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me? Why not!
전도서 9:11-12
전도서 강해 서른네 번째 시간입니다. 오늘은 “Why me?, Why not!”이라는 제목으로 말씀 전합니다.
전도서 9장은 두 가지 매우 중요한 인생의 교훈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어떤 사람도 심지어 아무리 의인이나 지혜자라고 할지라도 자신의 미래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모든 사람은 모두 죽는다는 것입니다. 죽음이라는 인간의 운명 앞에는 그 어떤 예외도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자신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며 결국에는 반드시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을 지닌 인간에게 전도자가 일러준 충고가 무엇이었습니까? 지극히 평범해 보이는 일상에 만족하며 일상을 즐기며 살라는 것입니다. 일상을 즐기며 사는 것이야말로 알 수 없는 막연한 미래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에서 벗어나는 지혜이며 죽음이라는 인간의 피할 수 없는 운명에 사로잡히지 않고 살아있음을 가장 잘 즐기는 방법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일상으로 보내셨습니다. 평범한 우리의 일상이야말로 하나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주신 가장 소중한 사명입니다. 일상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차려주신 식탁이자 은총입니다. 따라서 평범한 일상이라고, 반복하는 일상이라고 소홀히 여기거나 함부로 지내지 말아야 합니다. 일상이 행복하고 건강한 사람만이 그 일생이 행복하고 건강할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전도서 9장 11절과 12절의 말씀은 우리가 즐기고 만족하며 살아야 하는 일상을 흔들고 무너뜨리는 것들에 대해 경고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전도자는 막연하게 무조건 일상을 즐기고 만족하며 살아야 한다는 낙관주의자도 세상의 불의와 비정한 현실 때문에 세상을 부정하고 미워하는 허무주의자도 아닙니다.
전도자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으로 일상을 살아갈 것을 권면하면서도 세상살이 중에 경험하게 되는 예상하지 못한 일이나 부당해 보이는 악한 현실에 대해 부정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일상을 기쁨으로 대하며 즐기려고 해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 일어나거나 닥치면 일상의 즐거움이나 만족이 한순간에 깨어질 수 있다는 것을 경고합니다.
전도자가 해아래 인간들의 삶을 오랫동안 관찰하고서 발견한 깨달음이 무엇입니까? 전도자가 본 인생들의 모습은 아무리 빠른 경주자들이고 달리기에서 항상 이기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또한 아무리 힘센 용사들이라고 해서 전쟁에서 반드시 승리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나아가 지혜자라고 해서 항상 재물을 얻는 것도 아니며 많은 배운 사람이라고 항상 성공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전9:11 내가 다시 해 아래에서 보니 빠른 경주자들이라고 선착하는 것이 아니며 용사들이라고 전쟁에 승리하는 것이 아니며 지혜자들이라고 음식물을 얻는 것도 아니며 명철자들이라고 재물을 얻는 것도 아니며 지식인들이라고 은총을 입는 것이 아니니 이는 시기와 기회는 그들 모두에게 임함이니라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고 예상하는 것은 빠른 자가 경주에서 이기고, 힘센 사람이 싸움에서 이기고, 지혜로운 사람이 재물을 얻으며, 많은 배운 사람이 세상에서 성공하고 높은 자리에 오르는 것입니다. 이것이 세상의 상식이며 가르침입니다. 그래서 빠른 자가 되기 위해 힘세 자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더 많이 공부하여 지식을 가진 자가 되라고 합니다.
하지만 전도자가 본 세상의 현실은 사람들이 생각하고 기대하는 것과 같지 않았습니다. 빠르다고 항상 달리기에서 이기는 것이 아닙니다. 힘이 세다고 항상 전쟁에서 이기는 것도 아닙니다. 지혜가 있다고 남들보다 많이 배웠다고 늘 잘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생기는 것입니까?
전도자는 이것에 대해 “시기와 기회”가 그들 모두에게 닥치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여기서 시기와 기회는 불행한 사건이 일어나는 때와 경우를 의미합니다. 새번역 성경은 “시기와 기회”를 “불행한 때와 재난”이라고 번역하였습니다. 전도자는 빠르다고 힘이 세다고 똑똑하다고 승리와 성공을 장담할 수 없는 것은 언제 어느 순간 불행한 일이 닥칠지 모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전도서 9장 12절은 좀 더 분명하고 명확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전도자는 인간의 기대와 예상을 깨뜨리는 사건의 원인을 “재앙의 날”이라고 표현하였습니다. 재앙은 날은 아무도 모르는 날에 홀연히 닥칩니다. 아무도 생각하지 않는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홀연히 덮치기에 재난이고 재앙이 되는 것입니다.
전9:12 분명히 사람은 자기의 시기도 알지 못하나니 물고기들이 재난의 그물에 걸리고 새들이 올무에 걸림 같이 인생들도 재앙의 날이 그들에게 홀연히 임하면 거기에 걸리느니라
물고기가 넓은 바다에 쳐 놓은 그물에 걸리고 넓은 하늘을 날아다니는 새들이 작은 덫에 걸리는 것처럼, 아무리 빠른 사람이라도 아무리 힘센 용사라도, 아무리 지혜로운 사람이라도 재앙의 날이 홀연히 닥치면 결코 그런 재앙을 피하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런 재앙이 언제 어떻게 닥칠지 전혀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도무지 예측할 수 없는 인생의 재앙 그리고 그것으로 인해 사람들의 예상과 기대가 허무하게 무너지는 현실을 통해 전도자가 말하고 싶었던 것이 무엇일까요? 개인적으로 저는 사람의 계획대로 사람의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 인생이니 계획대로 뜻대로 되지 않는 인생 때문에 좌절하거나 낙심하지 말라는 전도자의 음성으로 들었습니다.
