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와성경공부
교회4-본받는 교회, 본이 되는 교회

본받는 교회, 본이 되는 교회

데살로니가전서 1:4-8

 

세상에서 만드는 하나님 나라 네 번째 시간입니다. 오늘은 본받는 교회, 본이 되는 교회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눕니다. 오늘도 함께 나누는 말씀 가운데 교회와 우리 각자에게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세미하고 부드러운 음성을 들으실 수 있기를 바라고 축복합니다.


오늘날 교회는 그저 그런 공동체로 전락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교회가 세상 사람들에게 버리자니 아깝고 가지고 있자니 짐만 된다는 애물단지 취급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교회 안에서도 똑같이 일어납니다. 그래서 세상은 교회에 대해 별다른 기대를 하지 않습니다. 자신들과 별반 다를 바 없는 곳으로 여깁니다.


교인들 또한 교회에 대한 기대치도 그리 높지 않습니다. “주일에 좋은 말씀 들으며 마음의 위안을 얻으며 살아가면 되지.” 또는 일주일 한 번 한국 사람들끼리 모여서 한국말로 수다나 떨고 이민 생활에 필요한 여러 정보나 얻으면 충분하지.” 교회를 이쯤으로 여기는 것이 대다수 이민 교회 교인이 교회에 대해 가진 생각입니다.


이보다 더 심각한 것은 교회가 마땅히 타락한 세상을 걱정하고 불의한 사회 문제를 걱정해야 당연합니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입니다. 오히려 세상이 교회와 교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문제를 걱정하고 염려합니다. 심지어 교회 역시 이미 교회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온갖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로 인해 세상과 사회를 걱정할 여력도 없고 능력도 잃어버렸습니다.


한국에서 이번 코로나 사태를 겪으면서 사회적 신뢰를 가장 심각하게 잃은 곳은 개신교회입니다. 한국에서 코로나 확산에 가장 큰 도화선이 된 곳은 항상 개신교회였습니다. 전염병이 창궐하는 중에 대면 예배와 각종 집회를 강행하다가 교회를 중심으로 코로나를 확산시켰습니다. 그 결과 한국 사회에서 개신교회에 대한 주된 여론은 교회라고 하면 이젠 지긋지긋하다는 것입니다.


최근 개신교 여론 조사기관인 목회데이터연구소에서 한국 개신교회에 관한 여론조사를 했습니다. 여론조사 결과 한국교회를 신뢰한다는 사람이 21%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나마 한국교회를 신뢰한다고 대답한 이들 대부분은 개신교회를 다니는 교인들이었다고 합니다. 이 수치는 작년 32%에 비해 1년 사이 무려 11%나 줄어든 수치입니다. 게다가 비기독교인이 교회에 대한 신뢰도는 9%에 지나지 않았다고 합니다.


교회는 이 사실을 결코 외면하거나 무시하지 말아야 합니다. 갈수록 교회는 세상과 사회에서 그 신뢰를 잃어가고 있습니다. 교회가 세상과 사회에서 신뢰를 잃어간다는 것은 교회가 세상과 사회를 변화시키기는커녕 전도나 선교도 힘들어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전엔 교회가 그리고 목사가 팥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믿었습니다. 하지만 이젠 교회가 그리고 목사가 팥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믿으려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데살로니가 교회는 지금의 교회와는 전혀 다른 공동체였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고대도시라는 척박한 환경에서 그리고 로마제국의 박해와 핍박 가운데서도 많은 이들에게 본이 되는 교회를 만들어 갔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에 편지를 보내며 데살로니가 교회가 주변 모든 지역 교회의 믿는 자들의 본이 되는 교회라고 칭찬했습니다.


그럼 데살로니가 교회는 어떻게 모든 믿는 자들의 본이 되는 교회로 자라날 수 있었습니까? 이 문제에 대해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전서 14절에서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택하여 주셨음을 알고 있다고 했습니다.


살전1:4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택하여 주셨음을 알고 있습니다.


일부 목사나 교인들은 이 구절을 가지고 데살로니가 교회가 칭찬받는 교회가 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주변 모든 교회와 교인들에게 본이 되게 하시려고 이미 택하여 예정하신 교회라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성경을 해석한다면 매우 심각한 문제가 생깁니다.


하나님께서는 도대체 왜 데살로니가 교회만 본이 되는 교회로 택하여 예정하시고 다른 교회는 예정하지 않으셨냐는 문제가 생깁니다. 이것은 개인의 구원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구원하실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이미 예정하셨다고 한다면 이것은 하나님의 공의에 있어 매우 심각한 오류가 생깁니다.


제가 감리교 목사라서가 아니라 개인적으로 저는 특정한 사람을 구원하시기로 택하셨다는 예정론을 믿지 않습니다. 아니 믿을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하나님의 모든 예정을 완전히 부인하지도 않습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모든 교회를 택하셨다고 믿습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을 구원에 이르도록 예정하셨다고 믿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저의 생각이 아니라 성경의 가르침이며 사도 바울의 확고부동한 가르침입니다.


