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마태복음 4:5-7
‘예수님과 시험’ 연속설교, 열 번째 시간입니다. 오늘은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는 제목으로 예수님께서 시험하는 자 마귀의 두 번째 시험을 물리치신 사건에 대해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오늘도 전하는 말씀 가운데 여러분에게 향하신 하나님의 세미하고 부드러운 음성을 듣고 깨닫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시험하는 자 마귀가 거룩한 성전에서 거룩한 하나님의 말씀을 이용하여 예수님을 시험한 사건은 매우 중요한 영적 도전을 주는 사건입니다. 마귀가 하나님께서 임재 하신다고 믿었던 거룩한 성전에서 그것도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을 가지고 하나님의 아들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시험하는 사건은 장차 예수님의 공생애 사역에 대한 매우 중요한 메타포라 할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4장에서 예수님께서 마귀에게 받으셨던 세 가지 시험은 단지 여기에서 끝나는 문제가 아닙니다. 마귀에게 받으셨던 세 가지 시험은 예수님의 공생애 사역 내내 예수님을 괴롭히고 무너뜨리려는 시험이었습니다. 더 나아가 예수님께서 마귀에게 친히 받으셨던 세 가지 시험은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우리의 신앙생활에도 끊임없이 반복되는 시험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받으셨던 세 가지 시험에 대해 살펴보는 것은 단순히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마귀의 시험을 이기셨는가를 배우기 위함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마귀의 시험을 물리친 사건을 통해 우리의 신앙생활에서 끊임없이 반복되는 마귀의 시험을 물리치는 방법을 배우기 위함입니다. 예수님께서 마귀의 시험을 물리치신 것처럼 우리 역시 예수님께서 친히 보여주신 모범을 따라 우리도 마귀의 시험을 능히 물리칠 수 있습니다.
마귀가 거룩한 성전에서 예수님을 시험했습니다. 이것은 비록 성전이 하나님을 예배하는 거룩한 장소이기는 하지만 시험에 들게 하는 장소가 될 수도 있음을 암시하는 사건입니다. 실제로 이스라엘 역사에서 성전은 하나님의 용서와 은혜를 얻는 거룩한 곳이기도 했지만, 하나님의 뜻을 가장 심각하게 왜곡하는 장소가 되기도 했습니다.
예레미야 7:10-11 너희는 이처럼 내가 미워하는 일만 저지르고서도 내 이름으로 불리는 이 성전으로 들어와서, 내 앞에 서서 우리는 안전하다 하고 말한다. 너희는 그런 역겨운 모든 일들을 또 되풀이하고 싶어서 그렇게 말한다. 그래, 내 이름으로 불리는 이 성전이 너희의 눈에는 도둑들이 숨는 곳으로 보이느냐? 여기에서 벌어진 온갖 악을 나도 똑똑히 보았다. 나 주의 말이다.
예레미야가 전한 탄식과 경고처럼 거룩하다는 성전은 도둑들이 자기들의 정체를 숨기는 곳이 되어버렸습니다. 온갖 죄악을 범하고, 탐욕에 이끌려 과부의 재산을 빼앗고도 성전에 들어가기만 하면 숨길 수 있었고 포장할 수 있었습니다. 성전은 더는 사람들의 죄를 감출 수 없어서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는 거룩한 곳이 아니었습니다. 온갖 죄악을 저지르고도 자신들의 죄를 감출 수 있는 방패막이로 이용된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 시대에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거룩해야 할 성전이 종교지도자들의 기득권이나 지켜 주는 수단으로 전락하고 하나님의 용서와 은혜를 구하는 거룩한 제사가 환전상들과 제물을 파는 이들의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한 모습을 보시고는 분노를 참을 수 없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환전상들의 상점과 비둘기를 파는 자들의 판매대를 둘러 엎으시고는 성전을 강도의 소굴로 만들었다며 한탄하셨습니다.
마가복음 11:17 예수께서는 가르치시면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기록된바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고 불릴 것이다 하지 않았느냐? 그런데 너희는 그 곳을 "강도들의 소굴"로 만들어 버렸다."
