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와성경공부
전도서2-모든 것이 헛되도다

모든 것이 헛되도다

전도서 1:2-3

 

전도서 강해 두 번째 시간입니다. 오늘은 모든 것이 헛되도다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합니다.


지난주에 살펴본 것처럼, 전도서는 다윗의 아들 예루살렘 왕 전도자의 말씀이라는 구절로 시작하였습니다. 다윗의 아들이자 예루살렘 왕이라고 하는 당대 최고의 권력자였던 전도자가 전하는 말씀이기에 인생에 대한 대단한 교훈이 펼쳐질 것을 기대하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전도자의 첫 일성은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라는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이렇게 시작하는 전도서 12절의 말씀은 전도서에서 가장 많이 알려진 말씀입니다. 동시에 이 말씀은 전도서가 전하려고는 메시지의 핵심 주제라고 할 수 있을 만큼 매우 중요한 말씀입니다.


1:2 전도자가 이르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헛되다는 단어는 전도서의 서두에만 일회적으로 나오는 표현이 아닙니다. 전도자는 전도서 전체를 통해 헛되다는 단어를 반복하고 사용하였습니다. 문장의 매듭 매듭마다 헛되다는 말을 마치 노래의 후렴구처럼 여러 차례 반복합니다. 12장으로 되어있는 전도서에 헛되다는 표현이 무려 28번이나 사용되었습니다.


헛되다는 말은 성경 전체를 통틀어 전도서에서만 절반 이상이 등장하는 단어입니다. 헛되다는 말은 원어 성경 히브리어로는 헤벨이라고 합니다. “헤벨은 숨(breath), 바람(wind), 수증기(vapor) 등을 뜻하는 단어입니다. 메시지 성경은 히브리어 헤벨을 연기(smoke)로 번역하였습니다.


메시지성경 전1:2 연기다. 한낱 여기다. 모든 것이 연기일 뿐 아무것도 아니다.


숨은 실체는 있지만 볼 수는 없습니다. 바람도 잡을 수가 없습니다. 수증기는 이내 사라지고 맙니다. 잡을 수 없고 이내 사라지고 마는 것은 연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전도서에서 나오는 헤벨이라는 단어는 주로 바람을 잡는 것이라는 말과 함께 사용되었다는 사실입니다.


1:14 내가 해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일을 보았노라 보라 모두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로다

2:11 그 후에 내가 생각해 본즉 내 손으로 한 모든 일과 내가 수고한 모든 것이 다 헛되어 바람을 잡는 것이며 해 아래에서 무익한 것이로다

4:4 내가 또 본즉 사람이 모든 수고와 모든 재주로 말미암아 이웃에게 시기를 받으니 이것도 헛되어 바람을 잡는 것이로다

6:9 눈으로 보는 것이 마음으로 공상하는 것보다 나으나 이것도 헛되어 바람을 잡는 것이로다


전도서는 헤벨을 바람을 잡는 것과 같다고 표현한 것입니다. 무슨 뜻입니까? 바람을 잡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설령 바람을 잡으려고 해도 손아귀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바람을 잡는 것은 무모하며 무의미합니다. 이런 무모함 허망함 덧없음 등이 모여서 모든 것이 헛되도다라는 말로 압축된 것입니다.


다윗의 아들이며 예루살렘 왕이라고 하는 전도자는 왜 후대에 남기는 첫 일성을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라고 시작한 것일까요? 전도자가 모든 것이 헛되도다라고 했는데 그가 말한 모든 것은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선 전도서 13절의 말씀을 함께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모든 것이 헛되도다.”라는 말에서 전도자가 말하고 있는 모든 것은 13절에 의하며 해 아래에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입니다. 다시 말해 전도자는 해 아래에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바람을 잡는 것처럼, 헛되다고 말한 것입니다.


1:3 해 아래에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사람에게 무엇이 유익한가


전도서 13절의 말씀은 다윗의 아들, 예루살렘 왕이라는 전도자의 인생을 허무하게 만든 것이 무엇인지를 짐작하게 해주는 핵심적인 단어 세 개가 나옵니다. 첫째는 해 아래입니다. 둘째는 수고입니다. 셋째는 유익입니다.


다시 말해 해 아래에서 땀 흘리며 애쓴 수고의 대가로 얻는 유익이 도대체 무엇이냐고 묻는 것입니다. 이것은 일종의 반어법입니다. 정말 해 아래에서 땀 흘리며 수고하고 애쓴 수고의 대가로 얻을 수 있는 유익이 무엇인지를 몰라서 그래서 알고 싶어서 묻는 것이 아닙니다. 해 아래에서 땀 흘리며 수고하고 애쓴 수고의 대가로 얻는 유익이 아무것도 없다는 뜻으로 한 말입니다.


전도서 13, 전도자의 고백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것은 해 아래에서라는 부분입니다. “해 아래라는 표현 역시 전도서에서 반복하여 나오는 표현입니다. 전도서에는 헛되다라는 단어가 28번 나온다면 해 아래라는 단어는 무려 29번이나 반복되고 있습니다. “해 아래헛되다라는 단어와 함께 전도자가 전도서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개념입니다.


