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와성경공부
예수님과 시험11-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마태복음 4:8-10

 

예수님과 시험연속설교, 열한 번째 시간입니다. 오늘은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라는 제목으로 시험하는 자 마귀의 세 번째 시험에 대해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오늘도 전하는 말씀 가운데 여러분에게 향하신 하나님의 세미하고 부드러운 음성을 듣고 깨닫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님께서는 공생애 사역을 시작하기에 앞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세 가지 시험을 받으십니다. 예수님께서 마귀에게 받으신 세 가지 시험은 공생애 사역 내내 예수님을 따라다니며 예수님을 무너뜨리려고 했던 시험에 대한 메타포라 할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예수님께서 받으신 세 가지 시험은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우리의 신앙생활에도 끊임없이 반복되는 시험에 대한 메타포이기도 합니다.


성전 꼭대기에서 예수님을 시험하는 데 실패한 마귀는 예수님을 지극히 높은 산으로 데려갔습니다. 높은 산으로 예수님을 데려간 마귀는 예수님에게 천하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주고는 말합니다. 만일 내게 엎드려 절하기만 하면 천하만국의 권세와 영광을 모두 준다고 합니다.


4:8-9 마귀가 또 그를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이르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마귀가 예수님에게 보여준 천하만국과 그 영광은 무엇에 대한 메타포입니까? 세상이 주는 권력과 부 그리고 명예와 인기를 의미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세상이 주는 권력과 부, 명예와 인기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지기를 원하는 것임이 틀림없습니다. 능력이 없어서, 실력이 없어서, 힘이 없어서 가지지 못하는 것이지 능력만 된다면, 실력만 된다면, 힘만 있다면 누구라도 가지길 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지길 원하는 세상의 권력과 부, 명예와 인기를 누가 준다고 합니까? 시험하는 자 마귀가 준다고 합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합니까? 사람들이 그렇게 간절히 가지길 원하는 세상의 권력과 부, 명예와 인기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이기보다는 본질적으로 마귀가 주는 시험이며 유혹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물론 성경에 기록된 인간의 역사를 보면 분명 하나님께서 주시는 세상의 권력과 부, 명예와 인기도 있습니다. 요셉은 하나님의 은혜로 당대 최강대국이었던 이집트의 총리라는 권세와 부, 명예와 인기를 누렸습니다. 다니엘 역시 나라가 망하여 포로로 잡혀갔음에도 바벨론은 물론이고 페르시아 제국까지 두 제국에 걸쳐 총리라는 막강한 권세와 명예를 누렸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주시는 권력과 부, 명예와 마귀가 주는 권력과 부 명예에는 매우 중요한 차이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요셉이나 다니엘에게 주셨던 권력과 부와 명예는 하나님의 뜻과 사명을 이루기 위해 꼭 필요한 권력이며 부였습니다. 그리고 요셉이나 다니엘은 하나님께서 주신 권력과 부로 하나님의 뜻과 사명을 이루었습니다. 반면에 마귀가 주는 권력과 부, 명예와 인기는 자기의 욕심만을 채우려는 인간의 탐욕에 의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려는 권력과 자신의 탐욕을 위한 권력은 얼핏 비슷하게 보이지만 이것은 결코, 같지 않습니다. 이것은 다른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분명 하나님께서 주시는 부가 있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하나님의 뜻과 필요를 이루기 위한 것입니다. 만약 내가 가진 물질이 사치하고 낭비하는 일에 사용된다면 이것은 하나님께서 베푸신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마귀가 나를 시험하고 유혹하려고 준 것입니다.


오병이어의 이적은 이러한 하나님의 뜻을 너무나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예수님 주변에 모여든 굶주린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가지고 있던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빵 다섯 개를 가지고는 굶주린 오천 명이 넘는 사람들에게 저들이 원하는 대로 주셨습니다. 굶주린 오천 명이 배불리 먹고도 음식이 남았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남은 음식을 거두어 버리는 것이 없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6:12 그들이 배부른 후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남은 조각을 거두고 버리는 것이 없게 하라 하시므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은 그 어떤 것이라도 사치와 낭비를 위해 주시는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필요를 채우시는 분이십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일용할 양식이고 일용할 양식을 공급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욕심이 아니라 필요를 따라 살기를 원하십니다. 필요를 따라 살게 하시고 필요한 것을 채워주시기에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삶에는 기쁨이 있고 만족이 있으며 감사가 있습니다.


