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말씀을 이용한 마귀의 시험
마태복음 4:5-7
‘예수님과 시험’ 연속설교, 아홉 번째 시간입니다. 오늘은 “하나님 말씀을 이용한 마귀의 시험”이라는 제목으로 예수님께서 받으셨던 두 번째 시험에 대해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오늘도 전하는 말씀 가운데 여러분 각자에게 향하신 하나님의 세미하고 부드러운 음성을 들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마귀에게 받으신 두 번째 시험은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려 보라는 것입니다. 그럼 마귀가 예수님에게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리라고 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성전 꼭대기에서 떨어져도 털끝 하나 다치지 않는 이적을 보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전에 모인 수많은 사람에게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 임을 증명하라는 것입니다.
마귀의 두 번째 시험에서 가장 먼저 주목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시험하는 자 마귀가 예수님을 어디에서 시험했느냐는 것입니다. 시험하는 자 마귀는 예수님을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으로 데려가서는 그것도 성전 꼭대기에 예수님을 세우고는 예수님을 시험했습니다. 마귀가 성전에서 예수님을 시험했다는 말씀은 오늘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영적 도전을 주는 사건입니다.
교회는 마귀의 시험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청정구역이 아닙니다. 오히려 교회는 세상의 그 어떤 곳보다 더 치열한 영적 싸움이 일어나는 곳입니다. 물론 교회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가장 거룩한 모임과 공동체가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교회는 하나님을 이용해서는 자기 자신을 높이고 자랑하고 심지어 자신의 욕심을 채우는 수단으로 사용될 수도 있는 것이 교회입니다.
시험하는 자 마귀가 예수님을 성전으로 데려와서는 성전 꼭대기에 세웠습니다. 그리고는 어떻게 했습니까?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리라고 합니다. 그런데 마귀가 어떤 말로 예수님에게 뛰어내리라고 유혹하였습니까? 마귀는 구약 성경의 말씀을 인용하여 예수님을 시험하고 유혹하였습니다. 마태복음 4장 6절 마귀의 유혹에서 ‘기록되었으되’라는 표현은 구약 성경의 말씀을 인용할 때 사용하는 관용적인 표현입니다.
마4:6a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기록되었으되
마4:4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되었으되
마4:7 예수께서 이르시되 또 기록되었으되
마4:10 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탄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시험하는 자 마귀가 하나님이 계신다는 거룩한 성전에서 거룩하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예수님을 시험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합니다. 시험하는 자 마귀가 하나님의 말씀을 이용해 예수님을 시험했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메타포이자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영적 도전이 되어야 합니다.
사기꾼은 절대로 얼토당토않은 말로 사람을 속이거나 사기 치지 않습니다. 누구라도 들으면 믿을 만한 그럴듯한 말로 사람을 속이고 사기를 칩니다. 그러기에 사람들이 속아 넘어가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마귀 역시 얼토당토않은 말로 사람을 유혹하지 않습니다. 마귀는 교인들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믿음의 사람을 시험하고 유혹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마귀는 하나님의 말씀을 이용해 예수님을 유혹하려고 했습니다. 마귀에게 성경 말씀은 믿고 순종해야 하는 말씀이 아니었습니다. 마귀에게 성경 말씀은 예수님을 유혹하려는 자신의 목적을 이루는 방법이며 수단이었습니다. 그럼 시험하는 자 마귀는 어떤 방식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이용해 자신의 목적을 이루려고 했습니까? 이것을 명확하게 보여주는 말씀이 예수님께서 받으신 두 번째 시험입니다.
마귀는 예수님을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는 어떤 말로 예수님을 뛰어내라고 했습니까? 하나님께서 너를 위해 천사를 보내어 저들의 손으로 성전 꼭대기에서 떨어지는 예수를 붙잡아서는 그 발이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할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니 아무런 걱정도 하지 말고 뛰어내리기만 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안전하게 지켜 주실 것이고 이것을 지켜본 많은 이들이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칭송할 것이라고 합니다.
마4:6b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하리로다 하였느니라
시험하는 자 마귀가 예수님의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리라며 사용한 성경 말씀은 시편 91편 11절로 12절의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마귀가 인용한 시편 91편 11절로 12절의 말씀이 과연 마귀가 말하는 것처럼 성전 꼭대기와 같은 높은 곳에서 떨어져도 천사를 통해 안전하게 지켜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기록한 말씀입니까? 아니요.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시91:11-12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천사들을 명령하사 네 모든 길에서 너를 지키게 하심이라 그들이 그들의 손으로 너를 붙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아니하게 하리로다
이 말씀은 아무리 높은 곳에서 뛰어내린다고 해도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어 털끝 하나 다치지 않도록 지켜 주신다는 하나님의 약속이 아닙니다. 인생의 온갖 환란과 역경을 겪은 시인이 자신의 피난처가 되시고 보호자가 되어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자신의 경험을 고백하며 하나님을 찬양하는 말씀입니다.
