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와성경공부
교회16-죽음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입니다.

죽음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13-18


세상에서 만드는 하나님 나라 시리즈 설교 열여섯 번째 시간입니다. 오늘은 죽음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입니다.”라는 제목으로 말씀 전합니다.


데살로니가 교회가 주변 모든 지역에 본이 될 정도로 훌륭한 교회였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가 주변에 본이 되는 좋은 교회가 될 수 있었던 가장 결정적인 이유 한 가지를 꼽으라고 한다면 예수 그리스도가 다시 세상에 오시어 새로운 세상 하나님 나라를 이루실 것을 확실하게 믿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신학에서는 재림신앙 또는 종말론 신앙이라고 합니다.


특별히 데살로니가 교회는 자신들이 살아있는 동안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다시 오셔서 하나님의 심판과 통치가 이루어지는 새 하늘과 새 땅이 이루어질 것이라 믿었습니다. 이것을 신학에서는 임박한 종말론이라고 설명합니다. 임박한 종말론이란 하나님 나라가 멀고 먼 미래의 사건이 아니라 우리 눈앞에 닥친 사건이라는 것을 뜻합니다.


살전1:10 어떻게 해서 여러분이 하나님께서 죽은 사람 가운데서 살리신 그분의 아들, 곧 장차 닥쳐 올 진노에서 우리를 건져 주실 예수께서 하늘로부터 내려오시기를 기다리는지를 퍼뜨리고 있습니다.


장차 도래할 하나님 나라를 막연히 대단히 먼 미래에 이루어질 사건이 아니라 당장 우리 눈앞에 닥친 사건으로 믿는 임박한 종말론 신앙은 성경이 일관되게 가르치고 있는 기독교 신앙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하지만 일부 사이비 이단 교회들은 기독교 신앙의 임박한 종말론을 시한부 종말론으로 왜곡하여 사람들을 공포와 두려움에 빠지게 만듭니다.


얼핏 생각하기에는 임박한 종말론과 시한부 종말론은 대단히 비슷한 주장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이 둘은 전혀 다른 신앙이라는 것을 반드시 분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시한부 종말론은 자신들이 주장하는 날짜나 특정한 시기에 하나님의 심판과 세상의 멸망이 반드시 있을 것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당장 모든 일상을 중단하고는 오로지 종교 생활에만 전념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반면에, 임박한 종말론은 종말의 때와 시기에 대해선 아무도 알 수 없는 오직 하나님께 속한 일임을 믿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의 종말이 당장 내일일 수도 있고 아니면 수년 내일 수도 있다고 여깁니다. 임박한 종말론 신앙에서 중요한 것은 종말의 시기가 아닙니다. 인생이나 세상에는 반드시 종말이 있다는 것을 믿고 늘 종말을 마음에 품고 언제 종말이 닥친다고 해도 부끄럼 없이 그리고 두려움 없이 살아가려고 애쓰며 사는 신앙이 임박한 종말론 신앙입니다.


13:32-33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에 있는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주의하라 깨어 있으라 그 때가 언제인지 알지 못함이라


사도 바울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곧 세상에 다시 오셔서 믿음의 사람을 핍박하고 박해하는 불의하고 타락한 세상의 질서를 끝내시고 하나님 나라를 이루실 것이라고 가르쳤습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에 장차 있을 임박한 그리스도의 재림과 종말에 대해 가르쳤습니다. 하지만 데살로니가 교회는 임박한 종말에 대한 바울의 가르침을 오해하였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자신들이 살아있는 동안 예수 그리스도가 재림하시어 불의하고 타락한 세상을 심판하시고 멸망시킬 것이라 믿었습니다. 그런데 데살로니가 교인들의 믿음에 심각한 위협이 되는 문제가 생겼습니다. 교인들 가운데 죽는 사람들이 하나둘씩 생겨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자신들 살아생전에 예수 그리스도가 재림하시어 하나님 나라를 완성하실 것이라고 믿었는데 죽는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자기 주변에서 그리스도의 재림도 있기 전에 죽는 교인들을 보면서 당황했습니다. 장차 그리스도의 재림이 있을 때, 이미 죽은 사람들은 어떻게 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주님이 다시 오실 때 살아서 주님을 맞이해야 하는데 먼저 죽은 이들은 장차 이루어질 하나님 나라에서 제외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불안과 두려움 그리고 먼저 죽은 성도들을 생각하며 큰 슬픔에 빠져있었습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에 닥친 성도의 죽음에 대해 가르치고 있는 말씀이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성경 말씀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과 후서는 데살로니가 교회의 잘못된 종말론에 대해 가르쳐주는 말씀입니다. 오늘 말씀에서 사도 바울은 주님의 재림 이전에 죽은 자들에 대해 설명하기를 자는 자들이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인간의 죽음을 자는 것이라고 가르친 것입니다.


