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와성경공부
전도서23-그때는 맞았지만, 지금은 틀릴 수 있다

그때는 맞았지만, 지금은 틀릴 수 있다

전도서 7:5-10

 

전도서 강해 스물세 번째 시간입니다. 오늘은 그때는 맞았지만, 지금은 틀릴 수 있다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합니다. 전도자가 바라본 인생은 헛된 것으로, 헛된 일로 가득 찬 인생이었습니다. 전도자는 헛되고 허무한 인생을 살면서 무엇이 좋은 것인지를 찾고자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자신이 가진 지식과 능력으로는 무엇이 좋은 것인지 알 수 없었습니다.


6:12 그림자처럼 지나가는 짧고 덧없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에게 무엇이 좋은지를 누가 알겠는가?


짧고 덧없는 삶을 사는 사람에게 무엇이 좋은지 알 수 없다는 전도자의 고백은 오늘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영적 도전을 줍니다. 사람에게 무엇이 좋은지를 알지 못한다는 전도자의 고백은 인간의 어리석음을 고발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사람은 무엇이 좋은지를 모른 채 살아가기에 인생에는 늘 후회가 따르는 것입니다.


따라서 역설적이지만 인생을 살면서 반드시 깨달아야 하는 지혜가 있다면 우리는 무엇이 좋은지 모른 채 인생을 살아가는 어리석은 인생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입니다. 지나온 날들을 돌이켜 보면서 자신의 선택과 결정에 아무런 후회도 없는 사람이 있을까요? 아니요.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누구나 후회하며 인생을 살아갑니다.


전도서 7장은 무엇이 좋은지 모른 채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향한 전도자의 권면입니다. 전도자는 좋은 이름이 좋은 기름보다 낫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해 아래 세상을 사는 사람들은 이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살아갑니다. 그래서 전도자는 잔칫집보다 초상집에 가라고 강권합니다.


무엇이 좋은지를 알지 못하는 사람이 더 나은 선택을 하며 살기 위해선 죽음이라는 기준을 놓고 생각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인생에 있어서 그리고 신앙에 있어서 우리가 직면해야 할 가장 중요한 질문은 죽음입니다. 죽음을 생각하며 사는 것은, 결코 인생에 대해 부정적이며 염세적이고 절망적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죽음을 부정적이고 염세적이고 절망적이라고 가르치는 것이 잘못된 편견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갑자기 죽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모든 죽음은 이미 예고된 것입니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은 다 죽었고 죽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죽음을 생각하며 죽음을 마음에 두고 살아가는 것은 유한한 인생을 사는 사람에게 있어 매우 중요한 지혜입니다.


모두가 잘 살고 싶어 합니다. 그런데 정말 잘 살기를 원한다면 잘 죽을 수 있어야 합니다. 누가 잘 죽을 수 있습니까? 후회 없는 삶을 산 사람만이 잘 죽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죽음을 생각하며 사는 것은 공포와 두려움이 아니라 우리에게 주어진 한 번뿐인 인생을 소중하게 살아가게 하는 은혜이며 영성입니다.


전도자가 죽음 다음으로 중요하게 여긴 것은 지혜입니다. 전도자가 초상집에 가서 죽음을 통해 얻은 깨달음이 무엇입니까? 전도자는 어떻게 해야 헛된 세상에서 제대로 사는 것인지를 물었습니다. 제대로 살기 위한 전도자가 권면은 지혜로운 사람의 책망을 듣는 것이 우매한 자들의 노래를 듣는 것보다 낫다는 것입니다.


7:5 지혜로운 사람의 책망을 듣는 것이, 어리석은 사람의 노래를 듣는 것보다 더 낫다.


지혜자의 책망을 듣는 것이 우매한 자들의 노래를 듣는 것보다 왜 더 나을까요? 전도자는 어리석은 자들의 웃음소리를 가마솥 아래에서 빠르게 타오르는 가시나무 소리에 비유합니다. 앙상한 가시나무는 요란한 소리를 낼 뿐 빨리 타 버리기 때문에 가마솥을 데울 수 없습니다. 반면에 속이 꽉 찬 땔감용 나무는 마치 지혜자의 책망처럼 조용하지만 엄청난 불기를 오랫동안 유지합니다.


7:6 어리석은 사람의 웃음소리는 가마솥 밑에서 가시나무 타는 소리와 같다.


대부분 사람은 불편한 이야기, 책망하는 이야기 듣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이왕이면 재밌는 이야기, 웃기는 이야기를 듣기 원합니다. 그래서 재밌고 웃기는 드라마나 영화가 늘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습니다. 반면에 심각하고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드라마나 영화는 잘 보려고 하지 않습니다.


이런 경향은 교회에서도 나타납니다. 설교도 재밌고 웃기는 설교를 듣기를 원합니다. 재밌고 웃기는 이야기나 드라마, 또는 설교를 통해 기쁘고 즐거운 삶을 살기를 희망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저 역시 능력이 없어서 재밌는 설교를 못 하는 것이지, 원하지 않기 때문에 안 하는 것은 아닙니다. 할 수만 있으면 여러분들이 재밌어하고 웃을 수 있는 설교를 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분명히 그리고 진지하게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순간적이고 감각적인 웃음이나 즐거움을 통해서는 우리의 삶이 기쁨이나 평안으로 가득한 삶으로 변화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TV 예능이나 코미디를 보면서 아무리 마음껏 웃는다고 당면한 내 삶의 문제가 해결되거나 삶이 기쁨으로 넘치지도 않습니다. 그저 보고 웃는 그때뿐입니다.