환난과 역경에도 지켜 주신 하나님에 대한 신앙고백을 가지고 아무리 높은 곳에서 뛰어내린다고 해도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어 지켜 주신다고 말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믿음이 아닙니다. 이것은 하나님 말씀을 이용하여 자신이 원하는 목적을 이루려는 것입니다.
자신의 욕심이나 목적을 이루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제멋대로 사용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남용하는 것이며 오용하는 것입니다. 남용이 무엇입니까? 필요 이상으로 함부로 사용하는 것을 남용이라고 합니다. 오용이 무엇입니까? 잘못 사용하는 것을 오용이라고 합니다.
아무리 몸에 좋은 약이라고 해도 필요 이상을 사용하거나 잘못 사용하면 먹지 못한 것보다 못한 일이 되고 맙니다. 그래서 “약 좋다고 남용 말고, 약 모르고 오용 말자.”는 표어도 있었습니다. 이것은 성경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이 아무리 좋은 말씀이라도 함부로 남용하지 말아야 하며 성경을 제멋대로 오용해서도 안 됩니다.
성경은 분명 사람을 살리는 생명의 말씀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이 성경 말씀으로 인해 구원을 받고 새로운 생명을 얻었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사람을 살리는 생명의 말씀이기에 잘못 사용하면 사람을 죽이는 죽음의 말씀도 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합니다. 실제로 교회의 역사를 보면 성경 말씀을 이용하여 수없이 많은 차별과 폭력을 정당화했으며 수많은 사람을 죽였습니다.
성경을 함부로 남용하거나 제멋대로 오용하는 것은 굳이 마귀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닙니다. 마귀가 하나님의 말씀을 이용해 자신의 목적을 이루려고 한 것처럼 성경 말씀을 이용해 자신의 목적이나 욕심을 이루려고 한 것은 기독교의 역사만큼 아주 오래된 역사입니다.
너무나 많은 목사와 교인이 자신들이 바라고 원하는 목적이나 소원을 이루기 위해 성경을 함부로 남용하거나 제멋대로 오용하는 경우가 너무나 많습니다. 특별히 교회를 오래 다녔다고 하는 교인일수록 성경을 함부로 남용하고 제멋대로 오용하는 것이 심각할 지경입니다.
기독교 역사에서 나타난 교회의 타락과 부패는 결국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함부로 남용하거나 제멋대로 오용했기 때문에 생겨난 것이라고 해도 조금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오늘날 교회의 심각한 위기와 교인들의 신앙 위기 역시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목사와 교인들의 타락과 부패는 모두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쓸데없이 남용하거나 자기에게 유리한 대로 자기에게 편한 대로 제멋대로 오용했기 때문에 생겨난 결과입니다.
성경을 남용하고 오용했던 경우나 사례는 너무나 많아 일일이 지적하기에도 힘들 지경입니다. 그중에서도 성경의 남용과 오용으로 이끄는 가장 결정적인 문제는 축자 영감설과 성경 문자주의 믿음입니다. 축자 영감설은 성경에 기록된 글자 하나하나가 모두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된 것이라 믿는 것입니다. 축자 영감설은 성경은 단 한 글자 한 문장도 틀림이 없는 것이기에 성경은 기록된 문자 그대로 믿어야 한다는 성경문자주의로 발전하였습니다.
축자 영감설의 근거로 삼는 가장 중요한 성경 구절은 사도 바울이 디모데에게 쓴 편지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이 말씀하고 있는 모든 성경은 신약성경은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다. 사도 바울이 디모데에게 말하는 성경은 유대교의 경전이었던 지금의 구약 성경만을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복음서나 사도 바울 자신이 쓴 편지는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딤후3: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성경에 기록된 단 한 글자도 함부로 여기지 말고 그대로 믿어야 한다는 문자주의자들이 근거로 내세우는 가장 중요한 성경 구절은 마태복음 산상수훈에 기록된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그럼 산상수훈으로 하신 예수님 말씀이 성경의 말씀은 일점일획이라도 기록된 문자 그대로 믿고 그대로 따라야 한다는 뜻으로 하신 말씀일까요? 아니요.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마5:17-18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예수님께서는 공생애 동안 수없이 많이 율법에 기록된 말씀을 어기시는 행동을 하셨습니다. 안식일에는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율법의 기록을 무시시고 병자를 고치시기도 하셨고 제자들이 밀이삭을 먹기도 했습니다. 게다가 예수님은 당시 종교지도자들과는 전혀 다르게 율법을 해석하시고 가르치셨습니다. 예수님은 율법을 어겼다는 이유로 종교지도자들에 의해 고발당하여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율법이나 구약의 가르침을 폐하시고 새로운 법과 가르침을 주실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없애기 위해) 온 것이 아니라 완전하게 하려고 오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심지어 율법의 일점일획까지 다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일점일획도 다 이룰 것이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근거해서 대다수 목사나 교인들이 성경을 기록된 문자 그대로 믿고 지켜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것을 성경 문자주의라고 합니다. 그리고 성경을 기록된 문자 그대로 믿고, 삶에 적용하는 것만이 성경적인 바른 믿음이라고 주장합니다.