반면에 마귀는 우리에게 필요 이상의 것은 부추기고 탐내게 만들어 우리를 이 세상의 것에 얽매이게 만듭니다. 이를 위해 불만족이란 무기를 쓴다. 그래서 신기하게도 돈을 모으면 모을수록 부족하기만 하고, 쾌락을 즐기면 즐길수록 더 큰 쾌락을 찾게 된다. 높은 자리에 오르면 오를수록 더 높은 자리가 눈에 보이고, 정상에 오르면 오른 대로 내려가지 않으려고 노심초사한다.


필요 이상을 탐내는 욕심은 아무리 채우려고 해도 채울 수 없습니다. 사람의 욕심은 아무리 채우려고 해도 도무지 채울 수 없습니다. 채울 수 없기에 여기에는 도무지 만족이 있을 수 없습니다. 따라서 필요 이상의 것을 욕심내게 만드는 마귀의 유혹을 따르는 삶에는 그 어떤 만족이나 기쁨이 있을 수 없습니다. 오직 불평과 불만으로 가득 찬 인생을 살게 합니다. 이것을 너무나 알면서도 한 번뿐인 인생을 이런 일에 얽매여 인생을 낭비하며 살게 만듭니다.


일리노이대 심리학 교수인 에드 디너 교수는 전 세계에 걸쳐 여론 조사를 통해 사람의 행복지수를 알 수 있는 공식을 만들었습니다. 에드 디너가 주장한 행복지수 공식은 가진 것/원하는 것입니다. 이 공식에 의하면 사람들이 더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가진 것을 더 늘리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원하는 것을 줄이는 것입니다.


어떤 방법이 더 좋은 것 같습니까? 여러분은 어떤 방식을 택하시겠습니까? 세상의 방식은 항상 가진 것을 더 늘리는 것입니다. 세상은 끊임없이 더 많이 가지면 더 많이 행복할 것이라 우리를 유혹합니다. 하지만 더 많이 가짐으로 더 행복해진다는 주장에는 매우 심각한 문제가 있습니다. 이 방식의 가장 중요한 결점은 더 많이 가지면 가질수록 원하는 것도 점점 더 많아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무리 더 가져도 행복공식에 의한 수치는 늘 제자리를 맴돌 수밖에 없습니다.


에드 디너 교수의 행복지수의 공식에서 행복의 값을 높이기 위해서는 두 가지 방법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한 가지 방법만이 존재합니다. 그것은 바로 원하는 것을 줄이는 것 외에는 어떠한 해결책도 없습니다. 여기서 원하는 것을 줄이는 것은 다름 아니라 욕심을 통제하는 것입니다. 욕심을 채우는 길은 세상 그 어디에도 없습니다. 욕심은 채우는 것으로 다스려지지 않습니다. 오직 절제하고 통제함으로만 다스려지는 괴물입니다.


이렇게 말씀드리면 어떤 분은 사람이 너무 욕심이 없으면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고 발전도 하지 않느냐며 걱정하십니다. 하지만 이런 걱정은 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아무리 욕심을 가지지 않으려고 해도 인간에게 있어 욕심을 가지지 않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욕심은 굳이 욕심을 내지 않아도 스스로 커지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하루에도 수도 없이 욕심을 다스리려고 기도하고 다짐을 합니다. 그래도 여전히 컨트롤 하지 못하는 욕심이 살아서 꿈틀거립니다.


물론 필요 이상의 권력이나 돈, 힘이나 인기는 대단히 매력적입니다. 하지만 이런 것들을 인생의 목적으로 삼게 되면 사람은 이내 권력의 노예, 물질의 노예, 힘의 노예, 인기의 노예로 전락하고 맙니다. 이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것이 마귀의 세 번째 시험입니다. 마귀는 어떻게 해야 세상의 권세와 부를 준다고 했습니까? 자신에게 엎드려 경배하면 천하만국과 그 영광을 준다고 했습니다.