교회는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거룩한 곳이며 모임이기에 교회를 이용하려는 마귀의 시험에 그 어떤 곳보다 민감해야 합니다. 하지만 너무나 많은 교회가 예레미야 선지자 시대의 성전처럼, 예수님 시대의 성전처럼 오히려 성전을 이용해 자신들의 죄를 감추고 욕심을 채우는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거룩한 교회를 이용해 사람의 욕심을 채우려는 것은 예수님의 분노와 탄식을 불러일으키는 엄청난 죄를 짓는 것입니다.
시험하는 마귀는 거룩한 성전에서 거룩한 하나님의 말씀을 이용해 예수님을 시험했습니다. 마귀에게 성전은 예수님을 시험하고 믿음의 사람을 시험하는 가장 좋은 장소이며 수단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마귀에게 하나님 말씀은 예수님을 시험하고 믿음의 사람을 시험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자 수단이었습니다. 결국, 교회의 모든 타락은 말씀의 타락에서부터 비롯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성경은 사람을 살리고 구원하는 생명의 말씀이 되기도 하지만 동시에 우리의 믿음을 사이비나 이단의 길 또는 거짓 신앙으로 이끄는 가장 강력한 도구로 사용됩니다. 이것은 단지 사이비나 이단들 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삯꾼 목사가 어떻게 교인들의 마음을 세뇌하고 유혹하여 자신들의 욕심을 채우고 있습니까? 성경에 대한 교인들의 순수한 믿음을 이용합니다. (땅 밟기, 일천번제, 40일 특별기도회, 다니엘 세이레 기도회)
마귀가 하나님의 말씀을 이용해 예수님을 시험했다는 사건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면 안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이용해 믿음의 사람을 시험하고 유혹하는 것은 마귀가 가장 즐겨 사용하는 방법입니다. Covid-19 팬데믹과 같은 예상치 못한 위기가 일어나며 성경을 이용해 교인들의 마음을 미혹하려는 자들이 득세합니다. 그리고 교회와 교인들 주변에는 성경을 이용해 자신들의 욕심을 채우려는 삯꾼 종교인들이 바글바글합니다.
하지만 교인들 대부분은 성경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이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많은 교인이 그럴듯한 성경 구절을 이용하여 이것이 성경적이라는 주장에 너무나 쉽게 흔들리거나 속는 경향이 있습니다. 물론 신학을 배우지 않은 교인들이 성경을 읽고 해석하기란 결코,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주신 상식과 양심을 가지고 성경을 읽는다면 최소한 성경을 이용하여 자신의 욕심을 채우려는 성경해석 정도는 구별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마귀가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예수님을 시험하자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마귀의 시험을 이기셨습니까? 예수님 역시 구약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마귀의 시험을 물리치셨습니다. 여기서 먼저 “또 기록되었으되”라는 표현에 주목해야 합니다. 이것이 무슨 뜻입니까? 마귀가 인용한 말이 분명 성경에 기록된 말씀인 것은 맞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그렇게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말씀입니다.
마4:7 예수께서 이르시되 또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예수님께서 마귀의 시험을 물리치기 위해 사용하신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는 말씀은 신명기 6장 16절의 말씀입니다. 신명기 6장의 말씀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가나안 땅을 눈앞에 두고 모세가 장차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가르친 말씀입니다.
신6:16 너희가 맛사에서 시험한 것 같이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시험하지 말고
예수님께서 인용하신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는 말씀의 본래 의미를 알려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맛사에서 어떻게 했는지를 살펴보아야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모세가 언급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맛사에서 하나님을 시험한 사건은 출애굽기 17장에 나오는 사건을 이야기한 것입니다.
출애굽기 17장을 보면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르비딤이란 지역에 장막을 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곳에는 마실 물이 없었습니다. 오랫동안 마실 물을 얻지 못한 히브리인들은 마실 물 때문에 지도자 모세와 심하게 다투게 됩니다. 이들은 모세에게 목말라 죽게 하려고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냈느냐며 원망하고 항의했습니다. 저들의 원망과 불평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지금까지 자신들을 인도하였던 자신들의 지도자 모세를 돌로 쳐서 죽이려 했습니다.
