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어둠이 공존하는 세상에서 빛의 자녀로 살기
데살로니가전서 5:7-11
세상에서 만드는 하나님 나라 열여덟 번째 시간입니다. 오늘은 “빛과 어둠이 공존하는 세상에서 빛의 자녀로 살기”라는 제목으로 말씀 전합니다.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그리스도로 세상에 오신 예수님은 공생애 사역을 시작하며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음을 선포하셨습니다.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예수님의 선포는 하나님 나라가 이미 시작되었음을 뜻하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분명히 알아야 할 사실은 비록 하나님 나라가 이미(already) 시작되었다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아직(not yet) 완성된 것은 아닙니다.
막1:15 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이미(already) 시작된 하나님 나라이지만 아직(not yet) 완성되지 않은 하나님 나라는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하는 하나님 나라에 관한 매우 중요한 영적 교훈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선포로 이미 시작된 하나님 나라에 속한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아직 완성되지 않은 하나님 나라를 사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다시 말해 우리는 이미 시작한 하나님 나라와 장차 완성될 하나님 나라의 과도기를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 나라가 완성되는 날은 언제입니까? 성경은 이것에 대해 예수 그리스도가 세상에 다시 오시는 재림의 날이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가 세상에 다시는 오는 재림의 날을 주의 날이라고 했습니다. 주의 날은 불의한 세상이 하나님의 심판으로 멸망하고 하나님 나라가 완성되는 날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비록 하나님 나라가 이미 시작되었다고는 하지만, 아직 완성되지 않은 그런 세상을 살고 있습니다. 이미 시작되었지만, 아직 완성되지 않은 하나님 나라를 사도 바울은 어떻게 설명하고 있느냐 하면 빛과 어둠, 낮과 밤이 공존하는 것이라 했습니다.
이런 세상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바울은 빛의 자녀, 낮의 자녀로 살아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하지만 교인들 대부분은 이미 시작된 하나님 나라를 살려고 애쓰기보다는 그저 죽어서 가는 하나님 나라만을 바라보며 신앙생활 합니다. 이 세상에서는 세상 방식대로 제멋대로 살다가 죽은 다음에나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고 합니다.
살전5:5-6 너희는 다 빛의 아들이요 낮의 아들이라 우리가 밤이나 어둠에 속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 말고 오직 깨어 정신을 차릴지라
저는 이것이야말로 한국교회 교인들 대부분이 가지고 있는 전형적인 신앙의 방식이며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너무나 많은 교인이 살아서는 세상 즐거움과 성공과 부와 명예를 다 누리고 살다가 죽어서도 영원한 천국의 삶을 살아갈 수 있다고 믿으며 신앙생활 합니다. 하지만 너무나 그럴듯해 보이는 이 믿음이 오늘날 한국교회를 심각한 위기와 타락에 빠뜨린 주범입니다.
세상에서는 세상의 방식대로 출세와 성공 부와 쾌락만을 추구하며 살다가 종말이나 죽음을 맞을 때만 하나님 방식대로 살려고 하면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을까요? 과연 이런 식으로 살아도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을까요? 아니요.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사람은 세상을 어떻게 살았느냐에 따라 종말이나 죽음도 같은 방식으로 맞이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관성의 법칙)
빛과 어둠이 공존하는 세상을 살면서 우리가 세상에서의 어려움이나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빛의 자녀로 살아야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 세상에서 이미 시작한 하나님 나라를 살지 못하는 사람이 장차 종말과 죽음으로 완성될 하나님 나라를 살 수 없기 때문입니다. 죽을 때까지 세상 방식대로만 살다가 죽은 사람이 하나님 방식대로 살아야 하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길은 없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에서 탈출한 다음 홍해를 건너 노예의 신분에서 벗어났지만, 그것으로 그들의 구원이 완성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까지 40년 동안 광야의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결국 출애굽 1세대들 가운데 여호수와와 갈렙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이것은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를 믿고 교회를 다닌다고 저절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하면 이것은 매우 심각한 착각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예수를 믿어 하나님 자녀가 되었다는 것은 죽은 다음 가는 천국 입장권을 보장받은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예수를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은 하나님 나라와 세상 나라가 공존하는 이 세상에서 하나님 나라를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원한다면 하나님 나라와 세상 나라가 공존하는 이 세상에서 예수님의 선포로 이미 시작된 하나님 나라를 사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빛과 어둠 즉 하나님 나라와 세상 나라가 공존하는 세상에서 빛의 자녀로 하나님 나라를 살아갈 수 있습니까? 바울은 이것에 대해 이렇게 가르쳤습니다. 먼저 우리는 낮에 속하였으니 정신을 차리라고 합니다. 이것은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어디에 속하였는지를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자신의 소속을 분명히 알아야 자신이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알 수 있습니다.
