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와성경공부
교회11-서로를 위해 존재하는 신앙공동체

서로를 위해 존재하는 신앙공동체

데살로니가전서 3:4-8


세상에서 만들어가는 하나님 나라 열한 번째 시간입니다. 오늘은 서로를 위해 존재하는 신앙공동체라는 제목으로 말씀 전합니다.


사람은 크게 세 단계의 성장 과정을 거칩니다. 첫 번째 단계는 의존적인 단계입니다. 태어난 아기가 혼자서도 살 수 있을 때까지 자라기 위해서는 꽤 오랫동안 부모에게 의존하며 돌봄을 받아야 합니다. 아마도 사람은 동물들 가운데 가장 오랫동안 부모에게 의존하며 사는 존재일 것입니다. 이처럼 사람이 독립하여 혼자 살 수 있을 때까지 남에게 의존하며 살아야 하는 단계를 의존적인 단계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런 관계를 의존적인 관계라고 합니다.


두 번째 단계는 독립적인 단계입니다. 모든 부모는 자녀들이 의존적인 단계에서 벗어나 독립적인 단계로 자라나도록 돕는 것을 가장 중요한 양육의 목적으로 삼습니다. 의존해서만 살 수 있던 사람이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도, 감정적으로도 성장하고 마침내 재정적으로 혼자 설 수 있을 때 비로소 지금까지 의존했던 부모에게서 독립 할 수 있게 됩니다. 이것을 독립적인 단계라고 합니다. 그리고 의존하지 않고 서로 홀로 설 수 있는 사람들의 관계를 독립적인 관계라고 합니다.


대부분 사람은 부모에게 의존하는 삶에서 혼자 힘으로 살 수 있는 독립적인 단계로까지 성장하는 것으로 만족합니다. 하지만 사람이 사람답게 살려면 독립적 단계나 관계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독립적인 단계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합니다. 그것은 바로 세 번째 단계인 상호협력적인 단계와 관계로 발전해 가야 합니다.


사람은 나 혼자 존재할 수도 없고, 살아갈 수 없는 연약한 존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다른 사람의 도움이 없이는 살아갈 수 없도록 만드셨습니다. 따라서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를 원한다면 반드시 상호협력적인 단계로 나아가야 합니다. 상대방의 필요와 도움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하며 마찬가지로 상대방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상호협력적인 단계로 성장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비로소 사람다운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독립적인 단계에 들어선 사람들은 어지간하면 '나 혼자서도 얼마든지 해나갈 수 있어'라고 생각하면서 남의 도움 받기를 거절합니다. 그래서 자기 혼자서 모든 것을 다 해낼 수 있어야 비로소 독립적인 어른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특별히 이렇게 생각하는 경향은 남자들이 여자들보다 훨씬 더 많습니다. 많은 사람이 자기는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도 얼마든지 충분히 혼자서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주기라고 하듯이 다른 사람의 도움을 거절합니다.


이런 생각은 매우 어리석은 생각입니다. 부모에게서 독립한 이후의 삶을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이 다른 사람들은 필요로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도 너무나 많은 사람이 자신에게 타인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잘 인정하려 들지 않습니다. 심지어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한 것을 수치스러운 일로 여깁니다.


