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와성경공부
메멘토 모리 (Memento Mori)

메멘토 모리 (Memento Mori)

창세기 5:3-32

 

오늘은 창세기 53절부터 31절의 말씀을 가지고 메멘토 모리(Memento Mori)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합니다. 메멘토 모리는 라틴어로 이것은 죽음을 기억하라 또는 죽음을 잊지 말라는 말로 번역할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창세기 5장의 말씀은 아담으로부터 시작하여 노아에 이르기까지 10대에 걸친 아담과 그의 세 번째 아들 셋의 후손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누가 누구를 낳고 죽었다는 이야기가 반복되는 얼핏 대단히 지루해 보이는 창세기 5장의 말씀은 인생에 대한 매우 중요한 메타포입니다.


창세기 5장이 기록하고 있는 아담과 셋의 후손들이 살았던 나이는 그야말로 어마어마합니다. 지금으로서는 도무지 상상조차 힘든 햇수를 살았습니다. 그래서 대부분 교인이 창세기 5장의 족보 이야기를 읽으며 가장 관심을 가지는 것은 아담과 그 후손들의 나이입니다.


아담과 그 후손들이 살았다는 어머 어마한 햇수 때문에 교인들의 관심은 주로 도대체 그때 사람들은 어떻게 그렇게 오래 살았는지에 있습니다. 교인들이 아담과 그 후손들의 나이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것은 아마도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오래 살고 싶다는 인간의 욕망을 투영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창세기 5장에 기록된 아담과 셋의 후손에 관한 이야기는 저들이 오래 살았다는 사실에 강조점이 있지 않습니다. 아담의 후손들이 아주 오래 살았다고는 하지만 결국 이들 모두는 죽었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말씀입니다. 창세기 5장을 읽으면서 우리가 관심을 두어야 하는 것은 저들이 얼마나 오래 살았느냐가 아니라 아무리 오래 살았던 사람들도 결국은 모두 죽었다는 사실입니다.


5:5 그는(아담) 930세를 살고 죽었더라

5:8 그는셋) 912세를 살고 죽었더라

5:11 그는(에노스) 905세를 살고 죽었더라

5:14 그는(게난) 910세를 살고 죽었더라

5:17 그는(마할랄렐) 895세를 살고 죽었더라

5:20 그는(야렛) 962세를 살고 죽었더라

5:27 그는(므두셀라) 969세를 살고 죽었더라

5:31 그는(라멕) 777세를 살고 죽었더라


그렇다면 사람은 왜 죽는 걸까요? 늙기 때문에 죽는 걸까요? 아니면 병이 들기 때문에 죽는 걸까요? 물론 사람은 늙어서 죽기도 하고, 병이 들어 죽기도 하고, 사고로 죽기도 합니다. 하지만 사람이 죽는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사람이기 때문에 죽는 것입니다. 만약 죽지 않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면 그 사람이 정말 사람입니까? 귀신이지.


창세기가 인류 최초의 인간이라고 기록하고 있는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께서 먹지 말라고 하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은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과 같아지고 싶은 욕망 때문이었습니다. 태초부터 인간은 끊임없이 하나님과 같아지려고 수많은 시도를 했습니다.


3:5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하지만 하나님과 같아지려고 하는 인간의 숱한 노력에도 인간이 절대로 하나님과 같아질 수 없는 결정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사람은 반드시 죽는다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은 반드시 죽는다는 사실은 사람이 절대로 하나님과 같아질 수 없는 가장 결정적인 이유입니다.


태초부터 지금까지 사람들은 끊임없이 스스로 하나님과 같아져서는 하나님 없이 살려고 합니다. 하지만 그 어떤 시도와 노력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과 같아지려는 인간의 모든 시도는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왜냐하면 죽지 않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람은 반드시 죽습니다. 사람에게 죽음은 사람은 신이 아니라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하는 가장 분명하고도 확실한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따라서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원한다면 절대로 잊지 말아야 중요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메멘토 모리, 사람은 반드시 죽는다는 사실을 잊지 않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사람답게 살지 못하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이 사람답게 살지 못하는 사람들을 잘 살펴보세요. 이들에게는 매우 중요한 공통점이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자신은 마치 영원히 죽지 않을 사람처럼 교만하고 탐욕스럽게 삽니다. 죽음이라는 인간의 한계를 잊어버리고 살거나 무시하며 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경고와 명령을 무시하면서까지 끊임없이 하나님이 되려는 사람이 결코 하나님이 될 수 없음을 깨닫는 가장 결정적인 순간은 바로 죽음의 순간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죽음은 마음에 두고 살아갈 때만 비로소 우리는 신이 아니라 인간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죽음은 하나님과 같아지려는 사람에게 내리신 형벌이며 동시에 사람을 사람답게 살게 하도록 하는 하나님의 방법이십니다.