살전5:8a 우리는 낮에 속하였으니 정신을 차리고
낮에 속한 사람이 되었다고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낮에 속한 사람답게 밤의 방식이 아닌 낮의 방식대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에 속한 사람답게 하나님의 방식대로 세상을 살아야 합니다. 바울은 낮의 속한 사람으로서 하나님 나라의 방식대로 살기 위해선 믿음과 사랑의 흉배를 하고 구원을 소망하는 투구를 쓰라고 합니다.
살전5:8 우리는 낮에 속하였으니 정신을 차리고 믿음과 사랑의 호심경을 붙이고 구원의 소망의 투구를 쓰자
군인들이 전쟁에 나갈 때 신체에서 가장 중요한 가슴과 머리를 보호하는 흉배와 투구를 쓰는 것처럼 세상과의 영적 싸움을 위해서도 믿음과 사랑이라는 흉배와 장차 완성될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는 투구를 써야 한다고 권면합니다. 바울이 갑자기 흉배와 투구와 같은 전쟁 용어를 사용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빛과 어둠이 공존하는 세상에서 빛의 자녀로 사는 것은 세상과의 영적 싸움을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명심해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와 세상 나라가 공존하는 이 세상에서 성도의 삶은 세상과 영적 싸움을 하는 것입니다. 빛과 어둠이 공존하는 세상에서 아직 완성되지 않은 하나님 나라를 살기 위해선 그리스도인의 삶은 치열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쥐도 새도 모르게 어둠의 권세가 우리를 삼켜 버릴 것입니다. 믿음을 따라 살려는 싸움을 피하려고 하는 순간 어둠의 권세가 순식간에 우리를 집어삼킬 것입니다. 인생을 바르게 사는 것은 어려워도, 망가지고 무너지는 것은 순식간에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어둠에 속한 자들이 아니라 빛에 속한 사람입니다. 이 모든 것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루어졌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완전히 이루어질 것입니다. 따라서 낮에 속한 사람들은 세상에서 치열하게 영적 싸움을 해야 합니다. 하지만 신앙공동체로 모였을 때는 서로를 격려하고 세워줄 수 있어야 합니다. 세상에서의 영적 싸움이 치열할수록 공동체 안에서의 격려가 넘쳐나야 합니다. 그래야 세상에서의 영적 싸움을 지속할 수 있습니다.
살전5:11 그러므로 피차 권면하고 서로 덕을 세우기를 너희가 하는 것 같이 하라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를 향해 피차 권면하고 서로 덕을 세우기를 너희가 하는 것같이 하라고 했습니다. 덕을 세운다는 말은 서로 덕스럽게 온유하게 부드럽게 말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덕을 세운다는 말의 원어 성경의 뜻은 집을 짓는 것을 뜻합니다. 여기서 집은 인생을 의미하는 메타포입니다.
따라서 서로 덕을 세우라는 사도 바울의 권면은 서로가 각자의 인생을 믿음으로 잘 살 수 있도록 서로 도우며 살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3장에서 우리가 지은 집을 하나님께서 불로 심판하신다고 경고했습니다. 어떤 집은 불을 붙이면 확 타버리고 맙니다. 반면에 어떤 집은 불을 붙여도 타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다고 했습니다.
고전3:12-13 만일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 위에 세우면 각 사람의 공적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적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적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라
바울의 설명에 의하면 불의 심판에도 불구하고 타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금과 은처럼 불을 견디는 물질로 지은 집입니다. 이것은 금과 은으로 집을 지으라는 말씀이 아니라 인생에 대한 메타포입니다. 불은 주의 재림의 날에 있을 하나님의 심판을 의미합니다. 타는 것은 심판을 받아 사라져 멸망하는 것이라면, 타지 않는 것은 심판의 날에 오히려 구원을 얻는 인생을 의미합니다.
한 마디로 바울의 설교는 종말이나 죽음과 함께 사라지거나 없어지고 말 것에 집착하는 인생을 살지 말라는 것입니다. 종말이나 죽음은 끝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차원의 세계를 시작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것을 하나님과 영원히 함께 사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과 영원히 살려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진지하게 생각하며 살아야 합니다.
교회라는 신앙공동체는 하나님과 함께 영원을 살아야 하는 자들입니다. 따라서 서로 무너지지 않는 집, 불의 심판에도 타지 않는 집을 세울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무슨 뜻입니까? 어둠에 속한 것이 아니라 빛에 속한 것으로 인생의 집을 짓도록 도와야 합니다. 영원한 삶을 위해 영원한 가치가 있는 것들로 인생을 채우도록 서로 돕는 것이 서로 덕을 세우도록 돕는 것입니다.
