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와성경공부
교회19-서로를 세워주는 하나님 나라 공동체

서로를 세워주는 하나님 나라 공동체

데살로니가전서 5:12-15


세상에서 만드는 하나님 나라 열아홉 번째 시간입니다. 오늘은 서로를 세워주는 하나님 나라 공동체라는 제목으로 말씀 전합니다. 드디어 사도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에 보낸 첫 번째 편지 데살로니가전서의 마지막 결론 부분에 이르렀습니다. 다음 주를 마지막으로 데살로니가 교회를 통해 우리가 만들어 가야 할 교회라는 신앙공동체에 대한 말씀을 모두 마치려고 합니다.


교회는 건물도 아니고 제도나 조직 또한 아닙니다. 교회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사람들이 모인 신앙공동체로 하나님 나라를 세상에 보여주어야 하는 사명이 있습니다. 그럼 어떤 신앙공동체를 만들어 가야 하나님 나라를 세상에 보여주는 신앙공동체가 될 수 있습니까? 이것에 대해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 서로를 세워주는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바울은 서로를 세워주는 공동체가 되기 위해선 먼저 교회의 지도자를 존중해 줄 것을 강조합니다. 교회의 지도자가 교인들에게 존경받지 못하는 공동체는 그 어떤 경우에도 좋은 공동체가 될 수 없습니다. 교인들이 교회의 지도자를 존경할 줄 아는 교회만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하나님 나라 공동체가 될 수 있습니다.


살전5:12-13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여러분에게 부탁합니다. 여러분 가운데서 수고하고 주님 안에서 여러분을 지도하고 훈계하는 이들을 알아보십시오. 그들이 하는 일을 생각해서 사랑으로 그들을 극진히 존경하십시오. 여러분은 서로 화목하게 지내십시오.


하지만 바울은 교회의 지도자라고 해서 무조건 존경하라고 가르치지는 않았습니다. 교회의 지도자들을 존경하라는 권면에는 매우 중요한 조건이 있습니다. 바울은 좋은 지도자를 알아보고 좋은 지도자를 존경하라고 가르쳤습니다. 교회의 지도자가 어떤 사람인지 상관하지 않고 무조건 목사나 지도자의 편을 드는 것은 목사를 위하는 일도 교회를 위하는 일도 되지 않습니다.


교인들이 어떤 지도자를 존경하느냐에 따라 그 공동체의 수준이 결정됩니다. 바울은 세 가지를 잘 감당하는 지도자를 존경하라고 했습니다. 바울이 말한 세 가지는 교인들을 위해 수고하고 지도하고 훈계하는 지도자입니다. 교인들은 이런 지도자가 누구인지를 알아보고 이런 지도자를 존경하라고 했습니다.


교인들을 위해 수고하고, 지도하고, 훈계하는 지도자를 알아보고 이런 지도자를 존경하라는 바울의 권면은 다른 한편으론 교회의 지도자가 마땅히 갖추어야 하는 덕목에 대한 가르침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교회의 지도자라면 마땅히 교인들을 위해 수고하는 자여야 하며, 교인들을 지도할 수 있어야 하고, 교인들은 잘못된 길에 들어서지 않도록 훈계할 수 있는 지도자여야 합니다.


바울이 말한 지도자의 세 가지 덕목을 하나씩 살펴봅시다. 우선 바울이 말한 교인들을 위해 수고한다는 것이 무엇을 뜻합니까? 데살로니가전서에서 수고라는 단어와 가장 잘 어울리는 표현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사랑입니다. 기독교가 말하는 사랑을 가장 잘 드러내는 방법은 수고입니다. 기독교의 사랑은 수고를 통해 나타납니다.


살전1:3 또 우리는 하나님 우리 아버지 앞에서, 여러분의 믿음의 행위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둔 소망의 인내를 언제나 기억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섬김과 희생이 없는 사랑, 수고가 따르지 않는 사랑은 사랑이라고 가르치지 않습니다. 성경이 가르치는 사랑에는 반드시 수고가 따르고 섬김이 따르고 희생이 따릅니다. 따라서 교회의 지도자는 다른 사람에 이것 해라, 저것 해라지시하고 명령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오히려 다른 사람을 살리고 세우기 위해 남들보다 먼저 낮아져서 수고하는 사람입니다.