다급해진 모세가 하나님께 도움을 구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손에 든 지팡이로 호렙산에 있는 반석을 치라고 하십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명령대로 이스라엘 장로들이 보는 앞에서 반석을 내리쳤습니다. 그러자 반석에서 물이 흘러나왔습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시험하였다고 해서 그곳을 ‘맛사’라고 이름하였습니다. 또한, 하나님 대들었다고 해서 ‘므리바’라고도 이름했습니다.
출17:7 이스라엘 자손이 거기에서 주께 대들었다고 해서, 사람들은 그 곳의 이름을 므리바라고도 하고, 또 거기에서 "주께서 우리 가운데 계시는가, 안계시는가?"하면서 주를 시험하였다고 해서 그 곳의 이름을 맛사라고도 한다.
하나님께서는 430년을 이집트의 노예로 살아야 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해주셨습니다. 그리고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저들을 인도하시고 광야를 지내는 동안 매일같이 만나와 메추라기로 먹여 주셨습니다. 하지만 저들은 며칠 동안 마실 물을 얻지 못했다고 모세를 원망하며 하나님께 불평했습니다. 모세는 이것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시험하는 악한 일이라 했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확인하고 시험하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악한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시험하시는 분이지 사람이 하나님을 시험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시험하는 것은 우리의 믿음을 성숙시키고 단련하는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하지만 사람이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은 하나님의 방식이나 인도하심에 순종하지 않고 원망하고 불평하는 것이며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입니다.
그럼 우리는 어떤 경우 하나님을 시험하는 죄를 짓게 됩니까?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나에게 베푸신 은혜를 잊어버릴 때 하나님을 시험하는 죄에 빠지기 쉽습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하나님께 받은 은혜와 복을 헤아려보십시오. 우리는 너무나 쉽게 과거에 받은 은혜를 잊어버리고는 지금 당장 힘든 일 때문에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하고 의심합니다. 지금 당장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하나님께서 나를 도우시는 증거를 보여달라고 원망하고 불평하는 것은, 곧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경우 하나님을 시험하는 죄를 짓게 됩니까? 믿음이 흔들릴 때 신비한 은사나 놀라운 이적으로 하나님을 확인하려는 것은 하나님을 시험하는 죄를 짓는 것이 됩니다. 믿음이 흔들릴수록 은사나 신비한 영적 체험에 매달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과 말씀에 초점을 두어야 합니다. 믿음이 약해질 때 은사나 이적을 구하기보다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하나님을 시험하지 않게 됩니다.
마귀가 성전에 뛰어내리는 이적을 보여달라고 예수님을 시험한 것처럼 서기관들과 바리새파 사람들 역시 예수님을 찾아와서는 예수님을 비난하고 시험하기 위해서 하늘로부터 내리는 표적을 보여 달라고 합니다. 서기관과 바리새파 사람들이 예수님께 보여 달라고 요구한 표적은 마귀가 예수님에게 요구하였던 것과 비슷한 사람들이 깜짝 놀랄만한 신비하고 놀라운 이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일찍이 신비하고 놀라운 기적으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증명하라는 마귀의 시험을 거절하였듯이,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임을 증명하는 표적을 보여 달라는 서기관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의 요구를 거절하십니다. 예수님은 표적을 구하는 이들에게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지만, 저들에게 보여줄 표적은 요나의 표적 외에는 없다고 선포하십니다.
마12:39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선지자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느니라
우리는 어떤 경우 하나님을 시험하는 죄를 짓게 됩니까? 우리의 욕심을 이루기 위해서 하나님을 이용하려고 할 때 우리는 하나님을 시험하는 죄를 범하게 됩니다. 우리 마음속에 있는 개인적인 욕구, 이기적인 욕망을 성취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약속이나 말씀을 이용하려는 것이 곧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입니다.
시편78:18에 “저희가 저희 탐욕대로 식물을 구하여 그 심중에 하나님을 시험하였으며...”
창조주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자판기(vending machine) 믿음으로 만드는 것은 하나님을 시험하는 악한 일입니다. 자판기 믿음이란 정해진 금액을 넣고 내가 원하는 단추를 누르기만 하면 내가 원하는 것이 툭 튀어나오는 것처럼, 내가 한 신앙 행위를 가지고 내가 바라고 원하는 대로 그때마다 그대로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믿음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아니라 하나님을 조정하는 믿음이며 하나님을 시험하는 믿음입니다.