살전4:13 형제들아 자는 자들에 관하여는 너희가 알지 못함을 우리가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소망 없는 다른 이와 같이 슬퍼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인간의 죽음을 자는 것이라고 하는 것은 바울만의 독특한 주장이 아닙니다. 구약성경에도 나오는 말씀이며 예수님의 가르침이기도 합니다. 구약성경 다니엘서 122절을 보면 죽은 자를 가리켜 땅의 티끌 가운데서 자는 자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야이로의 딸이 죽었을 때 통곡하는 사람들을 향해 이 아이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고 하셨습니다.


12:2 땅의 티끌 가운데에서 자는 자 중에서 많은 사람이 깨어나 영생을 받는 자도 있겠고 수치를 당하여서 영원히 부끄러움을 당할 자도 있을 것이며


5:39 들어가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하여 떠들며 우느냐 이 아이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하시니


그렇다면 성경은 왜 죽음을 왜 자는 것에 비유하였던 것일까요? 아무리 깊은 잠이 들었다고 해도 다음 날 아침이 되면 잠에서 깨어나는 것처럼 죽음 이후에 새로운 세상을 맞이하게 된다는 것을 가르쳐 주기 위함입니다. 기독교 신앙에서 죽음은 결코, 인생의 마지막이 아닙니다. 기독교 신앙에서 죽음은 끝이 아니라 부활의 아침에 다시 일어나 새로운 세계로 들어가는 새로운 출발을 의미합니다.


살전4:16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오늘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죽음에 대한 가장 강력한 생각은 죽으면 모든 것이 끝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주장이 갈수록 더 많은 사람에게서 호응을 얻고 있습니다. 그 결과가 어떤 현상이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습니까? 죽음으로 인생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는 매우 위험한 생각에 빠져있다는 것입니다.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는 평생을 죽어가는 환자들을 돌보면서 의대생과 신학생들에게 인간의 죽음에 대해 가르쳤던 의사였습니다. 그녀는 오백여 명의 죽어가는 환자를 돌보고 그들의 죽음을 바라보며 죽음에 대한 매우 중요한 진실을 남겼습니다. 그녀는 인간의 삶과 죽음에 대한 가장 중요한 진짜 문제는 우리가 죽음에 대한 제대로 된 의미를 지니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녀는 의학계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인간의 죽음을 뇌사나 심폐사처럼 육체적 기준만으로 정의되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합니다. 인간의 죽음에 대한 기준을 육체를 중심으로 판정하고 결정하는 사회는 결코, 죽음에 관한 인식이나 태도가 성숙할 수 없고 오직 불행한 죽음만 끊임없이 양산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녀는 비록 인간의 육체를 다루는 의사였지만 육체의 죽음이 인간의 끝이라는 사실에 대한 의문을 품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육체적 죽음 이후에 관해 연구하였습니다.


오랜 기간 수많은 이들의 육체적 죽음을 지켜보면서 그녀가 깨달은 것은, 인간에게는 영혼이 있고 인간의 삶은 단순히 이 세상에서의 생존 그 이상의 이유가 있음을 깨닫습니다. 그녀는 죽음이란 물질적이며 육체적인 것을 뛰어넘어 영혼, 정신, 삶의 의미같이 물질적인 삶과 육체적 생존 이상의 무언가가 지속하는 것이 있음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따라서 인간의 죽음을 육체의 죽음으로만 제한하지 말고 다양한 차원에서 죽음에 대해 생각해야만 삶과 죽음에 새로운 답을 얻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죽음에 관한 그녀의 가장 중요한 주장은 죽는다고 해서 모든 게 끝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인간의 죽음을 이해하는 데 있어 죽음 이후의 문제에 대해 생각하지 않고는 결코 인간의 죽음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죽음은 우리의 삶과 죽음 이후를 연결하는 Bridge와 같은 역할을 하므로, 삶과 죽음 그리고 죽음 이후 이 세 가지를 함께 연관하여 생각해야만 인간의 죽음에 관한 바른 이해를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오늘날 대부분 사람은 인간의 죽음을 육체에만 제한하여 이해하고 받아들이려 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육체의 죽음으로 모든 것이 완전히 끝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이런 사람들이 내세우는 주장은 인간에는 육체만 존재하며 육체의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난다는 것이 가장 과학적인 이론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저는 육체의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진짜 이유는 다른 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육체의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늘어나는 이유는 죽으면 반드시 모든 것이 끝나야만 하는 인생을 사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다시 말해 평생을 자신의 육신만을 위해 살아왔기 때문에 육체 말고 또 다른 차원의 삶이나 죽음 이후에 또 다른 삶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입니다.


