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와성경공부
교회15-잘못된 믿음이 삶에 끼치는 악영향

잘못된 믿음이 삶에 끼치는 악영향

데살로니가전서 4:9-12


세상에서 만드는 하나님 나라 시리즈 설교 열다섯 번째 시간입니다. 오늘은 잘못된 믿음이 삶에 끼치는 악영향이라는 제목으로 말씀 전합니다.


인생을 바르게 잘 사는 데 필요한 매우 중요한 두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인생을 사는 목적이 분명해야 합니다. 후회 없는 인생을 살기 위해선 무엇을 위해 사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인생을 사는 목적이 분명해야 하고 그것이 옳아야 합니다. 인생을 사는 목적이 분명하지 않으면 평생을 방황만 하다가 일생을 마치고 말 것입니다.


두 번째는 인생을 사는 목적을 발견했으면 그것을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해 노력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아무리 인생을 사는 바른 목적을 발견하거나 깨달았다고 해도 자신이 발견하고 깨달은 인생을 사는 목적을 이루기 위해 앞으로 나아가려는 노력이 없으면 아무리 힘들게 깨달은 인생의 목적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하지만 한 번뿐인 인생을 살면서도 인생을 잘 살게 하는 이 두 가지를 제대로 지키며 사는 것이 결코, 쉽지 않습니다. 막상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인생의 목적을 깨닫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하며 사는 사람은 별로 많지 않습니다. 대부분은 이 두 가지 조건을 지키며 살지 못합니다. 인생을 잘 살기 위한 필수적인 두 가지 조건에 대해 잘못 반응하는 세 가지 태도가 있습니다.


첫째는 인생을 사는 바른 목적도 없이 그저 열심히만 인생을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둘째는 인생을 사는 바른 목적을 발견하거나 깨닫고도 그렇게 사는 것을 힘들어하며 아무 노력도 열정도 없이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셋째는 인생을 사는 목적도, 인생을 열심히 살려는 열정도 없이 그야말로 마지 못해 사는 사람입니다.


떤 태도가 인생을 사는 가장 위험한 태도일까요? 아마도 세 번째 경우인 인생을 사는 목적도 잃어버리고 인생을 열심히 살려는 노력이나 열정도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물론 이런 태도로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인생을 사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하지만 이것보다 더 위험한 태도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인생을 사는 바른 목적과 방향을 잃어버리고는 오직 인생을 사는 열심과 열정만 남아 있는 사람입니다. 도대체 왜 인생을 사는 바른 목적과 방향은 없지만, 인생을 열심히 사는 사람이 가장 위험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인생의 목적과 이것을 성취하려는 노력 두 가지를 모두 잃어버렸거나 아니면 인생을 사는 목적은 분명하지만, 이것을 성취하려고 노력하지 않은 사람은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쉽게 깨닫고 인정합니다. 왜냐하면, 자신이 열심히 노력하지 않았다는 분명한 사실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자신의 열정과 노력을 다해 열심히 인생을 사는 사람은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기가 대단히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이런 사람은 자기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노력하며 열심히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런 사람은 잘못된 세상이 문제지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합니다.


이것은 비단 인생의 문제만이 아니라 신앙에서도 똑같이 일어나는 사건입니다. 인생과 마찬가지로 신앙에도 비슷한 세 부류의 교인들이 있습니다. 첫째는 바른 믿음은 없이 그저 열심히만 신앙 생활하는 교인이 있습니다. 둘째는 비록 바른 믿음을 분별할 수 있지만, 그 길을 힘들다고 여겨 그 길을 가려고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는 교인이 있습니다. 셋째는 아무 생각 없이 습관적으로 또는 어쩔 수 없이 교회를 다니는 교인이 있습니다.