내 뜻대로 이루어주시지 않으셔도 우리는 하나님의 선하심과 신실하심을 찬양해야 합니다. 오랫동안 기도하며 계획했지만 기도하고 준비한 계획이 무산되어도 우리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의심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도록 간절히 기도하신 것은 예수님의 뜻대로 되기를 위함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로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기도하셨습니다.
내 욕심을 이루려는 방법으로 성경의 약속을 인용하거나 사용하는 것은 하나님을 시험하는 중대한 죄이며 하나님을 대적하는 악한 일입니다. 내가 생각한 기한과 때에 하나님을 맞추려고 들지 마시기 바랍니다. 오히려 그 반대로 하나님의 때에 우리 자신을 맞추어야 합니다. 내 방식대로 하나님을 맞추려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 반대로 하나님의 방식에 내가 맞추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믿는 믿음입니다.
어떤 경우 하나님을 시험하는 죄를 짓는 것이 됩니까? 일반적인 방법이 있는데도 그 방법을 버리고 하나님의 특별한 방법을 구하는 것은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이 됩니다. 성전에서 내려가는 계단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성전 꼭대기에서 단숨에 뛰어내리는 방법을 찾는 것은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평소에는 특별한 목적을 위해 물 위를 걸으신 것을 제외하고는 항상 배를 타고 갈릴리 바다를 건너셨습니다. 특별한 목적을 위해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하신 것을 제외하고는 주로 제자들을 보내어서 음식을 사 오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서는 성경이나 설교나 예배 등, 일반적인 방법이 있습니다. 그런데도 예언 기도라든지 은사 집회라든지 특별하고 신기한 방법을 고집하는 것은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어떤 경우 하나님을 시험하는 죄를 짓는 것이 됩니까? 심지 않은 것을 거두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이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수고하지 않고 축복을 받으려는 생각이 그것입니다. 씨를 뿌리지 않고 열매를 거두려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싸우지 않고 승리하려는 생각이 바로 그것입니다. 지혜와 지식을 얻기 위해 부지런히 찾고 구하지 않고서 얻으려는 생각이 바로 그것입니다. 자신을 엄격하게 말씀으로 쳐서 복종시키는 훈련을 하지 않고서 경건에 이르고자 하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갈6:7-8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어떤 경우 하나님을 시험하는 죄를 짓는 것이 됩니까? 하나님께서 구체적으로 지시하신 것이 아닌데도 스스로 자신을 불덩이 속에 던지고서는 하나님께서 자기를 지키시고 보호하실 것을 기대하는 것입니다. (신학교 때 박익수 교수님 간증)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어 우리를 지키시고 보호하시는 것은 우리가 믿음의 길 순종의 길을 가려고 할 때 그렇게 하시는 것이지 제멋대로 성전 꼭대기에 올라가서는 거기서 뛰어내리면서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기대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입니다.
이외에도 죄악을 품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도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이고, 우상을 섬기면서 하나님도 섬기는 것도 그것이고, 하나님이 부르지도 시키지도 않았는데 나서서 하겠다고 하는 경우도 그것입니다. 내 생각, 내 뜻, 내 계획, 내 방식대로 하나님을 이용하는 모든 것이 하나님을 시험하고 대적하는 악한 일입니다.
“주 너희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이것은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하나님을 시험하게 만드는 마귀의 시험을 물리치는 방법으로 가르쳐주신 말씀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예수님의 가르침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자주 하나님을 의심하고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 그리고 신실하심을 확인하기 위해 하나님을 시험하려고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시험하는 죄에 빠지지 않는 가장 중요한 영적 비결은 하나님을 시험하려고 할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시험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시험해야 할 분은 하나님이 아닙니다. 우리가 시험해야 할 것은 오직 자기 자신의 믿음입니다. 사도 바울은 가르치기를 주를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지 시험하여 보라고 했습니다.
[엡5:10]주를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시험하여 보라
말씀을 마칩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언약이 이루어지지 않는 이유가 있다면 하나님께서 신실하지 않으시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과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창조의 원리에 순종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바라기는 하나님을 시험하는 믿음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과 창조원리에 순종하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누리며 사시길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