 충분히 살 수 있는 것 아니냐? 그런데 굳이 하나님 의지할 필요가 뭐가 있느냐? 하나님 없이 네가 스스로 하나님이 되어 살라고 유혹한 것입니다.


하나님 의지하지 말고 네 능력으로 살라는 마귀의 유혹에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대처하셨습니까? 이미 말씀드린 것처럼 마귀의 시험은 어떻게 해야 이길 수 있습니까? 성령이 주시는 시험은 성령이 인도하는 대로 순종하는 것이 시험을 이기는 길입니다. 반면에 마귀의 시험은 마귀가 하라는 대로 하지 않는 것만이 유혹을 이기는 가장 확실하고 분명한 방법입니다.


비록 예수님께서는 돌을 떡으로 만드실 충분한 능력이 있으셨지만, 마귀가 하라는 대로 하지 않으셨습니다. 대신에 예수님은 구약성경의 말씀을 인용하여 마귀의 유혹을 물리치셨습니다. 물론 여기서 떡은 단순히 떡만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일용할 양식을 의미하는 것이며 더 나아가 먹고사는 경제활동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4:4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예수님께서 인용하신 말씀은 흔히 사람이 먹고 사는 떡에만 관심을 쏟지 말고 영적인 것에 즉 하나님 말씀에 더 충실하며 살라는 말씀으로 받아들입니다. 물론 이런 의미가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과연 예수님께서 인용하신 말씀이 먹고 사는 것과 하나님의 말씀을 서로 대립하는 것으로 여기며 먹고 사는 문제보다 영적인 하나님의 말씀에 더욱 힘쓰며 살라는 의미로 하신 말씀일까요?


대부분의 설교가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는 예수님께서 인용하신 말씀을 떡과 하나님의 말씀 또는 육과 영의 적대적 대립으로 해석하는 것이 대부분의 경향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먹고 마시는 육신의 일보다는 영적인 일에 초점을 두고 살아야 한다고 것이 일반적인 해석이자 설교입니다.


물론 예수님께서 인용하신 말씀을 떡과 말씀 또는 육과 영으로 나누어 설교하는 이원론적 해석들은 예수님께서 시험받으신 사건 그 자체에만 한정해서 본다면 조금도 이상하게 여겨지지 않습니다. 마귀가 제안한 육체적인 굶주림을 채우는 방법에 대항하여 하나님의 말씀, 즉 영적인 것을 강조하신 것이라고 해도 조금도 이상하게 여겨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인용하신 말씀이 떡과 하나님의 말씀 또는 육과 영을 서로 적대적으로 대립하는 것으로 나누는 이원론이 과연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본래 의도였을까요? 아니요. 저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모든 것을 육과 영 또는 세상과 천국으로 나누는 이원론의 방식은 대단히 매력적이며 분명해 보이는 주장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플라톤의 이원론 철학이지 성경의 가르침은 아닙니다.


성경이 가르치는 천지를 지으시고 사람을 지으신 하나님은 사람의 영만을 창조하신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육체를 만드시고 그 육체에 하나님의 호흡을 불어넣어 사람이 육체와 영을 가진 존재로 만드셨습니다. 따라서 육체의 일을 부정하거나 세상의 일을 부정하는 것은 하나님의 창조를 부정하는 것이 되고 맙니다.


예수님께서 인용하신 말씀을 영과 육이라는 이원론에 사로잡혀 잘못 이해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마귀의 유혹을 물리치시기 위해 인용하신 말씀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선 예수님께서 인용하신 구약성경의 말씀을 전체적인 맥락에서 살펴보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돌을 떡으로 만들라는 마귀의 유혹을 물리치시기 위해 인용하신 구약성경의 말씀은 신명기 83절입니다.