창세기 5장에 기록된 아담과 셋의 후손에 대한 족보를 죽음의 족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죽음의 족보에 매우 특별한 사람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누구에 대한 족보입니까? 바로 에녹에 대한 족보입니다. 창세기 5장은 아담의 후손 모두가 죽었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유독 에녹에 대해서는 죽었다고 기록이 없습니다.


5:24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창세기는 에녹에 대해서 죽었다고 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그를 데려가셨다고 기록했습니다. 에녹은 창세기 5장에 나오는 죽음의 족보에서 유일하게 죽음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떠난 사람입니다. 에녹이 다른 사람들처럼 죽지 않고 세상을 떠났다는 것은 죽음 말고 세상을 떠나는 새로운 길이 있음을 가르쳐주는 매우 중요한 메타포입니다.


에녹은 어떻게 해서 다른 선조나 후손들처럼 죽지 않고 하나님께서 데려가신 최초의 사람이 되었습니까? 에녹이 다른 선조나 후손들처럼 죽지 않고 하나님께서 그를 데려가신 이유는 그가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동행했다는 것은 에녹이 자신의 방식대로 살아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방식을 따라 살아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에녹이 다른 선조나 후손처럼 죽음의 방식으로 세상을 떠나지 않았던 이유는 바로 그가 하나님의 방식대로 살았기 때문이고 그래서 사람의 방식인 죽음이 아니라 하나님의 방식대로 세상을 떠난 것입니다.


그런데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였다는 말씀에서 주목해서 보아야 할 말씀이 있습니다. 창세기는 에녹이 언제부터 하나님과 동행하였다고 했습니까? 에녹이 65세에 므두셀라라는 아들을 낳은 다음부터 삼백 년 동안 하나님과 동행하였다고 했습니다. 에녹은 태어날 때부터 하나님과 동행하며 산 것이 아니었습니다. 에녹이 65세에 므두셀라라는 아들을 낳은 후부터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았다고 했습니다.


5:21-22 에녹은 육십오 세에 므두셀라를 낳았고 므두셀라를 낳은 후 삼백 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그렇다면 에녹은 왜 므두셀라를 낳은 후부터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게 된 것일까요? 그 비밀은 그가 낳은 아들의 이름에 있습니다. 므두셀라라는 이름은 심판 또는 죽음을 뜻하는 무트보내다라는 뜻을 가진 살라트라는 두 단어로 만든 이름입니다. 즉 므두셀라라는 이름에는 하나님의 심판을 보낸다.”라는 뜻입니다. 에녹이 아들의 이름을 이렇게 지은 이유는 심판에 대한 하나님의 계시를 받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에녹이 65세 낳은 아들 므두셀라는 성경 전체를 통틀어 가장 오래 살았던 사람입니다. 창세기 5장에 따르면 그는 969세에 죽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죽던 해에 하나님께서 계시하신 대로 홍수의 심판이 일어났습니다. 므두셀라의 손자가 바로 노아였고 홍수 심판 때 노아의 나이는 육백 살이었습니다.


창세기 5장에 따르면 므두셀라는 187세에 라멕을 낳고 라멕은 182세에 노아를 낳았습니다. 노아가 태어났을 때 므두셀라의 나이는 369세였습니다. 홍수의 심판은 노아가 600살이 되었을 때 일어났습니다. 결국, 므두셀라가 969살에 죽자 하나님께서 홍수로 세상을 심판하신 것입니다.


에녹이 아들 므두셀라를 낳고부터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게 된 비밀이 풀리게 됩니다. 에녹은 아들을 낳을 때 장차 하나님의 심판이 임할 것을 계시로 받게 됩니다. 그때부터 그는 장차 하나님의 심판이 있을 것임을 마음에 품고 살았습니다. 그랬기에 그는 삼백 년 동안 하나님과 동행하며 살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에녹이 살았던 365년은 1365일을 나타내는 메타포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에녹이 365년을 살면서 하나님과 동행한 것처럼 우리 역시 1365일을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어떻게 해야 우리도 에녹처럼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심판 즉 인생에는 반드시 죽음의 때가 찾아온다는 것을 마음에 품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에녹을 데려가셔서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 역시 인생의 죽음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창세기가 하나님과 동행하였던 에녹을 하나님께서 데려가셨다고 표현한 것은 죽음 이후의 영원한 세계에 대한 메타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기독교인들은 죽음을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건이라고 믿습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저는 지난주 카르페 디엠이라는 제목으로 오늘이라는 현재가 가장 중요하며 현재를 잘 살아야 한다고 설교했습니다. 오늘이라는 현재를 후회 없이 최선을 다해서 사는 것이야말로 기독교 신앙이 가르치는 종말론 신앙의 가장 중요한 본질이라고 설교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우리는 오늘이라는 현재에 충실하며 후회 없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까? 에녹은 하나님의 심판과 죽음을 마음에 품고 살았을 때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심판과 죽음을 기억하며 살 때만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바라기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으로 반드시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의 운명이 하나님의 저주와 형벌이 아니라 영원하신 하나님과 영원히 함께하는 은혜와 은총의 사건이 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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