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와성경공부
욥기24-욥기를 통해 깨닫는 새로운 하나님

욥기를 통해 깨닫는 새로운 하나님

욥기 42:10-17

 

욥기 강해 스물네 번째이자 마지막 시간입니다. 오늘은 욥기를 통해 깨닫는 새로운 하나님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합니다.


욥기는 욥과 당시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하나님에 대한 편견과 오해를 깨뜨리는 대단히 충격적인 말씀입니다. 오늘도 전하는 욥기 말씀을 통해 우리가 가지고 있는 하나님에 대한 편견과 오해를 극복하고 이전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하나님을 발견하고 깨닫고 만나는 도전과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욥기가 기록되고도 수천 년이 지났습니다. 하지만 지금도 여전히 너무나 많은 교인이 욥기에 등장하는 사람들처럼 하나님에 대한 매우 심각한 편견과 오해를 가지고 신앙생활하고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편견과 오해는 하나님을 잘 믿는 사람에게는 복을 주시고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는 벌을 내리신다는 것입니다.


선을 행하는 사람 또는 하나님을 잘 믿는 사람에게는 복을 주시고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는 벌을 내리신다는 신앙이 얼핏 대단히 그럴듯한 주장이나 신앙처럼 여겨집니다. 하지만 이것은 기독교 신앙에 대한 심각한 오해이자 하나님에 대한 매우 심각한 편견입니다.


물론 기독교 신앙에도 하나님을 잘 믿는 사람에게 복을 주시고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 벌을 내리시는 경우가 분명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기독교 신앙의 본질도 아니고 지극히 작은 일부분에 불과한 것입니다. 아주 작은 일부를 가지고 기독교 신앙을 제대로 알 수도 없고 하나님에 대해서 제대로 아는 것은 더더욱 불가능합니다.


행위에 대한 대가로 상을 받거나 벌을 받는 것은 한마디로 하면 “give & take”입니다. 아마도 우리 대부분은 “give & take”가 대단히 공정하고 정의로운 방식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하지만 “give & take”는 전형적인 세상의 방식이지 결코 하나님의 방식이 아닙니다. 기독교 신앙은 “give & take”가 아니라 값없이 조건 없이 베푸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믿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랑도 아가페라고 합니다.


욥은 자신이 알고 있던 하나님으로는 자신이 겪는 재앙과 고통을 도무지 이해할 수도 없고 받아들일 수도 없습니다. 이것은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익숙하게 알고 있는 하나님으로는, 우리가 당연하게 여겼던 방식으로는 내 인생에서 벌어진 일들을 이해하거나 받아들일 수 없는 일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럼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합니까? 도무지 받아들이지도 이해하지도 못하는 일 때문에 하나님을 원망하며 떠나야 할까요? 이렇게 해서는 내 인생에 닥친 재앙이나 고통을 절대로 극복할 수 없습니다. 지금까지 자신이 믿어 왔던 하나님에 관한 생각을 뛰어넘어야 합니다. 내 생각과 믿음의 한계를 뛰어넘는 새로운 하나님을 발견하고 만나야 합니다.


욥이 어떻게 원인도 이유도 모르는 재앙과 고통을 극복할 수 있었습니까? 지금까지 자신이 익숙하게 알고 있고, 믿어왔던 귀로만 듣던 하나님을 뛰어넘어 새로운 하나님을 직접 눈으로 경험하고 만났기 때문입니다. 욥은 자신이 가지고 있던 하나님에 대한 오랜 틀을 깨뜨릴 수 있었기에 그는 비로소 자신이 겪는 불합리하고 부당한 재앙과 고통을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42:5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오늘 우리가 읽은 욥기 마지막 말씀은 지금까지 욥과 그의 친구들이 전혀 알지 못했던 새로운 하나님에 관한 말씀으로 가득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고통을 겪는 욥을 제멋대로 판단하고 정죄하였던 욥의 세 친구에게 노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노하셨다는 것은 하나님께 큰 죄를 지었음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욥의 세 친구에게 노하셨던 이유는 무엇 때문입니까?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향해 원망과 불평을 하였던 욥의 말을 옳다고 하시고 욥의 항변으로부터 하나님을 보호하려고 했던 세 친구의 말이 틀렸다 하셨습니다. 세 친구가 하나님을 이름을 앞세워 고통받는 사람을 정죄하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것은 사람의 지식이나 능력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건이나 사람을 이해하기 위한 지식과 능력을 얻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비록 욥의 친구들에게 크게 노하셨지만, 저들의 어리석음에 벌을 내리지 않으셨습니다. 욥에게 친구들을 용서하도록 하셨습니다. 욥이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용서를 구하는 기도를 하자 하나님께서도 이들에게 용서의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욥이 자신들의 잘못에 대해 용서를 구하는 친구들을 용서하고 저들을 위해 기도하자 어떤 일이 벌어졌습니까? 욥이 자신을 책망하고 정죄하던 친구들을 용서하자 하나님께서는 그가 겪는 모든 곤경에서 벗어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가 예기치 못한 재앙으로 잃어버렸던 모든 소유를 갑절로 회복시켜주셨습니다.


42:10 욥이 그의 친구들을 위하여 기도할 때 여호와께서 욥의 곤경을 돌이키시고 여호와께서 욥에게 이전 모든 소유보다 갑절이나 주신지라


이 말씀은 매우 세심한 주의가 필요한 말씀입니다. 이것을 단순히 욥이 고난을 잘 참고 견디었기에 하나님께서 갑절의 복을 주셨다고 해석하는 것은 지금까지 욥기가 주었던 모든 교훈을 원점으로 되돌리는 잘못된 해석이며 적용입니다. 이것은 예상치 못한 하나님의 은혜를 나타내기 위한 것이지 욥이 고난을 잘 참고 견디었기에 상을 베푸셨다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이전 소유보다 갑절이나 주셨다는 말씀에서 우리가 중요하게 여겨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하루아침에 모든 재산을 다 잃어버린 욥이 어떻게 갑절의 복을 누리게 되었습니까? 하늘에서 소 떼와 나귀 떼와 양 떼가 떨어져서 이전보다 갑절의 복을 누리게 된 것입니까? 아니요. 그런 식으로 갑절의 복을 누리는 것은 하나님의 방식이 아닙니다.


