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넘어 영원까지
데살로니가전서 3:9-13
세상에서 만들어 가는 하나님 나라 시리즈 설교 열두 번째 시간입니다. 오늘은 “죽음을 넘어 영원까지”라는 제목으로 말씀 전합니다.
교회를 원어 성경인 헬라어 성경에서는 에클레시아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헬라어 성경이 에클레시아로 기록한 것을 한국어로 번역한 것입니다. 에클레시아는 사도 바울이 교회를 지칭하는 단어로 최초로 사용한 표현입니다. 이 사실을 가장 확실하게 증명하고 있는 것이 데살로니가전서입니다.
신약성경 27권 가운데 가장 먼저 기록된 성경이 무엇일까요? 데살로니가전서입니다. 기원후 50년경, 사도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에 쓴 첫 번째 편지 데살로니가전서가 신약성경 27권 가운데 가장 먼저 기록된 성경입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전서에서 교회를 뜻하는 에클레시아라는 단어를 처음으로 사용하였습니다.
살전1:1 바울과 실루아노와 디모데는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데살로니가인의 교회에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도시에 세워진 이전에는 없었던 전혀 새로운 신앙공동체를 표현하기 위해 에클레시아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입니다. 그렇다고 에클레시아라는 단어는 이전에는 없던 새롭게 만들어진 단어가 아니었습니다. 에클레시아는 그리스에서 기원전 5세기경부터 시민들의 모임 또는 총회를 의미하는 단어로 사용되었던 말입니다. 이것을 사도 바울이 그리스도인들의 모임을 나타내는 “교회”라는 뜻으로 사용한 것입니다.
굳이 이런 설명을 자세하게 하는 이유는 성경이 가르치고 있는 교회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찾기 위함입니다. 에클레시아는 한 마디로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그리스에서 에클레시아는 도시 국가의 시민들이 모여 도시에서 벌어지는 여러 가지 문제를 해결하는 시의회였습니다. 하지만 기독교 신앙에서 에클레시아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예수를 주 예수 그리스도로 믿는 사람들이 모여 하나님 나라를 만드는 신앙공동체를 의미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를 세상에서 이루는 성경의 방법은 교회였습니다.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에 보낸 편지처럼,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교회야말로 예수님께서 선포하시고 이 땅에서 이루길 원하셨던 하나님 나라의 시작입니다.
저는 교회야말로 예수 그리스도가 선포하신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 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믿습니다. 성경은 교회 말고는 그 어떤 다른 방법으로 하나님 나라를 만드는 것에 대해 가르쳐주고 있지 않습니다. 세상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선포하신 하나님 나라를 만들어 가는 방법으로 성경이 가르치고 있는 유일한 방법은 교회입니다.
제 개인적인 주장일 수 있지만, 기독교 신앙은 교회를 떠나서는 도무지 존재할 수 없다고 믿습니다. 물론 여기서 교회는 건물이나 제도 또는 교리가 아닌 신앙공동체를 의미합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갈수록 가나안 교인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가나안 교인이 무슨 뜻입니까? 가나안을 거꾸로 하면 “안나가”입니다. 어디를 안 나간다는 말입니까? 교회를 안 나간다는 것입니다.
가나안 교인은 교회를 안 나가는 교인을 뜻하는 교회의 신조어입니다. 교회를 안 나가는 사람들을 굳이 가나안 교인이라고 하는 것은 교회를 나가지 않는 사람 대부분이 여전히 자신에 대해 기독교 신앙을 가진 기독교인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를 나가지는 않지만, 여전히 기독교 신앙을 포기하지 않는 사람을 가나안 교인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통계에 의하면 미국이나 한국 모두 갈수록 가나안 교인이 늘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오죽 교회가 문제가 많으면 교회를 나가지 않을까 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있습니다. 실제로 가나안 교인들이 교회를 나가지 않으면서도 자신을 기독교인이라고 생각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믿지만, 예수님은 너무 좋지만, 자신은 교회에서 받은 상처가 너무나 커서 교회를 나가지 않을 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가나안 교인들은 교회를 떠나 혼자서 신앙생활을 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교회를 떠난 가나안 교인 가운데 제대로 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요? 정말 소수의 몇 명을 빼고는 제대로 된 믿음 생활을 하는 사람은 아마 거의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떠신지 모르지만 저는 교회를 떠나서도 신앙을 지키는 신실한 믿음의 삶을 사는 사람을 본 적이 없습니다.
