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사는 것이 지혜로운 삶인가?
전도서 7:11-14
전도서 강해 스물네 번째 시간입니다. 오늘은 “어떻게 사는 것이 지혜로운 삶인가?”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합니다.
전도자가 바라본 인생은 헛된 것으로, 헛된 일로 가득 찬 인생이었습니다. 전도자는 헛되고 허무한 인생을 살면서 무엇이 좋은 것인지를 찾고자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전도자는 자신이 가진 지식과 능력으로는 무엇이 좋은 것인지 알 수 없었습니다.
전6:12 그림자처럼 지나가는 짧고 덧없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에게 무엇이 좋은지를 누가 알겠는가?
무엇이 좋은지 알 수 없다는 전도자의 고백은 인생에는 반드시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정답이 없다는 영적 도전을 줍니다. 인생이 어려운 이유가 무엇입니까? 인생에는 반드시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정답이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남 흉내 내거나 따라 하는 것으로는 절대로 인생을 잘 살 수 없습니다.
전도서 7장은 정답이 없는 인생을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을 위한 전도자의 권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전도자가 정답이 없는 인생을 살아가기 위한 가장 중요한 것으로 강조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지혜입니다. 전도서 7장은 지혜가 무엇이며 지혜가 왜 중요한지에 대해 가르치고 있습니다.
전도자는 지혜와 유산을 비교합니다. 주목해야 할 사실은 전도자는 지혜가 유산보다 더 아름답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전도자는 지혜를 유산같이 아름답다고 했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전도자는 지혜가 중요함을 강조하지만 그렇다고 물질의 가치를 무시하지 않았습니다. 지혜와 물질을 동등한 위치에 놓았습니다.
전7:11 지혜는 유산같이 아름답고 햇빛을 보는 자에게 유익이 되도다
여기서 지혜는 신앙으로 살아가는 방식을 가리킵니다. 한마디로 지혜는 정신적이며 영적인 가치를 나타냅니다. 반면에 유산은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땅이나 재산을 말합니다. 한마디로 세속적이며 물질적인 가치를 의미합니다. 이것은 세상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인생을 사는 데 지혜가 중요하지만 모든 사람이 지혜를 중요하게 여기며 살지는 않습니다. 대부분 사람은 지혜보다는 유산을 더 중요하게 여기며 살아갑니다. 전도자는 햇빛을 보는 자에게만 지혜가 유익하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햇빛을 보는 자는 무엇에 대한 메타포입니까? 해를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을 바라보며 사는 인생을 의미합니다.
전도자는 돈이 가장 중요한 세상을 살면서 창조주 하나님을 바라보며 살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하냐면 지혜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전도자가 말하는 지혜가 무엇입니까? 돈이 주인인 세상에서 하나님을 바라볼 줄 아는 것이야말로 가장 탁월한 지혜입니다.
지혜는 유산같이 아름답다고 한 전도자는 지혜의 그늘 아래 있음은 돈의 그늘 아래 있음과 같다고 했습니다. 그늘이 무엇에 대한 메타포입니까? 피난처 또는 보호소를 나타내는 메타포입니다. 전도자는 지극히 현실적인 사람입니다. 그래서 세상살이에 돈이 필요하다는 것을 부인하지 않습니다. 돈이 사람을 지키고 보호해 준다고 말합니다.
전7:12a 지혜의 그늘 아래에 있음은 돈의 그늘 아래에 있음과 같으나,
하지만 전도자는 돈의 그늘과 함께 지혜의 그늘 또한 강조하고 있습니다. 인생을 사는 데 돈의 보호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돈만 가지고 인생을 잘 살 수는 없습니다. 반드시 지혜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지혜가 있어야만 사람의 생명을 살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전7:12b 지혜에 관한 지식이 더 유익함은 지혜가 그 지혜 있는 자를 살리기 때문이니라
많은 사람이 돈만 많으면 인생 아무런 문제 없이 잘 살 수 있다고 착각합니다. 하지만 정말 돈만 많으면 인생 아무 문제 없이 잘 살 수 있을까요? 아니요.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세상에 돈 많은 사람들은 아무런 인생의 문제도 없이 늘 행복하기만 해야 합니다. 하지만 현실은 절대로 그렇지 않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물론 돈은 사람을 지켜주고 보호해 주는 가장 유용한 도구이며 수단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하지만 돈은 좋은 도구이며 수단에 불과하기에 돈 그 자체만으로는 인생을 복되게 하지 못합니다. 돈은 은사이기에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그 사람을 복되게 할 수도 있고 그 사람을 망치는 결정적 도구가 되기도 합니다.
지혜의 그늘에서 산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합니까? 세상을 신앙의 이치에 맞춰 살아가는 것입니다. 전도서 7장 13절과 14절의 말씀은 하나님께서 세상을 다스리는 이치에 대한 전도자의 깨달음입니다. 13절이 질문이라면 14절은 질문에 대한 대답입니다. 전도자는 질문과 대답 형식으로 하나님께서 정하신 세상 이치에 대하여 설명합니다.