죽음이 결코 끝이 아니라는 것을 믿는 것은 기독교 신앙에서 매우 중요한 신앙고백입니다. 기독교 신앙은 죽음을 소멸이 아니라 새로운 세계의 시작이라고 믿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성도의 죽음에 대해 끝이 아니라 자는 것이라 가르쳤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과 함께 자는 자들이 깨어나서는 주님과 함께 영원히 함께 있을 것이라고 가르쳤습니다.


살전4:17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기독교인으로 세상을 산다는 것은 이 세상이 우리 삶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마음에 두고 사는 것입니다. 세상의 방식과 질서가 영원하지 못하다는 것을 마음에 두고 사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남들과 똑같은 세상을 살면서도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과는 전혀 다르게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데살로니가 교회 공동체는 데살로니가 도시의 사람들과 전혀 다른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저들 역시 데살로니가 도시의 다른 사람들처럼 자신이 태어난 곳에서는 먹고 사는 것이 힘들어 도시로 모여든 사람들이었습니다. 이처럼 데살로니가 도시에 살던 다른 사람들과 조금도 다를 바 없던 사람들이 어떻게 이전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삶의 방식을 가지고 살게 되었습니까?


데살로니가 교회가 데살로니가 도시의 사람들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살았던 것이 가능한 이유는 이 세상이 전부가 아니라 새로운 세계 즉 하나님 나라가 있음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다른 방법으로 표현한 것이 로마서의 8장의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은 인간의 죽음조차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끊어낼 수 없다고 가르쳤습니다.


8:38-39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인생에서 죽음이야말로 그 어떤 것과 비교할 수 없는 가장 중요한 문제입니다. 죽음을 멀리하면 할수록, 죽음이 불명확하면 할수록 우리 인생 역시 불명확해집니다. 반면, 죽음을 선명하게 이해하면 할수록 우리 인생도 선명해집니다. 왜냐하면, 우리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기준은 죽음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사는 세상은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죽음에 대해 생각하는 것을 회피하거나 외면하게 만듭니다. 심지어 죽으면 모든 것이 다 끝난다고만 생각하게 합니다. 왜 우리가 죽음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못하고 회피하거나 외면하도록 합니까? 죽음을 잊고 살아야만 세상의 탐욕스러운 방식을 끊임없이 지속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죽으면 모든 것이 끝이라고 해야만 사람들이 남들과 다르게 살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고 남들처럼 탐욕에 사로잡혀 살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죽음을 어떻게 이해하는 것은 단지 죽음을 준비하는 것만이 아니라 지금 당장 우리에게 주어진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 가를 깨닫게 하는 가장 강력한 영적인 교훈이며 경고입니다. 죽으면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죽음과 함께 반드시 하나님 앞에 서야 하는 존재입니다. 그리고 새로운 세계를 살아가야 하는 존재입니다. 따라서 죽음을 제대로 이해한다면 정말 두려워할 것은 육체의 소멸이 아니라 지금 우리가 어떻게 살고 있느냐를 두려워해야 합니다.


고후5:10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기독교 신앙은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인간의 죽음을 외면하거나 회피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막연하고 모호하게 말하지도 않습니다. 사도 바울은 죽음은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자는 것과 같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영원히 자는 것이 아닙니다. 하루의 노동과 수고를 마치고 잠들었다가 깨어나 새로운 아침을 맞듯이, 인생의 수고를 모두 마치고 깊은 잠이 들었다가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과 함께 새로운 세계를 시작하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의 삶은 죽음 이후의 삶을 준비하는 단 한 번의 기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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