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의한 세상을 어떻게 살 것인가?
전도서 5:8-9
전도서 강해 열여섯 번째 시간입니다. 오늘은 “불의한 세상을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합니다.
전도자는 전도서 5장에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에 관해 이야기하다가 갑자기 주제를 바꾸어 세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실에 관해 이야기합니다. 전도자가 본 세상의 모습, 세상의 현실은 어떠했습니까? 가난한 자들을 학대하고, 정의와 공의가 무너져버린 불의하고 불공정한 세상이었습니다.
전5:8a 너는 어느 지방에서든지 빈민을 학대하는 것과 정의와 공의를 짓밟는 것을 볼지라도 그것을 이상히 여기지 말라
전도자가 본 불의하고 불공정한 현실이 어느 나라의 모습입니까? 하나님의 백성들이라고 하는 이스라엘의 현실입니다. 물론 불의하고 불공정한 현실은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세계 모든 나라에서 공통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며 현실입니다. 인간들이 사는 세상에서 불의하고 불공정한 모습이 나타나는 것이 어쩌면 지극히 당연한 현상일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하는 이스라엘은 세상 나라와는 다른 모습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전도자가 본 하나님의 백성들이라고 하는 이스라엘의 현실은 세상 나라의 현실과 별반 다르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마치 세상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야 하는 교회가 세상과 별반 다르지 않은 모습을 보이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지난주 하나님에 대한 바른 믿음 가질 것을 경고하였던 전도자의 마지막 결론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경외하라는 것입니다. 전도자는 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을 경외하라고 권면했습니까? 역설적이지만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전5:7b 오직 너는 하나님을 경외할지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은 결과는 무엇입니까? 이스라엘 여러 지방에서 가난한 자를 학대하고 정의와 공의가 사라지고 불의와 불공정이 판을 치게 된 것입니다. 성경은 반복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라고 가르칩니다. 하나님을 경외할 때 사람은 약자를 학대하지 않으며 이웃을 속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레19:14 너는 귀먹은 자를 저주하지 말며 맹인 앞에 장애물을 놓지 말고 네 하나님을 경외하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레25:17너희 각 사람은 자기 이웃을 속이지 말고 네 하나님을 경외하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레25:43 너는 그를(종들) 엄하게 부리지 말고 네 하나님을 경외하라
전도자는 왜 사방 곳곳에서 약한 자들을 학대하고 불의와 불공정이 판을 쳐도 이상한 일로 여기지 말라고 했습니까? 하나님보다 세상의 권세와 돈을 더 두려워하고 그래서 우상을 숭배하는 이스라엘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은 조금도 이상하거나 놀랄만한 일이 아니라 너무나 당연한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전도자는 불의하고 불공정한 현실 때문에 낙심하거나 절망할 필요가 없다고 가르칩니다. 비록 세상은 불의하고 불공정한 것이 현실이지만 여전히 세상에는 희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전도자가 가르쳐 주는 희망이 무엇입니까? 불의하고 부정한 일을 행하는 권력자들을 심판하는 그들보다 더 높은 재판관이 있다는 것입니다.
전5:8b 높은 자는 더 높은 자가 감찰하고 또 그들보다 더 높은 자들도 있음이니라
전도자가 말하는 세상의 권력자들을 심판하는 더 높은 자가 누구입니까? 물론 이것은 불의한 일을 행하며 사람을 괴롭히는 권력자보다 더 강력하고 부유한 권력자나 정복자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더 높은 자가 심판한다는 전도자의 경고는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전도자의 믿음과 이상을 나타냅니다.
전도자는 땅의 소산물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있다고 선언합니다. 무슨 뜻입니까? 아무리 세상의 권세를 잡은 왕이라고 해도 자신의 탐욕을 채우기 위해 남의 것을 함부로 빼앗아서는 안 된다는 것을 경고하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땅의 소산물은 모든 사람을 위한 것이지 힘 있는 권력자들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전5:9a 땅의 소산물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있나니
전도자는 왕도 밭의 소산을 받는다고 했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세상에서 아무리 높은 지위와 권세를 지닌 왕이라도 평범한 사람들처럼 땅에서 나는 곡식을 먹고 살아가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합니까? 세상의 가장 높은 권세를 지닌 왕이든 평범한 사람이든 하나님 앞에서는 그 누구도 열등하지도 우월하지도 않은 평등한 존재임을 가르치는 말씀입니다.
전5:9b 왕도 밭의 소산을 받느니라
세상에서 아무리 큰 부와 권력을 가진 사람이라고 해도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서 모든 사람은 다 평등한 존재입니다. 더 높은 심판자가 있다는 전도자의 말씀 또한 모든 사람은 절대적 주권자이신 하나님 심판대에 서야 하는 평등한 존재라는 것을 경고하는 것입니다.