오히려 이런 식으로 문제를 회피하는 것은 매우 위험합니다. 임기응변식으로 회피해 버린 문제는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곪아 터져 우리를 더 고통스럽게 만들 수 있습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이 당장 고통을 잊게 만드는 즐거움이나 쾌락이 아니라면 우리 인생을 둘러싸고 있는 불편한 현실을 외면하거나 피하기보다 직시할 수 있어야 합니다.


물론 불편한 현실을 외면하거나 모르고 지나가면 당장은 편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외면하거나 그냥 지나쳐버린 문제는 점점 더 심각해지고 악해질 것입니다. 결국, 나중에는 내가 외면하거나 피했던 문제들이 내 삶에 더 큰 불행을 만들어 낼 것입니다. 그래서 전도자는 지혜로운 사람의 책망을 듣는 것이 어리석은 사람의 노래를 듣는 것보다 더 낫다고 권면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혜는 언제나 유익하고 바르기만 한가요? 전도자는 그렇지도 않다는 충격적인 선언을 합니다. 물론 지혜가 어리석음보다는 나은 것은 분명합니다. 그렇다고 지혜가 인생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만능열쇠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전도자는 지혜가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인간의 지혜로 인생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음을 강조합니다.


7:6b 이것도 헛되니라

1:17 내가 다시 지혜를 알고자 하며 미친 것들과 미련한 것들을 알고자 하여 마음을 썼으나 이것도 바람을 잡으려는 것인 줄을 깨달았도다


전도자는 인간의 지혜가 가지는 한계에 관해 경고합니다. 전도자는 탐욕이 지혜자를 어리석게 만들며 뇌물이 지혜자의 마음을 병들게 한다고 했습니다. 다시 말해 인간의 탐욕은 지혜자마저 어리석게 만들며, 뇌물은 아무리 지혜자라도 올바른 판단을 하지 못하고 타락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7:7 탐욕이 지혜자를 우매하게 하고 뇌물이 사람의 명철을 망하게 하느니라


전도자는 지혜자라고 해도 탐욕에 빠질 수 있고 뇌물을 받아 타락할 수 있는 한탄 연약한 인간에 지나지 않음을 알았습니다. 한마디로 아무리 뛰어난 인간의 지혜라 할지라도 죄의 막강한 힘을 막을 수 없음을 경고한 것입니다. 전도자는 사람의 지혜가 인간의 타락과 부패를 막을 수 없음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전도자에게는 지혜자들도 어리석은 자들과 크게 다를 바 없는 연약한 존재였습니다. 이들 역시 권력과 돈에 욕심내고 부패하는 한낱 연약한 인간에 지나지 않았던 것입니다. 따라서 지혜자들의 가르침과 책망에 절대적인 권위를 부여하는 것 역시 헛된 것이라고 한탄한 것입니다.


전도서 78절과 9절의 말씀에서 전도자는 이스라엘 사회에서 오랫동안 내려오고 있는 전통적인 지혜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시작보다 마무리가 더 중요하며 인내심이 조급한 분노보다 낫다는 격언입니다. 누구도 쉽게 반박할 수 없는 너무나 당연하게 들리는 격언이며 지혜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7:8-9 일은 시작할 때보다 끝낼 때가 더 좋다. 마음은 자만할 때보다 참을 때가 더 낫다. 급하게 화내지 말아라. 분노는 어리석은 사람의 품에 머무는 것이다.


하지만 전도자는 과거의 옛 격언들이 무조건 지금 세상을 사는 올바른 지혜가 될 수 없다고 합니다. 전도서 710절의 말씀은 이것을 경고하는 말씀입니다. 인간의 지혜는 결코 영원불변하는 지혜가 아닙니다. 시대와 따라 상황에 따라 사람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것이 인간의 지혜입니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릴 수 있거나 반대로 지금은 맞지만, 그때는 틀릴 수 있는 것이 인간의 지혜가 가진 한계입니다.


7:10 옛날이 지금보다 더 좋은 까닭이 무엇이냐고 묻지 말아라. 이런 질문은 지혜롭지 못하다.


물론 과거가 현재보다 더 나은 것도 분명 있을 것입니다. 과거의 지혜가 지금도 여전히 유용한 것이 분명 있습니다. 하지만 과거가 현재보다 낫다고 말하는 것은 결코 지혜로운 것이 아님을 전도자는 분명히 경고하고 있습니다. 지나온 과거를 함부로 부정해서도 안 되지만 과거를 미화하는 것도 대단히 어리석은 일입니다.


과거의 지혜나 영광만 붙들고 사는 사람은 결코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베푸신 과거의 은혜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하지만 과거의 은혜에만 머물러 있는 것은 현재에 계신 하나님의 임재를 부정하는 일이 되고 맙니다. 더 나아가 우리는 오늘을 사는 것이지 지난날을 사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많은 이들이 특별히 나이가 들어갈수록 현실을 외면하고 과거를 그리워하며 살려고 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과거의 화려한 영광을 누리며 살았다고 해도 현재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오늘이라는 현재를 살아가는 것 이것이야말로 어떤 것보다 소중한 지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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