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와성경공부
교회9-교회를 교회답게 만드는 것

교회를 교회답게 만드는 것

데살로니가전서 2:13-16

 

세상에서 만들어 가는 하나님 나라 아홉 번째 시간입니다. 오늘은 교회를 교회답게 만드는 것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려고 합니다.


오늘 읽은 말씀에 따르면 데살로니가 교회는 바울의 전한 복음을 사람의 말로 받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았다고 했습니다. 이러한 태도는 데살로니가 교회가 성숙한 믿음을 가진 교회가 되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믿습니다.


저는 목사의 설교가 곧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생각도 하지 않고 그렇게 주장하지도 않습니다. 심지어 목사의 설교가 곧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주장하는 목사는 멀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이 사람의 글로 기록된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 역시 사람의 말을 통해 전해진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깊이 알아가는 사람이 되길 원한다면 기록된 성경의 말씀에서 나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찾을 수 있어야 합니다. 목사의 설교에서 나에게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또한, 성도의 찬양이나 간증에서도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바울 일행의 복음 전도로 데살로니가 도시에 이전에는 한 번도 찾아볼 수 없었던 새로운 공동체가 탄생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데살로니가 교회입니다. 하지만 바울 일행은 유대인들과 관리들의 박해와 핍박으로 급하게 데살로니가 도시를 도망치듯 떠나와야 했습니다.


데살로니가를 도망치듯 떠나온 바울은 이제 막 시작한 데살로니가 교회가 유대인들과 관리들의 박해와 핍박 가운데서 무너지지 않을까 걱정하고 염려했습니다. 하지만 바울의 걱정과 염려와는 다르게 데살로니가 교회는 건강하게 성장했으며 주변 지역 모든 믿는 자들에게 본이 되는 바른 교회로 성숙하였습니다.


사람의 관심은 성숙보다는 늘 성장에만 맞추어져 있는 것 같습니다. 자녀들에 대한 부모의 관심 역시 자녀의 성장에만 초점을 두지 자녀의 성숙에만 별 관심이나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 것 같습니다. 이것은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대부분 교회가 교회의 성장에만 초점을 두지 교회의 성숙에는 별다른 관심과 노력을 기울이지 않습니다.


성장은 자라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부모는 자녀가 성장하는 모습을 바라볼 때 기뻐합니다. 자녀들이 걷기 시작하고 뛰는 것을 보면서, 날마다 하루가 다르게 자라는 것을 보면서 기쁨을 누립니다. 아이는 성장을 통해 변화되고 성장을 통해 새로워집니다. 물론 대부분 성장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모든 성장은 점진적입니다. 하지만 날마다 성장하는 것을 볼 때 부모의 마음에 기쁨이 솟아납니다.


상준이와 예은이를 키웠던 제 경험에 비추어 보면 어린 아기가 기어 다니기 시작할 때가 가장 귀엽고 사랑스러웠던 것 같습니다. 그 순간이 너무 귀엽고 사랑스러워 아이들이 하루가 다르게 자라는 것이 아까울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이 더 자라지 않는다면 자식을 키우는 부모의 마음이 어떨까요? 아마 이것보다 부모의 마음을 힘들게 하는 일도 없을 것입니다.


이것은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 역시 반드시 성장해야 합니다. 시간이 지나도 성장하지 않는 아이는 문제가 있는 것처럼 성장하지 않는 신앙이나 교회 역시 문제가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올해로 우리 교회가 개척된 지 15년째가 됩니다. 과연 우리 교회가 15년이라는 시간만큼 건강하게 자라나고 있는지 생각해 볼 때 아무리 생각해도 그렇지는 못한 것 같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저는 제대로 성장하지 못하는 우리 교회에는 분명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성장하지 못하는 우리 교회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자유교회를 목회하는 제가 우리 교회가 가진 문제가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의 문제가 뭔지를 제대로 모르니 제대로 된 해결책을 찾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답답함이 저에게 있습니다.


하지만 성장이 전부는 아닙니다. 모든 생명체의 성장에는 반드시 한계가 있습니다. 이것은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자라지 못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이것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한계가 없이 무한정 자라기만 하는 것입니다. 적당히 성장한 다음에는 반드시 성숙의 단계로 나아가야 합니다. 무한정 성장만 하는 것은 잘 자라지 못하는 것보다 훨씬 더 위험한 일이 된다는 것을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성숙이란 무르익는 것을 말합니다. 열매는 성장을 넘어 성숙에 이를 때 맛있는 열매가 됩니다. 새파란 사과는 싱싱하게 보이지만 신맛이 납니다. 새파란 사과가 점점 무르익어 붉은 색깔로 변할 때 비로소 단맛을 냅니다. 곡식이나 과실이 무르익기 위해서는 여름의 작열하는 태양 볕을 견뎌내야 합니다. 또한, 한여름과 초가을에 예고 없이 몰아닥치는 폭풍우를 잘 견뎌내야 합니다.


