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와성경공부
전도서 20-결코 채울 수 없는 인간의 욕심

결코 채울 수 없는 인간의 욕심

전도서 6:7-9

 

전도서 강해 스무 번째 시간입니다. 오늘은 결코 채울 수 없는 인간의 욕심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합니다.


전도서는 인생의 헛됨과 부질없음에 대해 반복하여 강조하고 있는 성경입니다. 12장밖에 되지 않는 전도서에 전도자는 인생의 헛됨을 무려 37번이나 반복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에도 인생의 헛됨과 부질없음을 강조하는 헛되어 바람을 잡는 것이다.”라는 표현을 반복하고 있습니다.(7)


6:9a 이것 또한 헛되고, 바람을 잡으려는 것과 같다.


전도자는 왜 인생의 헛됨과 부질없음에 대해 반복하여 강조하고 있는 것일까요? 전도자가 반복하여 강조하는 것처럼 인생은 정말 허무하고 부질없는 것일까요?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전도자가 인생의 헛됨에 대해 반복하고 있는 이유는 한 번뿐인 인생을 헛되고 부질없는 것을 얽매여 살지 않도록 권면하기 위함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에서 전도자가 깨달은 인생을 헛되고 부질없게 만드는 것이 무엇입니까? 전도자는 사람이 먹기 위해 갖은 수고를 하지만, 끝내 자기의 식욕마저도 채우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문자 그대로 이해하고 해석해야 하는 말씀이 아니라 아무리 노력해도 도무지 채울 수 없는 인간의 탐욕을 나타내는 메타포라 할 수 있습니다.


6:7 사람이 먹으려고 수고를 마다하지 않지만, 그 식욕을 채울 길은 없다.


식욕을 채우기 위해 배가 터질 듯이 먹고 나면 더는 음식을 먹지 않고도 살 수 있을까요?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아무리 배가 터질 듯이 먹어도 다음 날이 되면 또다시 먹어야 합니다. 식욕을 채우기 위한 노력은 죽는 날까지 계속되어야 하는 인간의 수고입니다. 전도자는 인간의 식욕을 통해 인간의 욕심을 채우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비유한 것입니다.


전도자의 비유처럼 우리는 욕심을 채우기 위해 갖은 노력을 하며 인생을 살아갑니다. 하지만 인간의 그 모든 수고로도 식욕 하나도 채우지 못하는 것처럼 인간의 그 어떤 노력으로도 욕심을 채우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인간의 욕심을 채우려는 노력은 마치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것과 같습니다.


어렸을 때 저의 집은 가난했습니다. 용돈이라고는 받아 본 기억이 없습니다. 그래서 군것질이나 장난감 같은 것은, 생각도 하지 못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래서인지 모르지만 어렸을 때 돈을 줍는 꿈을 자주 꾸었습니다. 비슷한 꿈을 너무 자주 꾸어서인지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어렸을 적 제가 자주 꾼 꿈입니다. 다리 밑에서 물놀이도 하고 모래놀이도 하고 있었는데, 내가 놀던 모래 더미에서 100원짜리 동전이 보이는 것입니다. 너무 신이 나서 모래 더미 속에서 동전을 주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어찌 된 일인지 바로 옆에 동전이 또 있는 거예요. 모래 더미를 파니까 동전이 한도 끝도 없이 계속 나오는 것입니다. 아무리 동전을 주워도 계속해서 동전이 나오니 집에 갈 생각도 하지 않고 그 자리에 앉아서는 신나게 모래 더미를 헤집으며 동전을 주웠습니다.


그런데 한참을 신나게 동전을 주우며 행복해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학교 갈 시간 됐다면 어머니가 저를 깨우셨습니다. 이렇게 꿈에서 깨면 비록 꿈이지만 너무 아쉬웠습니다. 뭐가 그리 아쉬웠을까요? 열심히 동전만 주웠지, 주운 동전 가지고 아이스께끼도 사 먹지 못하고 장난감 하나도 사지 못한 것이, 너무 아쉬웠습니다.


그래서 다음에 또 동전 줍는 꿈을 꾸면 아무리 동전이 계속 나와도 두 주머니만 채우고 얼른 가게로 가서는 군것질도 하고 장난감을 사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정말 또다시 다리 밑 모래 더미에서 동전 줍는 꿈을 꾸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되었을까요? 비록 꿈이지만 제가 주운 동전을 가지고 군것질도 하고 장난감도 살 수 있었을까요?


아니요. 이후로도 여러 번 동전 줍는 꿈을 꾸었지만 단 한 번도 주운 동전으로 군것질을 하거나 장난감을 사지 못했습니다. 어린 나이에도 뭔 욕심이 그리 많았는지 파면 팔수록 계속 나오는 동전을 그냥 내버려 두고 가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매번 동전만 줍다가 꿈에서 깨어났습니다.


전도서 68절은 좀처럼 이해하기 어려운 구절입니다. 전도자는 지혜로운 사람이 어리석은 사람보다 나은 것이 무엇인지 묻고 있습니다. 이 구절에 대한 해석은 목사나 신학자마다 천차만별이어서 정확한 해석을 하기가 어렵습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이것을 욕심에 관해서는 지혜로운 사람이든 어리석은 사람이든 별 차이가 없음을 강조하는 것으로 해석하고 싶습니다.