이 세 부류의 사람들 가운데 교회에서 가장 위험한 교인은 어떤 부류의 교인입니까? 바른 믿음은 없이 열심히만 신앙생활 하는 교인입니다. 이런 교인들은 주로 어떤 교회를 다닙니까? 사이비 이단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입니다. 교인들을 맹신하도록 세뇌하는 교회를 다닙니다. 저는 사이비 이단 교회를 다니는 사람 가운데 설렁설렁 신앙생활 하는 사람을 본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사이비 이단 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그 어떤 교인들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열정적으로 신앙 생활합니다. 자신들의 열심 때문에 스스로 대단히 신실한 사람이라고 착각합니다. 그래서 잘못된 신앙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하지만 올바른 믿음에 기초하지 않은 종교적 열심은 그 열심과 열정이 아무리 대단하고 헌신적으로 보인다 해도 이것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아닙니다. 광신은 자기 자신의 만족을 위한 열심이며 열정이지 결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신앙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런데 반대로 바른 생각과 믿음을 가진 사람 가운데는 열정적으로 신앙생활 하는 사람을 좀처럼 찾아보기가 힘듭니다. 왜 그렇습니까? 예수님이 가르치는 믿음과 삶이 당장 나에게 별다른 이익이 되지 않는다고 여기거나, 나 혼자 바르게 믿는다고 교회나 세상이 달라질 것이라고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개인적인 제 생각이지만 우리 교회가 이 늪에 빠진 것은 아닌가 하는 안타까움과 답답함이 있습니다.


지금까지 여러 차례 반복하여 설교한 것처럼 데살로니가 교회는 아주 짧은 기간 동안 이루어진 바울의 사역을 통해 세워진 교회였습니다. 비록 데살로니가 교회가 아주 짧은 기간에 세워진 교회였지만 주변 지역이었던 마게도냐와 아가야에 이르기까지 모든 믿는 자들의 본이 되었던 그야말로 대단히 좋은 교회였습니다.


살전1:6-7 또한 여러분은 많은 환난 가운데서도 성령이 주는 기쁨으로 말씀을 받아들여서 우리와 주님을 본받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마게도냐와 아가야에 있는 모든 믿는 이들에게 모범이 되었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가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될 만큼 훌륭한 교회였지만, 그렇다고 모든 것이 좋기만 한 완벽한 교회였던 것은 아닙니다. 데살로니가 교회가 가지고 있던 가장 심각한 문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에 관해 잘못된 믿음입니다. 물론 데살로니가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에 관한 믿음으로 인해 유대인들과 로마 제국의 박해와 핍박 가운데서 흔들리지 않고 믿음을 지킬 수 있었습니다.


살전1:10 어떻게 해서 여러분이 하나님께서 죽은 사람 가운데서 살리신 그분의 아들, 곧 장차 닥쳐 올 진노에서 우리를 건져 주실 예수께서 하늘로부터 내려오시기를 기다리는지를 퍼뜨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데살로니가 교회가 가진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에 관한 잘못된 믿음으로 인해 여러 가지 문제가 생겨났습니다. 데살로니가 4장에 나오는 사도 바울의 권면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에 관한 잘못된 믿음으로 인해 생겨난 데살로니가 교회의 문제를 고치기 위한 말씀입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인해 완성될 구원의 사건을 오직 영혼의 문제로만 여겼습니다. 인간의 육체는 버림받고 오직 영혼만 구원받는다고 믿었기에 육체의 삶은 어떠하든지 상관없다고 여긴 것입니다. 그래서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데살로니가 도시의 믿지 않는 사람들처럼 육체의 음란과 색욕을 따르는 삶을 살았습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도 사도 바울이 가르친 것도 아니었습니다. 아무리 깨끗한 천연 지하수라고 해도 그 물을 담는 그릇이 더러우면 아무도 그 물을 깨끗한 물이라고 하지 않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인간의 육체는 인간의 영혼을 담는 그릇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할 수 있는 거룩한 영혼을 인간의 육체에 담기 위해서는 육체를 망가뜨리고 더럽게 하는 음란한 삶을 멀리해야 합니다.


살전4:5-6a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이방 사람과 같이, 색욕에 빠져서는 안 됩니다. 또 이런 일에 탈선을 하거나 자기 형제자매를 해하거나 하지 말아야 합니다.


