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와성경공부
교회13-삶의 기준과 중심을 바꿔라!

삶의 기준과 중심을 바꿔라!

데살로니가전서 4:1-3a


세상에서 만들어 가는 하나님 나라 시리즈 설교 열세 번째 시간입니다. 오늘은 삶의 기준과 중심을 바꿔라!”라는 제목으로 말씀 전합니다.


지금까지 사도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에 보낸 편지의 내용은 데살로니가 도시에 처음으로 생겨난 교회라는 신앙공동체가 어떤 것이며, 성도가 서로 관계와 교제를 이루어 가야 하는지에 대해 가르쳐 주는 말씀이었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장에서는 신앙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성도는 어떻게 세상을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가르쳐 주는 말씀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속한 공동체에서 삶을 배웁니다. 따라서 어떤 공동체에 속하는지가 그 사람의 삶에 태도와 방식에 지대한 영향을 끼칩니다. 아이들은 말하는 방법, 생각하는 방법, 자신에 대해 느끼는 방법을 모두 가정을 통해 배웁니다. 아이들에게 가정은 삶의 태도와 방식을 배우는 학교인 셈입니다.


이것은 어른들이라고 크게 다르지는 않습니다. 다 큰 어른이라고 하더라도 어떤 공동체에 소속되어 오랜 시간을 보내다 보면 그곳에서의 배운 삶의 태도와 방식을 알게 모르게 몸에 배게 됩니다. 집에서 마냥 어리광만 부리던 아들이 군대에 다녀오면 늠름한 장병이 되어서 옵니다. 물론 제대하고 시간이 지나면 예전 그대로 돌아옵니다. 이처럼 사람은 자신이 속한 집단에 맞는 삶의 태도와 방식을 빠르게 익히고 습득하며 살아갑니다.


이것은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에 출석하기 시작하면 세상과는 다른 교인의 삶이 시작됩니다. 그리고 어떤 교회에 속하느냐에 따라 어떤 그리스도인이 되는지가 결정됩니다. 비록 똑같은 하나님과 예수님 그리고 성경을 믿는다고는 하지만 어떤 교회에 소속되었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믿음의 태도와 방식을 가진 그리스도인이 되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교회마다 추구하는 신앙의 방향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른 신앙을 추구하는 교회를 만들어 가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데살로니가 도시에 생겨난 데살로니가 교회는 이전에는 없었던 전혀 새로운 신앙공동체였습니다. 물론 데살로니가 도시에는 하나님을 믿는 유대인들의 종교 모임도 있었고 그리스의 우상 신을 믿고 따르는 여러 종교 단체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데살로니가 도시에 새롭게 시작된 데살로니가 교회는 이전에 있었던 여러 다른 종교 모임과는 전혀 다른 신앙공동체였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데살로니가 도시에 존재했습니다. 당연히 데살로니가 교인들 역시 데살로니가 도시로부터 이러저러한 영향을 받으며 살아야 했습니다. 하지만 데살로니가 교회는 비록 데살로니가 도시에 뿌리를 내린 교회였지만, 데살로니가에 살던 사람들과는 전혀 다른 가치와 태도 그리고 삶의 방식을 배우고 훈련했으며 배우고 훈련한 대로 살려고 노력하였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가 보여준 믿음과 삶은 믿음 따로 삶 따로가 아니었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바울이 가르쳐 준 믿음 그대로 살았던 교회였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너무나 많은 교회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하나님 말씀대로 살지 못합니다.


왜 그렇습니다. 말로는 하나님을 믿는다고는 하지만 실제로는 하나님을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인정하든 아니든 누구나 자신이 믿는 대로 살아간다는 사실을 부정하지 말아야 합니다. 결국, 내가 사는 삶의 태도와 방식이야말로 내가 가진 믿음을 그대로 보여주는 가장 정확한 지표입니다.


오늘날 우리 시대의 기독교와 교회는 가면 갈수록 세상을 향한 선한 영향력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선한 영향력은 고사하고 도리어 세상으로부터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도대체 왜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 것입니까? 교회가 힘과 권력이 없어서입니까?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까? 아니면 교회에 돈이 없거나 크고 화려한 건물이 없어서입니까?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오늘날 기독교는 세상의 어떤 다른 종교보다 더 많은 힘과 권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돈도 있고 사람도 많고 크고 화려한 건물을 가진 교회가 도시마다 지역마다 차고 넘칩니다. 그렇다면 교회가 세상을 향한 선한 영향력을 잃어가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교회가 말하는 복음과 실제 목사와 교인들의 삶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세상과는 다른 가치와 추구하며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하는데 오히려 교회가 세상을 그대로 닮아가고 흉내 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장에서 하나님 아버지를 믿고 예수를 주 예수 그리스도로 믿는 성도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구체적으로 가르쳐 주는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에 가르쳤던 성도의 삶에 대해 살펴보기에 앞서 성경을 읽고 적용할 때 반드시 주의해야 하는 중요한 원칙이 있습니다.


