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와성경공부
교회5-짝퉁 신을 버리고 하나님께 돌아오는 교회

짝퉁 신을 버리고 하나님께 돌아오는 교회

데살로니가전서 1:9-10

살전1:9 그들이 우리에 대하여 스스로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너희 가운데에 들어갔는지와 너희가 어떻게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살아 계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섬기는지와

살전1:10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그의 아들이 하늘로부터 강림하실 것을 너희가 어떻게 기다리는지를 말하니 이는 장래의 노하심에서 우리를 건지시는 예수시니라

 

세상에서 만들어 가는 하나님 나라 다섯 번째 시간입니다. 오늘은 짝퉁 신을 버리고 하나님께 돌아오는 교회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눕니다. 오늘도 함께 나누는 말씀 가운데 우리 교회와 여러분 각자에게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세미하고 부드러운 음성을 들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바울과 실루아노의 복음 전파로 시작된 교회였습니다. 바울과 실루아노는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거짓 없는 진리의 말씀을 확신 있게 그리고 예의 바른 태도와 자세를 가지고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 결과 바울과 실루아노를 따르는 유대인들뿐만 아니라 헬라인들이 점점 많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위기감을 느낀 데살로니가 지역의 유대인들이 바울과 실루아노를 시기하여 불량배들을 동원하여 소동을 일으켰습니다. 바울과 실루아노를 잡아서 관청에 고발하려고 했지만 찾지 못했습니다. 할 수 없이 바울과 실루아노를 자신의 집에 머물게 한 야손과 형제들을 대신 붙잡아서는 관청에 고발했습니다.


17:5 그러나 유대인들은 시기하여 저자의 어떤 불량한 사람들을 데리고 떼를 지어 성을 소동하게 하여 야손의 집에 침입하여 그들을 백성에게 끌어내려고 찾았으나


보석금을 내고 풀려난 야손과 형제들은 바울과 실루아노가 잡히지 않도록 베뢰아로 떠나보내야 했습니다. 비록 바울과 실루아노가 급작스럽게 데살로니가 도시를 떠나갔지만, 데살로니가 교회는 흔들리거나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바울과 실루아노가 가르친 복음에 굳게 서서는 주변 지역에까지 모든 믿는 자들에게 본이 되는 좋은 교회를 만들어 갔습니다.


17:9-10 야손과 그 나머지 사람들에게 보석금을 받고 놓아 주니라 밤에 형제들이 곧 바울과 실라를 베뢰아로 보내니


데살로니가 교회는 어떻게 주변 지역 모든 믿는 자들에게 본이 되는 교회가 될 수 있었습니까? 데살로니가 교회는 먼저 자신들에게 복음을 전해 바울과 실루아노 그리고 그들이 가르쳐준 예수님을 본받는 교회였습니다. 주님을 본받는 교회가 주변 믿는 자들에게 본이 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결과입니다. 주님을 본받고 다른 이들에게 믿음의 본이 되는 것은 데살로니가 교회에 나타난 가장 중요한 영적 현상입니다.


이것은 데살로니가 교회에만 일어나는 일회적인 사건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복음이 전해지는 곳이라면 어디나 그리고 지금도 일어나야 하는 사건이어야 합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데살로니가 교회에서 나타났던 현상이 오늘날 교회에서는 좀처럼 잘 나타나고 있지 않습니다. 심지어 요즘은 교회가 세상에 본이 되기는커녕 가뜩이나 어지러운 세상을 오히려 더욱더 어지럽게 만들고 있습니다.


도대체 왜 이렇게 된 것일까요? 예수님을 믿는다고 말만 하면서, 정작 예수님의 가르침을 배우고 예수님의 마음을 본받는 일에는 관심이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말씀과 마음을 본받지 못하는 교회가 세상과 사람들에게 본이 되지 못하는 것은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결과라 할 수 있습니다. 세상에 본이 되지 못하는 교회가 세상과 사람들에게 아무런 영향력도 끼치지 못하고 욕을 얻어먹는 것은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결과입니다.


