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와성경공부
욥기23-너희는 욥의 말 같이 옳지 못함이라

너희는 욥의 말 같이 옳지 못함이라

욥기 42:7-9

 

욥기 강해 스물세 번째 시간입니다. 오늘은 너희는 욥의 말 같이 옳지 못함이라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합니다. 오늘도 전하는 욥기 말씀 가운데 여러분 각자에게 주시는 은혜와 깨달음이 있기를 바랍니다.


욥은 도무지 원인도 이유도 알 수 없는 재앙과 고난을 겪어야 했습니다. 욥은 도무지 마땅한 원인도 이유도 없이 겪어야 하는 자신의 재앙과 고난을 부당하다고 여겼습니다. 욥은 자신이 겪는 재앙과 고난의 부당함과 억울함 때문에 하나님의 통치와 다스림에 문제가 있다며 하나님께 원망과 하소연 그리고 불평을 늘어놓았습니다.


욥은 하나님을 대면하여 자신이 겪는 재앙과 고난에 대해 따져 묻기를 원했습니다. 도대체 자기가 왜 이런 재앙과 고난을 겪어야 하는지 하나님께 물어보고 싶었습니다. 도대체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불의와 부조리를 바로 잡지 않으시고 그대로 방치하고 계시는지 따져 묻고 싶었습니다.


마침내 하나님께서 욥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욥은 지금까지 귀로만 듣던 하나님을 직접 눈으로 대면하여 만나게 된 것입니다. '귀로만 들었던 하나님'은 지금까지 사람들에게서 들어 왔던 하나님을 뜻합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하나님에 대해 들어왔던 것으로 하나님을 이러저러한 분이라고 자신이 생각하고 규정하였던 하나님을 뜻합니다.


42:5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그렇다면 귀로 듣기만 하나님을 욥이 눈으로 보았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욥이 하나님을 대면하므로 이전에는 전혀 알지 못했던 새로운 하나님을 깨닫게 된 것을 뜻합니다. 지금까지 욥은 하나님에 대해 사람들이 가르치고 말해왔던 것으로 하나님을 생각하고 규정하였습니다. 하지만 욥은 하나님을 대면하고는 지금까지 자신이 알고 있고 생각하고 있던 하나님과는 전혀 다른 하나님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욥은 하나님을 귀로 듣기만 하였을 때는 하나님을 오해하였습니다. 실제로 욥은 세 친구와 엘리후를 통해 하나님에 대한 많은 말을 들었습니다. 그가 들었던 하나님에 관한 말씀에는 위대한 교리도 있고 교훈도 있었으며 하나님에 관한 뛰어난 통찰과 지혜도 있었습니다. 그야말로 하나님에 관한 정통 신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욥이 세 친구에게서 들었던 하나님은 그가 겪는 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그 어떤 위로도 주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저들이 말하는 하나님에 대해 들으면 들을수록 욥의 마음은 더욱 답답하고 혼란스러웠습니다. 심지어 하나님에 대해 들을수록 원망과 불평만 더욱 커졌습니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입니까? 욥이 들은 것은 진짜 하나님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편견으로 가득 찬 사람의 주장에 불과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귀로만 듣던 하나님을 욥이 직접 대면하여 만난 것입니다. 욥은 하나님을 대면하여 만남으로 지금까지 자신이 귀로만 들어왔던 하나님과는 전혀 다른 하나님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욥이 만난 하나님은 지금까지 욥이 생각하고 규정지었던 그런 하나님이 아니었습니다. 욥이 만난 하나님은 지금까지 욥이 가졌던 생각과 규정을 모두 뛰어넘는 하나님으로 인간의 능력으로는 제대로 알 수도 없고 함부로 규정할 수도 없는 하나님을 경험한 것입니다.


42:3 무지한 말로 이치를 가리는 자가 누구니이까 나는 깨닫지도 못한 일을 말하였고 스스로 알 수도 없고 헤아리기도 어려운 일을 말하였나이다


욥에게 나타나셨던 하나님께서 이젠 욥의 세 친구 가운데 한 명이었던 엘리바스에게도 나타나셨습니다. 그런데 엘리바스에 나타나신 하나님께서는 그와 그의 두 친구에게 노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엘리바스와 그의 두 친구에게 노하셨습니까? 저들이 하나님에 대해 말한 것이 욥의 말 같이 옳지 못하였기 때문이라고 하십니다.


42:7 여호와께서 욥에게 이 말씀을 하신 후에 여호와께서 데만 사람 엘리바스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와 네 두 친구에게 노하나니 이는 너희가 나를 가리켜 말한 것이 내 종 욥의 말 같이 옳지 못함이니라


하나님께서는 엘리바스와 그의 두 친구에게 하나님에 대한 저들의 말이 욥의 말 같이 옳지 못하다는 말씀을 한 번이 아니라 두 번이나 반복하여 말씀하십니다. 성경에서 똑같은 말씀을 두 번 반복하여 기록하는 것은 이것이 매우 중요한 말씀임을 강조하는 성경의 관용적인 표현 방법입니다.