물론 이것은 개인적인 저의 주장일 수 있음을 미리 말씀드립니다. 비록 데살로니가전서가 바울의 쓴 편지이며 성경에 기록된 말씀이라고 해도 이천 년 전 데살로니가라는 도시에 세워진 교회를 위해 쓴 바울의 편지를 이천년이 훨씬 지난 오늘 우리 시대 사람들에게 기록된 문자 그대로 살라고 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성경 적용이며 해석이라고 생각합니다.


성경을 읽고 해석하고 적용할 때 가장 주의해야 할 것은 성경에 기록된 문자 그대로의 규칙이나 규정이 아닙니다. 성경을 읽으며 정말 중요하게 발견해야 하는 것은 규칙이나 규정에 담긴 하나님의 뜻을 찾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를 들면, 고린도 교회는 여러모로 문제가 많은 교회였습니다. 특별히 무분별한 여자들 때문에 어려움이 많았던 교회였습니다. 바울은 여자들로 인해 생긴 고린도 교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고 오직 남자에게 복종하라고 가르쳤습니다.


고전14:34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 그들에게는 말하는 것을 허락함이 없나니 율법에 이른 것 같이 오직 복종할 것이요


그런데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보낸 말씀을 가지고 모든 시대 모든 교회에서 여자는 입 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말고 오직 남자의 말에만 복종해야 한다고 가르친다면 이것은 하나님 말씀이 아니라 하나님 말씀을 빙자한 영적 폭력에 지나지 않습니다.


만약 여자가 교회에서 입 다물고 잠잠하게 있는 것이 만고불변의 법칙이요 진리라고 한다면 바울은 모든 교회마다 이것을 가르쳤어야 마땅합니다. 하지만 바울은 이 교훈은 오로지 고린도 교회에 보내는 편지에만 기록했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바울이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고 한 것은 고린도 교회에 일어난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으로 가르친 것이지 시대와 장소와 상관없이 모든 시대 모든 교회가 이것을 그대로 적용하라고 쓴 것이 결코 아닙니다.


또한,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 남자는 머리를 가리지 말고, 여자는 머리를 가리라고 했습니다. 여자가 머리에 아무것도 가리거나 쓰지 않고 예배에 참여하는 것은 그 머리를 욕되게 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카톨릭 교회를 비롯해 심지어 일부 개신교 교단에서도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가르친 이 규정을 문자 그대로 지금까지도 지키고 있습니다. 과연 이것이 성경 말씀에 대한 바른 적용일까요?


고전11:5 무릇 여자로서 머리에 쓴 것을 벗고 기도나 예언을 하는 자는 그 머리를 욕되게 하는 것이니 이는 머리를 민 것과 다름이 없음이라


이것뿐만이 아닙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 남자에게 긴 머리는 대단히 부끄러운 일이고, 반면에 여자에게 긴 머리는 영광스러운 일이라고 했습니다. 이런 규정 역시 고린도 도시와 고린도 교회라는 특수한 상황에서만 적용해야 하는 특별한 규정입니다. 그런데 고린도 교회라는 특수한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성경에 기록된 말씀이니까 시대와 문화와 지역에 상관없이 무조건 지켜야 한다는 것은 성경에 대한 매우 심각한 왜곡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고전11:14-15 만일 남자에게 긴 머리가 있으면 자기에게 부끄러움이 되는 것을 본성이 너희에게 가르치지 아니하느냐 만일 여자가 긴 머리가 있으면 자기에게 영광이 되나니 긴 머리는 가리는 것을 대신하여 주셨기 때문이니라


우리가 정말 중요하게 여겨야 하는 것은 세부적인 지침이나 규정이 아니라 이런 규정을 통해 이루려고 했던 것이 무엇인가를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런 점에서 데살로니가전서 4장에 나오는 바울의 가르침은 성도의 삶의 태도와 방식에 대한 구체적인 지침이기보다는 매우 중요한 원칙을 가르쳐 주는 말씀입니다.


바울은 자신에 데살로니가에 있을 때 믿음의 사람이 어떤 규정과 규칙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지를 이미 가르쳐 주었다고 했습니다.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에 가르쳐 준 구체적인 성도의 생활 지침이 무엇인지는 모릅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에 가르쳐 준 대로 살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살전4:1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끝으로 주 예수 안에서 너희에게 구하고 권면하노니 너희가 마땅히 어떻게 행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지를 우리에게 배웠으니 곧 너희가 행하는 바라 더욱 많이 힘쓰라