오늘 우리가 본문으로 읽은 데살로니가전서 19절과 10절의 말씀은 데살로니가 교회에 대한 마게도냐와 아가야 지역 사람들의 평판과 이에 대한 소문을 기록한 말씀입니다. 물론 교회에 대한 주변 사람들의 평판이나 소문에 지나치게 연연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평판이나 소문에는 부당하거나 억울하게 받는 나쁜 평판이나 소문도 분명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개인에 관한 평판이나 소문도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당장은 부당한 평판이나 거짓 소문 때문에 힘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거짓으로는 절대로 진실을 덮을 수 없습니다. 당장은 부당한 평판이나 거짓 소문의 옳고 그름을 분별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부당한 평판이나 거짓 소문은 힘을 잃고 사라지고 말 것입니다. 따라서 부당한 평판이나 거짓 소문에 휘둘리지 않고 끝까지 한결같은 모습을 지켜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것을 몸소 보여주신 분이 예수님이며 사도 바울입니다.


마게도냐와 아가야 지역에 퍼진 데살로니가 교회에 대한 평판과 소문은 이 교회를 깎아내리기 위해 만든 부당한 소문이 아니었습니다. 그렇다고 데살로니가 교회가 자신들 교회를 자랑하기 위해 자신들 스스로 만들어낸 가짜 소문도 아니었습니다. 오랫동안 데살로니가 교회를 지켜보았던 주변 지역 사람들이 자신들 보고 들은 것을 말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랫동안 데살로니가 교회를 지켜보았던 마게도냐와 아가야 지역 사람들은 데살로니가 교회와 교인들을 어떻게 보았습니까? 데살로니가 교회에 대한 저들의 평판과 소문은 무엇이었습니까? 데살로니가 교회에 대한 주변 지역 사람들의 평판과 소문은 크게 두 가지였습니다.


하나는 데살로니가 교회가 지금까지 자신들이 열심히 섬겼던 우상을 버리고는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오직 살아계시고 참되신 하나님만을 섬기는 교회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또 다른 하나는 데살로니가 교회가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시고는 하늘에 오르신 예수님께서 세상에 다시 오실 날을 간절히 교회라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예수님의 재림을 사모했던 교회라는 것입니다.


살전1:9 그들은*우리를 두고 이야기합니다. 우리가 여러분을 찾아갔을 때 어떠한 영접을 받았는지, 어떻게 해서 여러분이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살아 계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섬기는지, (*마게도냐와 아가야 지역에 있는 사람들)


살전1:10 어떻게 해서 여러분이 하나님께서 죽은 사람 가운데서 살리신 그분의 아들, 곧 장차 닥쳐 올 진노에서 우리를 건져 주실 예수께서 하늘로부터 내려오시기를 기다리는지를 퍼뜨리고 있습니다.


마게도냐와 아가야 지역 사람들에 의하면 데살로니가 교회는 오랫동안 섬기던 우상을 버리고는 하나님께로 돌아온 이들입니다. 이것을 회심이라고 합니다. 회심이란 지금까지 섬겨오던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 돌아오는 것입니다.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온 데살로니가 교회의 회심은 주변 지역 모든 믿는 자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아름다운 본이 된 것입니다.


데살로니가 교회의 회심은 오늘 우리에게 회심이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가르쳐 주는 사건입니다. 하나님께 돌아오는 것은 지금까지 우리가 섬기며 살던 우상을 버릴 때만 가능한 사건입니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는 예수님의 가르침처럼 우상을 섬기면서 하나님을 섬길 수는 없습니다. 우상을 섬기든 하나님을 섬기든 양자택일을 해야지 신앙에서 양다리는 도저히 있을 수 없습니다.