교회를 떠나서도 신앙생활을 잘 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회사를 떠나서도 회사생활을 잘 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과 같은 것이며, 사회를 떠나서도 사회생활을 잘 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물론 오죽하면 교회를 떠나 가나안 교인이 되었을까 하는 안타까운 마음도 있지만, 교회를 떠나서는 그 어떤 신앙생활도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기독교 신앙의 목적이 개인의 구원이 전부라고 한다면 가나안 교인도 가능할 것입니다. 하지만 기독교 신앙은 개인의 구원을 통해 세상을 구원하는 것입니다. 기독교 신앙이 추구해야 하는 최종의 목표는 하나님 나라이며, 하나님 나라는 오직 교회를 통해서만 이루어 갈 수 있습니다. 따라서 교회라는 신앙공동체를 떠난 기독교는 신앙이 아닙니다. 이것은 그저 종교 사상이나 종교 철학에 지나지 않습니다.
따라서 혼자서 하나님을 잘 믿는 신앙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세상 나 혼자 산다면 하나님을 잘 믿든 믿지 않든 아무런 문제도 없고 상관도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잘 믿어야 하는 이유는 나 혼자 사는 세상이 아니라 이웃과 함께 살아야 하는 세상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잘 믿는 사람은 반드시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사람이 됩니다. 공동체를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이 됩니다.
하나님 나라라고 해서 대단하고 완벽한 것을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나라의 완성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통해서만 완성된다고 성경은 가르칩니다. 다만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므로 이웃을 사랑하는 세상을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세상에서 만들어 가야 하는 하나님 나라이며 이것을 연습하고 배우고 훈련하는 것이 교회입니다.
하나님을 잘 믿고 예수 그리스도를 잘 믿는다는 것은, 나와 다른 생각이나 의견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며 조화와 조율을 이루며 사랑을 실천하며 살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교회라는 신앙공동체를 떠나서도 자신은 하나님을 잘 믿고 예수 그리스도를 잘 믿을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물고기가 물을 떠나서도 살 수 있다고 말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은 어불성설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3장은 교회가 만들어 가야 하는 신앙공동체의 모습을 가르쳐주는 바울의 가르침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3장, 바울의 편지에 의하면 교회가 만들어 가야 하는 신앙공동체는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여러 가지 환난 가운데서도 믿음이 흔들리지 않도록 서로를 돕는 환난 공동체입니다. 지금은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다고 예전과 같은 환난은 없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예수를 잘 믿으려면 세상에서 손해 보는 것을 감당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세상에 발을 딛고 살면서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사는 것이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닙니다. 세상의 온갖 유혹과 핍박이 우리를 넘어뜨리려 할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믿음을 지키며 살아갈 힘은 오로지 같은 길을 함께 가는 신앙공동체가 있기에 가능합니다.
살전3:2-3 우리 형제 곧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하나님의 일꾼인 디모데를 보내노니 이는 너희를 굳건하게 하고 너희 믿음에 대하여 위로함으로 아무도 이 여러 환난 중에 흔들리지 않게 하려 함이라
두 번째는 자신의 변화와 믿음을 통해 다른 사람에게 위로가 되는 위로가 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바울은 환난을 겪는 데살로니가 교회를 격려하고 위로하기 위해 디모데를 보냈습니다. 하지만 디모데가 전해준 데살로니가 교회의 소식으로 인해 오히려 자신들이 더 큰 위로를 받았습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의 소식으로 단지 위로만 받은 것이 아니라 너희 때문에 이제 자신들이 살게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살전3:7-8 이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모든 궁핍과 환난 가운데서 너희 믿음으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위로를 받았노라 그러므로 너희가 주 안에 굳게 선즉 우리가 이제는 살리라 그러므로 너희가 주 안에 굳게 선즉 우리가 이제는 살리라
교회는 남을 바꾸고 고쳐서 좋은 공동체를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먼저 변화된 모습을 통해 상대방에게 힘을 주고 위로를 주는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많은 교회가 자신이 먼저 변화되려고 노력하지 않고 남을 바꾸려고만 합니다. 그래서 교회에 늘 문제가 많고 다툼과 갈등이 끊이지 않는 것입니다. 자신이 변화되기보다 남을 바꾸려는 시도는 결국 공동체를 깨뜨리고 말 것입니다. 우리가 바꿀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자기 자신뿐이지 남이 아닙니다.