여기에 초점을 두어야 합니다. 어떻게 사는 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인가? 이것이야말로 기독교인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가장 중요한 원칙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하기 전까지 우리는 오로지 자신의 유익과 영광을 위해 살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모든 일에 내가 기준이고 내가 주인인 삶을 살았습니다. 이것을 천동설 신앙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하고 하나님을 내 인생의 주인으로 삼게 되면서부터는 오직 하나님의 뜻과 영광을 위해 살아가는 삶으로 변화되어야 합니다. 이것을 지동설 신앙이라고 합니다. 아무리 열심히 교회를 다닌다고 해도 모든 일에 내가 기준이고 내 중심으로 교회가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직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한 사람이 아닙니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하나님을 아버지로 받아들인 사람에게는 천동설에서 지동설로 변하는 것과 같은 혁명적인 변화가 나타나게 됩니다. 예수를 그리스도라 믿는 사람은, 내가 모든 일에 기준이며 중심이고 모든 것이 나를 중심으로 움직여야 한다는 생각에서 하나님만이 유일한 기준이고 중심이며 모든 것이 하나님을 중심으로 움직인다는 것이 깨달아지고 믿어지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이전까지는 어떻게 해야 내가 행복하고 기쁠 것인가에만 초점을 맞추고 살았다면, 이제부터는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것인가로 삶의 기준이 바뀌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마치 지구에서 태양으로 중심이 바뀐 것처럼 나에게서 하나님에게로 중심축이 바뀌는 삶을 사는 것이 성도가 인생을 사는 삶의 원칙이 되어야 합니다.


나를 기쁘게 하는 삶에서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삶을 살라는 바울의 가르침을 엉뚱하게 오해하지 말아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면 자기가 불행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일부로 자기 인생에서 기쁨이나 쾌락을 없애기 위해 고행을 하거나 지나친 금욕 생활을 합니다. 하지만 저는 이것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오해하여 잘못 적용하는 매우 어리석은 일이라 생각합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우리를 괴롭게 하고 힘들게 하므로 기뻐하시는 사디스트가 아닙니다. 그러니 불필요한 금욕주의나 고행에 빠져서는 자신도 힘들게 하고 남도 정죄하는 어리석은 신앙에 빠지지 않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불필요한 금욕이나 고행을 원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을 주시길 원하시며 하나님께서 지으신 세상에서 인간다운 삶을 살아갈 때 가장 기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라는 바울의 권면을 다른 말로 하면 내 이웃을 기쁘게 하는 삶을 살라는 말씀과 다름없다고 믿습니다. 항상 내가 기준이고 중심이 되어 오직 자신만을 기쁘게 하는 삶을 살게 되면 그 사람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그 사람으로 인해 불행하고 힘든 삶을 살아야 합니다.


만약 내 기쁨이나 쾌락을 위해 내 주변 사람을 불행하게 만든다면 그 사람이 누리는 기쁨이나 쾌락이 정말 그 사람을 기쁘게 하는 것이 될 수 있을까요?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이것은 가짜 기쁨이며 허무한 쾌락에 지나지 않습니다.


어떻게 해야 내게 이익이 될까? 어떻게 해야 내가 즐거울까? 어떻게 해야 내가 행복할까? 어떻게 해야 내가 인정받을까? 어떻게 해야 내가 높임을 받을 수 있을까? 이런 식으로 생각하며 살면 결국 우리에게 남는 것은 자기 연민에 사로잡히는 것밖에는 없습니다.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인생으로 인해 자기연민에 빠졌을 때 벗어나는 유일한 길은 내 문제에서 눈을 돌려 이웃을 어려움을 돕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것을 나를 기쁘게 하는 삶에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으로 전환하라고 가르쳤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 때 지금까지는 모호하고 그림자 같고 선명하지 않았던 행복에서 비로소 분명하고 확실한 진짜 행복을 누리는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지금 우리하고는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세상 사는 게 힘들었던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예수를 그리스도라 믿는다는 이유로 저들이 세상에서 얻어야 했던 것은 오로지 모진 박해와 핍박이었으며 심지어 목숨까지 위협받는 환난이었습니다하지만 저들은 보이지 않고 도무지 이루어지지도 않을 것은 같은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며 자신들이 겪는 모든 박해와 핍박에도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어떻게 데살로니가 교회는 모진 박해와 핍박 가운데서도 믿음을 지키며 살 수 있었습니까? 자기를 기쁘게 하는 삶에서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삶으로 인생을 바꾸자 이전에는 알지 못했던 하늘의 기쁨을 누리며 살았기 때문입니다.


자기의 이익만 중요하고 자기의 기쁨과 쾌락만을 위해 사는 치열한 경쟁만이 난무하는 세상에서 남을 위해 사는 기쁨, 하나님을 위해 사는 기쁨이 무엇인지를 경험할 수 있도록 삶의 태도와 방식을 바꿔보시기 바랍니다


오직 나를 위한 기쁨을 위해 살아갈 때는 절대로 경험할 수도 느낄 수 없는 세상이 줄 수 없는 오직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만 경험하고 누릴 수 있는 신비한 하늘의 기쁨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바라기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믿고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성도의 삶이 세상이 주는 기쁨과 쾌락이 아닌 오직 하나님만이 주실 수 있는 기쁨과 만족을 누리며 살아가는 존귀한 사람이 되길 정말 간절히 바라고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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