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로다
전도서 1:12-18
전도서 강해 네 번째 시간입니다. ⓢ오늘은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로다”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합니다. ⓢ전도서는 죽음을 눈앞에 둔 다윗의 아들, 예루살렘의 왕 전도자라고 하는 사람이 인생의 부질없음, 허무함에 대해 고백하는 말씀입니다.
ⓢ인생의 덧없음과 허무함을 노래하는 전도자의 고백을 살펴보아야 하는 이유는 우리 인생이 정말 전도자의 고백처럼 허무하고 헛되기 때문이 아닙니다. 역설적이지만 인생은 결코 헛되지도 허무하지도 무의미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기 위해서 도대체 인생을 허무하고 헛되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말씀은 전도자가 예루살렘에서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 자신의 모든 능력을 다해서 하늘 아래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을 연구하고 살펴보았다고 고백합니다.ⓢ 전도자가 왕이 되어 마음에 두고 자신의 모든 힘을 다했던 것은 하늘 아래에서 이루어지는 인생에 관한 연구였습니다. 전도자는 무엇보다 인생의 가치와 의미에 대해 알기를 원했습니다.
전1:12-13a 나 전도자는 예루살렘에서 이스라엘 왕이 되어 마음을 다하며 지혜를 써서 하늘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일을 연구하며 살핀즉
전도자가 이스라엘 최고 권력자로서 자신이 가진 모든 지혜와 능력을 동원하여 인생의 가치와 의미를 연구하고 살핀 결과가 무엇입니까?ⓢ 그가 찾은 결론은 인생은 괴롭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인생이 괴롭게 살아야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내리신 수고라는 것입니다.
전1:13b 이는 괴로운 것이니 하나님이 인생들에게 주사 수고하게 하신 것이라
인생의 본질을 고통으로 이해한 것은 전도자만이 아닙니다. ⓢ일찍이 동양철학가 노자는 인생에 대해 “생즉고, 고즉생”이라고 했고 ⓢ석가모니도 존재한다는 것이 곧 괴로움이라고 했습니다. 미국의 정신과 의사이자 신학자였던 모건 스캇 펙도 ⓢ“아직도 가야 할 길”이란 책에서 “삶은 고해다.”라는 글로 시작합니다. ⓢ그는 “삶은 고해다 이것은 위대한 진리다. 다시 말하자면 이 세상에 가장 위대한 진리 중의 하나다.”라고 주장합니다.
역설적이지만 인생은 괴로움 또는 고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게 되면 오히려 삶은 더 이상 힘들지 않게 됩니다. ⓢ왜냐하면 인생은 괴롭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되면 삶이 힘들다는 사실이 더는 문제가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이 사실을 부정하고 인정하지 않으니까 늘 괴로운 인생 때문에 힘들어하며 사는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시고 인간을 창조하셨을 때 인생을 괴로운 것으로 만들지 않으셨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며 하나님께서 주신 창조 세계를 다스리며 살 때 인생은 기쁨이었고 축복이었습니다.
하지만 사람이 하나님을 떠나 스스로 하나님과 같아지려고 하면서부터 인생은 기쁨과 축복이 아니라 고통이 된 것입니다.ⓢ 전도자는 인생이 괴로운 것은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내리신 수고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엄밀한 의미에서 인생이 괴롭게 된 이유는 끊임없이 하나님과 같아지려고 하는 인생이 만들어 낸 자업자득입니다.
창3:17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전도자는 자신의 모든 지혜를 동원하여 깨달은 인생이 본질이 괴로움이라는 것을 알고는 인생에 대한 깊은 허무에 빠집니다. 자신이 해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일이 모두 헛되어 바람을 잡는 것과 같다고 한탄합니다.ⓢ 이것은 인생의 모든 일이 헛되다는 뜻도 되지만, 다른 한편으로 전도자는 자신이 깨달은 인생의 본질인 괴로움에서 벗어나 보려고 했지만, 그 모든 수고가 헛되었다는 뜻으로도 해석할 수 있습니다.
