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헛되다고 고백한 이유
전도서 1:4-11
전도서 강해 세 번째 시간입니다. ⓢ오늘은 “인생을 헛되다고 고백한 이유”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합니다. 오늘도 전하는 말씀 가운데 여러분 각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세밀한 음성을 발견하고 깨닫는 시간 되시길 바랍니다.
전도서는 인생의 노년, 죽음을 눈앞에 둔 다윗의 아들, 예루살렘의 왕 전도자라고 하는 사람이 인생의 허무함을 노래하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함께 읽은 전도서 1장 4-11절의 말씀은 전도자가 왜 자신의 인생을 헛되고 허무하다고 주장하는지 이렇게 생각하는 자기만의 이유를 자세하게 설명하는 말씀입니다.
전도서를 통해 우리는 인생의 덧없음과 허무함에 대해 깊이 묵상하고 생각해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람은 살면서 한 사람의 예외도 없이 언젠가는 인생의 덧없음 또는 허무함을 경험하게 됩니다. 인생이 허무하다 덧없다며 허무주의에 빠지기 전에 인생의 허무함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전도자가 그러했던 것처럼 우리 대부분도 죽음을 눈앞에 두었을 때 인생의 덧없음 또는 허무함을 경험하게 됩니다. 하지만 죽을 때가 되어서 인생의 허무함에 사로잡힌다면 그때는 너무 늦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때는 허무하게 여겨지는 인생을 바로 잡을 수 있는 시간이 충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전도자가 자신이 겪고 있는 인생의 덧없음을 후대에 남기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인생 살고 보니 헛된 것뿐이라는 허무주의를 가르치기 위함이 아닙니다. 전도자가 자신이 겪는 인생의 허무를 후대에 자세하게 남기는 이유는 자기 후대의 사람들이 자신과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인생을 헛되고 허무하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를 전도서의 말씀을 통해 살펴보아야 하는 이유는 우리 인생의 본질이 정말 허무하고 헛되기 때문이 아닙니다. 역설적이지만 인생은 결코 헛되지도 허무하지도 무의미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기 위해서 인생을 허무하고 헛되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창세기는 하나님의 창조에서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으신 존귀하며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존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전도서도 인생의 허무함과 무가치함을 강조하는 말씀이 결코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존귀하고 가치 있게 창조하신 인생이 왜 허무하고 덧없는 인생이 되었는지를 고백하는 일종의 참회록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전도자는 인생의 허무함을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라는 말씀으로 표현하였습니다. ‘헛되고 헛되다’는 같은 말을 두 번 반복하는 것은 너무나 헛되다는 것을 강조하는 히브리어의 최상급 표현입니다.
전1:2 전도자가 이르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전도자는 이러한 최상급 표현을 두 번이나 반복해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다음에 또다시 "모든 것이 헛되다!"라고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다. 전도자는 자신이 표현할 수 있는 모든 단어를 이용하여 인생의 모든 일이 헛되다는 것을 강조한 것입니다.
전도자는 ⓢ“사람이 해 아래에서 행하는 자기의 모든 수고에서 무슨 유익을 얻으리요?”라는 질문을 통해, 해 아래 세상을 살아가는 인생살이에 어떤 유익이 있는지를 물었습니다. 지난주에도 말씀을 드렸지만 ⓢ‘해 아래’는 ‘헛되다’와 함께 전도서 전체를 이끄는 가장 핵심적인 개념입니다.