마귀가 예수님에게 제안한 엎드려 경배하라는 것은 단순히 엎드려 절 한 번 하거나 고개 한 번 숙이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을 인생의 주인으로 삼으라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마귀에게 엎드려 경배하라는 것은 자신의 방식으로 세상을 살라는 것입니다. 자신을 주인으로 삼아 자신의 방식을 따라 살면 세상이 주는 권세와 부, 명예와 인기를 준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우리 인생의 주인으로 삼고 하나님의 뜻과 방식을 따라 살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삼아 주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 주십니다. 하지만 마귀를 인생의 주인으로 삼고 마귀의 방식을 따라 살면 마귀는 우리를 권력의 노예가 되게 합니다. 물질의 노예가 되게 합니다. 명예의 노예가 되게 합니다. 인기의 노예가 되게 합니다.


벧전2:9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그 결과 힘 있는 자는 힘없는 자를, 부자는 가난한 자를, 권세를 가진 자는 권세 없는 자를 정복하고 다스리고 빼앗으며 살아갑니다. 약한 자가 강한 자의 노예가 되거나 먹이가 되는 것을 무엇이라고 합니까? 약육강식이라고 합니다. 약육강식은 우리가 발을 딛고 살아가는 이 세상에서 나타나고 있는 엄중하고 분명한 현실입니다. 그렇기에 사람들이 남들보다 더 큰 힘, 더 큰 권세, 더 많은 재물에 목숨을 걸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갈수록 약육강식은 우리가 사는 세상의 가장 강력한 질서와 원리가 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빈번하게 나타나고 있는 대표적인 약육강식 현상이 무엇입니까? 부자는 갈수록 부자가 되고 가난한 사람을 갈수록 가난해지는 부익부 빈익빈 현상입니다. 부익부 빈익빈은 인간 세상에 나타나는 대표적인 약육강식의 결과입니다. 물론 인종차별이나 성차별 또는 장애인이나 소수자 차별 등도 대표적인 약육강식의 결과입니다.


많은 이들이 자연과 동물의 세계를 약육강식의 세계라고 생각합니다. 자연과 동물의 세계가 힘센 것이 약한 것을 잡아먹는 약육강식의 질서와 원리에 의해 유지된다고 생각합니다. 심지어 동물의 세계에서 나타나는 약육강식의 질서를 마치 하나님이 주신 창조의 질서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인간 세상에서 나타나는 약육강식 현상을 마치 당연한 것으로 여기도록 생각하게 만듭니다. 하지만 이것은 매우 교묘하고 교활한 마귀의 유혹입니다.


약육강식은 하나님의 창조 질서나 법칙이 아닙니다. 약육강식은 세상과 사람을 지배하고 통제하려는 마귀의 방식이며 방법입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동물들의 세계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약육강식의 질서와 원리로 살아가지 않습니다. 동물들은 아무리 힘이 세다고 약한 동물을 무조건 잡아먹지 않습니다.


육상 동물 가운데 코끼리는 가장 힘이 세고 덩치가 큰 동물 가운데 하나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센 코끼리이지만 자기보다 약한 동물들을 잡아먹지 않습니다. 코끼리는 오직 풀만 먹고 삽니다. 오직 육식 동물만 동물을 잡아먹습니다. 그렇다고 다른 동물을 잡아먹는 육식 동물의 세계를 무조건 약육강식의 세계라고도 할 수도 없습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동물의 세계는 결코 힘이 센 사자나 호랑이가 지배하는 세상이 아닙니다. 야생의 세계를 보면 살찐 소나 양은 있어도 살찐 사자나 호랑이는 없습니다. 만약 힘이 센 사자나 호랑이가 동물의 세계를 지배한다면 동물의 세계에는 사자나 호랑이가 소나 말, 사슴과 같은 초식동물보다 훨씬 더 많아야 합니다. 하지만 아프리카의 넓은 초원을 가득 채운 동물은 사자나 호랑이가 아닙니다. 소나 기린이나 얼룩말 같은 초식동물들입니다.


동물의 세계를 약육강식의 세계라고 여기는 것은 사람들을 지배하고 통제하려고 하는 마귀와 악한 세상의 일방적인 주장이며 생각입니다. 우리가 오해하는 것처럼 동물의 세계는 약육강식의 질서에 의해 움직이고 유지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동물의 세계는 약육강식의 세계가 아닙니다. 오직 필요에 의해서만 움직이고 유지되는 세계입니다.