8:3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예수님께서는 신명기 83절 후반부의 말씀을 인용하셔서 마귀의 유혹을 물리치셨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신명기 83절 후반부의 말씀을 인용하신 것이 전체적인 문맥과 맥락은 고려하지 않은 채 전체의 문장에서 원하는 한 부분만 쏙 빼서 사용하신 것일까요? 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비록 예수님께서 신명기 83절 후반부의 말씀만 인용하셨지만,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려는 의도는 신명기 83절 전체에서 하신 뜻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마귀의 시험을 물리치시기 위해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신명기 말씀을 인용하신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직접 하신 말씀이라면 영과 육 이원론의 관점으로도 해석하고 설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인용하신 신명기의 말씀은 영과 육을 대립하는 것으로 여긴 이원론적 관점으로 하신 말씀이 아닙니다. 인용하신 말씀의 뜻과는 다르게 문자의 내용만을 가지고 해석하는 것은 성경을 잘못 읽고 해석하는 대표적인 일입니다.


본래 성경의 뜻과는 다른 뜻으로 성경 말씀을 사용하는 것은 성경의 왜곡이지 인용이라 할 수 없습니다. 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한국 교인들이 좋아하는 성경 구절 가운데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라는 빌립보서 413절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씀은 많은 교인에게 하나님 안에서 또는 믿음 안에서 불가능한 일이 없이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말씀으로 소비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말씀은 그야말로 믿는 자에겐 불가능한 일이 없이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이 말씀의 앞뒤 맥락을 살펴보면 이 말씀의 의미는 결코 믿는 자에겐 그 어떤 불가능한 일도 없이 다 가능하다는 뜻이 아닙니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신은 어떠한 형편에서도 자족하는 법을 배우고 훈련했기에 어떠한 형편에 처한다고 해도 그 상황을 능히 참고 견디고 살아갈 수 있다는 뜻으로 한 말씀입니다. 한 마디로 자기에게 주어진 상황을 바꾼다는 것이 아니라 어떤 상황에 놓인다고 해도 능히 견디어 낼 수 있다는 뜻입니다.


4:11-12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또 다른 대표적인 성경 말씀은 구약성경 욥기의 말씀입니다. 많은 목사나 교인이 새로운 사업이나 일을 시작할 때마다 이 말씀을 가지고 설교하거나 기도합니다. 하지만 이 말씀은 이런 식으로 적용하거나 이용할 수 있는 말씀이 아닙니다. 이것은 욥의 친구 빌닷이 욥을 책망하기 위해 사용한 하나님의 뜻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잘못된 사람의 말입니다.


8:7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


예수님께서 인용하신 신명기 83절의 말씀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께서 인용하신 후반부만 따로 떼어서 생각하면 많은 교인이 오해하는 것처럼 먹고 마시는 육체의 일보다 하나님의 말씀 즉 영적인 일에 초점을 맞추고 살아야 한다는 말씀처럼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신명기 83절 전체 말씀과 앞뒤 맥락을 살펴보면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의미로 하신 말씀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8:4 이 사십 년 동안에 네 의복이 해어지지 아니하였고 네 발이 부르트지 아니하였느니라

8:10 네가 먹어서 배부르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옥토를 네게 주셨음으로 말미암아 그를 찬송하리라


예수님께서 인용하신 신명기 83절의 앞뒤 말씀을 살펴보면, 우리가 오해하는 것처럼 먹고 사는 육체적인 일과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영적인 것이 반대되는 것으로 말씀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신명기 83절에서 사람이 먹고살아야 하는 떡(일용할 양식)은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과 반대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말씀에서 나온 일부분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것이 하나님께서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날마다 먹이셨던 만나입니다. 만나는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무려 40년을 살 동안 하나님께서 저들에게 주신 양식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만나에는 매우 중요한 특징이 있었습니다.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주신 만나의 유통기한은 단 하루였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매일 아침 그날 먹을 만나를 내려주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아침마다 광야에 내려주신 만나를 하루 먹을 만큼만 가져올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다음 먹을 양식을 염려해서 하루 이상 며칠 먹을 만나를 가져오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하루 양식 이상으로 가져와서 남은 만나는 하루가 지나면 만나에 벌레가 생기고 냄새가 나서 도저히 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16:19-20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기를 아무든지 아침까지 그것을 남겨두지 말라 하였으나 그들이 모세에게 순종하지 아니하고 더러는 아침까지 두었더니 벌레가 생기고 냄새가 난지라 모세가 그들에게 노하니라