물론 우리는 부모에게 의존하던 삶에서 혼자 힘으로 일어설 수 있는 독립적인 삶으로 성장해야 합니다. 하지만 모든 면에서 완전하게 성숙한 인간, 완벽하게 독립적인 인간이란 그 어디에도 없다는 사실 또한,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누구도 완벽한 인간이 될 수 없으며, 누구도 혼자 살아갈 수 없습니다. 우리는 불완전한 인간이며 타인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는 나약한 존재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반드시 서로를 도우며 살아가는 상호협력적인 단계와 관계로 자라가야 합니다. 서로가 돕고 돕는 상호협력적인 단계로 성숙하기 위해선 사람에게 반드시 공동체가 필요합니다. 공동체에 소속되어 서로가 서로에게 도움을 주고받는 사람이 되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반드시 이루어야 하는 인격적인 성숙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남들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자신이 가진 힘이나 능력을 남들에게 나누어 주려고 합니다. 누군가를 돕다 보면 자신이 꼭 필요한 사람이라는 느낌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누군가의 도움을 받는 것을 부끄럽게 여길 필요는 하나도 없습니다. 도움을 받는 사람 역시 도움을 주는 사람에게 그 사람이 꼭 필요한 사람이라는 기쁨과 위로를 주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늘 도움만 받으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이런 관계는 결코 오래 유지될 수 없습니다. 또한, 자기는 늘 도움만 받으려는 사람은 아직도 유아기적인 의존적 단계에서 벗어나지 못한 미성숙한 사람입니다. 꼭 필요한 일에는 기꺼이 도움을 받을 줄도 알아야 하지만 동시에 자신이 가진 재물이나 능력으로 남을 도울 기회가 있다면 남을 도울 줄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독립적인 단계를 넘어 상호협력적인 단계의 성숙한 인간이 된다는 것은 공동체의 일원이 되어 서로 도우며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한 것과 다른 사람들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는 것에 관해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태도를 보일 수 있게 할 것입니다.


상호협력적인 관계에서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받거나 도움을 줄 때 우리가 분명하게 구별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필요로 하는 것과 원하는 것의 차이를 명확하게 구별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도움을 받고 주는 것은 필요에 관한 것이어야지 자칫 원하는 것이 된다면 상호협력적인 관계가 아닌 상호의존적인 관계로 전락하고 말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흔히 이 두 가지를 혼동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누군가 "난 새 차가 필요해요."라고 말했다고 합시다. 하지만 이것은 새 차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새 차를 원하는 것입니다. 차가 꼭 필요할 수는 있어도, 반드시 새 차가 필요한 경우란 극히 드물 것입니다. 상대방을 도울 때나 도움을 요구할 때 필요로 하는 것과, 원하는 것을 제대로 구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의존적인 사람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다른 사람을 필요로 합니다. 반면에 상호협력적인 사람은 먼저 다른 사람의 필요를 도우려고 합니다.


지금까지 설명한 세 단계의 과정은 우리의 신앙에서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데살로니가 교회의 성장과 성숙은 지금까지 살펴본 세 단계의 과정을 너무나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가 탄생할 수 있었던 것은 마치 갓 태어난 어린아이가 엄마에게 모든 것을 의존하는 것처럼 데살로니가 사람들이 바울 일행이 전한 복음에 전적으로 의존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데살로니가 교회를 세운 바울 일행은 유대인들과 관리들의 핍박을 피해 데살로니가 교회를 떠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교회를 세운 바울 일행이 떠나게 되었으니 바울 일행에게 전적으로 의존했던 데살로니가 교회가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데살로니가 교회는 바울 일행이 떠났음에도 저들이 준 가르침을 잘 기억하며 교회를 든든히 세워갔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가 바울 일행이 없이도 든든히 설 수 있는 교회가 될 수 있었습니까? 바울 일행을 의존하던 교회에서 스스로 설 줄 아는 독립적인 교회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것 역시 데살로니가 교회가 바울 일행이 전하고 가르쳐 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철저하게 지켜나갔기 때문입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스스로 설 수 있는 독립적인 교회가 되는 것에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주변 지역 모든 믿는 자들에게 믿음의 본이 되는 교회로 자라났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가 어떻게 주변 모든 지역에까지 본이 되는 좋은 교회로 성숙할 수 있었습니까? 바울 일행과 데살로니가 교회의 관계가 상호협력적인 관계로 발전했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데살로니가 전서 34절부터 8절까지의 말씀은 바울 일행과 데살로니가 교회의 상호협력적인 관계를 너무나 분명하게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바울은 유대인들과 관리들의 박해와 핍박으로 데살로니가 도시를 떠나야 했습니다. 핍박을 피해 데살로니가 도시를 떠났지만,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를 걱정했습니다.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를 걱정했던 이유는 저들에게 닥친 환란 때문이었습니다.