전1:3 해 아래에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사람에게 무엇이 유익한가
ⓢ‘해 아래’는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나타내는 메타포입니다. 특별히 해를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을 생각하지 않고 살아가는 세상을 나타내는 메타포입니다. 전도자는 하나님을 생각하지 않고 세상을 볼 때, 인생의 허무함을 느낄 수 없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전도자가 하나님을 생각하지 않고 세상을 사는 인생이 허무하다고 느낄 수밖에 없었던 구체적인 이유는 무엇입니까? 전도자의 인생을 허무하게 만들었던 것들을 통해 내 인생을 허무하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지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첫째, 전도자는 인생은 영원하지 않고 너무나 짧기에 허무하다고 여겼습니다. 전도자는 수많은 사람이 세상에 왔다가는 이내 사라져 버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하지만 막상 사람이 발을 딛고 살아갔던 땅은 그대로 영원히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땅을 정복했던 사람들은 다 사라져 버렸지만, 이들이 정복했다는 땅은 영원히 남아 있는 것은 보았습니다.ⓢ
전1:4 한 세대는 가고 한 세대는 오되 땅은 영원히 있도다
사람은 세상에 잠시 살다가 다음 세대에게 자기 자리를 물려주고 사라져 버립니다. 전도자는 세상에 잠시 왔다가 사라져 버리는 인생의 모습이 영원하게 보이는 땅에 비해 한없이 덧없고 허무하다고 여긴 것입니다. 한마디로 전도자는 ⓢ쏜살같이 지나가 버리는 인생의 유한함 또는 짧음으로 인해 인생을 허무하다고 여긴 것입니다.
전도자는 속절없이 빠르게 지나가는 인생을 아침에 떴다 저녁에 지는 해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태양이 뜨면 어둡던 세상을 눈부시도록 환하게 비춥니다. 하지만 세상을 그토록 눈부시도록 찬란하게 만든 태양도 ⓢ저녁이 되면 너무나 빨리 사라져 버리고 맙니다. 그는 인생이 아침에 떠 올랐다 저녁이면 사라져 버리는 태양과 같다고 여긴 것입니다.
전1:5 해는 뜨고 해는 지되 그 떴던 곳으로 빨리 돌아가고
ⓢ둘째 전도자는 인생이 이리 불고 저리 부는 바람과 같이 예측불허하기에 허무하다고 했습니다. ⓢ바람은 정처 없이 이리 불고 저리 불기에 그 방향을 예측하기가 어렵다. 남쪽으로 불다가 갑자기 방향을 바꾸어 북쪽으로 향합니다. 또한 바람은 이리저리 불다가 힘이 약해지면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립니다.ⓢ
전1:6 바람은 남으로 불다가 북으로 돌아가며 이리 돌며 저리 돌아 바람은 그 불던 곳으로 돌아가고
전도자가 본 인생은 이리 불고 저리 부는 바람처럼 예측하기 어려웠습니다. 인생이란 게 특별한 노력 없이도 운수대통하다가 갑자기 예상치 못한 재앙이 찾아옵니다. 예상치 못한 재앙이 찾아왔다가 갑자기 일이 잘 풀릴 때도 있습니다. 전도자가 본 인생은 사람의 노력이나 뜻대로 되지 않으며 환경에 따라 이리저리 흔들거리며 살다가 결국 흙으로 돌아가 버리는 인생이기에 허무하다고 여긴 것입니다.
ⓢ셋째, 전도자는 아무리 노력해도 도무지 채울 수 없는 인생의 욕망으로 인해 허무하다고 여겼습니다. ⓢ세상의 모든 강물이 다 바다를 향해 흘러갑니다. 그러나 아무리 강물이 바다를 향해 흘러가도 결코 바다가 가득 차는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바다를 채우지도 못하는 강물은 여전히 바다를 향해서만 흘러가는 것입니다.ⓢ
전1:7 모든 강물은 다 바다로 흐르되 바다를 채우지 못하며 강물은 어느 곳으로 흐르든지 그리로 연하여 흐르느니라
여기에서 바다를 향해 흘러가는 강물은 무엇을 나타내는 메타포입니까? 바다는 인간의 욕망을 나타내며 바다를 향해 흘러가는 강물은 인간의 욕망을 채우기가 위한 인간의 모든 수고를 의미합니다. 강물이 바다를 채우지 못하는 것처럼 인간의 모든 수고로도 인간의 욕망조차 채우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인생은 바다를 향해서 흘러가는 물과 같다. 사람들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욕망을 채우기 위해 숱한 노력과 수고를 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수고하고 노력해도 사람의 욕망을 결코 채울 수 없습니다. 욕망을 채울 수 없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면서도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며 삽니다. 채울 수 없음을 알면서도 그것을 채우려고 애를 쓰며 살기에 인생이 허무하다고 여긴 것입니다.ⓢ
전1:8 모든 만물이 피곤하다는 것을 사람이 말로 다 말할 수는 없나니 눈은 보아도 족함이 없고 귀는 들어도 가득 차지 아니하도다