그래서 아무리 힘이 센 사자나 호랑이라 할지라도 함부로 사냥에 나서지 않습니다. 꼭 필요할 때만 사냥에 나섭니다. 게다가 힘센 사자나 호랑이가 나타났다고 사자나 호랑이에게 나 잡아먹으라고 맡기는 동물도 없습니다. 아무리 연약한 동물이라도 자신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서 자신보다 훨씬 강한 동물에게 끝까지 도망치려고 저항하며 발버둥 칩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유독 사람은 힘센 사람, 권세 높은 사람, 돈 많은 사람이 괴롭히면 저항하거나 힘이 없어 도무지 저항할 수도 없으면 도망이라도 쳐야 합니다. 하지만 많은 경우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먼저 납작 엎드리거나 때리는 대로 맞고만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고는 힘센 놈에게 바짝 엎드려 사는 것이 마치 대단히 현명한 처세술처럼 여깁니다. 이것은 현명한 처세술이 아니라 동물보다도 못한 비겁한 행동입니다.


인간의 끝없는 탐욕을 이용하여 인간을 지배하고 통제하기 위해 마귀가 앞세우는 가장 악한 세상의 질서가 바로 약육강식의 질서입니다. 약육강식은 힘이 센 사람이 힘이 약한 사람을, 부자가 가난한 사람을, 권력을 가진 사람이 권력이 없는 사람을, 함부로 여기게 하는 것을 마치 당연한 창조의 질서처럼 여기게 만드는 마귀의 교묘하고 교활한 유혹입니다.


세상이 주는 모든 것을 얻기 위해 마귀에게 엎드려 경배하는 것은 마귀가 만든 약육강식의 악한 질서를 따르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약육강식의 질서가 과연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만드신 질서일까요? 아니요.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결코, 우리가 사는 세상을 약육강식의 질서와 원리로 유지되도록 만들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11:6-9 그 때에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 아이에게 끌리며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엎드리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며 젖 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젖 뗀 어린 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라 내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 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


하나님께 대적하는 마귀가 내세운 약육강식의 방식이 아주 오랜 옛날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여전히 계속해서 세상과 사람을 움직이는 가장 강력한 방식인 이유가 무엇 때문입니까? 인생의 목적을 사람이 함께 잘 사는 것보다 내가 남들보다 더 높은 자리, 내가 남들보다 더 많이 가지려 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 대부분이 세상이 주는 권세와 부를 가지기 위해 마귀에게 엎드려 경배하며 마귀의 방식을 따라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교회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교인들은 교회에 모일 때마다 입으로는 하나님의 나라를 말하고 기도하면서도 정작 교인들이 마음으로 원하는 나라는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하나님 나라가 아닙니다. 예배로 모일 때마다 약할 때 강함되시네찬양하지만, 막상 약할 때, 실패할 때, 고난 당할 때를 하나님의 은혜로 여기지 않습니다. 오로지 강할 때, 성공할 때, 형통할 때만 하나님의 은혜라고 여깁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인생을 사는 데에는 두 가지 방식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는 마귀에게 절하고 경배하는 사는 것이라면 다른 하나는 하나님을 경배하며 사는 것입니다. 마귀에게 절하고 경배하면 마귀는 세상의 모든 것을 준다고 약속합니다. 하지만 마귀가 준다고 약속한 모든 것은 우리의 필요를 넘어서는 욕심과 탐욕을 위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하나님을 경배하며 사는 사람에게 모든 것을 더하여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주신다고 약속하신 모든 것이 무엇입니까? 일용할 양식이며 우리의 필요를 채우는 모든 것입니다. 마귀에게 절하고 경배하며 욕심을 채우려는 삶을 살 것인지 아니면 하나님을 경배하며 필요를 공급받으며 살 것인지는 우리의 선택과 결정에 달려있습니다.


6:33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바라기는 천하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주며 우리를 시험하는 마귀의 끊임없는 유혹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경배하고 섬기는 바른 선택과 결정을 할 수 있는 지혜와 용기 그리고 믿음이 오늘 말씀을 듣는 자유교회 모든 성도들에게 있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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