얼핏 들으면 성경을 기록된 문자 그대로 믿고, 그대로 지키며 사는 것이 대단히 신실하고 믿음 있어 보입니다. 하지만 이런 방식으로 성경을 읽고 적용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생각입니다. 심지어 이런 방식은 전혀 신앙적이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의 가르침을 왜곡하고 성경의 본래의 뜻을 잘못 해석할 수 있습니다.
만약 성경을 문자 그대로 읽고, 믿고, 삶에 적용해야 한다면 매우 심각한 상황에 놓일 수 있습니다. 구약 성경에 나오는 율법(모세오경)의 규정대로 현재 우리 삶에 그대로 적용한다면 우리 중 누구도 살아남을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안식일에 관한 율법의 단 한 가지 말씀으로도 우리는 다 죽음을 면하지 못할 것입니다.
출애굽기 31:15 엿새 동안은 일할 것이나 일곱째 날은 큰 안식일이니 여호와께 거룩한 것이라 안식일에 일하는 자는 누구든지 반드시 죽일지니라.
이렇게 말하면 일부 목사나 교인들은 구약의 율법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로 다 폐기가 되었으니까 이제는 신약성경의 말씀만 문자 그대로 믿고 적용하면 된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이런 주장은 율법을 폐하지 않고 완전케 하시기 위해 오셨고 율법의 일점일획도 다 이루시기 위해 오셨다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정면으로 부인하는 것입니다.
백번 양보하여 저들의 주장처럼 구약의 율법(모세오경)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로 폐기되어 이제는 신약의 말씀만을 문자 그대로 믿어야 한다는 주장 역시 매우 심각한 문제가 있는 주장입니다. 예수님은 산상수훈에서 오른 눈이 죄를 짓거든 그 눈을 빼 버리고 오른손이 죄를 짓거든 그 손을 찍어 버리라고 하셨습니다. 작은 자 한 사람을 실족하게 하면 연자 맷돌을 메고 바다에 빠져 죽는 것이 차라리 낫다고 하셨습니다.
살면서 눈으로 죄를 짓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살면서 손으로 죄를 짓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살면서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고 마음을 아프게 한 적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우리는 성경에 기록된 예수님의 가르침처럼 오른 눈을 빼 버려야 합니까? 오른손을 잘라 버려야 합니까? 연자 맷돌을 목에 달고 모두 바다에 빠져 죽어야 합니까?
만약 성경의 말씀을 문자 그대로 읽고, 믿고, 적용(순종)해야 한다면 우리 대부분은 다 애꾸눈에 외팔이거나 다 바다에 빠져 죽어야 합니다. 제가 너무 극단적이라고요? 제가 극단적인 것이 아닙니다. 성경을 기록된 문자 그대로 믿고 적용해야 한다는 문자주의 자들의 주장이 대단히 극단적이며 위험한 주장입니다.
성경을 문자 그대로 읽고, 믿고 적용(순종)해야 한다는 사람들은 성경을 기록된 문자 그대로 믿어야만 성경적인 믿음이며 복음적인 믿음이라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문자주의야 말로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뜻과 예수님을 가르침을 가장 많이 왜곡하는 가장 비성경적이며 가장 비복음적인 신앙입니다. 이런 신앙을 근본주의 신앙이라고도 합니다.
교회의 역사를 보면 성경에 대한 자신들의 믿음을 증명하기 위해 뱀을 집어 올리고 독을 마시다가 죽은 사람들이 부지기수로 많습니다. 불과 몇 년 전 미국에서도 벌어진 일입니다. 뱀 목사라 불리는 제이미 쿠츠 목사가 독사를 들어 올리는 쇼를 하다가 그만 독사에 물려 죽고 말았습니다. 한국에서도 하나님 믿으면 어떤 독을 마셔도 죽지 않는다며 예배 중에 청산가리 마시고 죽은 목사나 교인들이 꽤 많이 있습니다.
