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와성경공부
전도서29-和而不同 同而不和

和而不同 同而不和

전도서 8:2-8

 

전도서 강해 스물아홉 번째 시간입니다. 오늘은 화이부동, 동이불화라는 제목으로 말씀 전합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전도서의 말씀이 무엇에 관한 말씀입니까? 세상에서 최고 권력자라고 할 수 있는 왕에 대한 말씀입니다. 전도자는 왜 왕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 것일까요? 아마도 전도자는 왕에게서 지혜자의 모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리고 왕이 다스리는 세상이 옳고 바른 세상이 되기를 기대했습니다.


전도자는 왜 왕에게 이런 기대를 했을까요? 이것을 알기 위해선 당시 이스라엘 백성이 왕을 어떻게 생각했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에서 왕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지혜자이며 신의 대리자라고 믿었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던 나라에서는 왕을 어떻게 생각했습니까? 신과 동격인 존재로 여겼습니다. 실제로 당시에 왕은 모든 권력을 가진 그야말로 막강한 신적인 권세를 휘두르는 존재였습니다.


하지만 전도자가 바라본 왕의 실상은 자기가 기대하고 생각한 것과는 너무나 달랐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왕이라고 하지만 대단한 지혜자도 아니고 신의 대리자도 아니었습니다. 물론 전도자가 이것을 드러내놓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왕에 대해 백성들이 가져야 하는 태도를 설명하는 전도자의 권면에는 왕에 대한 깊은 실망이 담겨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보는 전도서의 말씀은 한마디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세상의 지도자나 권력자에 대해서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할지를 권고하는 말씀입니다. 전도자의 권면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전도자의 권면은 문자적으로만 보면 왕의 명령에 복종하는 것이, 백성의 마땅한 도리인 것처럼 보입니다.


8:2 나는 권한다. 왕의 명령에 복종하여라. 그것은 네가 하나님 앞에서 맹세한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도자가 왕의 명령에 복종하라고 권고하는 진짜 이유가 무엇입니까? 백성들이 왕의 명령을 지켜야 하는 이유는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 맹세하였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왕의 명령을 지키라는 전도자의 권면에 담긴 진짜 의미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 맹세한 것을 지켜야 하는 것이 전도자의 권면에 담긴 핵심 메시지입니다.


전도서 82절에는 두 권력자가 등장합니다. 누구입니까? 왕과 하나님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왕이 다스리는 영역이 있고, 하나님께서 통치하는 영역이 있습니다. 신앙인은 두 나라를 사는 존재입니다. 지금도 여전히 우리는 세상 지도자가 다스리는 나라와 하나님께서 다스리는 하나님 나라 사이에서 살고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모두 이중 국적자입니다.


전도자는 왕이 싫어하는 일을 고집하지 말고 왕 앞에서 무례하게 행하지 말고 왕에게 함부로 따지지 말라고 권면합니다. 전도자가 이렇게 권면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왕은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최고 권력자이기 때문입니다. 전도자의 이러한 권면은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왕의 통치 아래 살아가야 하는 엄중한 현실을 일깨워주기 위함입니다.


8:3-4 왕이 싫어하는 일은 고집하지 말고 왕 앞에서는 물러나거라. 왕은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사람이다. 왕의 말이 곧 최고의 법인데 누가 감히 그에게 "왜 그렇게 하십니까?"하고 말할 수 있겠는가?


우리가 비록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어 하나님의 거룩한 자녀가 되었다고는 하지만 우리가 두 발을 딛고 사는 현실은 세상입니다. 우리 대부분의 일상이 벌어지는 현장은 하나님 나라의 모형인 교회가 아니라 세상입니다. 그리고 세상에 발을 딛고 살면서 하나님의 자녀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세상을 사는 것이 결코,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세상 사는 것이 버겁더라도 세상을 등지고 살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마태복음 17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을 데리고 높은 산 위에 올라가셨습니다. 산 정상에서 예수님의 모습이 신비한 모습으로 변화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최고의 영적 지도자라고 여기는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나더니 예수님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제자들이 보게 됩니다.


이 광경을 지켜본 베드로가 너무나 신비하고 감격스러워 여기가 좋으니 여기서 내려가지 말자고 합니다. 자신이 예수님과 모세와 엘리야를 위해 초막을 지을 테니 산 아래로 내려가지 말고 평생 이곳에 머물러 살자고 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어떻게 하셨습니까? 온갖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와 고난과 시련이 기다리고 있는 산 아래로 내려오셨습니다.