우리는 빛과 어둠, 낮과 밤, 하나님 나라와 세상 나라가 공존하는 세상을 살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어둠과 같은 세상에서 치열하게 영적 싸움을 하지만 신앙공동체로 모여서는 세상과의 영적 싸움에서 다친 상처와 피로를 치유하고 회복할 수 있도록 서로를 격려하며 위로하고 도와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힘을 얻어 또다시 세상과의 영적 싸움에 나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너무나 많은 교회와 교인이 거꾸로 행동합니다. 교회 안에서는 치열하게 싸우고, 세상에 나가서는 파티와 축제를 벌이며 삽니다. 하나님의 나라의 방식으로 세상을 살기보다는 세상의 방식을 교회에 가져와서는 교회마저 세상의 방식으로 이끌어가고 있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 나라를 드러내야 할 교회가 세상에 속한 친목 단체보다도 못한 형편없는 공동체를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정말 영원하신 하나님 아버지를 믿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믿는다면 세상에서는 빛의 자녀로 치열하여 영적 싸움을 하고 교회 공동체로 모여서는 세상과의 영적 싸움에 지치고 다친 영혼을 치유하고 회복하고 위로할 수 있어야 합니다. 더 나아가 세상을 하나님 방식대로 살아냈다는 기쁨과 감격의 축제를 즐기며 주님이 다시 오셔서 완성하실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기다릴 수 있어야 합니다.
빛과 어둠, 낮과 밤, 하나님 나라와 세상 나라가 공존하는 세상을 사는 우리를 빛의 자녀, 낮에 속한 사람,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살게 하는 영성이 도대체 어떻게 가능할 수 있습니까? 세상이 영원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가 영원함을 깨닫는 종말론의 영성이 있어야만 가능합니다. 이 세상에서의 삶이 영원한 것이 아니라 죽음 이후의 삶이 영원하다는 것을 깨닫는 종말론의 영성이 있으면 가능합니다.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반드시 죽어야 하는 운명을 가지고 태어납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심판이 있을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은 이미 선포된 사건이며 피할 수 없는 우리의 운명입니다. 물론 그때와 시기에 대해서는 아무도 모릅니다. 죽음 또는 종말의 때와 시기를 모르는 것은 저주가 아닙니다. 날마다 죽음과 종말을 준비하며 살아야 하지만 그렇다고 죽음과 종말에 얽매여 살지 않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총입니다.
종말의 영성을 두 단어로 압축하면 싸움과 축제입니다. 비록 우리는 어둠과 밤이 지배하는 세상에 살고 있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빛의 자녀, 낮에 속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 결과 우리는 매일같이 어둠의 권세와 싸우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지만 교회라는 신앙공동체로 모여서 하나님 나라의 완성을 바라면서 서로를 격려하고 세워주고 붙잡아 주는 축제의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싸움과 축제 이것이야말로 기독교의 종말론 신앙의 핵심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어둠에서 빛으로, 밤에서 낮으로 세상 나라에서 하나님 나라로 순간의 삶에서 영원한 삶으로 바꿀 수 있는 놀라운 특권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만약 여러분이 이미 소속이 바꾸었다면 빛의 자녀답게 당당하게 세상을 살아야 합니다. 당장이 아닌 영원을 바라보며 당장의 손해에 집착하지 말고 영원을 준비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우리는 세상을 살며 대학 준비, 취업 준비, 결혼 준비, 출산 준비, 노후 준비를 하며 살아갑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의 영원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준비인 종말 준비나 죽음 준비는 하지 않고 살아갑니다. 이것을 나와는 상관없는 먼 훗날의 일로 여기거나 애써 외면하며 살아갑니다. 하지만 우리 인생에서 일어나는 그 어떤 사건보다 가장 확실한 것은 종말이며 죽음입니다. 이 운명을 피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가장 노력해야 할 것은 그 어떤 것보다도 종말과 죽음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죽음을 준비하는 것은 은퇴 연금이나 생명보험을 들어 놓는 것이 아닙니다. 죽음을 준비하는 것은 죽음 이후 영원한 세계를 위해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가? (목적) 영원한 삶을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태도와 방식) 죽음 이후 무엇을 가지고 갈 수 있는가? (소유) 이것을 깊이 고민하며 치열하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종말을 생각하며 죽음을 마음에 두고 살아가는 것은 기독교 신앙에서 매우 중요한 영성입니다. 잘 죽는 것이야말로 세상을 살면서 그 사람이 가졌던 진짜 믿음이며 영성을 드러내는 가장 영광스러운 순간입니다. 어떻게 잘 죽을 수 있습니까? 세상과 치열하게 영적 싸움을 한 사람만이 그래서 후회 없는 삶을 산 사람만이 잘 죽을 수 있습니다. 종말과 죽음은 공포와 두려움이 아니라 우리에게 주어진 삶을 더욱 소중하고 존귀하게 살게 하는 하나님의 은혜이며 축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