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람이 지혜 있는 사람인가?
전도서 8:1
전도서 강해 스물여덟 번째 시간입니다. 오늘은 “어떤 사람이 지혜 있는 사람인가?”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합니다.
전도서 8장은 전도서 7장에서 전도자가 한탄하고 토로하였던 불의한 세상의 현실과 도무지 지혜로운 사람 즉 의인은 찾아보기 힘든 현실에 대한 연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전도자는 사방을 둘러보아도 도무지 지혜로운 사람을 찾기가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전도자는 지혜자를 찾는 일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전도자는 더욱 절박한 심정으로 어떤 사람이 지혜 있는 사람인가를 묻는 것으로 전도서 8장을 시작합니다.
전8:1a 어떤 사람이 지혜 있는 사람인가?
전도자는 도대체 왜 그토록 간절하고 절박하게 지혜를 알려고 하고 지혜 있는 사람을 찾으려고 하는 것일까요? 개인적으로 저는 전도자가 그토록 간절하게 지혜와 지혜를 가진 사람을 찾는 이유는 전도자는 어떻게 살아야 인생의 허무와 헛됨에서 벗어날 수 있는지를 알기를 원했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전도서가 어떻게 시작했습니까? 세상사 모든 일이 헛되다는 전도사의 한탄으로 시작하였습니다. 자기가 살아왔던 모든 것이 헛되고 헛되다는 전도자의 한탄은 인생은 아무 의미도 없는 헛된 것이라는 허무주의를 가르치기 위함입니까? 아니요.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전1:1-2 다윗의 아들 예루살렘 왕 전도자의 말씀이라 전도자가 이르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전도자가 이렇게 말하는 것은 인생이 허무하고 헛되다는 것을 후대에 남기려는 것이 아닙니다. 인생의 허무와 헛됨은 굳이 전도자가 남기지 않아도 죽을 날이 가까워졌다고 여기면 모든 사람이 저절로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전도자가 간절히 원한 것은 어떻게 살아야 헛되지 않은 인생을 살 수 있는가입니다.
따라서 전도자가 끊임없이 지혜에 대해 말하고 지혜 있는 사람을 찾으려고 했던 이유는 분명합니다. 전도자가 찾는 지혜의 본질은 허무하고 헛될 수밖에 없는 인생을 헛되지 않게 만드는 것이며, 전도자가 찾는 지혜 있는 사람은 허무하고 헛되지 않은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어떤 사람이 지혜 있는 사람인가?”로 시작한 전도자의 하소연은 “사물의 이치를 아는 사람이 누구인가?”로 발전하였습니다. 지혜 있는 사람은 찾는다고 호소한 전도자가 사물의 이치를 아는 사람이 누구냐고 한 것은 전도자가 생각하는 지혜 있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를 분명하게 보여주는 말씀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전8:1b 사물의 이치를 아는 사람이 누구인가?
전도자가 생각하는 지혜 있는 사람은 다름 아닌 사물의 이치를 아는 사람인 것입니다. 다시 말해 사물의 이치를 아는 사람이 곧 지혜 있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럼 사물의 이치가 무엇입니까? 저는 이것을 하나님의 창조원리와 질서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에 대해 성경은 가르치기를 원리와 질서의 하나님이라고 가르칩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창조를 어떻게 설명하고 있냐면 혼돈과 공허, 무질서와 어둠으로 가득한 세상에 원리와 질서를 세우신 것을 하나님의 창조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창세기 1:1-2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창세기가 어떻게 하나님의 창조를 설명하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무질서하게 모든 것이 뒤엉켜 있는 혼돈한 세상을 구별하여 질서와 원리를 세우신 것을 하나님의 창조라고 설명합니다. 빛과 어둠을 나누시고 빛을 낮이라고 어둠을 밤이라고 하셨습니다. 한마디로 낮과 밤의 질서가 생긴 것입니다.
창1:4b-5 하나님이 빛과 어둠을 나누셔서, 빛을 낮이라고 하시고, 어둠을 밤이라고 하셨다.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하루가 지났다.
이처럼 창세기가 기록하고 있는 하나님의 창조는 무질서와 공허로 가득한 세상에 하나님께서 질서를 세우신 것입니다. 그래서 자연 세계에는 자연의 원리와 질서가 있고, 우주에는 우주의 질서와 원리가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세계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원리와 질서를 따라 움직입니다.
지구가 하루에 한 바퀴씩 도는 것을 자전(rotate)이라고 합니다. 지구가 자전하는 속도는 시속 1,046마일이라고 합니다. 국제선 비행기의 평균 속도가 시속 500마일이라고 하니 지구의 자전 속도가 얼마나 빠른지 짐작하기도 어려울 정도입니다.
지구가 일 년에 한 바퀴씩 태양의 둘레를 도는 것을 공전(revolution)이라고 합니다. 지구가 공전하는 속도는 초속 18.61마일이고 시속으로는 67,000마일입니다. 이 속도는 지구에서 달까지 4시간이면 갈 수 있는 속도라고 합니다. 그리고 태양을 도는 9개의 행성을 태양계라고 하는데 태양계 전체는 은하의 중심 둘레를 무려 초속 12.3마일 속도로 돈다고 합니다.