살전3:4 우리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장차 받을 환난을 너희에게 미리 말하였는데 과연 그렇게 된 것을 너희가 아느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때문에 겪게 되는 환란은 예수님께서도 이미 예고하시고 경고하신 일입니다. 바울 또한 자신의 제자들에게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고 했고, 디모데에게는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고 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알 수 있는 분명한 진리는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는 자들에게 세상의 핍박이 따른다는 것입니다.


24:9 그 때에 사람들이 너희를 환난에 넘겨 주겠으며 너희를 죽이리니 너희가 내 이름 때문에 모든 민족에게 미움을 받으리라


그래서 베드로는 성도에게 주어지는 고난이나 환란을 마치 이상한 일 당하는 것처럼 여기지 말고 당연한 일을 겪는 것처럼 여기라고 가르쳤습니다. 하지만 자신이 잘못 선택하고 결정한 것으로 인해 일어난 고난이나 어려움을 믿음을 지키려고 하다 겪는 고난을 분명하게 분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제대로 분별하지 못하면 아무리 많은 고난이나 어려움을 겪는다고 해도 아무런 영적 유익이나 성숙이 없습니다.


벧전2:20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그러나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가 겪을 환란을 생각하니 도무지 걱정을 참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어려운 중에도 디모데를 데살로니가 교회에 보냅니다. 바울이 디모데를 보낸 이유에 대해 너희 믿음을 알기 위하여라고 설명합니다. 여기서 믿음을 알기 위함이란 데살로니가 교회가 바르게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지 그렇지 않은지 감시하는 차원에서 하는 말이 아닙니다. 오로지 저들의 믿음을 격려하고 돕기 위함입니다.


살전3:5 이러므로 나도 참다 못하여 너희 믿음을 알기 위하여 그를 보내었노니 이는 혹 시험하는 자가 너희를 시험하여 우리 수고를 헛되게 할까 함이니


바울은 환난으로 인해 혹시나 이제 막 시작한 데살로니가 교회가 무너지지는 않았을까 하는 걱정스러운 마음에서 디모데를 보냈습니다. 그런데 데살로니가 교회를 다녀온 디모데가 전한 소식이 무엇이었습니까? 디모데가 가져온 소식은 데살로니가 교회가 환란 중에도 믿음과 사랑의 기쁜 소식이었습니다. 믿음과 사랑의 기쁜 소식이 무슨 뜻입니까? 데살로니가 교회가 믿음과 사랑으로 자신들에게 닥친 환난 중에도 조금의 흔들림도 없다는 것입니다.


살전3:6a 지금은 디모데가 너희에게로부터 와서 너희 믿음과 사랑의 기쁜 소식을 우리에게 전하고


지금 바울과 실루아노는 고린도 도시에서 복음을 전하고 있었습니다. 고린도 지역에서 저들은 데살로니가 도시에서 겪었던 환난보다 더 큰 궁핍과 환난 가운데 복음을 전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디모데가 전해준 데살로니가 교회의 소식으로 인해 데살로니가 교회를 위로하려고 했던 자신들이 오히려 더 큰 위로를 받았다고 고백합니다.


살전3:7 이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모든 궁핍과 환난 가운데서 너희 믿음으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위로를 받았노라


바울은 환난을 겪는 데살로니가 교회를 격려하고 위로하기 위해 디모데를 보냈습니다. 하지만 디모데가 전해준 데살로니가 교회의 소식으로 인해 오히려 자신들이 더 큰 위로를 받았습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의 소식으로 단지 위로만 받은 것이 아니라 너희 때문에 이제 자신들이 살게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바울은 환난을 겪는 데살로니가 교회를 떠나온 것 때문에 한시도 편히 지낼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디모데가 가지고 온 소식을 듣고는 이젠 평안함을 얻게 된 것입니다.