작열하는 뜨거운 태양 볕, 예고 없이 몰아닥치는 폭풍우는 예고 없이 닥치는 우리 인생의 고난과 환란을 상징합니다. 우리가 성장을 넘어 성숙하기 위해서는 고난의 광야를 잘 통과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고난의 광야에서 믿음의 사람들을 훈련하고, 연단 시키십니다. 모세는 이집트의 궁중에서 이집트의 왕자로 성장했지만, 미디안 광야에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성숙할 수 있었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성숙한 교회였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유대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들을 본받는 교회였으며 나아가 주변 지역 모든 믿는 자들과 교회에 본이 되는 성숙한 교회였습니다. 이처럼 데살로니가 교회가 본을 받고 본이 되는 성숙한 교회로 자라날 수 있었던 것에 대해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 받았던 고난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살전2:14 형제들아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유대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들을 본받은 자 되었으니 그들이 유대인들에게 고난을 받음과 같이 너희도 너희 동족에게서 동일한 고난을 받았느니라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 쓴 유대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라는 표현은 주목해서 봐야 할 매우 중요한 표현입니다. 이것은 교회가 물리적으로는 유대 땅이든 데살로니가 도시든 세상에 속해 있지만, 영적으로는 하나님께 속해 있다는 교회의 이중 소속이라는 정체성을 분명하게 가르쳐 주는 말씀입니다.


교회가 세상에 발을 딛고 있으면서도 세상을 닮으려 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며 세상을 바꾸고 변화시키려 한다면 교회는 세상으로부터 오는 고난을 피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세상이 중요하게 여기는 것과 하나님께서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너무나 많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서로 다른 가치관이 충돌하니 세상이 하나님의 교회를 핍박하려고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모습일 것입니다.


물론 할 수만 있다면 고난을 피하고 싶은 것이 누구나 가진 마음일 것입니다. 누가 고난을 좋아하고 고난받고 싶어 하겠습니까! 하지만 성경은 단호하게 성도의 고난은 불가피하다고 반복하여 강조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가 참된 그리스도인으로 성장하고 성숙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고난이 필요하다고 반복하여 강조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로마 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면 동시에 하나님의 상속자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구원의 은혜, 자녀의 영광을 누리길 원한다면 예수 그리스도가 남기신 것도 상속받아야 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상속받아야 하는 것은 예수님께서 받으신 십자가의 고난을 함께 받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8:17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또한, 바울이 제1차 전도 여행의 마지막 여행지였던 루스드라 도시에서 나면서부터 걷지 못한 사람을 낫게 한 일이 있었습니다. 이 사건으로 바울은 오히려 유대인들에게 미움을 받아서는 저들의 돌에 맞아 거진 죽게 된 일이 있었습니다. 바울을 돌로 친 유대인들은 그가 죽은 줄 알고 내다 버렸던 일이 있습니다. 다행히 죽진 않았습니다.


죽다 살아난 자신을 보며 두려움에 떠는 제자들에게 바울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환난을 피하거나 두려워하지 않는 믿음이야말로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가져야 하는 믿음이란 것을 가르친 것입니다.


14:22 제자들의 마음을 굳게 하여 이 믿음에 머물러 있으라 권하고 또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 하고


고난에 대한 바울의 가르침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으로 경건하게 사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박해가 따를 것을 가르쳤습니다. 한 마디로 세상에서 받는 박해야말로 그 사람의 믿음의 진위를 판별하는 시금석과 같은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딤후3:12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박해를 받으리라.


심지어 바울은 고난에 대해 가르치기를 고난은 기독교인의 특권이라고 했습니다. 특권이 무엇입니까? 다른 사람은 가질 수 없는 특별한 사람들에게 허락된 특별한 권한이나 권리를 의미합니다. 그런데 바울이 말한 기독교인의 특권은 바로 그리스도를 위해서 기꺼이 고난을 받는 것이라고 가르쳤습니다.


1:29 여러분이 그리스도를 믿을 뿐만 아니라, 그를 위해서 고난도 받는 것은, 그리스도를 위해서 여러분이 받는 특권입니다.


또한, 데살로니가 교회가 받았던 고난에서 주목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유대 땅에 있던 예루살렘 교회가 같은 동족 유대인들에게서 고난을 받았던 것처럼 데살로니가 교회가 받아야 했던 고난 역시 같은 동족에게서 받는 고난이었습니다. 이처럼 그리스도로 인해 받는 고난은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서 올 가능성이 큽니다. 그래서 그 고난이 더욱더 힘든 이유가 되기도 합니다.


