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든 탑이 무너지랴? 무너진다.
전도서 10:1-3
ⓢ전도서 강해 서른여섯 번째 시간입니다. 오늘은 “공든 탑이 무너지랴? 무너진다.”라는 제목으로 말씀 전합니다.
전도자는 지혜를 강조하고 있지만, 그 지혜가 아주 작은 인간의 어리석음에 의해 너무나 쉽게 무너질 수 있음을 경고합니다. 전도서 10장은 공들여 쌓은 지혜를 순식간에 무너뜨리는 인간의 어리석음에 대한 말씀입니다. 전도서 10장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는 “우매” 또는 “우매자”입니다. 한마디로 전도서 10장은 인간의 어리석음에 대한 경고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혜와 어리석음에 대해 말씀하고 있는 전도서 10장을 이해하기 위해선 먼저 전도서가 말하는 지혜와 어리석음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이 생각하는 지혜는 무엇이고 어리석음은 무엇입니까? 어떤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이고, 어떤 사람이 어리석은 사람입니까?
전도서가 강조하고 있는 지혜를 단순히 지식이나 지적인 능력으로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성경이 말하는 “지혜”는 단수한 지식의 많음이나 지적인 능력이 아닙니다. 성경이 말하는 “지혜”는 지극히 영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잠언이나 시편을 보면 지혜에 대해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시111:10 여호와를 경외함이 지혜의 근본이라
잠9:10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
성경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을 왜 지혜의 근본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인생을 사는 참된 지혜는 사람의 지식이나 능력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에게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지혜로운 사람은 자신의 지식이나 힘과 능력을 의지하는 사람이 아니라 오직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입니다.
마찬가지로 성경이 “우매” 또는 “우매자”라고 할 때 단순히 지식적인 면이나 지적인 능력에 있어서 우둔하거나 어리석다는 뜻으로 말씀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이 말씀하는 어리석음은 세상의 지식이 전부인 양 착각하는 것이며 어리석은 자는 자신이 알고 있는 세상의 지식이 마치 세상 지식의 전부인 양 착각에 빠진 사람을 의미합니다.
전도자는 인생의 어리석음을 향 기름에 빠진 죽은 파리로 비유하였습니다. 파리가 날아다니다가 향 기름 냄새를 맡고는 향유 병에 들어갔습니다. 향유 병에 들어간 파리는 향 기름이 날개에 묻어 병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그 속에서 죽게 되었습니다. 향 기름에 빠져 죽은 파리들로 인해 향 기름이 본래의 아름다운 향을 잃고는 이상한 냄새가 나기 시작합니다. 귀하고 값비싼 향유일수록 아주 작은 이물질로 인해 쉽게 변질한다고 합니다.
전10:1 죽은 파리들이 향 기름을 악취가 나게 만드는 것 같이 적은 우매가 지혜와 존귀를 난처하게 만드느니라
전도자의 비유에서 죽은 파리는 무엇을 의미합니까? 아주 작은 실수 또는 작은 어리석은 일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향 기름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한 사람이 쌓은 인생의 지혜와 그 지혜로 인한 존귀를 의미합니다. 전도자는 지혜롭고 존귀한 사람일수록 아주 작은 실수나 작은 어리석음 때문에 평생토록 쌓은 지혜와 존귀가 무너지는 것은 보았던 것입니다.
전도서 10장 1절이 강조하는 것은 아주 작은 어리석음입니다. 변변치 않은 작은 일 하나입니다.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찮은 것입니다. 크고 대단한 실수나 잘못이 아닙니다. 아주 사소하고 작은 실수나 잘못입니다. 그런데 그 작은 것이, 그 변변치 않은 것이, 그 하찮은 것이 평생을 쌓은 지혜와 존귀를 한순간에 땅에 떨어뜨리고 만다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죽은 파리들이 향 기름을 악취가 나게 만든다”라는 전도자의 비유는 작은 어리석음이, 하찮은 실수가, 대단치 않은 잘못이 평생을 쌓은 지혜와 존귀를 무너뜨린다는 메타포입니다. 죽은 파리가 아름다운 향내를 역겨운 냄새로 변질시키듯, 하찮아 보이는 어리석은 일 하나가 인생 전체를 망쳐버린다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이 정도쯤이야 하는 작고 사소한 일에 대해서 대수롭지 않게 여깁니다. 무시해 버립니다. 하지만 의외로 사람들은 아주 사소한 것에 마음이 움직이고, 사소해 보이는 일에 무너지거나 사소한 일에 감정 상하는 경우가 훨씬 더 많습니다.
누가 생각해도 크고 대단한 일은 따지고 물을 수 있지만 사소한 일은 따지고 묻기에 좀스럽다고 여기기에 오히려 마음에 담아두는 경우가 훨씬 더 많습니다. 그래서 누군가와 가까워지거나 멀어지는 계기도 사실 대단한 문제에서 시작되기보다는 아주 사소한 잘못이나 이유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훨씬 더 많습니다.