원인과 이유를 알기 힘든 재앙과 고난을 겪게 된 욥은 그 어느 때보다 주변 사람들의 도움이 필요했습니다. 하지만 욥이 도움이 필요할 때 오히려 그를 알던 모든 사람이 욥을 멀리했습니까? 왜 이렇게 했습니까? 욥이 겪는 재앙과 고통을 보고 사람들은 그가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사람이라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지금까지 욥을 외면하고 심지어 그를 마을에서 쫓아냈던 사람들이 욥을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그와 함께 음식을 나누며 그가 겪은 재앙과 고통을 함께 슬퍼하고 위로합니다. 게다가 그를 찾아온 모든 사람이 케쉬타 하나씩과 금 고리 하나씩을 욥에게 주었습니다. 케쉬타는 욥기 시대 매우 큰 액수의 동전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저는 이것이 욥이 갑절의 복을 받는 Seed Money가 되었다고 해석하고 싶습니다.


42:11 이에 그의 모든 형제와 자매와 이전에 알던 이들이 다 와서 그의 집에서 그와 함께 음식을 먹고 여호와께서 그에게 내리신 모든 재앙에 관하여 그를 위하여 슬퍼하며 위로하고 각각 케쉬타 하나씩과 금 고리 하나씩을 주었더라


지금까지 욥을 외면하고 심지어는 그를 마을에서 쫓아내었던 사람들이 갑자기 달라진 이유가 무엇입니까? 재앙과 고통에 대한 새로운 깨달음을 얻었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이것은 곧 하나님에 대한 새로운 깨달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에 관한 새로운 깨달음이 재앙과 고통을 겪는 사람을 대하는 태도를 바꾸게 한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새로운 깨달음은 얻은 사람은 소유나 물질에 대해서도 이전과는 전혀 다른 태도를 보입니다. 남들보다 더 많은 소유는 복이 아니라 사명이며 책임입니다. 물질이나 소유를 복이라 여기고 믿는 것은 기독교 신앙은 세상의 다른 종교와 조금도 다를 바 없는 그렇게 그런 종교로 전락시키는 것입니다.


욥기가 분명하게 보여주듯이 아무리 많은 재물도 하루아침에 사라질 수 있습니다. 따라서 복은 내게 주신 소유나 물질을 어떻게 쓰느냐에 달린 것이지 물질 그 자체를 복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복 있는 사람이 되길 원하신다면 돈 잘 버는 사람보다 돈 잘 쓰는 사람이 되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욥이 이전과는 전혀 다른 믿음을 가지게 되었음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말씀이 있습니다. 욥은 하루아침에 잃은 열 자녀를 그대로 똑같이 다시 얻었습니다. 그런데 새로 얻은 열 자녀에 대한 욥기의 기록은 매우 특별합니다. 도대체 무엇이 특별합니까?


42:13-14 또 아들 일곱과 딸 셋을 두었으며 그가 첫째 딸은 여미마라 이름하였고 둘째 딸은 긋시아라 이름하였고 셋째 딸은 게렌합북이라 이름하였으니


성경에서 아들이 있는데도 딸의 이름만을 기록한 것은 욥기의 이 말씀이 유일합니다. 욥기가 아들의 이름 대신 세 딸의 이름만을 기록한 것은 당시로서는 엄청난 파격입니다. 게다가 욥이 재산을 세 딸에게도 나누어 주었다고 했습니다. 아들이 일곱이나 있는데 딸에게도 재산을 나누어 준다는 것은 당시로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엄청난 일입니다.


42:15 모든 땅에서 욥의 딸들처럼 아리따운 여자가 없었더라 그들의 아버지가 그들에게 그들의 오라비들처럼 기업을 주었더라


욥기는 왜 아들 대신 세 딸의 이름만 기록했으며, 욥은 왜 딸에게도 재산을 나누어주었습니까? 이것이 무엇을 의미합니까? 욥이 이전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하나님을 깨닫고 믿게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지금까지 귀로 들었던 하나님은 성공한 사람, 부자, 권세를 가진 사람은 하나님의 복을 받은 것이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것으로 믿었습니다. 하지만 욥이 재앙과 고통을 겪으며 깨닫게 된 하나님은 고통당하는 사람, 세상에서 천대받고 무시당하는 사람들을 긍휼히 여기시고 이들을 도우시는 하나님이심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별다른 문제 없이 평탄하고 순탄한 삶을 살아갈 때는 지금까지 알고 있던 익숙한 하나님만으로도 충분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예상하지 못한 게다가 원인도 이유도 알기 어려운 재앙이나 고난을 겪게 되면 이제까지 익숙하게 알던 하나님으로는 절대로 눈앞에 닥친 인생의 재앙이나 고통을 감당하지도 극복할 수도 없습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지금까지 익숙하게 알고 있던 하나님, 지금까지 습관적으로 지켜왔던 신앙생활에서 벗어나 새로운 하나님을 만날 수 있어야 합니다. 욥기가 가르쳐 주는 새로운 하나님을 만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하나님을 대면할 수 있을 때 우리의 신앙은 이전보다 더 성숙하고 깊어져 예상치 못한 인생의 재앙이나 고난을 능히 극복해 나갈 힘과 능력을 얻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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