42:8b 이는 너희가 나를 가리켜 말한 것이 내 종 욥의 말 같이 옳지 못함이라


두 번에 걸쳐 엘리바스에게 하신 하나님의 말씀은 좀처럼 이해하기 어려운 말씀입니다. 지금까지 하나님에 대해 불평과 원망을 늘어놓았던 사람은 욥이었고 세 친구는 이런 욥을 책망하고 꾸짖었습니다. 한마디로 엘리바스와 그의 두 친구는 하나님을 향해 무례하게 굴던 욥을 향해 하나님의 편에서 서서 하나님의 권위를 지켜 주려고 애썼던 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엘리바스에게 나타나신 하나님께서 그에게 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너희가 하나님에 대해 한 말들은 내 종 욥과 같이 옳지 않았다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선 도대체 왜 하나님에 대해 원망과 불평으로 늘어놓으며 무례하게 말했던 욥의 말은 옳다고 하시고 정작 하나님에 대해 깍듯하게 예의를 갖추었던 세 친구의 말은 옳지 않다고 하신 것입니까? 도대체 하나님께서는 왜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까?


세 친구의 가장 큰 잘못은 자신들이 마치 하나님을 지키고 보호하는 존재라 착각했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도무지 원인도 이유도 모른 채 고난받는 욥의 절규와 한탄에 귀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대신에 하나님에 대한 욥의 한탄과 원망이 하나님의 권위에 스크래치를 주지 않을까 염려하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권위를 지켜야 한다는 열심에 하나님의 이름을 앞세워 욥을 정죄한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깊다고 하는 사람들이 흔하게 저지르는 실수이며 잘못입니다. 생각보다 많은 교회와 교인이 자신들이 하나님을 지키고 보호해야 한다는 착각에 사로잡혀 신앙생활 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하나님을 잘 믿는 믿음이 아닙니다. 이것은 전능하신 하나님을 자신이 지키고 보호해주어야 하는 자신보다 못한 존재로 만들어버리는 신성모독입니다.


분명히 알아야 하는 것은 하나님은 우리가 잘 지키고 보호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키고 보호하십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지키고 보호하려는 것은 하나님을 사람의 생각이나 교리에 가두어 두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아니라 자기의 생각이나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 하나님을 제멋대로 이용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하나님을 자신이 지키고 보호해야 할 분으로 믿다 보니까 어떤 일이 생기는 것입니까? 자신이 알고 있는 하나님에 관한 얕은 지식이나 교리를 가지고 다른 사람을 정죄하는 것입니다. 욥의 세 친구는 자신들이 하나님을 지키고 보호해야 한다는 생각에 극심한 고통과 고난을 겪는 욥을 공감해 주지 못하고 그를 책망하고 정죄하는 일에만 열중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앞세워 다른 이들을 정죄하는 것은 스스로 하나님의 보호자임을 자처하는 사람들에게서 흔하게 그리고 공통으로 나타나는 모습입니다. 신약성경에 나오는 대표적인 사람들이 누구입니까?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입니다. 이들은 누구보다 율법을 잘 지키며 하나님을 잘 믿는 자로 사람들에게 인정받았던 자들입니다.


예전 부목사로 있던 교회에서 임원회를 할 때 일어났던 일입니다. 어느 장로님이 담임목사의 의견에 반대했습니다. 그러자 다른 장로님이 담임목사의 의견을 반대한 장로님에게 대뜸 말하길 새벽 기도도 못 하는 장로가 무슨 말이 그렇게 많으냐며 대놓고 핀잔을 주었습니다. 이렇게 말한 장로님은 목사를 지키고 교회를 지켜야 한다는 그릇된 사명감에 사로잡혀서 다른 사람을 정죄하였던 것입니다.


이런 일이 그 교회에서만 일어났던 특별한 일일까요? 아니요. 이것은 대부분 교회에서 지금도 흔하게 일어나는 일입니다. 새벽기도에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참석한 집사님의 눈길이 무섭습니다. 그분의 머릿속에는 새벽기도에 빠진 목사와 장로들의 빠진 횟수와 날짜가 정확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십일조를 정확하게 꼬박꼬박하는 신자의 눈길이 무섭습니다. 그분의 머릿속에는 십일조를 빼먹거나 제대로 하지 않는 동료 신자들의 목록이 빼곡히 들어 있습니다.


기도원에 금식기도를 다녀온 권사님의 눈길이 무섭습니다. 그분의 시선에는 '너는 왜 금식기도를 하지 않느냐'는 무언의 질타가 섞여 있습니다. 큰 교회를 다니는 목사나 교인이 무섭습니다. 그들의 말투에는 작은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에 대한 우월감이 넘쳐납니다. 하나님과 교회를 지킨다는 명분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앞세워 다른 이들을 정죄하는 것을 경건의 폭력이라고 합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하나님을 잘 믿는 믿음은 사람이 하나님의 보호자임을 자처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잘 믿는 믿음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을 자신보다 못한 분으로 여기는 심각한 신성모독입니다. 하나님을 정말 잘 믿는 사람은 도무지 받아들이기도 힘들고 이해할 수도 없는 인생의 고난을 겪으면서도 하나님의 뜻을 깨닫기 위해 하나님과 치열하게 씨름하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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