살전3:8 그러므로 너희가 주 안에 굳게 선즉 우리가 이제는 살리라


바울은 환난을 겪는 데살로니가 교회를 생각하며 자신이 겪는 궁핍과 환난을 참고 견디었으며, 데살로니가 교회는 바울 일행이 겪는 궁핍과 환난을 기억하며 자신들이 겪는 환난을 잘 참고 견디었습니다. 바울과 데살로니가 교회의 모습은 신앙공동체에서 반드시 나타나야 하는 상호협력적인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모든 관계는 상호작용입니다. 우리는 공동체라는 관계 속에서 서로의 모습을 거울처럼 비추고 있습니다. 내 생각에 상대방에게 문제가 있다고 함부로 상대방이 달려져야 한다고 단정하거나 주장해서는 안 됩니다. 섣불리 상대방을 더 좋게 고치려고 해서도 안 됩니다. 언제나 제일 중요한 문제는 나에게 달려 있지 상대방에게 달린 것이 아닙니다.


성도는 자신의 변화된 모습을 통해 상대방에게 힘을 주고 위로를 주는 성숙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많은 경우 먼저 자신의 변화되려고 하기보다는 상대방을 바꾸려고 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매우 어리석은 생각입니다. 우리는 상대방을 섣불리 바꾸려 해서도 안 되고 심지어 바꿀 수 있는 능력도 없습니다. 자신이 먼저 변화되기보다 남을 먼저 변화시키려는 시도는 결국 서로의 관계나 공동체를 깨뜨리고 말 것입니다.


얼마 전, 오빠를 잘 챙기고 동생을 잘 돕는 상준이와 예은이가 너무 기특해서는 아내가 자녀들이 화목하게 잘 지내는 것이 부모에게 가장 큰 기쁨이라며 칭찬했습니다. 예은이가 어렸을 때만 해도 둘이 너무 싸워서 둘 중 하나는 한국으로 보낸다는 공갈을 자주 쳤습니다. 그런데 이젠 다 컸는지 둘이 너무 장단이 잘 맞는 것이 너무 기특해 지경이라 이렇게 칭찬한 것입니다.


그러자 예은이가 대뜸 자신들한테는 부모님들이 싸우지 않고 화목하게 잘 지내는 것이 가장 큰 기쁨이라고 받아쳤습니다. 한바탕 웃었지만, 예은이의 말이 두고두고 제 가슴에 비수처럼 꽂혔습니다. 부모가 자식들 화목하게 지내기를 바라면서 부모가 먼저 화목한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면 부모의 기대대로 자녀들이 화목하게 지내지 못할 것입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교회는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주신 가장 아름다운 상호협력적인 신앙공동체입니다. 우리가 서로의 영적인 성숙을 돕는 상호협력적인 신앙공동체가 되기 위해선 가장 우선해야 하는 것은 상대방이 변화되도록 돕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먼저 그리스도를 본받는 사람이 되어 다른 사람에게 신앙의 아름다운 본이 되어주는 것입니다. 그러면 다른 성도가 내 모습을 통해 힘을 얻고 위로를 얻어 그리스도를 본받는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고 힘을 낼 것입니다.

새글 0 / 330 

검색

번호 제목 작성자 등록일 조회수
공지 자유교회 주일예배 영상 Youtube 링크 2021.04.21 3645
330 십계명9-우리의 신앙, 믿음입니까? 미신입.. 2025.04.06 65
329 십계명8-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 2025.04.06 64
328 십계명7-어떤 것으로도 하나님을 제한하지 .. 2025.03.18 108
327 십계명6-코람데오(Coram Deo) 2025.03.18 106
326 십계명5-우리는 누구를 섬기며 살고 있는가? 2025.03.18 108
325 십계명4-왜 첫 번째 계명이 하나님에 대한 .. 2025.03.18 101
324 십계명3-십계명을 주신 하나님은 어떤 하나.. 2025.03.18 99
323 십계명2-십계명을 주신 하나님은 어떤 분인.. 2025.03.18 104
322 십계명1-십계명 지금도 여전히 필요한 이유 2025.03.18 113
321 시험15-얼마 동안 떠나갔다 2025.02.01 294
320 시험14-하나님을 시험하지 말고 자신의 믿.. 2025.02.01 314
319 시험13-성경 말씀을 이용한 시험 2024.12.17 483
318 시험12-성전에서 시험받으신 예수님 2024.12.17 523
317 시험11-누구를 경배하며 살 것인가? 2024.12.17 469
316 시험10-세상의 질서를 거스르는 믿음의 삶 2024.12.17 5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