우상을 버리고 오직 창조주 하나님만을 섬기라는 것은 아주 오래된 성경의 확고한 가르침입니다. 하지만 구약시대 이스라엘 백성들은 우상을 버리는 일에 실패하였습니다. 하나님 대신 우상을 섬기는 일에 열중했습니다. 이것은 구약시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지금도 여전히 우리는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일에 실패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을 예배라고 한다면 우상을 섬기는 것은 우상숭배라고 합니다. ‘우상숭배라고 하면 얼핏 생각하기를 사람이 만든 형상 앞에서 절하는 고대인들의 모습을 떠올립니다. 실제로 성경을 보면 구약시대에는 바알과 아세라의 목상 앞에 엎드려 절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이야기가 있고, 신약시대에는 고대 그리스와 로마 제국의 신들을 숭배하는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물론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은 고대 사회와는 많이 달라졌습니다. 옛날 구약시대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바알이나 아세라를 신으로 숭배하지는 않습니다. 또한, 그리스 로마 시대에 등장한 여러 신들을 재밌는 신화나 이야기쯤으로 여기지 진지하게 믿으며 숭배하지는 않습니다.


그럼 우리는 우상숭배에서 벗어난 사람들입니까?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고대인들과 별반 다를 바 없이 여전히 사람들 대부분은 우상을 숭배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물론 여기에는 기독교인들도 포함해서 말입니다.


도대체 우리는 왜 여전히 우상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요? 우상숭배를 단순히 사람이 만든 형상 앞에 엎드려 절하는 것쯤으로만 여기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고대인들보다 더 위험하고 심각한 우상숭배에 빠질 수 있습니다.


물론 아직도 세상 여러 곳에서는 전통적인 우상숭배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을 지배하고 있는 우상숭배는 마음속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우상숭배입니다. 그렇다면 전통적인 우상숭배보다 마음속에서 이루어지는 우상숭배가 더 위험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사람이 만든 형상 앞에서 엎드려 절하는 것은 약간의 상식과 이성을 가진 사람이라면, 또는 교회를 조금만 다닌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것이 우상숭배라는 것을 분별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마음속에서 이루어지는 우상숭배는 그렇지 않습니다. 내 마음속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우상숭배를 제대로 분별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사람들 대부분은 우상이라고 하면 눈에 보이는 신상을 떠올립니다. 하지만 정말 위험하고 파괴력 있는 우상은 대부분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입니다. 눈에 보이는 우상이야 망치로 때려 부술 수라도 있지만 보이지 않는 우상은 내가 우상을 숭배하고 있는지조차 모르게 내 삶을 송두리째 지배하기도 합니다.


우상이 무엇입니까? 우상이란 그것이 무엇이든 하나님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이든 하나님보다 더 크게 내 마음과 생각을 차지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과 생각을 지배하고 다스리며 우리를 노예로 만드는 것은 그것이 무엇이든 다 우상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우리가 가진 탐욕은 그것이 무엇이든 다 우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성공, , 쾌락, 명예, 인기, 자랑, SNS, 게임, 취미, 운동 등이 다 우상이 될 수 있습니다.


우상에 대해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할 사실이 있다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우리의 우상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속에 있는 것이든 우리의 우상이 될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돈, 성공, 출세, 명예, 쾌락과 같은 추상적이 가치와 개념도 우리의 우상이 될 수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든 하나님을 대신하려고 하는 것은 다 우상이라 할 수 있습니다.


20:4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속에 있는 것의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며


우상은 우리의 마음을 통제하고 지배하여 우리의 모든 열정과 에너지, 그리고 돈을 쏟아붓게 만듭니다. 만약 우리가 마음 깊은 곳에서 저것만 있으면 내 삶이 의미 있을 거야! 저것만 이루면 나도 가치 있는 사람이 될 거야! 저것만 이루어지면 내 삶이 더없이 행복할 거야! 이렇게 말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무엇이든 우상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 자신의 모든 열정과 에너지, 힘과 돈을 쏟아붓게 만든다면 이것이 곧 우상숭배입니다.


고대인들은 일의 신, 전쟁의 신, 돈의 신, 국가의 신, 바람의 신, 바다의 신, 산의 신 등등 자연의 모든 것과 세상에서 벌어지는 모든 것을 신으로 여겼습니다. 우리는 이런 것들을 고대인들의 어리석은 일이라고만 여깁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고대인들이 가졌던 매우 중요한 깨달음이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그들에게는 무엇이든 신이 되어 개인의 마음이나 여러 사람의 삶을 신처럼 지배할 수 있다는 깨달음입니다.