바울이 말한 두 번째 교회 지도자의 덕목은 지도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도한다고 하면 가르치는 것으로만 생각합니다. 하지만 바울이 사용한 지도하다의 원어(프로이스테미)의 뜻은 앞서가다또는 선두에 서다라는 의미입니다. 다시 말해 성경에서 지도자란 다른 사람보다 솔선수범하여 앞장서서 가는 사람을 뜻합니다.


5:27 그 후에 예수께서 나가사 레위라 하는 세리가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나를 따르라 하시니


교회 지도자가 마땅히 가져야 하는 가장 중요한 태도 가운데 하나는 다른 사람보다 앞서서 살아가는 본을 보이는 것입니다. 지도자는 공동체를 위해 남들보다 앞서서 수고해야 하며 진리의 말씀을 따라 앞서 걸으면서 다른 사람을 이끌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교인들이 지도자를 따라갈 수 있는 것입니다.


고대의 전쟁에서 장수는 항상 전쟁에 앞장서는 사람이었습니다. 장수는 군대의 맨 앞에 서서 적진을 향해 돌격하면서 나를 따르라고 외칩니다. 그러면 군인들이 앞장선 장수를 뒤를 따라 적진을 향해 돌진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대부분 교회의 지도자들은 자신들은 앞장서지 않으면서 교인들만 앞에 내세우려고 합니다. 이런 지도자는 교인들을 총알받이로 여기는 나쁜 지도자입니다.


자신은 남들보다 먼저 진리의 말씀을 따라 살려고 노력하지도 않으면서 다른 교인들에게만 진리의 말씀대로 살라고 하는 것은 위선일 뿐만 아니라 아무런 영향력도 없는 말 잔치에 불과하고 맙니다. 오늘날 교회에서 시행하는 그 많은 신앙훈련이 별 효과가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훈련을 시키는 사람이 앞장서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을 가르치려고만 하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말한 세 번째 교회 지도자의 덕목은 훈계하는 것입니다. 훈계는 남들보다 앞서서 가는 사람들이 마땅히 감당해야 하는 사명입니다. 훈계라는 단어 역시 바울이 자주 사용한 표현으로 여기에는 두 가지 뜻이 있습니다. 하나는 이 길이 옳다고 가르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잘못됐다고 경고하는 것입니다.


지도자는 남들보다 앞장서서 걷는 사람이기에 남들보다 먼저 간 길이 옳은지 잘못됐는지를 먼저 알 수 있습니다. 만약 자신이 먼저 간 길이 옳은 길이라면, “이 방향으로 가는 것이 맞습니다.”, “이 방향으로 가야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분명하고 확신 있게 자신의 뒤를 따르는 사람에게 권면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자신이 먼저 간 길이 틀린 길이라면 자신을 따르는 이들이 자신과 같은 실수나 실패를 경험하지 않도록 분명하게 경고해야 합니다. “그렇게 가면 안 됩니다.”, “그 길로 가지 마십시오.” 말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물론 이런 말은 사람들이 잘 들으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 반발하거나 외면할 것입니다. 그래도 이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말해줘야 합니다. 이것이 성경이 말씀하는 훈계입니다.


이처럼 교회의 지도자는 공동체를 위해 남들보다 먼저 자신을 낮추고 섬기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또한, 복음의 진리를 따라 남들보다 먼저 앞서서 걸어가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뒤따르는 이들에게 자신이 먼저 간 길이 옳으면 함께 갈 수 있도록 격려해 주고, 잘못된 길이며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경고해줄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수고하고 지도하고 훈계하는 것입니다.