17:4 베드로가 예수께 여쭈어 이르되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만일 주께서 원하시면 내가 여기서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님을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리이다


아무리 산 위의 경험이 은혜롭고 감동적이라고 해도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자리가 산 위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발을 딛고 살아가야 하는 현실은 산 위가 아니라 산 아래입니다. 마찬가지로 교회는 세상과 동떨어진 높은 산 위에 있는 하나님 나라가 아닙니다. 교회는 온갖 인생의 문제와 시련과 고통이 난무하는 세상 속에 있어야 하는 하나님 나라입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두 나라를 동시에 살아야 한다는 현실이 대단히 심각한 도전으로 다가옵니다.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야 하는 현실은 우리에게 늘 큰 부담이 됩니다. 도대체 우리는 이 두 나라 사이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전도자는 세상의 권세자 앞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8:5-6 왕의 명령을 지키는 이는 안전하다. 지혜 있는 사람은 언제 어떻게 그 일을 하여야 하는지를 안다. 우리가 비록 장래 일을 몰라서 크게 고통을 당한다 해도, 모든 일에는 알맞은 때가 있고, 알맞는 방법이 있다.


전도자가 언급하고 있는 왕은 결코 선한 왕이 아닙니다. 이것은 우리가 발을 딛고 사는 세상이 결코 선하지도 의롭지도 않음을 나타내는 메타포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비록 선한 왕이 아니라고 해도 당장은 왕의 명령을 지키며 살라고 권면합니다. 그래야 최고 권력자의 횡포에서 안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세상 권세에 무조건 복종하며 비굴하고 비겁하게 살라는 것이 아닙니다. 전도자는 무모하게 왕의 권력에 대항하다가 불행한 일을 겪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결코 지혜로운 대처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모든 일에는 알맞은 때와 방법이 있다는 전도자의 권고는 하나님의 때를 참고 인내하며 기다리라는 말씀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전도자는 지금까지 세상의 왕이 가진 권력이 얼마나 크고 대단한지를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세상 권세가 얼마나 제한적인지를 설명합니다. 전도자는 세상의 통치자가 휘두르는 권력이 대단히 막강하게 보이는 것 같지만, 세상 모든 권력에는 한계가 있음을 지적합니다.


아무리 최고 권력을 가진 왕이라고 해도 장래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아무도 알 수 없음을 지적합니다. 또한 아무리 막강한 권력자라도 바람 하나도 맘대로 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나아가 백성들의 생명을 마음대로 휘두르는 권력자라도 막상 자기의 죽음에 대해선 어찌할 수 없는 것이 권력자의 한계입니다. 또한 전쟁을 피할 수도 없으며 재앙이 닥친다고 해도 백성들을 구하여 내지도 못합니다.


8:7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모른다. 앞으로 일어날 일을 말하여 줄 수 있는 사람이 누구인가?

8:8 바람을 주장하여 바람을 움직이게 할 사람도 없고 죽는 날을 주장할 사람도 없으며 전쟁할 때를 모면할 사람도 없으니 악이 그의 주민들을 건져낼 수는 없느니라


세상의 권세는 너무나 대단하고 엄청나서 마치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일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막상 아무리 강력한 세상 권세라고 할지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지극히 사소하고 부질없는 헛된 것에 불과합니다. 그 어떤 대단한 세상의 권력자라고 해도 바람 하나도, 자기의 죽음조차 연기할 수 없는 헛되고 부질없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전도자는 우리에게 이것을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어 하나님 나라의 거룩한 백성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는 세상에 발을 딛고 살아가야 하는 존재입니다.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세상은 세상 방식대로 살고 하나님 나라를 상징하는 교회에서는 신앙의 방식대로 살면 됩니까? 그렇다면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고 빛이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아무짝에도 쓸데없는 말씀이 되고 맙니다.


다니엘은 15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바벨론의 포로로 끌려 왔습니다. 그때부터 다니엘은 바벨론이라는 이방 나라 이방 왕을 섬기는 신하로 살아야 했습니다. 그런데 이방 왕을 섬기는 신하가 되었다고 해서 하나님을 믿는 다니엘의 믿음이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유대 땅에 있을 때보다 더 철저해졌습니다.


다니엘은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었습니까? 바벨론 왕의 권세를 무시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바벨론 왕의 권세를 절대적인 권세로 여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다니엘은 세상 권세보다 더 높으신 하나님의 권세를 최고의 자리에 두었습니다. 그래서 다니엘은 바벨론의 왕을 섬기면서도 하나님을 드러내는 자로 살 수 있었습니다.


2:47 왕이 대답하여 다니엘에게 이르되 너희 하나님은 참으로 모든 신들의 신이시요 모든 왕의 주재시로다 네가 능히 이 은밀한 것을 나타내었으니 네 하나님은 또 은밀한 것을 나타내시는 이시로다


말씀을 마칩니다. 공자가 쓴 논어에 보면 이런 글이 있습니다. “군자는 화이부동(和而不同)하고 소인은 동이불화(同而不和)한다무슨 뜻입니까? 지혜로운 사람은 자신이 처한 상황이나 사람들과 잘 화합하며 살지만 그렇다고 자기의 소신이나 의로움은 포기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어리석은 사람은 남들과 같은 생각과 가치를 추구하고 살면서 막상 다른 사람들과는 화합하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세상과 잘 어울려 살면서도 세상이 내세우는 가치와 신념에 동화되지 말고 다니엘처럼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굳건히 지킬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발을 딛고 있는 일터와 가정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화이부동할 줄 아는 다니엘과 같은 신실한 믿음의 사람으로 살아가실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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