예를 들자면 이렇습니다. 아름다운 외모와 몸이 분명 좋은 것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하지만 이것을 절대시하여 자기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으로 여깁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끊임없이 외모 때문에 고민하고, 거기에 모든 시간과 돈을 지나치게 쏟아붓고, 심지어 사람의 인격까지도 외모에 따라 평가하게 된다면 이것이 우상이며 우상숭배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무엇이든 우리를 지배하는 것이 우리의 주인입니다. 권력을 구하는 사람은 권력에 지배당하고, 돈에 욕심을 내는 사람은 돈에 지배당하고, 성공에 목매는 사람은 성공에 지배당하고, 사람에게 인정받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은 사람에게 지배당합니다. 우리는 자신을 다스리며 사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욕심내는 것에 지배당하며 살아갑니다. 이것이 우상을 숭배하며 사는 사람의 모습입니다.


가짜 신들, 우리를 지배하려고 하는 온갖 우상들에게서 해방되어 구원을 얻는 유일한 길은 참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뿐입니다. 우리 인생의 유일한 주인은 오직 하나님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우리의 주인으로 삼으면 하나님은 절대로 우상들처럼 우리를 노예로 삼고 우리를 지배하지 않습니다.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시고 우리 스스로 옳은 길 좋은 길 행복의 길을 찾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십니다.


물론 많은 교인이 자신은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 돌아온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니 그렇다고 착각합니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 대부분은 알게 모르게 하나님과 우상 사이에 양다리를 걸치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여전히 양다리를 걸치고 살아가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말로는 하나님께로 돌아섰다고 하지만 정작 자신이 무엇에서 벗어나고 해방되어 하나님께로 돌아섰는지를 알지 못합니다. 말로는 하나님께로 돌아섰다고 하지만 여전히 아직 버리지 못한 것들이 그 삶과 생각에 덕지덕지 붙어 있습니다. 그래서 너무나 많은 교인이 교회에서만 교회식으로 살고, 세상에서는 세상 방식을 따라 살아갑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마게도냐와 아가야 사람들이 바라본 데살로니가 교회는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는 오직 참되신 하나님만을 섬기는 신앙공동체였습니다. 교회가 교회다움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데살로니가 교회처럼 지금까지 섬기던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회심의 사건이 일어나야 합니다.


바라기는 오늘 말씀을 통해 여러분이 지금까지 섬겨왔던 우상이 무엇인지를 발견하고 깨달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를 지배하고 다스리는 우상에게서 벗어나 우리를 참 생명과 진리의 길로 인도하시는 하나님께도 돌아오는 회심의 역사가 날마다 저와 여러분의 신앙의 여정에 나타나기를 축복합니다.

새글 0 / 330 

검색

번호 제목 작성자 등록일 조회수
공지 자유교회 주일예배 영상 Youtube 링크 2021.04.21 3668
330 십계명9-우리의 신앙, 믿음입니까? 미신입.. 2025.04.06 72
329 십계명8-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 2025.04.06 68
328 십계명7-어떤 것으로도 하나님을 제한하지 .. 2025.03.18 110
327 십계명6-코람데오(Coram Deo) 2025.03.18 111
326 십계명5-우리는 누구를 섬기며 살고 있는가? 2025.03.18 111
325 십계명4-왜 첫 번째 계명이 하나님에 대한 .. 2025.03.18 105
324 십계명3-십계명을 주신 하나님은 어떤 하나.. 2025.03.18 104
323 십계명2-십계명을 주신 하나님은 어떤 분인.. 2025.03.18 107
322 십계명1-십계명 지금도 여전히 필요한 이유 2025.03.18 116
321 시험15-얼마 동안 떠나갔다 2025.02.01 296
320 시험14-하나님을 시험하지 말고 자신의 믿.. 2025.02.01 314
319 시험13-성경 말씀을 이용한 시험 2024.12.17 485
318 시험12-성전에서 시험받으신 예수님 2024.12.17 528
317 시험11-누구를 경배하며 살 것인가? 2024.12.17 474
316 시험10-세상의 질서를 거스르는 믿음의 삶 2024.12.17 5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