전1:14 내가 해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일을 보았노라 보라 모두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로다
전도자의 고백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매우 중요한 부분이 있습니다. 전도자가 모든 일이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처럼 헛되다고 한 것은 도대체 어떤 일이었습니까? 그것은 바로 해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일입니다. 전도자가 반복하여 강조하는 것처럼, 그는 하늘 아래에서 일어나는 일만 살펴보았습니다. 해 아래에서 행하는 일만 바라보았습니다.
ⓢ전도서의 가장 중요한 주제는 사실 “헛되다(해벨)”가 아닙니다. 전도서의 주제는 “해 아래에서”입니다. “해 아래에서”는 전도서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주제입니다. 전도자가 헛되다고 고백하는 모든 일은 항상 해 아래 또는 하늘 아래에서 벌어지는 일이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전도자는 하늘 아래 또는 해 아래에서 벌어지는 일만 살펴보았지, 하늘 위에서 벌어지는 일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주목해야 할 사실은 전도자는 자신이 하늘 아래, 해 아래에서 행하는 일만 살펴보았다는 사실을 감추려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신은 오직 하늘 아래, 해 아래에서 벌어지는 일만을 연구하였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비행기를 타고 비 내리는 시애틀 공항을 이륙하다 보면 이런 경험을 하게 될 것입니다. ⓢ비행기가 비가 내리는 어두컴컴한 시애틀 공항을 이륙하여 잔뜩 낀 먹구름 사이를 뚫고 하늘 높이 올라가게 되면 어떤 모습이 나타납니까? ⓢ맑은 하늘이 활짝 펼쳐진 구름 아래와는 전혀 다른 하늘이 펼쳐지는 것을 경험하였을 것입니다. 구름 밑의 세계와 구름 위의 세계가 전혀 다르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전도자가 자신이 살펴보고 연구한 것이 모두 하늘 아래, 해 아래의 일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전도자가 하늘 아래, 해 아래를 강조하는 것은 자신의 결정적인 문제가 바로 이 사실에 있었음을 가르쳐주기 위함입니다.
세상은 어떤 눈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서 지극히 덧없고 부질없는 것이 되기도 하고 위대하고 아름다운 찬양이 되기도 합니다. 전도자가 지금까지 자신이 했던 모든 일이 바람을 잡는 것처럼 헛되고 부질없다고 여긴 결정적 이유는 바로 자신이 하늘 아래만 생각하고 살았기 때문임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해 아래 인생만 생각하면 인생은 잠시 떠올랐다 금세 지고 마는 태양처럼 너무나 짧고 허무합니다. 해 아래 인생만 생각하면 인생은 정처 없이 부는 바람처럼 이리 갔다 저리 갔다 하는 갈피를 잡을 수 없는 허망한 인생일 뿐입니다.
해 아래 인생으로는 그 어떤 것으로도 인간의 욕망을 채울 수 없는 부질없는 인생일 뿐입니다. 해 아래 인생만 생각하면 새로울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그렇고 그런 뻔한 인생일 뿐입니다. 해 아래 인생만 생각하면 금세 잊히고 마는 허망한 인생일 뿐입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인생의 부질없음 덧없음 허무함을 뛰어넘을 수 있습니까? 해 아래 인생만 생각하고 살 것이 아니라, 해 위의 영원한 삶을 생각하며 살아야 합니다. 창조주 하나님의 눈을 빌어 세상을 볼 때 비로소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집니다. 세상을 사는 의미가 달라집니다. 세상에서 땀 흘리며 수고하는 목적이 달라집니다.
전도자는 이스라엘 역사에서 가장 뛰어난 지혜의 사람이었으며 막강한 권력을 지닌 왕이었습니다. 왕이 되면 왕의 가진 부와 권세와 힘으로 모든 것을 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막상 왕이 되어도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 그리 많지 않음을 깨닫습니다.