살전2:14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유대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들을 본받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들이 유대 사람에게서 고난을 받은 것과 같이, 여러분도 여러분의 동족에게서 꼭 같은 고난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지금은 바울이 복음을 전하던 시대와는 상황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지금 우리는 기독교가 Main Stream인 세상을 살고 있기에 예수를 믿거나 교회를 다닌다고 예전과 같은 고난은 없습니다. 오히려 이제는 예전과는 정반대로 교회에 소속되는 것이,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더 많은 혜택을 누릴 수도 있는 세상을 살고 있습니다. (미국에 이민 오면 스님도 교회에 다녀야 한다.)


그렇다면 이제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환난을 받아야 하고, 경건하게 살려는 사람은 박해를 받아야 하고, 그리스도를 위해 고난을 받는 것이 우리의 특권이라는 바울의 가르침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시대착오적인 교훈이 된 것일까요? 아니요.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물론 예전 같은 고난은 사라졌지만, 그 대신 세상이 주는 고난과 어려움은 훨씬 더 교묘하고 정교해졌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세상에 발을 딛고 살면서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추구하며 살아가면 매사에 세상과 부딪치며 살수 밖에 없는 그런 세상을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이것은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의 가치와 적당히 타협하며 신앙 생활하면 별다른 어려움 없이 신앙생활 하며 살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추구하며 세상의 가치와 맞서며 살려고 하면 손해 볼 것을 감수하라고 합니다.


제대로 믿으면 손해 보게 하는 것, 이것이 오늘날 세상의 악한 권세가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막기 위해 사용하는 가장 전형적인 방법입니다. 그래서 세상의 가치에 맞서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추구하려고 하면 세상은 이런 사람에게 속삭입니다. “좋은 게 좋은 거 아니겠어.”, “모난 돌이 정 맞는다.”, “계란으로 바위 치기다.”, “바람 부는 대로, 물결치는 대로 세상 흘러가는 대로 살라라고 속삭입니다.


세상 흘러가는 대로 반항하지도 않고 저항하지도 않고 살려면 우리가 굳이 하나님을 아버지로 믿고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며 교회 공동체를 만들어 신앙생활 할 필요가 뭐가 있습니까? 정을 맞는 일이 있더라도,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것처럼 무모하게 보인다고 해도 세상 권세의 교묘하고 악한 질서에 반항하고 저항하는 것이 십자가의 길을 가신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세상에 발을 딛고 살면서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만들어 가야 하는 교회는 세상의 불의와 악함에 그건 아니라고 그건 잘못된 것이라고 그렇게 살아서는 안 된다고 손을 들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저항하지 않고 손을 들지 않고 입을 다물면 물론 세상에서 아무런 고난도 어려움도 겪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결과는 무엇일까요? 아무리 교회를 오래 다니고 신앙생활을 한다고 해도 우리는 조금 성장하지도 않고 성숙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세상 역시 조금도 바뀌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사람은 아무리 오랫동안 교회를 다니며 나이가 든다고 해도 다른 이에게 신앙의 본이 되는 어른이 되지 못하고 자기 자랑과 잔소리밖에 할 줄 모르는 꼰대가 되고 말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계속되는 코로나 팬데믹으로 예상하지 못한 심각한 고난을 겪고 있습니다. 일 년 동안 대면 예배를 중단하고 온라인으로만 예배를 드려온 우리 교회 역시 심각한 위기 상황이라 할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겪는 이 고난의 시간을 아무짝에도 쓸데없는 불필요한 시간 낭비로만 여기는 사람은 팬데믹이 끝난다고 해도 이것을 통해 조금도 성장하지도 성숙하지도 못할 것입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이 고난의 시기를 잘 이겨내어 이전보다 더 성장하고 성숙한 믿음의 사람이 될 수 있습니까? 지금 우리가 겪는 이 고난의 시간을 하나님이 주시는 훈련과 연단으로 깨달을 수 있는 믿음의 사람만이 이 고난을 능히 이기며 이전보다 나은 믿음의 사람으로 성숙할 수 있을 것입니다.


5:3-4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말씀을 마칩니다. 자기 십자가를 지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그리스도인으로 성숙할 수는 없습니다. 세상에 발을 딛고 살면서 하나님의 사람이 되어 하나님 나라를 만들어 가기 위해선 고난이나 역경이 따른다고 해도 피하지 말고 세상의 잘못된 방식에 맞서 저항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세상에서 받아야 하는 손해를 기꺼이 감당하려고 할 때만 교회는 비로소 교회다운 교회로 성숙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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