바울의 권면에서 또 한 가지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바울은 교회의 직분을 이야기하며 사도를, 목사를, 장로를 알아보고 존경하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대신에 바울은 교회 공동체를 위해 수고하고 지도하고 훈계하는 사람을 알아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사람을 존경하라고 했습니다. 저는 이것을 중요하게 여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교회가 종교화되면서 제도와 조직을 운영하기 위해 편의상 목사나 장로 또는 권사나 집사와 같은 직분을 나누었습니다. 하지만 교회의 직분은 역할을 나누기 위한 것이지 어떤 경우에도 높고 낮음을 나누는 계급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따라서 교회는 직분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맡은 역할이 훨씬 더 중요합니다.


교회의 직분에 무슨 대단한 권위나 힘이 있다고 여겨선 안 됩니다. 내가 받은 직분에 맡게 수고하고 지도하고 훈계하는 사명을 감당하고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이것이 교회의 지도자가 마땅히 갖추어야 하는 자세이며 교인들은 이런 지도자를 알아주고 존경해 주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교회는 서로를 세워주는 화목한 신앙공동체가 될 수 있습니다.


바울은 하나님 나라의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선 먼저 교회의 지도자들과 교인과의 관계에 대해 가르친 다음 교인들 간의 관계에 대해 가르칩니다. 특별히 교회에서 문제가 있는 세 부류의 교인들에 대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바울이 언급한 세 부류의 사람은 무질서하게 사는 사람, 마음이 약한 사람, 힘이 없는 사람입니다.


살전5:14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에게 권면합니다. 무질서하게 사는 사람들을 훈계하고 마음이 약한 사람을 격려하고 힘이 없는 사람을 도와주고, 모든 사람에게 오래 참으십시오.


먼저 무질서한 사람들입니다. 개역개정 성경은 무질서한 사람을 게으른 사람이라고 번역했습니다. 바울은 무질서하고 게을러서 먹고살기 위해 마땅히 해야 하는 노동은 하지 않고 다른 사람에 빌붙어 먹으며 남 일에 참견하며 돌아다니는 사람에 대해 어떻게 하라고 했습니까? 훈계하라고 했습니다. 교회는 무질서하고 게을러서 자기 먹고사는 문제조차 해결하지 못하는 사람에 대해선 엄중히 훈계하여 바른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기독교 신앙의 신실함은 교회에 얼마나 자주 오는지, 기도를 얼마나 유창하게 잘하는지, 성경을 얼마나 많이 아는지에 있지 않습니다. 물론 이런 것들도 중요하지만 이것들은 바른 삶을 살게 하는 수단이고 도구이지 이것 자체가 신실함의 기준이 되지는 않습니다. 무질서하고 게을러서 먹고사는 문제도 해결하지 못하는 사람이 아무리 기도를 유창하게 하고 성경을 많이 읽는다고 해도 교회 공동체의 유익이 되진 않습니다.


다음은 마음이 약한 사람들입니다. 바울이 언급한 마음이 약한 사람은 데살로니가전서 4장에 나오는 사랑하는 가족을 먼저 떠나보낸 사람들일 것입니다. 바울은 이들을 어떻게 하라고 했습니까? 격려하라고 했습니다. 격려는 막연하게 하는 좋은 말이 아닙니다. 성경의 진리에 근거해 성도의 죽음이 어떤 의미이며 죽음이 끝이 아님을 분명하게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들이 확실한 소망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격려입니다.


교회 공동체 안에는 늘 마음이 약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죽음이든 병이든 세상의 여러 가지 고통으로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우리의 마음은 자꾸만 약해집니다. 예상하지 못한 고통이 닥쳐 마음이 무너진 이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빛과 어둠, 하나님 나라와 세상 나라가 공존하는 세상에서 어둠과 싸우면 누구나 겪게 되는 지극히 정상적인 일입니다. 중요한 것은 포기하거나 무너지지 않도록 격려하는 것입니다.