마지막 세 번째로 교회는 주 예수께서 강림하실 때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부끄럼이 없는 자로서 설 수 있을 때까지 서로를 위해 기도하고 이끌어주어야 하는 끝까지 가는 공동체입니다. 여기서 주 예수께서 강림하실 때는 모든 사람이 하나님 앞에 서야 하는 마지막 심판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주님의 재림을 뜻하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론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살전3:13 너희 마음을 굳건하게 하시고 우리 주 예수께서 그의 모든 성도와 함께 강림하실 때에 하나님 우리 아버지 앞에서 거룩함에 흠이 없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가 굳건하게 믿음을 지킨다는 소식을 듣고는 고린도에서 겪는 자신의 모든 궁핍과 환난 가운데서도 기뻐한다고 했습니다. 심지어 너무 기쁜 나머지 하나님께 어떤 감사로 보답해야 하나 고민이 될 지경이라고 했습니다. 바울이 어떻게 데살로니가 교회를 향해 그렇게 할 수 있었습니까? 데살로니가 교회와 바울의 관계는 사라지고 없어질 관계가 아니라 영원까지 계속되는 성도의 관계였기 때문입니다.
살전3:9 우리가 우리 하나님 앞에서 너희로 말미암아 모든 기쁨으로 기뻐하니 너희를 위하여 능히 어떠한 감사로 하나님께 보답할까
교회라는 신앙공동체는 우리가 살아있을 때만 유효한 공동체가 아닙니다. 우리가 정말 영원한 생명과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믿는다면 교회에서 우리가 맺는 관계는 죽음을 넘어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까지 계속되어야 하는 관계입니다. 따라서 교회 공동체는 죽음을 넘어서 영원을 함께한다는 마음으로 서로가 잘되기를 위해 그리고 서로의 부족한 믿음을 돕기 위해 만날 때마다 기도하며 서로를 도와야 합니다.
살전3:10 주야로 심히 간구함은 너희 얼굴을 보고 너희 믿음이 부족한 것을 보충하게 하려 함이라
교회는 죽음을 넘어 영원을 함께 해야 하는 신앙공동체이지만 오늘날 교회는 세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세상과 전혀 다르지 않은 그렇고 그런 공동체로 전락하고 있습니다. 도대체 오늘날 교회는 왜 예수님께서 원하시고 바울이 추구했던 신앙공동체와는 동떨어진 공동체가 되어 가는 것일까요? 그것은 바로 우리가 교회를 잘못 생각하고 오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너무나 많은 교인이 교회를 하나님 나라를 만들어 가는 신앙공동체가 아니라 그저 개인의 구원이나 축복을 얻는 제도나 조직쯤으로만 여기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은 나만의 구원이 아니라 세상 모두를 구원하기 위함입니다. 여기서 세상은 하나님께서 만드신 자연과 동물과 사람 모두를 포함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남이야 어떻게 됐든 상관하지 않고 오직 나만 잘되길 바라는 것은 성경이 말하는 구원도 아니고 하나님 나라도 아닙니다.
교회는 세상에서 흔히 볼 수 있거나 가입할 수 있는 그렇고 그런 모임이나 친목회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교회는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하나님 나라를 만들어 가는 죽음을 넘어 영원으로 이어지는 신앙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세상에서 볼 수 있는 동료애나 전우애를 뛰어넘는 위대한 사랑을 보여주는 사랑의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요13:34-35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살전3:12 또 우리가 여러분을 사랑하는 것과 같이, 주께서 여러분끼리 서로 나누는 사랑과 모든 사람에게 베푸는 여러분의 사랑을 풍성하게 하고, 넘치게 해주시기를 빕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사랑의 공동체를 만드는 것은 한두 사람의 노력만으로 가능한 것이 아닙니다. 사랑하는 일에 자기 신앙의 전부를 둘 수 있어야 합니다. 나아가 죽음을 넘어 영원까지 이어지는 신앙공동체를 만들어 가기 위해선 교회에 참석하는 신앙에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 나라를 만들어 간다는 사명감으로 참여하는 신앙인이 되어야 합니다.
바라기는 우리 자유교회가 하나님 나라를 만들어 간다는 사명감으로 세상 그 어디에서도 경험할 수도 없는 아름다운 신앙공동체를 만들어 가는 일에 마음과 뜻을 다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