데살로니가 교회가 가졌던 그리스도의 재림에 관한 잘못된 믿음으로 인해 생겨난 또 다른 문제는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일하려고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이 얼마 지나지 않아 곧바로 있을 것이라 믿었기 때문입니다. 한 마디로 데살로니가 교회가 가졌던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에 관한 믿음은 지금의 시한부 종말론 신앙과 매우 비슷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데살로니가 교회가 지금의 시한부 종말론 신앙처럼 종말에 대해 특정한 날짜나 시기를 주장하지는 않았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1절로 2절의 말씀이 이것을 보여줍니다.


살전5:1-2 형제자매 여러분, 그 때와 시기를 두고서는, 여러분에게 더 쓸 필요가 없겠습니다. 주님의 날이 밤에 도둑처럼 온다는 것을 여러분이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자신들 살아생전에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이 있을 것이라 믿었습니다. 그래서 자신들 손으로 일해서 먹고살기보다는 가진 재산을 탕진하며 살거나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을 구하며 살았습니다.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의 이러한 믿음과 태도를 매우 심각하게 여겼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가 가졌던 확고부동한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에 관한 믿음이 당장은 유대인들과 로마 제국의 핍박과 박해를 이겨내는 데는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잘못된 종말론은 결국 오래 지나지 않아 데살로니가 교회의 근간을 뿌리째 흔드는 매우 심각한 문제가 될 것이 너무나 분명했기 때문입니다.


데살로니가 교회가 가졌던 잘못된 재림신앙을 고치기 위한 사도 바울의 권면이 무엇입니까? 바울은 먼저 데살로니가 교회가 형제를 사랑하는 일에는 더는 권면할 것이 없이 너무나 잘하고 있다고 칭찬했습니다. 아마도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데살로니가 교인들의 믿음이 교인들끼리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는 일에 더욱 최선을 다하도록 했던 것 같습니다.


살전4:9-10 형제자매 여러분, 사랑하는 것을 두고서는 여러분에게 더 쓸 필요가 없겠습니다. 여러분이 직접 하나님께로부터 서로 사랑하라고 하시는 가르침을 받아서, 온 마게도니아에 있는 모든 형제자매에게 그것을 실행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형제사랑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신 새 계명으로 재림신앙과 상관없이라도 반드시 지키고 실천해야 하는 기독교인의 사명입니다. 교회 안에서 형제를 사랑하는 것이야말로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일이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입니다. 나아가 교회에서 성도가 성도를 사랑하는 것보다 교회를 더 교회답게 만드는 일은 없다고 해도 조금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13:34-35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성도가 성도를 사랑하는 것을 오해하지 말아야 합니다. 많은 교인이 서로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서로 좋아하라는 말씀으로 오해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같은 교회를 다닌다고 해도 모든 교인을 다 좋아할 수는 없습니다. 살을 맞대고 사는 부부도 서로 좋기만 하지 않을 때가 있고 피를 나눈 형제 사이도 서로 좋기만 하지는 않을 때가 너무도 많습니다. 하물며 우리가 어떻게 생판 몰랐던 사람을 같은 교회를 다닌다고 좋아할 수가 있겠습니까!


예수님은 우리에게 서로 좋아하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대신에 서로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좋아하는 것이 감정이나 느낌의 문제라고 한다면 사랑하는 것은 태도나 행동의 문제입니다. 좋아하는 감정이나 느낌은 내 인격이나 마음대로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사랑하는 태도나 행동은 내 마음과 믿음대로 할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 사랑에 대해 어떻게 설명하고 있습니까? 따라서 우리는 저 사람은 내가 도저히 사랑할 수 없어라고 말하지 말아야 합니다. 내가 어떤 사람을 끝까지 좋아하지 못할 수는 있어도 사랑하지 못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사랑은 상대방에게 달린 문제가 아니라 전적으로 내 믿음에 달린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고전13:4-7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데살로니가 교회는 형제 사랑에 관해서는 바울이 뭐라고 쓸 말이 없을 정도로 잘했습니다. 하지만 데살로니가 교회의 문제는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해서 지나치게 떠벌리고 다니면서 먹고 살기 위해서는 아무 일도 안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에 세 가지를 명령합니다.첫째 조용히 살며, 둘째 자기 일을 가지고, 셋째 자기 손으로 일을 하라는 것입니다.


