虎死留皮 人死留名
전도서 7:1-4
전도서 강해 스물두 번째 시간입니다. 오늘은 “호사유피(虎死留皮), 인사유명(人死留名)”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합니다. 호사유피 인사유명은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뜻입니다.
전도자가 바라본 “해 아래” 세상은 헛된 세상입니다. 헛된 것으로, 헛된 일로 가득 찬 세상입니다. 전도자는 해 아래 헛된 세상에서 무엇이 좋은 것인지를 찾고자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모든 수고와 노력과 지혜로도 무엇이 좋은 것인지 찾을 수 없었습니다. 전도서 6장 12절의 말씀은 무엇이 좋은지를 알 수 없는 인간의 무지에 대한 전도자의 한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전6:12 그림자처럼 지나가는 짧고 덧없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에게 무엇이 좋은지를 누가 알겠는가?
전도서 7장은 인생에서 무엇이 좋은지 알지 못하는 인간의 무지에 대한 전도자 나름의 해결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전도자는 해 아래 세상살이에서 비교할 것들을 고르고는 그 가운데 어느 것이 더 나은지를 관찰하는 것으로 인간의 무지에 대한 해결을 시도하고자 합니다.
전도자는 세상살이에서 무엇이 좋은 것인지를 알지 못할 바에야 두 가지 선택 가운데 어느 것이 더 나은지를 선택하는 방식으로 헛된 세상살이를 풀어가려고 합니다. 전도자는 더 나은 삶, 더 좋은 삶을 위해 무엇을 선택할 것인지를 스스로 묻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 선택하라고 합니다.
전도자의 비교 선택은 7장 1절부터 10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전도자는 가장 먼저 좋은 이름과 좋은 기름을 비교합니다. 다음으로 태어나는 날과 죽는 날을 비교합니다. 초상집과 잔칫집을 비교합니다. 슬픔과 웃음을 비교합니다. 꾸짖는 소리와 노랫소리를 비교합니다. 일의 끝과 시작을 비교합니다. 그리고 참는 마음과 교만한 마음을 비교합니다.
전7:1a 좋은 이름이 좋은 기름보다 낫고
전7:1b 죽는 날이 출생하는 날보다 나으며
전7:2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칫집에 가는 것보다 나으니
전7:3 슬픔이 웃음보다 나음은
전7:5 지혜로운 사람의 책망을 듣는 것이 우매한 자들의 노래를 듣는 것보다 나으니라
전7:8a 일의 끝이 시작보다 낫고
전7:8b 참는 마음이 교만한 마음보다 나으니
전도자는 인생을 두 갈래 선택 앞에 놓여 있는 운명으로 보았습니다. 그래서 인생에는 어느 쪽으로 갈 것인가? 어느 것을 택할 것인가? 라는 선택이 요청된다는 것입니다. 전도자는 인생살이에서 대조를 이루는 두 현실을 비교하면서 어느 것이 우리 인생에 더 나은 선택인지를 권면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보는 전도서 7장 1절로 4절의 말씀은 “잔칫집”과 “초상집”을 구체적으로 비교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잔칫집은 웃음으로 가득한 결혼식을 나타내는 메타포라면 초상집은 슬픔으로 가득한 장례식을 나타내는 메타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전도자가 인생살이 가운데 결혼식과 장례식을 비교한 이유가 무엇 때문입니까? 전도자는 결혼식과 장례식을 인생살이에 있어 가장 중요한 통과의례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전도자가 본 사람의 인생은 결혼식을 거쳐 인생살이를 시작하고 장례식을 거쳐 세상을 떠나는 것으로 보았습니다.
잔칫집과 초상집 다른 말로 하면 삶과 죽음을 비교하는 전도자의 교훈은 “좋은 이름이 좋은 기름보다 낫고”라는 권면으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어로 이름은 쉠이고 기름은 쉐멘이라고 합니다. 전도자는 비슷한 발음을 가진 두 단어를 통해 어떤 인생이 더 나은 인생인지를 비교하고 있습니다.
전7:1a 좋은 이름이 좋은 기름보다 낫고
좋은 이름은 무엇에 대한 메타포입니까? 그 사람이 평생을 쌓은 명예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럼 좋은 기름은 무엇에 대한 메타포입니까? 좋은 기름은 향유입니다. 향유는 이스라엘 문화에서 재산이었습니다. 따라서 좋은 기름은 평생 모은 재산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전도자는 평생을 살면서 쌓은 명예와 평생을 걸쳐 모은 재산을 비교한 것입니다.
전도자는 명예와 재산을 비교하면서 많은 재산보다 좋은 명예가 더 낫다고 선언합니다. 세상 사람들 대부분은 더 많은 재산을 위해서 인생을 살아갑니다. 하지만 전도자는 많은 재산보다 좋은 명예가 더 낫다고 합니다. 전도자는 왜 이렇게 말한 것입니까? 사람이 죽고 나면 그 사람에게 남는 것은 그가 평생 모은 재산이 아니라 그가 평생 이룬 명예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설교 제목 호사유피 인사유명” 고사성어처럼 사람은 죽으면 이름만 남습니다. 살아서 아무리 많은 것을 누리고, 아무리 많은 것을 거느리고, 아무리 많은 것을 소유했다고 해도 죽고 나면 사람에게 남는 것은 이름 말고는 다른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사람이 세상에 올 때는 이름 없이 왔습니다. 하지만 세상을 떠날 때는 이름을 남기고 떠납니다. 이름 없이 세상에 왔다가 이름만 남기고 세상을 떠나는 것이 사람의 인생입니다. 세상에 남긴 이름만이 오로지 그 사람의 것입니다. 따라서 좋은 이름을 남기고 세상을 떠나는 것이, 많은 재산을 남기고 떠나는 것보다 훨씬 더 지혜롭고 중요한 일입니다.