하나님께서는 도대체 왜 이런 식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먹이셨습니까? 사람이 매일같이 먹고사는 것이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음을 가르치고 훈련하기 위함입니다. 만약 남들보다 더 많이 만나를 거두고 그렇게 거둔 것으로 몇 날 며칠을 먹을 수 있었다면 저들은 하늘에서 내린 만나를 하나님의 은혜라고 생각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자신들이 열심히 만나를 거둔 덕에 먹고 사는 것이라 여겼을 것입니다.


신명기 8장에 기록된 모세의 설교는 이것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지내야 했던 40년을 매일같이 만나로 먹여주셨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막상 하나님께서 약속하시고 인도하신 가나안 땅에 들어가자 어떻게 했습니까? 모세가 경고한 대로 자신들이 먹고사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라 자신들의 능력과 자신들의 힘으로 된 것이라 여겼습니다.


8:17 그러나 네가 마음에 이르기를 내 능력과 내 손의 힘으로 내가 이 재물을 얻었다 말할 것이라


신명기 83절 말씀을 다시 주의해서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40년 동안 만나를 먹이셨던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매일같이 먹을 수 있는 양식을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라는 것을 가르쳐 주시기 위함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황량한 광야에서 매일 아침 그날 먹을 양식 만나를 가져오면서 무슨 생각을 했겠습니까? “오늘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먹여 살리시는구나.” 뭐 이런 생각 하지 않았을까요!


8:3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을 문자 그대로 성경에 기록된 말씀으로만 제한해서는 안 됩니다.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은 하나님에게서 나오는 모든 것, 그의 역사, 섭리, 보호, 은혜, 사랑, 이 모든 것으로 우리가 산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매일같이 만나를 주셔서 먹이신 것은 우리가 사는 것은 우리의 힘으로, 우리의 소유로 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으로 말미암는 것임을 깨닫게 하기 위함입니다.


예수님께서 마귀에게 받으신 첫 번째 시험은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돌을 떡으로 만들어 먹으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귀의 간교한 유혹입니다. 하나님 상관하지 말고, 하나님의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 바라보지 말고 네 힘으로 네 능력으로 먹고살라는 것입니다. 얼핏 들으면 마귀의 제안은 대단히 그럴듯한 말처럼 들립니다. 네 능력으로도 충분히 먹고살 수 있는데 굳이 하나님 의지하며 살 필요가 뭐가 있느냐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사람과 하나님 사이를 멀어지게 만들려는 마귀의 간교한 유혹입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은 먹고사는 육신의 문제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영적인 삶이 더 중요하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먹고사는 문제가 하나님의 말씀과는 아무런 상관없는 문제가 아니라, 먹고사는 문제 역시 역시 하나님의 말씀에 달린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매일같이 마귀의 유혹을 받으며 살아갑니다. 매일 매 순간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 것인가? 아니면 내 힘과 능력, 내가 가진 것을 의지할 것인가? 어떤 선택과 결정을 하느냐에 따라 먹고사는 우리의 자세와 태도가 달라질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을 먹고사는지가 달라질 것입니다.


일용할 양식을 넘어선 탐욕에 사로잡혀 살아가고 있다면 우리는 돌을 떡으로 만들라는 마귀에 유혹에 넘어간 것입니다. 그리고 마귀의 유혹에 넘어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 아니라 내 힘과 능력으로 먹고살려고 하니까 자꾸만 먹지 말아야 할 것에 탐을 내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먹지 말아야 할 것에 탐을 내며 살아가기에 우리 삶에는 문제가 끊이지 않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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