전도자는 세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학대와 억압, 불의와 불공정한 현실을 이상하게 여기지 말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현실을 정확하게 직시하라는 권고입니다. 하나님의 선택받은 백성들과 하나님의 택하신 나라인 이스라엘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부당하고 불의한 현실을 외면하지도 피하지도 말고 정확하고 분명하게 보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전도자의 권고는 단순히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부당하고 불의한 높은 자들을 감찰하고 심판하시는 더 높으신 하나님이 살아 계심을 믿으라고 합니다. 이것은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서는 모든 사람이 평등한 존재이니 세상에서 벌어지는 부당하고 불의한 현실 때문에 낙심하거나 절망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전도자는 불의한 현실을 직시하지만 그렇다고 불의한 현실에 주눅 들지 말고 불의한 자를 심판하시고 세상을 바르게 하시는 하나님 심판을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다른 말로 비록 불의한 현실에 발을 딛고 살지만, 모든 사람을 공평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나라의 이상을 바라보며 살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는 하나님 나라는 성경이 가르치고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이상(ideal)입니다. 이상이란 세상의 눈으로 보면 비현실적인 이야기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어쨌든 그것이 옳은 이야기라는 데에는 모두가 동의합니다. 그런데 이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해 보일 때 사람들은 이상이라고 합니다.
많은 사람이 “맞는 말이긴 한데 현실적이지 않아서”라는 말을 자주 합니다. 제가 자주 이런 말을 듣습니다. 아마도 많은 분이 이 목사 설교가 맞는 말처럼 들리지만, 현실적이진 않는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뭐 실제로도 그렇습니다. 저는 목사로서 이 땅에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지기를 추구하는 이상주의자입니다. 그래서 제 설교의 많은 부분이 대단히 이상적으로 들릴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상주의자인 동시에 저는 지극히 현실주의자이기도 합니다. 그 누구보다 제가 설교하고 추구하는 것과 현실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음을 분명하게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현실의 냉정함과 냉혹함을 너무나 잘 알면서도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믿고 전하는 목사로서 이 땅에서도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하나님 나라의 이상을 포기할 수 없습니다.
불과 백 년 전만 해도 세상에는 노예제도가 있었고 양반과 상놈이라는 신분제도와 차별이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양반과 상놈, 주인과 노예가 전혀 다른 차원의 사람이기에 주인이 노예를 양반이 상놈을 차별하는 것이 너무나 당연하게 여겼습니다. 이것은 이상한 생각이 아니라, 지극히 현실적이고 당연한 것으로 여겼습니다.
하지만 세상에는 하나님이 지으신 사람에게는 귀한 사람과 천한 사람이 없고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는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들이 자신들이 가진 믿음과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살았기에 지금 우리는 노골적인 노예제도나 신분제도가 없는 세상을 살게 된 것입니다.
물론 지금도 보이지 않는 차별이 사회 곳곳에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것 가운데 하나가 남녀 차별입니다. 성경이 가르치는 믿음과 이상은 지극히 비현실적인 요구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이것을 비현실적이라고 무시해 버리고 포기해 버린다면 우리는 지금과 별반 다르지 않은 불의하고 불공정한 세상에서 평생을 살아가야만 합니다.
믿음과 이상을 비현실이라고 하지만 비현실적이라는 믿음과 그 믿음이 추구하는 이상이 사라지면 비정하고 냉정한 현실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현실이 중요하지만, 현실만 가지고는 우리는 제대로 살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를 바르게 살게 하고 잘 살게 하는 것은 현실을 따라 사는 것이 아니라 믿음을 위해, 이상을 위해, 그리고 하나님 말씀을 위해 사는 것입니다.
이상과 현실 사이에는 엄청나게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믿는 믿음은 이상과 현실의 엄청난 차이를 메꾸게 하는 가장 강력한 힘입니다. 그런데 이상보다는 현실만을 중요하게 여기는 종교 지도자들은 이상과 현실의 차이를 메꾼다며 이상을 낮추어 현실에 신앙을 맞추어 버렸습니다.
그 결과가 무엇입니까? 세상에서의 성공과 명예와 부가 신앙 최고의 목적이며 이상이 되어버렸습니다. 성공과 부, 권력과 힘이 신앙의 목적이 되어버린 믿음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아니라 처세술에 지나지 않습니다. 처세술의 신앙은 세상을 변화시키지 못합니다. 오히려 세상을 닮아가게 됩니다. 그래서 교회가 자꾸만 세상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 믿음은 이상을 낮추어 현실에 맞게 변질시키는 처세술이 아닙니다. 세상 무서운 줄 알면서 하나님 무서운 줄 모르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불의하고 불공정한 현실을 조금씩이라도 바꾸고 변화시키며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살아가는 것 이것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