작은 구멍 하나가 댐을 무너뜨린다고 했습니다. 우리 속담에도 ‘작은 불씨 하나가 온 산을 태운다.’ ‘바늘 도둑이 소도둑 된다.’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이것이 주는 교훈이 무엇입니까? 사소한 잘못을 가볍게 여겨서 고치지 않고 내버려 두면 나중에 큰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점을 가르쳐 주는 속담들입니다. 사소한 것은 결코 사소한 것이 아닙니다.
“깨진 유리창의 법칙”이라고 있습니다. 이것은 미국의 범죄학자인 제임스 윌슨(James Wilson)과 조지 켈링(George Kelling)이라는 사람이 주장한 것으로 만약 어떤 건물의 유리창이 깨어진 채로 오랫동안 방치되어있다면 다른 유리창들도 곧 깨진다는 것입니다.
비록 한 장의 깨진 유리창이지만 이것을 깨진 채로 방치한다는 것은 아무도 이것에 대해 신경 쓰지 않는다는 신호이기에 사람들도 아무렇게나 대해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지나가는 사람들이 심심풀이로 깨진 유리창 옆에 있는 깨지지 않은 유리창에 돌을 던져 나머지 유리창도 깨버리게 됩니다.
“깨진 유리창의 법칙”은 우리 주변 곳곳에서 나타납니다. 쓰레기가 없는 깨끗한 거리에는 사람들이 함부로 쓰레기를 버리지 않습니다. 하지만 거리에 쓰레기가 버려져 이미 지저분하다면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쓰레기를 버리려고 합니다. ‘이곳은 쓰레기를 버려도 되는 곳’이라 여겨 쓰레기를 함부로 버린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쓰레기는 쓰레기를 부릅니다. 담벼락 낚서
오늘날 교회는 온갖 종류의 부패로 얼룩져 있습니다. 왜 이렇게 되었습니까? 아주 사소한 문제라고 해서, 그리 심각하지 않은 죄라고 해서 방치하거나 합리화하였기 때문입니다. 큰 실수나 잘못은 고치기 쉽습니다. 누가 봐도 이것이 잘못된 일이고 죄라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사소한 문제나 잘못은 많은 경우 그래도 방치하거나 내버려 둡니다. 별일 아니라고 심각하지 않은 문제라 여기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사소하고 별것 아닌 것 같아도 잘못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을 때는 즉각적인 회개와 함께 잘못을 개선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사소하고 작은 잘못이 교회를 무너뜨리고 말 것입니다.
누가 어리석은 자입니까? 큰 것이 아니라 작은 것이라고, 큰일이 아니라 작은 일이라고 대수롭지 않고 여기고 우습게 여기는 사람입니다. 보잘것없는 일이라고 하찮게 여기는 사람이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별 볼 일 없는 사람이라고 무시하고 함부로 여기는 사람이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그럼 어떤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입니까? 작은 일을 소홀히 여기지 않는 사람입니다. 사람들이 보잘것없다고 여기는 일을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입니다. 사람들이 가난하다고 사회적 지위가 높지 않다고 무시하고 함부로 여기는 사람을 소중하게 여기고 존중할 줄 아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마10:42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작은 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마25:40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자기보다 뛰어난 사람, 부자인 사람, 지위가 높은 사람에게 예의를 갖추어 행동하는 것은 별다른 노력이나 인격이 없어도 거의 자동으로 됩니다. 하지만 자기보다 못한 사람에게 예의를 갖추어 행동하고 인격을 존중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자기보다 못한 사람에게 예의를 갖추고 친절을 베풀기 위해선 지혜가 필요하고 믿음이 필요합니다.
우리 속담에 “공든 탑이 무너지랴”라는 말이 있습니다. 저는 아무리 공들여 세운 탑이라도 한 방에 무너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특별히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른다는 우리의 신앙이 그렇습니다. 죽은 파리가 향 기름에서 악취를 내게 하듯 아무리 공들여 쌓은 신앙이라도 아주 작은 실수나 잘못으로도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는 것이 하나님을 믿는 신앙입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60년 동안 숨 쉬며 살았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이 어느 날 “야, 나도 대단하다, 어떻게 60년 동안 한순간도 쉬지 않고 숨을 쉬고 살았냐, 지금껏 충분히 숨 쉬고 살았으니 오늘 하루는 숨 쉬지 않고 살아보자.” 이렇게 결단했다고 합니다. 이 사람이 어떻게 될까요? 아마 이 사람은 하루는커녕 단 5분만 숨을 쉬지 않아도 죽고 말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도 보이지 않는 공기를 숨 쉬며 사는 것과 같은 원리라고 생각합니다. 30년을 넘게 교회를 다니며 신앙생활을 했다고 해도 나는 믿음이 좋다 자신 있게 말하는 사람은 없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대신에 아무리 30년을 넘게 교회를 다니며 신앙생활을 했어도 아주 사소하고 작은 실수와 죄로 인해 30년 교회 다니며 신앙생활 한 것도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절대로 저 자신을 믿지 않습니다. 제가 아무리 어머니 태 속에서부터 교회를 다니고, 수십 년을 목회했다고 하지만 언제든지 실족할 수 있고, 작은 실수나 잘못으로 죄를 범할 수 있는 사람이 바로 저입니다. 이것은 비단 저뿐만 아니라 여러분 모두의 모습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이것이 지혜 있는 사람의 자세이며 태도입니다.