ⓢ넷째, 전도자는 해 아래 새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알고는 인생이 허무하다고 여겼습니다. ⓢ전도자는 자신은 아버지 다윗을 뛰어넘는 위대한 삶을 살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실제로 전도자는 자신이 아버지 다윗을 훨씬 뛰어넘는 업적을 남겼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았더니 아버지 다윗을 뛰어넘기는커녕 아버지 다윗보다도 훨씬 못한 인생을 살아왔던 자기의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자신 역시 이전 사람들의 전철을 그대로 밟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오래전 이미 세계를 정복했던 권력자들이 있었고, 수많은 지혜와 지식을 가졌던 사람들이 있었으며, 수많은 재물을 가진 부자들도 있었습니다. 자기가 했던 모든 일은 이미 오래전에 다른 사람들이 했던 것을 반복하는 것에 지나지 않음을 깨달은 것입니다. 사람은 바뀌었어도 조금도 달라지지 않는 인생의 모습을 보며 인생은 허무하다고 여긴 것입니다.ⓢ
전1:9-10 이미 있던 것이 후에 다시 있겠고 이미 한 일을 후에 다시 할지라 해 아래에는 새 것이 없나니 무엇을 가리켜 이르기를 보라 이것이 새 것이라 할 것이 있으랴 우리가 있기 오래 전 세대들에도 이미 있었느니라
ⓢ마지막으로 전도자는 기억되지 않는 인생 다른 말로 아무것도 남길 것이 없는 인생으로 인해 허무하다고 여긴 것입니다. 전도자는 이전 세대들을 기억하지 않는 것처럼 장래 세대나 그 후 세대들도 기억되지 못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전1:11 이전 세대들이 기억됨이 없으니 장래 세대도 그 후 세대들과 함께 기억됨이 없으리라
많은 사람이 명예와 인기를 얻기 위해서 온갖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자신의 인기를 위해 불의한 일을 하기도 하고 때론 남을 해치거나 모함하기도 합니다. 아마도 전도자 역시 자신의 이름을 세상에 널리 알리고 후대에 남기길 원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자신의 노력이 부질없다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사람에게는 영원을 추구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하지만 전도자는 사람이 하는 일에는 그 어떤 것도 영원한 것이 없음을 깨달은 것입니다. 그가 지은 궁전도 업적도 나라도 명예도 인기도 영원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하나님을 위해 지은 성전조차 영원하지 않았습니다. 영원한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인생을 보면서 인생은 헛되고 허무하다고 여긴 것입니다.
전도자는 세상에서 사람들이 추구하는 모든 것들, 즉 권세와 지혜와 재물, 그리고 온갖 종류의 쾌락을 마음껏 누리며 살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그가 소유하고 경험하고 노력했던 것으로 자신의 인생을 만족시킬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자신이 누렸던 것들 가운데 영원한 것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오늘 우리는 전도자의 고백을 통해서 전도자가 인생을 허무하다고 생각하는 여러 가지 이유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그렇다면 전도자의 고백처럼 인생을 결국 덧없고 허무한 인생으로 끝날 수밖에 없는 운명일까요? 아니요.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전도자가 왜 헛되고 헛된 인생을 살 수밖에 없었습니까? 그가 살아간 인생은 오로지 해 아래 인생으로만 살아갔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해 아래 인생으로 산다면 해 아래 새것이 없다는 전도자의 고백처럼 전도자의 인생과 별반 다를 바 없는 인생을 살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해 아래 인생이 아니라 하나님 아래 인생을 살 때 인생은 결코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된 허무한 인생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하나님 아래 살아갈 때 우리는 인생의 허무주의 염세주의를 뛰어넘어 이전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전도서를 통해 인생의 허무를 배우고, 하나님을 통해 인생의 참된 의미를 발견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