전도자는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을 보라고 합니다. 그런데 전도자가 보라고 했던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굽게 하신 것입니다. 전도자는 하나님께서 굽게 하신 것을 보라고 하고는 이것을 누가 곧게 할 수 있겠느냐고 물었습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께서 구부려 놓으신 것을 누가 펼 수 있겠는가? 묻는 것입니다.
전7:13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을 보라 하나님께서 굽게 하신 것을 누가 능히 곧게 하겠느냐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께서 굽게 하신 것을 사람이 곧게 할 수 있다는 것입니까? 그럴 수 없다는 것입니까? 누가 능히 곧게 하겠느냐는 전도자의 질문은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사람이 바꿀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지혜란 하나님께서 정하신 이치를 따라 살아가는 것을 가르치는 말씀입니다.
한국 교회에 유행했던 구호 가운데 “하늘 보좌를 움직이는 기도”가 있었습니다. 지금도 이런 구호를 앞세우며 신앙생활 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많은 목사와 교인이 비전이라는 명목을 앞세워 자신의 열정적인 기도로 하늘 보좌를 움직이는 것이 마치 대단한 믿음인 양 착각하며 신앙생활 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조금만 생각해보아도 대단한 믿음이 아니라 대단히 어리석은 믿음에 불과합니다. 자기의 기도로 하늘 보좌를 움직인다는 것은 자기 뜻이나 소원이 하나님의 뜻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인생의 주인으로 모시는 믿음이 아니라 하나님을 자기가 부리는 종으로 여기는 신성모독입니다.
하나님께서 굽게 하신 것을 누가 능히 곧게 하겠느냐? 라는 전도자의 질문에는 인생에는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곤고함이 있음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아무리 믿음으로 세상을 산다고 해도 세상살이에는 슬프고 고통스러운 일이 있습니다. 이것을 피하고 살 수 있는 길은 그 어디에도 없습니다. 이것이 곧 인생의 이치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굽게 하신 것을 누가 능히 곧게 하겠느냐는 전도자의 질문은 하나님께서 굽게 하신 현실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묻는 말입니다. 여기에 대한 대답이 14절의 말씀입니다. 전도자는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지난날들을 되돌아보라고 합니다.
전7:14a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되돌아 보아라
형통한 날이 좋은 때라면, 곤고한 날은 어려운 때입니다. 인생길에는 늘 두 날이 함께 공존합니다. 마냥 좋은 때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마냥 어려운 때만 있는 것도 아닙니다. 살다 보면 좋은 날과 어려운 날이 번갈아 펼쳐집니다.
전도자는 좋은 날과 나쁜 날을 반복하는 인생을 어떻게 살라고 권고합니까? 좋은 날에는 기뻐하고 나쁜 날에는 되돌아보라고 합니다. 주목해야 할 것은 좋은 날에 기뻐하라고 했다면, 나쁜 날에는 슬퍼하라고 해야 마땅해 보입니다. 하지만 나쁜 날에는 되돌아보라고 했습니다.
어려운 일을 겪을 때 한탄하고 슬퍼하고 불평만 하면 똑같은 어려움을 또다시 겪게 될 것입니다. 전도자가 어려울 때 되돌아보라고 한 것은 왜 어렵게 되었는지, 무엇이 어려운지, 어째서 어려워졌는지를 살펴보라는 것입니다. 그럴 때 인생은 아픈 만큼 깊어지고 넓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이 자기 삶에는 마냥 좋은 일만 계속되기를 바라고 곤고한 날은 하나도 없기를 바랍니다. 전도자는 이런 기대와 생각을 하는 우리를 향해 이렇게 권고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좋은 날만 계속되기를 바라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하지 않으셨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좋은 때도 있게 하시고 어려운 때도 있게 하셨다고 합니다.
전도자는 하나님께서는 두 가지를 병행하게 하신 이유를 어떻게 설명하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세상살이에 좋은 때도 있게 하시고 어려운 때도 있게 하신 것은 사람이 자기의 장래 일을 알지 못하게 하시기 위함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전도자가 말하는 지혜는 무엇입니까? 사람이 장래 일을 헤아리려고 하지 않는 것입니다.
전7:14b 이 두 가지를 하나님이 병행하게 하사 사람이 그의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
인생은 정해지지 않은 미지의 시간을 향해 나아가는 모험과도 같습니다. 우리 앞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누구도 알지 못합니다. 장래 일은 오직 하나님께 속한 것으로 사람이 함부로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장래 일을 알려고 점집을 찾아가거나 예언하는 사람을 찾아가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며 심지어 하나님을 대적하는 악한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이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다는 전도자의 충고에는 인생은 앎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사는 것이라는 교훈을 줍니다. 우리는 앎으로 사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의 세상살이는 앎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이루어집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우리는 장래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습니다. 설령 안다고 해도 아는 것만으로 헛되거나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는 반드시 죽는다는 사실을 알고 인생을 살아갑니다. 반드시 죽는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모든 사람이 다 인생을 값지고 소중하게 살아가지 않습니다.
인생은 장래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는 것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지혜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창조의 질서와 원리 즉 순리를 따라 살아가는 믿음이 있느냐 없느냐가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인생의 곤고한 날조차 그 인생을 더욱 존귀하고 아름답게 하는 은혜가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