자신이 가진 뛰어난 지혜와 막강한 권력으로도 세상에서 벌어지는 부조리와 악한 일조차 바르게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자신이 가진 엄청난 부와 권세를 가지고도 자신의 욕망조차도 채우지 못하는 연약한 인생임을 깨달은 것입니다. 전도자는 자신이 가진 지식이나 지혜로는 도무지 어찌할 수 없는 자신의 한계를 한탄합니다.ⓢ
전1:15 구부러진 것도 곧게 할 수 없고 모자란 것도 셀 수 없도다
이 말씀은 유대인들에게 내려오는 오랜 속담이라고 합니다. 무슨 뜻입니까? 인간이 가진 지식과 지혜 그리고 능력의 한계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전도자는 뛰어난 지혜와 엄청난 물질과 막강한 권세를 가졌지만, 막상 자신이 가진 것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자신이 생각한 것처럼 그리 많지 않음을 깨달은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영적 도전을 줍니다. 많은 사람이 인생 참 뜻대로 되지 않는다며 괴로워합니다. 하지만 인생 뜻대로 안 되는 것은 괴로워할 일이 아닙니다. 인생 내 뜻대로 안 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세상을 지으신 세상도 하나님 뜻대로 되지 않는데 하물며 사람이 인생 내 뜻대로 내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전도자는 스스로 자신을 이스라엘 최고의 지혜와 지식을 가진 사람이라고 자부했습니다. 전도자는 자신보다 더 뛰어난 지혜를 가진 사람은 이스라엘 땅 그 어디에도 없다고 자부했습니다. 심지어 자신보다 먼저 세상을 살았던 모든 선조보다 자기의 지혜와 지식이 훨씬 더 뛰어났다고 자부하였습니다.ⓢ
전1:16 내가 내 마음 속으로 말하여 이르기를 보라 내가 크게 되고 지혜를 더 많이 얻었으므로 나보다 먼저 예루살렘에 있던 모든 사람들보다 낫다 하였나니 내 마음이 지혜와 지식을 많이 만나 보았음이로다
전도자는 더 큰 지혜를 알기 위해 미친 것들과 어리석은 것들까지 알려고 했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빛을 알기 위해선 빛이 없는 어두움에 대해서 알아야 하듯이 미친 것과 미련한 것을 알면, 더욱 지혜로워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서 말입니다. 하지만 더 큰 지혜를 얻기 위한 노력도 결국은 바람을 잡으려는 것과 같이 헛되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전1:17 내가 다시 지혜를 알고자 하며 미친 것들과 미련한 것들을 알고자 하여 마음을 썼으나 이것도 바람을 잡으려는 것인 줄을 깨달았도다
이것은 경험과 여러 사람과의 만남을 통해 얻은 지혜가 부질없거나, 학문과 책을 통해 배운 지식이 헛되다는 뜻이 아닙니다. 지혜와 지식이 아무짝에도 쓸데없는 일이라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전도자가 강조하려는 것은 지혜나 지식만 가지고는 인생의 괴로움을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오히려 지혜나 지식이 인생의 괴로움을 더 크게 한다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사람의 지혜와 지식만으로 인생의 모든 비밀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습니다. 아니 이해하기보다는 오히려 더 큰 오해를 낳을 때도 있습니다. 전도자는 자신의 지혜가 많아질수록 오히려 번민만 더욱 깊어졌으며 지식이 많을수록 오히려 걱정거리만 더 늘어나는 자신의 현실을 보며 좌절하고 낙심하였습니다.ⓢ
전1:18 지혜가 많으면 번뇌도 많으니 지식을 더하는 자는 근심을 더하느니라
말씀을 마칩니다. 전도자는 해 아래 세상에만 얽매여 살아간다면, 오로지 자신의 지혜와 지식에만 의지하여 살아간다면, 그래서 그 삶이 오직 해 아래 세상만 따라가며 살아가는 인생이라면 결국 이러한 인생에 남는 것은, 바람을 잡으려는 것처럼 허무하고 헛된 것뿐일 것입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바람을 잡는 것처럼 허무하고 헛된 인생이 아니라 찬양과 감사와 영광으로 가득한 존귀하고 아름다운 인생을 살아갈 수 있습니까? 해 아래 인생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아래 인생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늘 아래 가치와 하늘 아래의 유익을 위해서만 살지 말고 영원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게 되면서 자신의 인생을 어떻게 고백하였습니까?ⓢ 고후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헛되고 허무한 인생이 아니라 존귀하고 아름다운 인생을 살고 싶다면 하늘 아래 인생으로 사는 삶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살아가는 살을 사시길 바랍니다. 허무하고 헛될 수밖에 없는 인생을 후회 없는 소중한 인생을 살게 하는 비결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