바울이 언급한 마지막 부류는 힘이 없는 사람입니다. 여기서 힘이 없는 것은 육체의 힘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의 힘이 없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해 힘이 없는 사람이란 스스로 다스리지 못하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특별히 성적인 욕망을 잘 다스리지 못해 음란한 삶을 사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바울은 이런 사람을 도와주라고 했습니다. 어떻게 도와주어야 합니까? 잘못된 욕망을 절제하고 통제하여 거룩하고 존귀한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이것은 성의 문제에만 해당하는 것은 아닙니다. 힘이 없는 사람은 자기 욕심이나 욕망대로만 사는 사람입니다. 세상은 자기 멋대로 사는 것을 자유로운 삶이라고 부추깁니다. 하지만 이런 삶은 자유로운 삶이 아니라 방탕한 삶입니다. 성욕이든 소비 욕구든 소유욕이든 충동적 욕망에 따라 사는 사람은 힘이 없는 사람입니다. 자신을 다스리며 절제할 수 있는 사람만이 진짜 힘 있는 사람입니다.


바울은 교회의 문제 있는 사람들을 위한 마지막 권면으로 이들 모두에 대해 오래 참으라고 합니다. 바울은 왜 오래 참으라고 권면한 것일까요? 사람은 결코 쉽게 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변하는 데에는 생각보다 아주 오랜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너무 성급해서 변화의 열매를 얻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살전5:14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에게 권면합니다. 무질서하게 사는 사람들을 훈계하고 마음이 약한 사람을 격려하고 힘이 없는 사람을 도와주고, 모든 사람에게 오래 참으십시오.


무질서한 사람, 마음이 약한 사람, 힘이 없는 사람, 문제가 있는 사람을 꾸짖고 닦달하고 훈계한다고 단번에 변하지 않습니다. 자기 자신을 포함하여, 모든 사람의 변화에는 반드시 아주 오랜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럼 언제까지 오래 참아야 합니까? 문제가 있는 사람이 변할 때까지 참아야 합니다. 이것이 바울이 말하는 오래 참는 것입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 모두를 향해선 악으로 악을 갚지 말라고 합니다. 상대가 내게 악을 행하면 똑같은 방식으로 대응하려고 하는 것이 인간이 가진 보편적인 생각이고 마음일 것입니다. 하지만 악을 악으로 갚으면 그 악은 다시 악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이것을 뭐라고 합니까? 악순환이라고 합니다. 악순환은 악을 끊임없이 반복하는 것입니다. 결국, 모든 사람이 악한 피해를 보고 마는 것입니다.


살전5:15a 아무도 악으로 악을 갚지 말고


악순환을 끊어내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합니까? 바울은 이것에 대해 서로에게 그리고 모든 사람에게 좋은 일을 하려고 애쓰라고 합니다. 이것이 악순환을 끊는 가장 좋은 길입니다. 한마디로 나에게 유리한 것을 주장하지 말고 모두를 위해 좋은 일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고 그것을 위하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성경은 공의와 공평이라고 합니다.


살전5:15b 도리어 서로에게 모든 사람에게 항상 좋은 일을 하려고 애쓰십시오.


늘 남과의 경쟁이 일상화된 세상을 살면서 우리는 누군가를 이기고 지는 것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비교하고 차별해서 순위를 매기고 승패를 따져서 승자와 패자를 나누는 것은 전형적인 세상의 방식입니다. 하지만 교회는 남을 이겨서라도 나에게 좋은 것이 좋은 것이라고 여기는 곳이 아닙니다. 상대도 좋고 나도 좋은 그래서 모두가 좋은 것을 추구하고 이루어가는 신앙공동체입니다. 이것이 하나님 나라의 방식입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스스로 혼자 설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실수와 죄로 얼룩진 불완전한 우리에겐 서로를 세워줄 수 있는 신앙공동체가 필요합니다. 교회라는 신앙공동체가 없이 혼자서 스스로 거룩하고 존귀한 삶을 살아낼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거룩하고 존귀한 삶을 살기를 원한다면 우리에겐 반드시 교회라는 신앙공동체가 있어야 합니다.


바라기는 자유교회가 데살로니가 교회처럼 서로에 대해 오래 참음으로 서로가 변화의 열매를 맺도록 도와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나아가 악을 악으로 갚지 않고 모두를 위한 좋은 일을 통해 우리 인생의 악순환을 끊어버리는 하나님 나라를 세상에 보여주는 신앙공동체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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