그렇다면 해 아래에서는 무엇을 의미합니까? 아래에서라는 말은 지배를 받는다, 또는 통제를 받는다는 뜻으로 사용합니다. 따라서 해 아래에서라는 구절은 해의 지배를 받는 세상을 가리키는 표현입니다. 다시 말해 해 아래라는 전도자의 표현은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나타내는 메타포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전도자가 말한 해 아래에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는 하나님을 생각하지 않고 그저 눈에 보이는 세상일에만 매여 살아가는 인생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해를 지으신 하나님은 생각하지 않으며 살아갑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전도자는 왜 모든 것이 헛되다고 했습니까? 사람들의 모든 수고가 본질이 아닌 현상에만 매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전도자는 해 아래 세상이라는 당장 눈에 보이는 현상에만 매달려 살아서는 아무리 땀 흘려 수고하는 인생을 살아도 그 모든 수고는 결국 헛된 것으로 그치고 만다는 것을 몸소 체험하고 깨달은 것입니다.


이것은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많은 교인이 오랫동안 교회 다니며 열심히 신앙생활 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해도 신앙의 성숙이라고 조금도 없는 교인들이 대부분입니다. 오히려 예수 믿기 전보다 못한 사람이 되는 교인들도 너무나 많습니다. 신앙을 위한 모든 수고가 아무 의미도 없이 헛된 것처럼 보이는 경우가 너무나 많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통해 얻어야 하고 누려야 하는 것이 편안입니까? 평안입니까? 성경은 그 어디에도 주님께서 우리에게 편안을 주신다고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그런데 우리 대부분이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통해 얻으려고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평안이 아니라 당장 몸을 편하게 해주는 편안을 얻으려고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신앙을 통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이 마음의 기쁨입니까? 육신의 즐거움입니까? 마음의 기쁨입니다. 물론 육신의 즐거움을 추구하는 것이 잘못됐다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은, 육신의 즐거움이 아니라 마음의 기쁨입니다. 하지만 대부분 경우 교인들이 원하는 것은 육신의 즐거움이지 마음의 기쁨이 아닙니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일어납니까? 신앙의 본질을 추구하기보다 신앙의 현상에만 집착하며 신앙 생활하기 때문입니다. 대부분 교인이 신앙을 통해 얻고자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이용해 자신들이 바라고 원하는 소원을 이루려고 합니다.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하나님 나라나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뜻이나 사명에는 별 관심도 없습니다.


돼지머리 놓고 정성을 다해 고사를 지내는 사람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무엇일까요? 신의 뜻일까요? 아니면 자신의 소원을 이루어주는 기적일까요? 정화수 떠 놓고 비는 사람이 간절히 기도하고 바라는 것이 무엇일까요?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신앙이 얼핏 대단히 그럴듯해 보이지만 이것은 종교의 본질을 외면하고 왜곡하는 잘못된 현상에 불과합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지성이면 감천이라 방식으로 하나님을 믿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심각하게 왜곡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에 대해 정성과 열심을 다 바치면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내가 바라고 원하는 모든 것을 이루게 해주실 것이라고 믿는 것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아닙니다. 이것은 자신의 야망이나 욕심을 위해 하나님을 함부로 이용하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것은 본질적으로 내 야망이나 욕심을 뛰어넘어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 이 땅을 위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찾는 것이며 깨닫는 것입니다. 그리고 깨달은 하나님의 뜻, 하나님 나라를 위해 내 야망이나 욕심을 내려놓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십자가의 길을 가진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가는 기독교 신앙의 본질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계는 눈에 보이는 해 아래 세상만 있는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해 위의 세계가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전도자가 말하는 해 아래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본질이 아니라 현상에 불과합니다. 해 아래와 해 위를 구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전도자는 본질을 놓치고 현상만을 붙잡고 사는 인생은 결국 헛되다고 고백할 수밖에 없다고 경고합니다.


달을 보라고 손가락질했더니 정작 보라는 달은 안 보고 손가락만 본다는 말이 있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정작 중요한 본질을 놓치고 중요하지 않은 비본질에 집착하는 것을 일컫는 것입니다. 우리 대부분은 눈에 보이지 않는 인생의 본질은 놓치고 당장 눈에 보이는 현상에만 집착하며 살아갑니다.


물론 이렇게 사는 인생이 당장은 나에게 대단히 큰 이익처럼 여겨질 것입니다. 하지만 죽음을 직면하게 되면 지금까지 추구하였던 인생살이가 더없이 부질없음을 깨닫게 됩니다. 이것은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앙의 본질은 놓치고 현상에만 집착하여 신앙생활 한다면 아무리 오랫동안 신앙생활 한다고 해도 결국에는 아무것도 얻는 것이 없습니다. 모든 수고가 부질없는 것이 되고 맙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다는 전도자의 첫 일성은 인생의 허무함과 덧없음을 가르치는 말씀이 아닙니다. 보이지 않는 인생의 본질을 놓치고 눈에 보이는 현상에만 집착하며 살기에는 인생은 너무나 짧고 허망함을 가르쳐 주는 말씀입니다.


전도자가 인생의 모든 수고가 헛되다고 고백한 것은 인생이 허무하고 의미가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은 사람이 해 아래 세상만 생각하고 해 아래 것만 추구하며 살아간 인생은 그 모든 인생의 수고가 허무하고 헛되다는 것을 경고하는 말씀입니다.


인생은 아주 오래 지속될 것 같지만 실제 인생은 우리가 예상하고 생각하는 것보다 빠르고 덧없이 지나갑니다. 부질없는 것을 추구하며 살아가기엔 인생은 너무나 짧습니다. 계속되는 전도서의 권면과 경고를 통해 어떻게 인생을 살아가야 하며 무엇을 위해 인생을 살아가야 하는지를 발견하고 깨닫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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