막16:18 뱀을 집어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
예수님께서 율법을 폐하지 않고 완전하게 하신다는 것은 율법의 규정을 문자 그대로 지키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규정과 문자에 얽매여 그런 율법을 주신 하나님의 뜻을 잃어버린 유대인들에게 중요한 것은 규정과 문자가 아니라 규정과 문자에 담긴 하나님의 뜻을 회복하는 것이라 가르치시는 것입니다. 규정과 문자에 담긴 하나님의 뜻을 드러내는 것이 율법을 완전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신약성경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약성경은 특정한 시대와 장소(2,000년 전) 특별한 상황과(로마 식민지, 성전파괴, 예수님 공생애) 특수한 형편에서(교회의 탄생과 로마제국의 기독교 핍박) 기록된 말씀입니다. 그런 신약성경을 문자 그대로 읽고 문자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율법주의 오류를 또다시 반복하는 것입니다. 문자주의는 복음적인 신앙이 아니라 율법주의 신앙, 근본주의 신앙에 불과합니다.
게다가 예수님은 성경의 일점일획이라고 하지 않으시고 율법의 일점일획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율법은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다섯 성경을 가리키는 것이지 모든 성경을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성경을 문자 그대로 믿어야 한다고 하면서 이 말씀을 자신들 주장의 근거로 삼는 것은 애초부터 억지 주장일 뿐입니다.
축자영감설이나 성경 문자주의야말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사탄, 마귀의 바이블로 변질시킨다는 사실을 교회의 역사를 통해 발견하고 깨달을 수 있어야 합니다. 성경을 기록된 문자 그대로 믿고 적용하는 것은 성경을 생명을 살리는 말씀으로 만들지 않습니다. 오히려 사람을 죽이는 말씀으로 만드는 매우 위험하면서도 심각한 영적 타락이라는 것을 마귀의 두 번째 시험을 통해 분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마귀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이용하여 예수님을 시험했습니까? 마귀가 인용한 성경의 말씀은 시편 91편 11절과 12절입니다. 그런데 마귀가 시편의 말씀을 인용하면서 예수님에게 전한 말씀은 조금 차이가 납니다. 마귀는 시편의 말씀 가운데 의도적으로 한 부분을 빼고 인용하였습니다.
시91:11-12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천사들을 명령하사 네 모든 길에서 너를 지키게 하심이라 그들이 그들의 손으로 너를 붙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아니하게 하리로다
마4:6b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하리로다 하였느니라
시편 말씀에서 마귀가 의도적으로 뺀 말씀이 무엇입니까? “네 모든 길에서 너를 지키게 하심이라.”입니다. 사실 마귀가 의도적으로 생략한 부분이 시편 91편 11절과 12절의 말씀이 전하려는 본래의 뜻입니다. 천사들이 붙잡아서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한다는 표현은 하나님께서 인생의 모든 길에서 지켜 주신다는 것을 나타내는 일종의 시적인 메타포입니다.
하지만 마귀는 정작 가장 중요한 표현은 빼버리고 시적인 메타포로 사용한 말씀을 가지고 예수님을 시험하고 유혹한 것입니다. 마귀는 하나님의 말씀을 제멋대로 가감하는 것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함부로 오용한 것입니다. 마귀는 예수님을 시험하고 유혹하기 위해 정작 가장 중요한 하나님의 말씀을 빼고는 시적인 메타포로 사용한 말씀을 마치 문자 그대로 믿어야 하는 말씀으로 왜곡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제멋대로 가감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이용해 자신의 목적이나 욕심을 이루기 위해 지금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전형적인 방법입니다. 너무나 많은 목사와 교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성경에 기록된 말씀 그대로 믿어야 한다면서 설교할 때마다 성경 말씀을 자기 마음대로 가감합니다. 자기 맘에 드는 말씀은 받아들이고, 자기 비위에 맞지 않는 말씀은 거부하려고 합니다.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는 증거이며, 하나님을 함부로 시험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교회를 위하고 목회를 위한다는 명분을 앞세워 목사가 목회 목적을 위해 성경을 함부로 남용하거나 제멋대로 오용하는 설교를 해서는 안 됩니다. 이것은 교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의 입맛대로 말씀을 들으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때론 성경 말씀이 듣기에 불편하고 이익이 되지 않는다고 해도 하나님의 말씀을 정직하게 듣고 순종하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이것만이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우리를 시험하고 유혹하여 우리를 넘어뜨리려는 마귀의 시험을 이길 수 있는 유일한 비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