요한 계시록에 보면 생명책이 등장합니다. 생명책은 하나님의 심판이 있을 종말의 때에 심판받지 않고 구원받을 사람에 관해 기록한 책입니다. 그런데 그 생명책에 기록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이름입니다. 생명책은 세상에서 모은 재산을 기록하지 않고 오직 구원받을 사람의 이름만 기록합니다.
그럼 어리석은 인간이 어떻게 해야 평생에 걸쳐 모으는 재산보다 평생을 걸쳐 쌓는 이름(명예)이 더 중요한지를 알 수 있습니까? 이것을 알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사람은 누구나 반드시 죽는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입니다. 그래서 전도자는 지혜로운 사람의 마음은 초상집에 있지만 어리석은 자의 마음은 혼인집에 있다고 한 것입니다.
전7:4 지혜자의 마음은 초상집에 있으되 우매한 자의 마음은 혼인집에 있느니라
죽음은 인간이 가지는 가장 강력한 두려움이며 공포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에서 벗어나기 위해 죽음을 애써 외면하거나 망각하려고 합니다. 죽음에 대해 말하는 것을 금기시합니다. 하지만 죽음을 외면하거나 망각하는 것으로,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를 해결하려고 하는 시도는 실패하고 말 것입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는 죽음을 외면하거나 망각하는 것으로는 절대로 해결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정반대로 우리는 모두 언젠가 반드시 죽는다는 사실을 기억하며 살아감으로써 해결할 수 있습니다. 죽음을 의식하고 살 때 비로소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를 뛰어넘어 삶의 순간순간들이 얼마나 소중하고 중요한지를 깨달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의 심리학자인 에이브러햄 머슬러는 신부전증으로 죽다가 살아나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그는 죽음에 직면했던 자신의 체험을 통해 이전에 미처 깨닫지 못했던 새로운 삶과 사랑에 눈을 떴다면서 당시 죽음이 눈앞에 다가왔던 순간을 이렇게 회상했습니다.
“죽음과 직면하고, 일시적으로 그 집행을 유예 받음으로써 모든 것이 더없이 존귀하고 신성하고 아름답게 느껴졌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사랑하고 포옹하고 그들에게 압도되고 싶다는 충동에 시달렸다. 낯익은 강물이 이토록 아름다워 보인 적은 없었다.
죽음의 가능성이 내 곁에 있음을 알고 있기에 보다 깊은 사랑 보다 정열적인 사랑이 가능해졌다. 만일 절대로 죽지 않는다고 한다면 이렇게 정열적으로 사랑할 수 있었을까! 이렇게 황홀해질 수 있었을까!”
반드시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을 지닌 사람이 죽음을 외면하거나 잊은 채 살면 그 사람의 삶은 불필요한 탐욕과 욕심에 빠지게 됩니다. 반대로 죽음에 대해 지나친 두려움과 공포에 사로잡혀 살면 이런 사람의 삶은 허무하고 무가치하게만 느껴질 것입니다. 인생에 대한 허무와 무가치는 사람을 방탕과 타락으로 이끕니다.
왜 우리는 죽음을 의식하고 죽음에 대해서 생각하며 살아야 합니까? 우리 인생은 끝이 없는 무한한 Unlimited 인생이 아니라 끝이 있는 유한한 Limited 인생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모두 시한부 인생을 사는 존재입니다. 따라서 유한한 인생의 끝인 죽음이야말로 우리 인생의 가장 중요한 삶의 기준이 되기 때문입니다.
왜 죽음을 인생의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삼으며 살아야 합니까? 죽음을 의식하며 살아갈 때만 비로소 인생에서 무엇이 더 중요한지를 분별하는 지혜를 가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정말 사랑하는 사람에게 고백할 때 뭐라고 고백합니까? 죽도록 사랑한다고 합니다. 정말 중요한 신념이라며 뭐라고 합니다. 죽어도 포기 못 한다고 합니다.
죽음을 의식하며 살 때 우리가 그토록 중요하게 여겼던 많은 일이 그리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죽음이라는 인생의 기준이 없이는 삶을 살면서 내가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하는지, 무엇을 하며 살고 싶은지를 알 수 없습니다. 죽음이라는 기준에서 생각하지 않는 것은 솔로몬의 한탄처럼 결국 모든 것이 다 헛되고 헛된 것이 되고 맙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전도자는 좋은 이름이 좋은 기름보다 낫다고 했습니다. 어떻게 이 사실을 분별하고 깨달을 수 있습니까? 한 사람의 예외도 없이 모든 인생에 반드시 찾아올 죽음을 기억할 때만 비로소 우리는 무엇이 더 중요한지를 분별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름을 남기고 세상을 떠나야 하는 유한한 존재입니다. 어떤 이름을 남겨야 합니까? 좋은 이름을 남겨야 합니다. 그래야 그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될 수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좋은 이름을 남길 수 있습니까? 좋은 인생을 산 사람만이 좋은 이름을 남깁니다. 한 번뿐인 일생에서 남길 수 있는 것이 이름뿐이라면 그 어떤 일보다 좋은 이름을 남기는 일에 일생을 바치는 지혜와 깨달음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