살전4:11 그리고 우리가 여러분에게 명령한 대로 조용하게 살기를 힘쓰고 자기 일에 전념하고, 자기 손으로 일을 하십시오.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에 이런 명령을 지킬 것을 부탁하는 이유는 데살로니가 도시의 믿지 않는 사람들이 믿는 사람들의 삶을 보면서 오해하지 않고 믿는 자로서 품위를 지키게 하기 위함입니다. 많은 말이 복음을 전하는 것이 아닙니다. 비록 적은 말이지만 품위와 기품있는 말이 복음을 전할 수 있습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린다며 아무 일도 하지 않아 당장 먹고 사는 일에 어려움을 겪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당장 먹고 사는 일도 제대로 못 하는 사람이 전하는 복음을 누가 믿으려고 하겠습니까? 이것을 일을 열심히 해 돈을 많이 버는 부자가 되라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 남의 신세나 지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살전4:12 그래서 여러분은 바깥 사람들을 대하여 품위가 있게 살아가야 하고 또 아무에게도 신세를 지는 일이 없게 해야 할 것입니다.


데살로니가 교회 안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에 관한 믿음에 문제가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곧 오신다고 떠벌리며 아무 일도 안 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오늘 밤에 오신다고 하더라도 지금 내가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바른 믿음입니다. 예수님 오신다고 하던 일 다 때려치우고 하늘만 쳐다보고 있는 것이 바른 믿음이 아닙니다.


24:40-41 그 때에 두 사람이 밭에 있을 터이나, 하나는 데려가고, 하나는 버려 둘 것이다. 두 여자가 맷돌을 갈고 있을 터이나, 하나는 데려가고, 하나는 버려 둘 것이다.


말씀을 마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아무리 진리라고 해도 그것을 전하는 사람의 삶이 엉망이라면 제대로 전달될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깨끗한 물이라도, 그것을 담은 그릇이 더러우면 그 물을 받아 마실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복음을 바르게 전하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복음에 합당한 삶, 복음에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아야 합니다.


바라기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여전히 나를 기쁘게 하고 만족하게 하려는 삶에서 벗어나 오직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삶을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내 인생이 복될 뿐만 아니라, 나와 함께 사는 이웃의 삶도 함께 복되게 하는 존귀한 하나님의 사람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새글 0 / 330 

검색

번호 제목 작성자 등록일 조회수
공지 자유교회 주일예배 영상 Youtube 링크 2021.04.21 3638
330 십계명9-우리의 신앙, 믿음입니까? 미신입.. 2025.04.06 65
329 십계명8-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 2025.04.06 64
328 십계명7-어떤 것으로도 하나님을 제한하지 .. 2025.03.18 108
327 십계명6-코람데오(Coram Deo) 2025.03.18 105
326 십계명5-우리는 누구를 섬기며 살고 있는가? 2025.03.18 108
325 십계명4-왜 첫 번째 계명이 하나님에 대한 .. 2025.03.18 101
324 십계명3-십계명을 주신 하나님은 어떤 하나.. 2025.03.18 99
323 십계명2-십계명을 주신 하나님은 어떤 분인.. 2025.03.18 103
322 십계명1-십계명 지금도 여전히 필요한 이유 2025.03.18 113
321 시험15-얼마 동안 떠나갔다 2025.02.01 294
320 시험14-하나님을 시험하지 말고 자신의 믿.. 2025.02.01 314
319 시험13-성경 말씀을 이용한 시험 2024.12.17 483
318 시험12-성전에서 시험받으신 예수님 2024.12.17 521
317 시험11-누구를 경배하며 살 것인가? 2024.12.17 468
316 시험10-세상의 질서를 거스르는 믿음의 삶 2024.12.17 5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