2:21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

10:13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그렇다면 어떤 교회는 하나님의 칭찬 받는 교회가 되고 어떤 교회는 책망받는 교회가 되는 이유가 무엇 때문입니까? 마찬가지로 어떤 사람은 구원받는 사람이 되고 어떤 사람은 교회를 다녀도 구원받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 때문입니까? 교회가 그리고 사람이 잘못된 믿음이나 불신앙으로 하나님께서 이미 모든 교회와 사람에게 예정하신 구원을 거부하기 때문입니다.


3:23 누구든지 그 선지자의 말을 듣지 아니하는 자는 백성 중에서 멸망 받으리라 하였고


데살로니가 교회는 하나님께서도 인정하실 만큼 좋은 교회였습니다 .게다가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는 주변 지역에 있는 여러 교회와 믿는 자들에게 본이 되는 교회라고 했습니다. 도대체 데살로니가 교회는 어떻게 하였기에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좋은 교회가 될 수 있었던 것일까요?


여기에 대해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전서 15절로 8절의 말씀을 통해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먼저 바울은 자신과 실루아노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말로만이 아니라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전하였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단순히 바울의 생각만이 아니었습니다. 자신들이 말로만 복음을 전한 것이 아님을 데살로니가 사람들도 잘 알고 있다고 했습니다.


살전1:5 그것은 우리가 여러분에게 복음을 말로만이 아니라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전하였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여러분 가운데서 여러분을 위하여 어떻게 처신하였는지를, 여러분은 알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 모두 반드시 마음에 두어야 하는 매우 중요한 교훈입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도시에 복음을 전할 때 그저 말로만 복음을 전하지 않았습니다. 데살로니가 사람들이 흠잡을 데 없는 처신과 태도 그리고 성령의 도움으로 복음을 전했습니다. 이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전하는 복음이 빛을 발하는 것은 우리의 처신과 태도에 달려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바울과 실루아노가 바른 처신과 태도 그리고 성령의 도움으로 복음을 전하자 데살로니가 사람들은 저들이 전하는 복음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습니다. 비록 바울과 실루아노가 전하는 복음을 받아들인다면 많은 환난과 박해가 예상되었습니다. 하지만 저들은 바울이 전한 복음을 기쁨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었습니까? 복음에는 환난을 능히 뛰어 넘게 만드는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살전1:6a 또한 여러분은 많은 환난 가운데서도 성령이 주는 기쁨으로 말씀을 받아들여서


더 나아가 데살로니가 교회는 말씀을 받아들이는 데에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단순히 말씀을 듣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자신들이 들은 말씀대로 살아가려고 애쓰는 것을 의미합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바울이 전한 복음을 듣고는 그 복음을 받아들여 복음을 전한 바울과 실루아노를 본받는 사람이 되었고 나아가 저들이 전한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살전1:6b 우리와 주님을 본받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것 역시 우리가 반드시 명심해야 하는 매우 중요한 영적 교훈입니다. 복음을 받아들였다고 처음부터 주님을 본받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이란 먼저 자신들에게 복음을 전한 사람들을 본받는 것으로부터 시작합니다. 그리고 조금씩 성경을 배우고 주님을 알아가면서 주님을 본받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데살로니가 교회가 바울을 본받고 나아가 주님을 본받는 교회가 되자 저들은 마게도냐와 아가야 지역의 모든 믿는 이들에게 모범이 되었습니다. 주님을 본받는 교회가 다른 이들에게 본이 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사실입니다. 데살로니가 교회가 주변 지역 모든 믿는 이들에게 모범이 되자 데살로니가 교회는 더 많은 이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좋은 교회가 된 것입니다.


살전1:7 그래서 여러분은 마게도냐와 아가야에 있는 모든 믿는 이들에게 모범이 되었습니다.

살전1:8 주님의 말씀이 여러분에게서부터 마게도냐와 아가야에만 울려 퍼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 여러분의 믿음의 소문이 각처에 퍼졌습니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데살로니가 교회에서 일어난 일을 다섯 단계로 나누어 설명할 수 있습니다. 1) 바울과 실루아노가 복음을 전했습니다. 2) 데살로니가 사람들이 복음을 받아들였습니다. 3) 바울 일행과 주님을 본받는 자가 되었습니다. 4) 주변 지역의 믿는 사람들에게 본이 되었습니다. 5) 모든 사람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단지 데살로니가 교회에만 일어나는 사건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복음이 전해지는 곳이라면 어디서나 일어나는 사건이 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너무나 안타깝게도 오늘날 교회는 데살로니가 교회에서 일어났던 사건이 더는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물론 교회는 여전히 복음을 전하고 있으며 사람들은 복음을 전해 듣습니다. 그리고 일부는 저들이 전한 복음을 듣고 교인이 됩니다. 물론 요즘은 아주 가끔만 일어나는 일입니다. 하지만 갈수록 이런 일도 점점 드물어지는 추세입니다. 거의 모든 교회가 수평 이동이 대부분입니다. 마치 카드 돌려막는 것처럼 말입니다.


진짜 심각한 문제는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나 복음을 듣고 받아들이는 사람이나 모두 여기서 신앙이 멈추어 버린다는 것입니다. 복음을 받아들여 믿음의 사람이 되었으며 반드시 주님을 본받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여기까지 나가는 일은 좀처럼 일어나지 않습니다.