예상치 못한 재난이나 재앙 또는 불행이 닥칠 때 대부분 사람은 주로 어떤 반응을 보입니까? 여러분은 어떤 반응을 보였습니까? 아마도 사람들 대부분은 “왜 하필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느냐?”라며 자신에게 닥친 불행한 재난이나 재앙에 대해 원망하며 낙심할 것입니다.
하나님을 열심히 믿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일수록 “왜 하필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느냐”라는 원망과 낙심은 더욱 클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을 믿는 자신의 믿음이 예상치 못한 재난이나 재앙을 피하게 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를 하면 신앙생활을 했기 때문입니다.
바이든 대통령의 집무실 책상에는 매우 독특한 2컷짜리 만화 액자가 올려있습니다. “공포의 헤이가르(Hagar the Horribel)”란 제목의 만화 액자로 아주 오래전 그의 아버지 Joseph Biden이 아들 Joe Biden에게 선물한 액자입니다. 바이든은 아버지가 선물한 이 액자를 늘 책상 위에 올려놓는다고 합니다. 아버지가 이 액자를 아들 바이든에게 선물하게 된 이유가 있습니다.
조 바이든이 29살 때였던 1972년, 그는 미국 역사상 최연소 상원의원에 당선하였습니다. 그런데 기쁨도 잠시 상원의원에 당선되었던 그해 크리스마스 즈음에 교통사고로 아내와 장녀를 잃고 두 아들마저 크게 다쳤습니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던 바이든은 왜 하필 나에게 이런 고통을 주냐며 하나님을 원망하고 오랫동안 슬픔에 사로잡혀 방황하며 지냈다고 합니다.
이해하기 힘든 인생의 시련으로 방황하는 아들에게 아버지가 그를 위로하고 격려하기 위해 준 것이 바로 두 컷짜리 만화 액자였던 것입니다. 아버지 조셉 바이든이 아들 조 바이든에게 준 두 컷짜리 만화는 예상치 못한 인생의 역경에 대한 매우 놀라운 성찰이 담겨 있습니다.
바이킹 “해이가르”가 항해 중이던 자신이 탄 배가 갑작스러운 폭풍우에 벼락까지 맞아 침몰하게 되었습니다. “해이가르”는 하나님을 원망하면서 비바람이 몰아치는 하늘을 향하여 “Why me? (왜 하필 나입니까?)” 소리칩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그에게 “Why not? (왜 너는 안되는 거야?)”이라고 묻는 만화입니다.
두 컷짜리 만화가 주는 교훈이 무엇입니까? 예상치 못한 재난이나 역경을 만났을 때 사람들의 주된 반응은 “Why me?”에 집착합니다. 하지만 인생은 누구에게나 그리고 언제라도 예상치 못한 인생의 불행은 찾아올 수 있습니다. 이것이 하늘에서 들려온 “Why not?”의 의미입니다. 예상치 못한 재난이나 재앙은 하늘의 심판이 아니라 누구라도 살면서 겪을 수 있는 사건입니다.
바이든의 예상치 못한 재앙은 교통사고에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2015년 당시 46세였던 장남 보 바이든이 뇌종양으로 세상을 떠나는 시련을 겪게 됩니다. 장차 미국의 대통령도 될 수 있다고 인정받던 아들을 떠나보내고서야 바이든은 자기 아버지가 자신에게 준 두 컷짜리 만화가 주는 메시지가 너무나 소중했다고 고백하였습니다. 그는 아버지가 자신에게 선물한 두 컷짜리 만화 때문에 자기의 신앙을 지킬 수 있었다고 했습니다.
그는 이 만화를 통해 아무리 내가 겪는 일이 나쁜 일처럼 여겨져도 많은 사람이 나보다 훨씬 더 힘든 일을 겪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또한 내게 위로의 손길을 내미는 사람들과 예상치 못한 재난이나 불행 가운데서도 삶의 목적을 찾으려는 노력을 통해 고통스러운 사건을 극복해 나갈 수 있다는 점을 깨달았다고 고백하였습니다.
오늘 우리가 생각하는 전도서의 말씀은 예상하지 못한 재난이나 불행 때문에 “Why me? 왜 하필 나입니까?” 묻는 사람들을 향한 전도자의 가르침입니다. 전도자는 어떤 사람에게도 재앙의 날은 닥칠 수 있다고 선포합니다. 그리고 갑자기 닥치는 재앙은 바다의 물고기 그물을 피하지 못하고 하늘의 새가 덫을 피하지 못하는 것처럼 누구라도 피하지 못하는 것이라 경고합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어떻게 해야 우리의 일상을 송두리째 무너뜨리려는 재앙이나 불행에 넘어지지 않고 우리의 일상을 지켜낼 수 있습니까? 불현듯 닥치는 인생의 재앙이나 불행을 대처하고 극복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왜 하필 나입니까?” 묻는 것이 아닙니다. 이렇게 물어서는 자기 연민이나 자기 합리화에만 빠질 뿐 절대로 내게 닥친 문제를 극복할 수 없습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합니까? 재앙의 날은 누구에게나 홀연히 임한다는 사실입니다. 갑자기 찾아오고 예고도 없이 닥칩니다. 따라서 예상치 못한 재난이나 불행이 일어나지 않는 것을 당연한 일로 여기지 말아야 합니다. 오히려 정반대로 예상치 못한 재난이나 불행은 누구에게나 언제라도 일어날 수 있는 당연한 일로 여기는 것입니다. 그래야 평범한 일상이 얼마나 소중하고 감사한지를 날마다 깨닫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