만약 이 복잡하고 오묘한 질서에 단 한 치의 오차라도 생기면 태양계는 그야말로 눈 깜짝할 사이에 파괴되고 만다고 합니다. 이처럼 우주에는 도무지 깰 수 없는 우주의 원리와 질서가 존재하듯 자연에도 자연의 원리와 질서가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사람이 사는 세상에도 사람이 마땅히 지키며 살아야 하는 질서와 영적 원리가 존재합니다. 성경은 사람이 마땅히 지키며 살아야 하는 영적 질서와 원리를 가르쳐 주는 말씀입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하나님을 아는 것은 하나님께서 만드신 우주와 자연 그리고 인간 세상의 질서와 원리를 알아가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믿는 가장 중요한 믿음은 하나님께서 만드신 질서와 영적 원리를 따라 살아가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인생이 허무하고 헛되다 느끼는 것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질서와 영적 원리를 외면하며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예수님에 대해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분이라고 가르칩니다. 이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영적 교훈이 무엇입니까? 어제나 오늘이나 그리고 영원토록 동일하신 예수님이시기 예수님의 가르침과 말씀은 이천 년 전에도 필요했지만 이천 년이 훨씬 지난 지금에도 여전히 우리에게도 유효한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히13:8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그렇다면 이천 년 전 예수님의 가르침이 이천 년도 훨씬 더 지난 지금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하나님의 말씀이 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예수님의 가르침은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처세술을 가르쳐 주신 것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인간이 마땅히 지키며 살아야 하는 하나님의 영적 질서와 원리에 관해 가르쳐 주셨기 때문입니다.
많은 교인이 자연의 질서나 법칙을 뛰어넘는 신비한 이적이나 기적만을 하나님의 역사하심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자기의 삶 속에서도 특별한 기적이 일어나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물론 인생에는 이적이나 기적이 필요한 순간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것은 매우 특별한 상황이나 경우에만 제한되어야 합니다.
인생 사는 것이 허무하고 헛되게 여겨지는 것은 우리 삶에 신비하고 놀라운 기적이나 이적이 없기 때문이 아닙니다. 사람이 스스로 하나님과 같아져서는 하나님께서 만드신 창조 질서와 영적 원리를 무시하며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삶과 신앙에서 하나님의 창조 질서와 영적 원리를 따라 살아간다면 신비한 이적과 기적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충분히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존귀하고 가치 있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기적과 이적만을 바라는 마음은 로또를 사는 세상 사람들의 믿음과 별반 다를 게 없습니다. 사람들은 단 한 번의 기적을 통해 인생의 문제를 해결 받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로또 당첨이 인생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것처럼 단 한 번의 기적으로 인생의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인생을 대박 한 번으로 해결하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인생 한 방에 해결하기보다는 한 방에 망할 가능성이 훨씬 더 큽니다.
전도자는 지혜가 주는 유익에 관해 설명하는 것으로 지혜 있는 사람을 찾는 자신의 호소를 마칩니다. 전도자는 지혜가 주는 유익을 어떻게 소개하였습니까? 전도자는 사물의 이치를 아는 지혜자는 그 지혜로 말미암아 그의 얼굴에 광채가 나며, 아무리 사나웠던 얼굴도 바뀌게 된다고 말합니다.
전8:1c 지혜는 사람의 얼굴을 밝게 하고, 굳은 표정을 바꾸어 준다.
출애굽기를 보면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가 40일을 머물며 하나님의 율법을 받고 내려왔을 때 그의 얼굴에서 광채가 났다고 했습니다. 성경은 모세의 얼굴에 빛이 났던 이유를 그가 하나님과 말씀으로 나눈 결과라고 설명합니다. 시내산에서 모세가 하나님과 나눈 말씀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인간들 사이에 세우신 질서와 영적 원리인 십계명에 관한 말씀입니다.
출34:29 모세가 그 증거의 두 판을 모세의 손에 들고 시내 산에서 내려오니 그 산에서 내려올 때에 모세는 자기가 여호와와 말하였음으로 말미암아 얼굴 피부에 광채가 나나 깨닫지 못하였더라
마흔이 넘으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누가 남긴 말입니까? 아브라함 링컨 대통령이 남긴 말입니다. 무슨 뜻으로 한 말입니까? 타고난 얼굴은 부모의 책임이지만 마흔 이후의 얼굴은 지금까지 그 사람이 어떤 인생을 살아왔는지에 따라 결정된다는 의미로 남긴 말입니다.
지혜를 깨달은 사람의 얼굴에서 지혜의 광채가 나오듯이, 평생을 정직하게 산 사람의 얼굴에서는 정직의 광채가 나옵니다. 감사하며 산 사람에게는 감사의 광채가 나오고, 겸손하고 온유하게 살아온 사람의 얼굴에서는 겸손과 온유의 광채가 나오기 마련입니다. 마흔이 넘은 사람의 얼굴에는 그 사람이 어떤 인생을 살아왔는지에 대한 흔적이 남는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마음을 품고 어떤 감정에 휩싸여 살며 어떤 말을 하고 어떤 행동을 하며 사느냐에 따라 얼굴이 변합니다. 분노하고 원망하고 질투하고 교만하고 포악하고 거짓되면 얼굴은 점점 더 굳어질 것입니다. 하지만 사랑하고 용서하고 감사하고 겸손하고 정직하고 진실하면 굳어진 얼굴도 환한 얼굴로 변할 것입니다. 우리의 얼굴은 우리가 살아온 인생의 역사책과 같습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전도자는 지금 지혜 있는 사람을 찾고 있습니다. 전도자는 왜 지혜 있는 사람을 찾습니까? 사물의 이치를 깨닫고 그 이치를 따라 살아가는 사람만이 허무하고 헛될 수밖에 없는 인생을 소중하고 가치 있게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런 사람이 많아질 때 비로소 우리가 살아야 하는 허무하고 헛된 세상이 조금은 더 나아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비록 지혜자가 되지 못하더라도 지혜가 무엇인지 누가 지혜로운 사람인지를 찾으려는 간절함은 가지고 살아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의 삶은 전도자의 한탄처럼 헛되고 헛된 인생으로 끝나고 말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