물론 말로는 복음을 믿는다고 고백은 하지만 정작 복음에 합당한 삶, 주님을 본받는 삶은 사라졌습니다. 왜 이런 일이 생기는 것입니까?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주님을 본받는 사람이 되지 않으니 당연히 복음을 듣는 사람도 자신에게 복음을 전해준 사람을 본받아 주님을 본받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본받고 본을 보이기가 데살로니가 교회에 나타난 가장 중요한 영적 현상입니다. 하지만 더는 이런 현상이 오늘날 교회에서는 나타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니 교회가 세상에 아무런 영향력을 끼치지 못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결과라 할 수 있습니다.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지 못하는 교회는 세상에 있으나 마나 한 공동체가 되고 맙니다. 그저 죽은 다음 천국에 간다는 종교적 확신을 확인하거나 도시 생활이나 이민 생활에서 지치고 피곤한 이들이 함께 모여서는 마음의 위로와 평안을 얻는 것이 전부인 공동체가 되고 맙니다. 이것이 오늘날 대부분 한국교회나 이민 교회에서 나타나고 있는 모습이라고 해도 조금도 지나치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교회가 이 지경에 빠지게 된 것입니까? 이민 교회를 포함하여 한국교회가 믿는 복음이 예수 믿으면 죽어서 천당 간다는 것에만 머물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이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신앙이 되고 있습니다.


죽어서 천당 가는 것이 신앙의 가장 중요한 목표며 목적이니 세상을 살면서 하나님 나라 백성답게 사는 것에 대해서는 그다지 중요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어차피 이 세상은 심판받고 멸망 받아 망해야 할 세상이라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세상은 세상 식대로 살고 교회에서만 교회식대로 살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처럼 잘못된 복음은 잘못된 회심을 가져오고 잘못된 회심은 잘못된 신앙의 사람이 되게 합니다.


물론 죽은 다음에 가는 천국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죽은 다음에 가는 천국을 결정하는 것은 결국, 사람이 세상에 살면서 어떤 삶을 살았느냐가 결정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을 살면서 하나님의 뜻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도록 기도하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 사람만이 죽어서 가는 곳이 하나님 나라입니다. 살면서 하나님 나라를 거절한 사람은 죽어서도 하나님 나라를 거절할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하나님 나라라고 합니다. 만약 내 뜻이 이루어진다며 거기를 하나님 나라라고 할 수 있을까요? 아니요. 거긴 내 나라이거나 지옥일 경우가 확실합니다. 따라서 내 뜻이나 욕심이 이루어지는 내 나라를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모두가 평화를 누리는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살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인간의 몸으로 세상에 보내셔서 사람을 구원하신 것처럼 사람들의 모임인 교회를 통해 하나님 나라를 세상에 보이시려고 우리를 교회로 부르시고 모으신 것입니다. 따라서 교회는 세상을 향해 교회를 보고 하나님 나라를 미리 경험하라고 선포할 수 있어야 합니다. 목사와 교인들 역시 세상 사람들을 향해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고 선포할 수 있어야 합니다.


고정4:16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권하노니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


그럼 어떻게 우리가 세상을 향해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고 선포할 수 있습니까? 우리가 먼저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성경을 모르기에 말씀도 모릅니다. 말씀을 모르니 당연히 하나님도 예수님도 성령님도 알지 못합니다. 저들이 하나님과 예수님 그리고 성령님을 알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먼저 믿은 우리를 통해서입니다. 먼저 주님을 영접한 바울과 실루아노를 통해 데살로니가 사람들이 주님을 영접하게 된 것처럼 말입니다.


고전11:1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


제가 자주 반복하는 설교입니다. 언제부턴가 교회가 교회 사람보고 다니나 하나님 보고 다녀야지하는 말을 밥 먹듯이 하고 있습니다. 얼핏 들으면 대단히 그럴싸한 말처럼 들리지만, 이것은 교회의 본질을 심각하게 왜곡하는 매우 위험한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교회를 통해 보이지도 않고 볼 수도 없는 하나님과 하나님 나라를 세상에 보이시길 원합니다. 그래서 우리를 교회로 부르신 것입니다.


그런데 정작 교회는 사람 보지 말고 하나님만 보고 교회 다니라고 합니다. 도대체 교회가 왜 이런 말을 밥 먹듯이 하게 되었습니까? 목사나 교인들에게 하나님이 계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목사와 교인들의 신앙과 삶을 통해 하나님의 모습이 나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교회인 것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과 하나님 나라를 교인들을 통해 세상에 그리고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이것이야말로 교회의 가장 중요한 본질이며 사명입니다. 그런데 교회가 가장 중요한 교회의 본질과 사명을 포기한다면 더는 교회가 아니라 그냥 친목 집단에 지나지 않습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교회는 먼저 주님을 본받는 사람들의 모임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세상에 복음의 본이 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야말로 그 어떤 것보다 중요한 교회의 본질이며 사명입니다. 이 사명을 감당하는 일에 앞장서는 저와 여러분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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