6:8 슬기로운 사람이 어리석은 사람보다 나은 것이 무엇인가? 가난한 사람이 세상 살아가는 법을 안다고 해서, 무슨 소용이 있는가?


같은 맥락에서 가난한 사람이 세상 살아가는 법을 안다고 해서 무슨 소용이 있는가?”라는 구절 역시 가난한 사람이라고 해서 욕심이 없는 것은 아니라고 해석하고 싶습니다. 다시 말해 지혜로운 사람이든 어리석은 사람이든 가난한 사람이든 모든 사람은 채우지 못하는 욕심을 가지고 살아가는 인간사의 모습을 고발하고 있는 것이라 해석하고 싶습니다.


사람들은 가난을 두려워합니다. 사고 싶은 것을 살 수 없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자식이 원하는 것을 사주지 못하면 어쩌나 두려워합니다. 값비싼 차를 타지 못하는 것을 두려워하고, 크고 좋은 집에서 살지 못하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그래서 가난한 사람일수록 욕심에서 벗어나는 것이 더욱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가난에 대해 분명히 알아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가난이 분명 좋은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가난하다는 한 가지 사실 때문에 인생이 불행해지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을 비참하고 불행하게 만드는 것은 가난이 아니라 가난에 대한 두려움이 우리를 비참하고 불행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저의 어린 시절은 무척이나 가난했습니다. 동전 줍는 꿈을 자주 꿀 정도로 가난했습니다. 그럼 가난했기에 저의 어린 시절은 온통 불행하기만 했을까요?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불행했던 적도 있었지만, 훨씬 더 많은 시간을 행복하게 보낸 기억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그때는 물론이고 지금도 가난이 좋지는 않습니다. 돈 때문에, 원하는 것을 마음대로 하지 못하는 가난이 싫습니다. 하지만 가난을 두려워하지는 않습니다. 이왕이면 가난하게 사는 것보다 풍요롭게 살고 싶지만 제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아 가난하게 살게 되더라도 가난하게 사는 것이 두렵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가난에 대한 두려움이 너무 커서 우리가 믿는 신앙조차 왜곡합니다. 그 대표적인 신앙이 무엇입니까? 예수를 잘 믿으면 부자가 된다는 믿음입니다. 이것은 인간이 만들어낸 사이비 짝퉁 믿음입니다. 우리가 정말 두려워해야 할 것은 가난이 아니라 욕심입니다. 어떤 수고와 노력을 한다고 해도 결코 채울 수 없는 욕심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전도자는 욕심을 채우려는 인생의 수고와 노력에 대해 이것이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과 같다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욕심을 채우려는 인간의 모든 수고와 노력은 결코 성공할 수 없습니다. 바라고 원하는 것을, 채웠다고 생각하는 순간 우리의 욕심은 이전보다 배나 더 커집니다. 그래서 욕심을 채울수록 만족을 얻는 것이 아니라 더 허전함과 허무함을 느끼는 것입니다.


6:9 이것 또한 헛되고, 바람을 잡으려는 것과 같다. 가지고 있는 것으로 만족하는 것이, 욕심에 사로잡혀서 헤매는 것보다 낫다.


많은 사람이 자신이 사는 집이 작다고 여깁니다. 살면 살수록 집이 좁다고 여깁니다. 왜 그렇습니까? 살면 살수록 집안에 이런저런 살림살이와 물건들이 늘어나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버려야 합니다. 일 년 길게 잡아 이년이 지나도록 한 번도 사용하지 않는 물건이 있다면 이것은 나에게 쓸모없는 물건입니다. 사용하지 않는 불필요한 것들은 과감하게 버려야 합니다.


그런데 버릴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아직도 쓸 만한 좋은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버릴 수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 물건이 필요한 사람에게 주면 됩니다. 그런데 남도 주지 못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아깝기 때문입니다. 결국 자신도 쓰지 않고 남을 주기는 아까워서 붙들고 있는 것이 집안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살면 살수록 집이 좁다고 여겨지는 것입니다.


저는 우리 마음이나 인생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많은 사람이 허전하고 공허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이런저런 욕심을 내며 살아갑니다. 하지만 욕심을 채우려는 마음과 노력으로는 결코, 허전하고 외로운 마음을 채울 수 없습니다. 오히려 쓸데없는 욕심으로 마음과 인생을 더욱 답답하고 복잡하고 골치 아프게 만들 뿐입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많은 사람이 자기의 인생을 불행하다고 여기는 이유는 자기가 바라는 욕심을 채우지 못하고 살고 있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욕심을 채우며 살 수 있는 길은 없습니다. 인간의 욕심에는 끝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욕심에 사로잡힌 인생에는 만족은 없고 오직 불만족만 있습니다. 만족이 없으니 그 인생은 늘 불행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욕심을 채울 수 없기에 욕심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채울 수 있고 만족할 수 있다면 그것을 왜 욕심이라고 하겠습니까! 욕심은 채우는 것이 아니라 버리는 것이고 비우는 것입니다. 어떻게 버리고 비울 수 있습니까? 전도자의 권면처럼 자족하고 만족하는 법을 배우고 훈련해야 합니다. 이것 말고는 욕심을 다스릴 수 있는 길은 그 어디에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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